오리진, 2, 인퀴지션 전부 1회차씩 한 상태로 진행했고 세계관에 대해서는 나름 부족함 없이 알고 있다고 자부함. 스카이림도 엘더스크롤 세계관 빠삭하게 공부한 다음에 시작할 정도로 세계관, 설정충이라 그런듯. 각설하고 시작함. 일단 평점부터 갈길게. 10점 만점이면 7점 주고 싶어. 아마 인퀴지션은 6점을 줄 것 같고 오리진은 9점을 줄 것 같아. 대충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균 점수 정도로 이해해줬으면 한다. 장점 단점 나눠서 얘기하고 싶지가 않음. 그도 그럴게 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 또 장점이 되는 경우가 이 게임에는 꽤 빈번해서 무 자르듯 자르기가 힘들더라. anyway, 나는 이 게임을 드래곤 에이지 진성 팬이 아니라 인퀴지션 정도 찍먹 혹은 인퀴지션만 완벽하게 플레이한 뒤에 시작한 유저의 시각으로 작성함. 드래곤 에이지 진성 팬이 많지 않기도 하고 그런 유저를 타겟하고 만든 게임이 아닌 건 분명하니까.

한 20시간이 넘어갈 즈음 베일가드의 시나리오 작가가 누군지 너무 궁금해져서 검색해봤다. 뭐 당연히 오리진때 내러티브쪽 맡았던 작가들은 다 떠나고 인퀴지션에서 함께했던 작가 혹은 새로운 이름이 보이더라. 이름을 찾고난 뒤 이 사람들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고 사는지 궁금해졌다. 아마 음악은 팝 차트 탑 텐으로 도배가 되어있을 것이고, 책은 열 살 짜리도 작정하면 읽을 수 있는 판타지 소설책, 영화는 20년대의 마블 시리즈 정도가 있겠네. 이 작품들을 향유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드래곤에이지의 대사를 작성하려거든 작가의 머릿속에는 저 작품들 이상의 개인적인 선호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무언가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 뿐이다. 모든 대사가 단순 무사안일주의에서 그친다. '아 이런 상황에서 나올법한 가장 평균적인 대사가 뭘까' 라는 의문을 던지면 매번 모든 NPC가 그 답을 내려준다. CHAT GPT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나는 오히려 스토리에서 매력을 느꼈다. 알다시피 대부분의 게임은 스토리를 특별히 꼬거나 하지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스토리텔링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단순한 이분법 혹은 갈등 요소마저 유려한 스토리텔링으로 유저로 하여금 더 와닿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퀴지션을 이어갈 스토리로 어떤 방향이 나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그럴싸한 답변을 내려준 베일가드 팀이 놀랍다. 스토리를 구상한 작가는 아마도 캡틴 마블을 넘어 평소 10년대의 마블 작품까지 섭렵한 듯하다. 문제는 스토리텔링에서 터진다. 환경적인 요소, 컷씬이나 플레이어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생각보다 깜짝 놀랄 만큼 괜찮았다. 아마 게임을 열심히 했다면 이 요소들에 대한 불만은 크게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캐릭터의 대화다.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 폴아웃 뉴 베가스에서는 어떤 상인에게 니가 누구냐 물어보면 '나는 상인이고 오늘 쏜 총알보다 총알에 맞은 동물의 가죽이 더 비싸길 기도한다'는 나름의 재치를 덧붙인다. 베일가드에서는 이런 답변을 내린다. '나 상인, 어디 출신'.

세계가 죽어있는 듯하다. 실제로 세계는 스토리상 임종을 앞두고 있긴 하지만 그 얘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누구와 대화를 하든 GPT와 대화를 하는 듯하기에 세계가 숨을 쉬지 않는 느낌이 든다. 그럼 이게 어떤 문제와 연계되는지 보자. 알다시피 드래곤에이지의 세계관은 상당히 방대하다. 엘더스크롤과 유일하게 비교될 판타지 세계관은 드래곤 에이지 뿐이다. 그럼 필시 이 세계관에 몰입을 하고 게임에서 습득하는 정보와 글을 탐독하고 알아가는 재미를 느낀다. 스카이림에서의 책들은 생각보다 몰입도에 큰 영향을 끼쳤고, 세계관 이해를 위한 인게임 속 안내문은 사실상 스카이림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베일가드의 한없이 가볍고 깊은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답변하며 오고가는 대사들은 그럴 의지를 꺾는다. 그러니까 게임을 더 깊게 몰입하고픈 하드코어 유저들, 혹은 전작을 즐기며 나의 머릿속에 쌓여온 정보의 흐름을 이어가고픈 드래곤 에이지 올드 팬들의 의지를 꺾는다. 스토리 연동의 문제가 아니다. 드래곤 에이지 정신의 연동이 끊어졌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7점을 줬다. 부족하지 않은 스토리, 쓰레기같은 대사. 그러나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완벽한 최적화와 의미있는 콘텐츠로 채운 게임의 분량, 맵 디자인, 훌륭한 밸런스,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던 훌륭한 액션성까지. 내 생각에 게임의 개발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게임의 본질 자체를 바꿀 순 없고 그래서 말 그대로 서브 퀘스트를 미친듯이 늘린 듯하다. 알다시피 서브 퀘스트의 양과 질은 게임 제작시 개발자들의 진정성과 개발에 들어간 비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모든 퀘스트가 의미있는 건 분명 아니지만, 말 그대로 인퀴지션식 단순 똥개훈련에서 완벽히 탈피하고 어느정도 게임의 전체적인 흐름에 유의미한 변화를 주기에 이는 분명 칭찬해야 마땅하다. 사실 이정도만 되도 8점은 충분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요즘 발매되는 게임이 이런 기본중의 기본조차 못하는 게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걸 장점으로 읊고 있다는 사실도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럼 대체 1점은 어디서 깎였냐. PC? 아니, 연동? 아니, 동료의 매력이다.

폴아웃 4의 파이퍼나 닉 발렌타인, 뉴 베가스의 캐시디나 베로니카, 가장 흔하게 비교되는 발더스 3의 카를라크나 레이젤, 혹은 섀도하트, 매스 이펙트의 리아라나 미란다. 모두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외모가 되거나, 외모가 안되면 외모를 뛰어넘을 매력이 있거나, 혹은 파이퍼처럼 둘 다 되거나. 이 모두의 외모가 베일가드 동료의 외모보다 뛰어나다는 게 아니다. 동료가 무조건 매력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스카이림은 암덩어리 시스템을 하나 껴앉고 있는 게임으로 전락한다. 문제는 이 베일가드라는 게임이 동료 퀘스트 위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큰 흐름은 있지만 결국 모든 동료의 개인사와 고민을 듣고 해결하거나 그저 들어준다. 동료 퀘스트가 하나의 세력과 연계되기도 하고, 직접적인 큰 줄기와 연계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게임의 동료는 다른 게임의 동료처럼 매력이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 아니라, 무조건 있어야만 하는 요소였다. 무미건조하고 영혼 없는 동료간의 대화, 재미 없는 억지 유쾌함, 내 눈에는 이쁘지도, 매력도 없는 외모.

그럼에도 베일가드를 인퀴지션보다 1점 더 준다. 그 이유는 결국 베일가드는 게임이고, 드래곤 에이지라는 핵심적인 세계관과 분위기에 비교적 동떨어져 있을지라도 단순한 재미와 몰입감, 게임의 짜임새만큼은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 점수는 순수하게 드래곤 에이지의 올드 팬의 관점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란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이 게임에 5점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