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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앝/짤✍] 레드테나 스토리 (11)~(에필로그)모바일에서 작성

ㅇㅇ(211.234) 2024.04.26 12:03:02
조회 206 추천 11 댓글 2
														
* "저 저택에는 아름다운 네 사람이 살았단다.."
첫사랑의 상실과 큐리에 대한 원망으로 현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슬픔과 분노로 요동쳤으며 마침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현은 방 바깥으로 한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불멸이라는 저주를 뒤집어 쓰고 살게 될 자신의 삶과 마주하게 된 순간, 현은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오스틴은 더 이상 곡을 쓰지 않았다. 불러 줄 이가 없는 노래들은 허공에 흩어져 모이지 못했다. 연주할 이 없는 그의 악보들은 집안 여기저기에 버려졌고 찢겨져 먼지가 되었다.현의 슬픔을 달랠 수 있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오스틴을 슬프게 했으며 스스로에게 느끼고 있던 자기 모멸감을 더욱 심화시켰다. 오스틴은 더 이상 펜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노래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현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은 지 여러 날이 지났을 때, 택은 큐리를 찾아갔다. 큰 소리는 나지 않았으나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택은 지친 얼굴로 큐리의 방을 나와 그 길로 저택을 떠났다. 잠시나마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게 했던 따뜻함은 이제 사라졌다. 더 이상은 나를 삶에 붙잡아 둘 것은 아무것도 없다. 택은 어딘가에 전설로 존재한다는 뱀파이어 사냥꾼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라면 애증이 공존하는 지옥같은 고통의 삶을 끝내줄 수 있을 것이다.
택이 떠난 큐리의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큐리는 커튼을 치고 어둠에 스스로를 가뒀다.  그리고 그들을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을 생각했다.더 이상 생각하기를 멈췄을 때 죽음과 같은 긴 잠에 빠져들었다.  그 기나긴 잠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연주하던 피아노 위에는 먼지가 쌓였다. 그들의 웃음 소리가 울려 퍼지던 정원에는 낙엽이 뒹굴었다. 돌보는 이 없는 저택은 나날이 황폐해져 갔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들었던 이는 절대 잊을 수 없었던  그들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처럼 남아 사람들 사이를 떠돌았다. 언젠가 다시 울려 퍼질 그들의 하모니를 기다리며.- 완(11)


* "내가 돌아왔어.."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이 어두컴컴했다. 시 외곽의 저택엔 오늘도 떨어지는 나무 이파리만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이리저리 뒹굴었다. '끼이익' 녹슨 소리와 함께 잠겨있던 문이 열렸고 '바스락바스락' 정원에 수북히 쌓인 낙엽이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택이 돌아왔다. 긴 여행으로 초췌해진 얼굴이었으나 죽음 속에서도 큐리를 감탄하게 했던 미모는 여전했다. 오히려 세월의 깊이가 더해진 깊은 눈매는 날카롭고 서늘했던 인상을 진중하고 부드럽게 변화시켰다. 오스틴은 현관 앞에서 택을 기다렸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껴안고 한참을 서 있었다.  
더 이상 음악을 믿지 않게 된 오스틴은 한동안 곡을 쓰지 않았다. 누군가의 목소리로 아름답게 울려퍼졌던 노래들은 더 이상 불리지 않았고 그가 심혈을 기울여 써 내려갔던 악보는 여기저기 흩어졌다. 그러나 오스틴이 음악을 부정할수록 음악은 계속 그의 머리 속으로 파고 들었다. 머리 속의 음악은 불리워지기를 원했다. 음악은 해방되길 원했다. 긴 시간 스스로를 억누르던 오스틴은 결국 음악의 의지에 굴복했고 터져나오는 영감을 막을 수 없었다. 다시 악보를 써 내려가면서 오스틴은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희열을 느꼈다. 음악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기쁨을 느꼈던 적이 있었나. 내 목소리로 직접 불러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낀 적이 있었나. 마침내 오스틴은 비밀스럽게 지켜왔던 자신의 목소리를 개방했다. 알토부터 베이스까지 거의 전 영역대를 아우르는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깊게 울려 퍼졌다.
뱀파이어 사냥꾼들을 찾아 나섰던 택은 긴 여행 도중 어느 길목에서 버스킹을 하던 사람들을 만났다.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 하는 그들을 보며 자신의 목소리를 얹고 싶어졌고 그의 합류는 길 가던 많은 사람들의 귀를 사로 잡았다. 노래가 끝났을 때 받은 큰 환호와 즐거움의 눈빛은 처음 현에게 노래를 불러 주었을 때의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 단지 노래만으로 사랑받았던 그 기억. 문득 그는 떠나 온 집이 그리워졌다. 그 안에서 피어나던 따뜻함과 유쾌함이 눈물나게 그리웠다. 택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택을 살아가게 했던 그 때의 따뜻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는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돌아온 택과 오스틴은 마주 앉아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떨어져 있었던 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둘은 많이 놀랐다. 과거에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둘은 미처 알지 못 했던 서로의 다른 모습과 생각들을 찾아내며 즐거워했고 기뻐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 사이로 수 년만에 처음으로 방밖으로 나온 현이 자리 잡았다.
긴 시간 동안 현은 잃어버린 그녀를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잃을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상실감에 파묻혀 슬퍼했고 절망했다. 마침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현은 깨지도 잠들지도 않은 상태로 의식과 무의식의 어디쯤을 떠돌았다.  어느 날 익숙하지만 낯선 노래 소리가 현의 의식을 깨웠다. 어릴 적부터 들어 온 사랑이 듬뿍 담겼던 목소리, 하지만 기쁨과 그리움이 함께 담긴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 현은 노래에 귀 기울였다. 아름다운 노래가, 그리운 목소리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늘 지켜주던 그 목소리, 노래 소리들. 왜 잊고 있었을까.  영원히 함께 할 이들이 내 곁에 이미 있었는데. 마침내 현은 가족을 찾았다.
LED벽난로가 다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장작을 태우기 시작했다.  떨어져 있었던 시간을 아쉬워하기라도 하듯 셋은 어깨를 붙여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화면으로 이리저리 튀고 있는 불꽃을 바라 보며 언젠가 돌아올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형제를 기다렸다. 그는 돌아올 것이다. 셋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확신했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시간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화면의 벽난로는 여전히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현은 오스틴의 무릎을 베고 잠들었고 택과 오스틴은 어깨를 기대고 앉아 나지막히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큐리가 들어왔다. 잠에서 깬 현은 달려가 큐리에게 안겼고 택은 큐리의 팔을 쓰다듬었다. 큐리는 다정하게 둘을 안아 주었고 오스틴은 소리없이 웃으며 셋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 (에필로그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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