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의 정확한 레시피를 아는가?

밥과 고추장, 계란후라이, 참기름

사실 이외에는 정해진 재료를 논하기가 어렵다

온갖 종류의 나물을 쓰까할 수도 있을 것이며

고기보다 맛있는 봄동 겉절이를 넣어 비빌 수도 있고

간혹 아이스크림 따위를 넣은 괴식이 탄생하기도 한다

필자는 잘 익은 열무김치를 넣어 비비는 것을 좋아한다

달고 짠 고추장과 고소한 참기름의 향에 약간의 산미와 아삭한 식감이 더해지며 입맛을 끌어올려 첫입보다 두 번째 입이 더 맛있는 아주 중독적인 식사가 준비되기 때문이다

수천 개의 클리셰가 준비되고 수만 개의 웹소설이 쏟아지는 오늘날,

작가들 또한 소재라는 이름의 비빔밥 재료를 찾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따금 이질적인 조합에 입맛을 버리면 사람 자체가 보수적으로 변한다

아, 얘는 소재로 어그로만 끄는 괴식이구나

민트초코에 솔의눈을 부어? 넌 죽어라

돌고 돌아 쓰까보다는 본연의 맛에 충실한 제목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의외로 기반부터 탄탄한 조합을 발견하기도 하는 거다

구운 파인애플을 통으로 넣은 수제버거가 더럽게 맛있는 것처럼

지금 리뷰할 소설, [사이버펑크 게임 속 성녀가 되었다]가 그렇다

성녀와 사이버펑크

두 소재의 조합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느낌은, 솔직히 좋지 않았다

성녀란 TS로 암캐가 된 주인공 중에서는 챙녀 다음으로 많은 직업이고 (사실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단지 그 배경이 사이버펑크라고 상승 작용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화 정도 읽다 보니 생각이 변했다

우선 필자는 사펑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SF로는 교양수업 과제 제출을 위해 '블레이드 러너'를 본 게 전부이고

사펑으로는 오로지 씹덕씹덕한 감성으로 '엣지러너'를 시청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펑 성녀의 세계관은 매우 친숙하게 다가왔다

엣지러너를 보는 사람들은 생각한다

데이비드 저새끼 저러다가 뒤지는 거 아니야?

퓨어 인간에서 점차 멀어지며 고철 따위를 덕지덕지 다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런데 그렇게 망가진 몸을 뚝딱 고칠 수 있다면?

사펑 성녀에서도 임플란트는 몸에 적지 않은 부담을 누적시킨다

하지만 주인공은 한순간에 그 모든 부담을 지워낼 수 있는 거다

신비도 어떤 특수 능력도 존재하지 않는 기계의 세상에서.

필자는 이 부분에서 사펑과 성녀의 조합이 매우 안정적이라고 느꼈다

사실 의원물은 많다

무림에서 의원을 한다든지

판타지에서 의사로 활약하거나 성녀의 기적을 보이기도 하고

현판에서 모든 관절, 근육, 혈관을 지배하는 한의사로 이름을 날리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세계관에서든 질병은 수동적이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다

아픈 것이 딱히 능력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아주 단편적으로 무협의 구음절맥 정도나 해당이 될까

하지만 이 '사이버펑크'라는 세계관은 능동적으로 아픈 것이 가능하다

부작용? 아는데 어쩌라고

강해질 수 있으면 빨리 뒤지는 게 대수인가?

본인의 선택에 의해 질병이 찾아오고, 당연히 후회와 고통도 훨씬 복합적이다

의원물에서는 주인공보다 환자의 시점이 더 중요한데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는 환자의 시점을 더 맛깔나게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앞으로 어떤 사람을 고치게 될지 기대하게 됐고, 재미를 느꼈다

무대에 대해서도 충분히 변화의 여지를 남겨두었기에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은 딱히 성녀로서 활동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픈 사람을 내버려둘 수 없어 하나둘 고치다가 교단의 성녀로 추앙받게 되는데

단체를 설립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서 여기서 약간 아쉬움이 들다가도

주인공이 지금 활동하는 배경이 세계관의 밑바닥이라서

명성이 쌓여도 충분히 위쪽 지배자들과 충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확장성 측면에서는 걱정할 필요 없이 즐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사람 고치는 의원물과 ts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소설을 추천한다

세 줄 요약

1. 기계박이들 + 약자들 치료해주는 소설

2. 소재의 조합이 굉장히 안정적임

3. 사펑 sf 몰라도 즐길 만한 라이트한 세계관

novelpia.com/novel/347173

관심 생겼으면 츄라이 츄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