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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주량으로 현피뜨고 참패하는 이야기

shortsen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5.26 15:50:19
조회 1322 추천 53 댓글 11
														



 한 성. 28살 회사원. 직급은 일반 사원. 그녀는 대기업까진 아니더라도 적당한 기업에 취직해서 꽤나 평화롭고도,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회사의 남자 사원들은 어설프게 개같은 성희롱을 하는 무뢰한들이 아니어서 남자 사원들을 상대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그 문제는 "인성이 완전히 미쳐돌아버린 30살의 여성 주임" 이라는 한 문장으로, 더 짧게는 "이가연 주임" 이라고 요약 할 수 있었다. 뭐만 하면 툭툭 쏘아붙이는 말을 던지고 가질 않나, 지 일을 나한테 떠넘기고 먼저 퇴근하지를 않나, 대놓고 남자들도 안하는 성희롱을 하고 안보이는 곳에서 심한 욕설을 일삼고. 오죽하면 주변의 사원들이 가만히 있지 말라고 부추기는 수준이었고 한성은 어리석게도 그 말로부터 용기를 얻어 회사에서 대판 싸운 일도 있었다.


 대체 왜 이가연 주임은 한성에게 악감정이 생겼는지 알 길은 없었으나 그것이 꽤나 심하게 뿌리박혀 있었고, 한성은 그 악감정을 은근히, 그리고 노골적으로 받아 삼킨 끝에 아마도 이가연 주임이 한성에게 가진 악감정보다도 더 큰 악감정을 쌓고 있었다. 한성이 주변의 착하지만 조금 모자란 사원들에게 용기를 얻어 이가연 주임과 대판 싸운 날, 퇴근하기까지 5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에 이가연 주임은 얼굴에서 피를 흘리는데도 불구하고 "괜찮아요. 스친 상처에요." 라며 병원에 가는걸 거부했던 한성의 뒤통수를 때리며 나타났다.



 "...........또 뭔데요?"


 한성은 안그래도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기분이 더 내려가지 않도록 억지로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이가연 주임은 팔짱을 끼고 한성에게 툭 내뱉듯이 말했다.


 "같이 퇴근해. 술 한잔 하자고. 마침 오늘 금요일이고."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회사원들에게 술이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사이 좋은 사람들끼리는 친목과 화합의 장을 열어주지만 그 반대인, 사이가 나쁜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자는건 "폭력은 안쓰겠지만 맞짱뜨자 씨발새끼야" 라고 말하는 것과 별 다를바가 없었다. 한성은 당연하게도 그걸 알고 있었고 이왕 싸운거 끝을 보자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깐 자리로 돌아갔던 이가연 주임은 5분이 지나서 퇴근 준비를 다 마친 상태로 한성의 자리로 돌아왔다. 한성 역시 마침 퇴근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일어나서 인사를 하며 걸어나갔다. 그 둘이 같이 나가는걸 바라본 다른 사원들은, 분명 누구 하나는 병원에 입원하느라 다음주에 출근을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



 회사에서 조금 떨어져있지만 분위기가 조용하니 괜찮은 바. 이가연 주임은 평소에 꽤나 금욕적인 이미지를 하고 있었기에 그냥 술집도 아니라 바에 온 것을 한성은 내심 신기하게 생각했다. 아니, 맞짱뜨자는 의미의 술자리를 하려고 했다면 소주나 퍼마실 수 있는 고깃집 같은곳에 가지 않나?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할지 내심 무서웠던 한성은 조용히 있기로 했다. 그 결과, 회사에서 나와서 바에 앉아 주문을 할 때 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 동안 둘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아마 누군가가 같이 있었다면 온갖 핑계를 대며 가버렸을 정도의 무서운 침묵이었다. 술 주문은 이가연 주임이 했으며 뭘 주문했는지 듣지 못한 한성은 무슨 술을 시켰을지도 궁금했다.


 곧 바텐더가 칵테일을 둘의 앞에 각각 한잔씩 내려놓았다. 꽤나 알록달록한 색깔의 칵테일. 보통 칵테일이 이렇게 층이 져서, 색 구분이 확실히 되는 편이던가? 마치 고무찰흙 쌓아놓고 지층 구조 배우던 초등학생때의 기억이 났다. 검은색, 연두색, 베이지색. 죄다 술의 색이라고 하기엔 너무 튀는 색깔인데. 잔을 들고 미심쩍게 바라보는 와중에 이가연이 자기 잔을 들고서 한성을 바라보았다.


 "뭐해? 안마시고."


 "....."


 한 2초 정도의 고민 끝에 한성은 칵테일을 입에 댔다. 분명 끔찍한 맛이 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달콤한 맛이 난다. 커피 향 나는 술이라. 평소에 커피를 즐기지는 않았지만 이런 특이한 형태로 맛을 보게 되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커피향 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달콤한 맛도 난다. 세번째로 하는 말이지만, 정말로 예상 외의 맛이었기 때문에 내내 굳어있던 표정이 풀어질 정도였다. 이가연 주임은 마셨나, 하고 옆을 돌아보니 본인의 잔은 안비우고 한성만 내내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기분나쁘게.'


 하지만 눈치를 봤다는걸 들키기 싫었던 한성은, 방금 했던 생각은 숨기고서 얼른 임기응변으로 원래 말을 걸려던 것 처럼 말을 꺼냈다.


 "칵테일 즐기는 줄은 몰랐네요. 그것도 이렇게 달콤한 술을."


 "..."


 이가연 주임은 그저 웃기만 하며 바텐더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바텐더는 "정말요?" 라고 되물었고, 한성은 이가연 주임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너무나 신경쓰였지만, 일단은 술잔을 비웠다. 지금보니 이가연 주임의 칵테일은 자신의 칵테일과는 색부터가 다른게, 한성에게 준 칵테일은 대충 고른게 아니라 본인이 고민해서 골랐다는 뜻...이겠지? 한성은 벌써 머리가 어지러웠다. 술이 달아서 생각없이 들이켰는데, 자기 주량이 낮은 편이라는걸 까먹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바텐더가 아까와 같은 칵테일을 또 한성 앞에 가져다주었다. 한성은 이가연 주임을 슬쩍 쳐다보고, 이가연 주임이 자기 잔을 비우고 있는걸 보고 나서야 자신 몫의 칵테일을 들이켰다. 아무튼 달기는 달아서 마시기는 쉬웠다.


 "...술이 참 달아요. 그죠? 인생이 씨발, 개같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이 술이 단건지 몰라도...."


 '지금 내가 무슨 소릴 한거야?'


 "...내 인생이 지금 딱 개같거든요? 한 8할 정도는 니 때문인거 아세요, 이 개같은 년아?"


 한성의 몸과 정신이 분리됐다. 다른 말로는 '취했다' 라고도 표현하는 그것이다. 한성의 제정신은 2m쯤 뒤에 둥둥 떠있는 채로 이성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채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성의 제정신은 바텐더가 세번째 잔을 자신의 몸에게 가져다주는 광경을 목격하고서 소멸하고 말았다.







--



 ...머리가 아프다. 한성은 갑작스레 쏟아진 빛에 눈을 팔로 가리며 어기적 어기적 몸을 돌렸다. 하지만 텅 빈, 푹신한 침대 대신에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한성의 몸에 걸렸다. 한성은 눈을 가린 팔을 내리고, 눈을 뜨려는 노력 끝에, 자신이 증오해 마지 않는 이가연 주임이 자기 옆에 누워있는걸 보았다.


 '꿈이다.'


 한성이 가장 먼저 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감각은 이것이 '꿈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어필하고 있었다. 이 끔찍한 상황이 현실이라는걸 믿고 싶지 않았던 한성은 몸을 일으키며 '이보다 더 끔찍 할 수는 없을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 있었다. 자기가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불 안을 들춰보고 확인까지 해보았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고 심지어는 허벅지나 배, 가슴에 립스틱 자국까지 남아있었다. 게다가 립스틱은 본인이 절대 쓰지 않는 색상으로.


 '물론 내 립스틱을 내 가슴이나 배에 묻힐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이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생각해, 생각해. 한성은 생각했다. 자신이 왜 이가연 주임과 같이 잠을 잤고, 심지어는 나체로. 게다가 지금보니 자기 집도 아니다. 이가연 주임의 집이 분명했다. 한성은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 한가지의 정답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며 이불을 다시 들춰서, 이번에는 이가연 주임의 몸을 살펴본다. 나체에, 립스틱 자국이 잔뜩 있다. 심지어는 자기가 어제 발랐던 색상이다.


 '나는 어제 이가연 주임이랑 술을 마시고, 만취해서 이가연 주임의 집에 와서 섹스하고 잤어.'


 이 상황을 종합해보면 어제 일어난 일은, 이것 뿐이다. 단 한가지의 정답이다. 그렇다고 그걸 필사적으로 부정하는건 멈추지 않았지만 진실의 힘은 너무나도 강했다. 침대에서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자기 몸을 한번 더 내려다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방 안의 책상에 자기 물건이 잘 놓여있었고 핸드폰도 있었다. 자기 핸드폰을 집어들어 확인해보니 출근 시간이 훨씬 지나있었다.


 "...."


 생각해보니 어제가 금요일이었고, 오늘은 토요일이다. 괜히 놀랐다. 주말이면 가끔 있는 상황이다. 피식 웃고는 핸드폰을 도로 내려놓았다. 한성은 나체로 있는게 거북했기 때문에 자기 옷을 찾아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한성은 이가연 주임을 흔들어 깨웠다.


 "...아, 일어났네...오늘 주말이니까 좀 더 자도...되는데..."


 ".....나한테 설명할게 많지 않아요?"


 이가연 주임을 끈질기게 흔들어댄 끝에 이가연 주임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분명 12시간 전까지만 해도 날 잡아먹으려던 인간이 왜 이리 편안하다는 듯이 웃을까?'


 "흐아아암....안녕..."


 "묻고 싶은게 정말 많은데, 일단 내 옷부터 내놔요."


 한성은 아까부터 나체로 서있는게 거북했다. 이가연 주임은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춰서서 말했다.


 "그거, 너무 젖어서 세탁기에 넣어놨는데."


 "..뭐에 젖었는데요?"


 "술이랑 니 애ㅇ..."


 "아냐 거기까지만 말해요."


 "...그러니까, 내 옷이라도 빌려줄게."


 "편한 걸로 주세요."


 "그래. 그럼 속옷은?"


 ".....필요 없어요."


 니가 입던 속옷을 입으라고? 어림도 없지. 나체인 두 여성은 거실로 나갔다. 이가연 주임이 잠옷을 꺼내오는 동안 한성은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자기 몸에 묻어있는 립스틱 자국을 손가락으로 문질러보고, 손가락에 묻은 립스틱을 바라본다.


 '색깔이 생각보다 괜찮은데.'


 이가연 주임이 분홍색 잠옷을 가져다 주었고 한성은 얼른 그걸 입었다. 이가연 주임은 파란색의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게 색만 다르지 자기가 입은 잠옷과 세트라는걸 금방 알아차렸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둘은 TV를 켜고 옛날 영화가 틀어진 채널을 보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 어제 저한테 뭐 했는데요?"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숨길 이유는 없겠지. 너랑 자고 싶어서 술 먹인거야."


 "......미친 년이세요?"


 "어떤 여자랑 자보고 싶어서 몇달동안 계속 괴롭히고 싸우고 지랄한걸 보면, 미친년 맞는것 같네."


 한성은 어이가 없었다. 초등학생들이나 할 법한 좋아하는 아이 괴롭히기를 30살 먹은 회사원이 했다는 말을 들으니 기가 찼다.


 "솔직하게 말하고 잘 대해주는게 더 가능성 있지 않아요?"


 "그건 내 취향이 아니야."


 "이런 씨발년이 진짜"


 한성은 울컥해서는 이가연 주임에게 달려들었지만 이가연 주임은 웃으면서 한성을 밀어낼 뿐이었다. 아침이라 힘이 안나는 한성은 다시 소파에 앉았다.


 "성."


 "....뭐요."


 "앞으로 잘부탁해."


 "...뭘요."


 "애인."


 "....누가요?"


 "너."


 ".....농담이죠?"


 "어제 섹스한거 녹화했는데."


 "그거 범죄인건 알죠?"


 "네 핸드폰으로."


 "썅년..."


 한성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쉬었다. 뭐 이런 사람이랑 엮였을까. 그냥 악연이기만 했으면 차라리 나았겠다, 그냥 사이 나쁜 회사 상사로만 남아있었다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했겠다. 근데 이런 머리가 꽃으로만 가득 찬 인간이 날 좋아해서, 몇달에 걸친 기나긴 설계를 해놓고서 결실을 맺기까지 했다는걸 생각하니 머리가 아득해졌다. 그나마 자칫하면 리벤지 포르노라는 어마어마한 범죄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영상이 이가연 주임의 핸드폰이 아닌, 자기 핸드폰에 있다는게 다행으로 여겨졌다.


 어쩌면 선택권을 준 거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이런 영상을 자기가 갖고 있다면 이제 관계의 주도권은 자기한테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이가연 주임이 그걸 모를리가 없다. 이가연 주임이 자신에게 최소한의 선택권을 넘겨준거다.


 '하긴, 30살 먹은 회사원이 로맨틱하고 달달한 고백을 하는건 기대도 안해.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한성은 잠깐 고민하다가 핸드폰에 있는 영상을 삭제했다. 이가연 주임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리고 한성은 이가연 주임을 보며 말했다.


 "저는 하나도 기억 안나거든요. 그러니까 제 기억에도 남게, 해줘요."


 "오늘 밤?"


 "오늘 밤. 네."


 어쩌면 스톡홀름 증후군일지도 모르겠다. 한성은 자기가 왜 이 도움도 안되는 미친 인간을 상대로 호의를 보이고 있는지 도저히 몰랐다. 내내 심하게 대하다가 '사실은 너한테 관심이 있어서 그런거야' 라는 말을 해봤자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길 리가 없을텐데.  대체 이 사람의 뭘 보고 이런 이상한 관계를 더 이어나가려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외모는 예쁘장하지만.



 "근데 어제 제가 마신 술은 뭐에요?"


 "그거? 되게 달지 않았어? 맛있었지?"


 "그렇긴 했는데."


 "그 칵테일 이름이 정확히 '퀵퍽'이야."


 "P로 시작하는 퍽이죠?"


 "당연히 F지."


 "...진짜 씨발년...."


 쌍욕을 듣고도 웃고있는 저 인간하고 교제를 하려는 생각을 한 걸 보니, 아무래도 스톡홀름 증후군이 맞는것 같다.






---


평소보단 길게 썼는데 그래도 짧네

정상적인 관계보단 뭔가 이상한 관계가 쓰기에 재밋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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