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8년 11월, ST 아이다호 월남 팀원들과 함께 FOB 6 호 응옥 타오에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존 S. 마이어. 왼쪽부터 까우, 손, 응우옌 반 사우, 응우옌 콩 히엡, 민. 정찰팀이 다니엘 분(캄보디아) 작전 지역에서 공격받았기에 ST 아이다호는 1968년 11월에 잠시 FOB 6로 파견갔다)
1968년 11월 말이 다가오자 FOB 1 지휘부는 내게 ST 아이다호를 데리고 사이공 북쪽에 위치한 호 응옥 타오에 있는 FOB 6로 지원을 갈 것을 요청했다. 나는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팀은 휴식이 필요했고 모두가 남쪽으로 가는 것에 만족했다.
SOG의 오랜 베테랑들 사이에서 FOB 6 목표가 위험하지만 FOB 1 목표만큼 위험하지는 않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러나 우리는 정찰팀이 다니엘 분 AO의 캄보디아 목표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팻 왓킨스가 다니엘 분 목표의 평평한 지형에 대해 경고하자 충분히 위험하게 들렸다. 이는 우리가 프레리 파이어 AO에서 익숙해진 라오스 산악 지형과 대조적이었다.
11월임에도 불구하고 사이공의 더위와 습도는 푸바이보다 더 심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기지에 도착하자, 버바가 팀을 현지 대원 숙소로 데려가는 동안 나는 작전 본부에 보고하러 갔다. 많은 활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OIC(담당 장교)가 나를 맞이하고 지휘관이 나중에 쉬게 될 때 나와 얘기를 나눌 것이 있다고 전했다. 팀 하나와 관련하여 국무부와 CIA는 일종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이 제공되지 않았고 나는 버바에게 돌아갔다. 버바는 월남 팀원들을 위해 음식과 숙소를 마련해 줬는데, 팀원들은 모두 사이공 외박을 원했다. 나는 버바에게 월남 팀원들이 비무장으로 동네로 가는 것에 관해 정찰 중대 관계자에게 SOP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FOB 6 사령관인 랄프 R. 드레이크 중령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멀리서 비틀즈의 러버 소울 노래가 들렸다. 마침내 드레이크가 오자 그는 나와 내 팔에 있는 SP4 계급장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쪽에서 베테랑 팀을 보낼 줄 알았는데, 자네가 1-0인가?"
"그렇습니다. 제 0-1과 0-2는 C&C 정찰 임무를 수행해 왔고 그린베레와 5년간 협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샤우 계곡 중앙에 공군 진동 감지 센서를 3차례 성공적으로 삽입하는 것을 포함하여 1-1과 1-0로서 프레리 파이어 AO에서의 임무를 여러 번 수행했습니다."
"1-0가 상사 또는 원사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나?" 드레이크가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이 계급을 단 지는 고작 몇 달에 불과하지만 그 기간 동안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수많은 라오스 목표물에서 총격을 겪었습니다. 또한 제 작은 친구들도 아주 좋습니다.월남에 있는 그 어떤 현지군도 이들에게 필적할 수 없을 겁니다. 본론으로,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드레이크 중령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사소한" 문제에 대해 말했다.
"세 개의 월맹군 사단이 있는데 행방불명이다. 구체적으로 1사단, 3사단, 7사단이고. 스푸크(암호 및 언어 전문 첩보 그룹)들도 못 찾았고, 항공 정찰로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사이공이나 우리 A팀 기지를 향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네. 구정 동안 우리한테 당했지만 회복력이 뛰어나기에 에이브람스 장군부터 스푸크까지 모두가 우려하고 있어. 그리고 앞서 말했지만, 호 응옥 타오에 온 것을 환영하네."
드레이크 중령은 미국이 캄보디아 국경 전역의 위치한 월맹군 전력에 대한 최신 정보 추정치를 검토했다. 100,000명 이상이었다. 개활지인데다 팬케이크처럼 평평한 지형이었다. ST 아이다호의 임무는 사라진 세 개의 월맹군 사단 중 하나라도 찾는 것이다. 해당 부대에 대한 정보나 첩보를 수집하고, 언제나처럼 기회가 되면 호치민 트레일을 통해 남쪽으로 보급품을 옮기는 적군이나 짐꾼을 생포하는 것도 있었다. 떠나야 하는 것에 대해 사과하자, 드레이크 중령은 저녁에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내일 투입이 가능한지 물었다. 그러자 나는 그린베레와 정보기관 직원들이 머물렀던 사이공의 MACV-SOG 안전 가옥인 '하우스 10'에서 하룻밤을 묵고 싶다고 말했다. '하우스 10'은 시원한 음료부터 뜨거운 여자들까지 모든 것을 갖춘 안전한 호텔이었다. 드레이크는 고개를 저으며 방을 나가면서 낄낄 웃었다.
나는 버바와 함께 얻은 초라한 막사로 돌아갔다. 버바는 히엡과 사우가 외박권을 받았고 동이 트는 대로 캠프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버바에게 아침에 바로 임무 투입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행방불명된 월맹군 3개 사단에 대해 말했고 그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지는 것을 보았다.
"우와. 3개 사단이? 없어져?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는데? 투입되기 전에 찾을 수 있기나 빌어야겠네."
나는 버바에게 도망쳐야 할 경우를 대비해 여분의 크레모아를 구하고 5초 및 10초 신관을 여러 개 만들라고 했다. 짐을 풀고 임무 준비를 하는 동안 버바는 병참 본부의 병장을 찾았고, 그는 버바에게 크레모아, 도폭선, CAR-15 탄약, 소드 오프 M-79, M-26 수류탄을 제공했다.
버바가 무기를 내려놓으며 병장으로부터 받은 경고에 대해 말했다. 평지에서는 월맹군이 문자 그대로 정찰팀을 향해 달려온다는 것이다. 여러 팀이 돌격해 오는 월맹군의 대규모 공격을 정면으로 경험했다. 정찰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들었지만 라오스에서의 경험에 따르면 돌격하는 월맹군은 우리 경계선에 도달하기도 전에 당했다. 그 경고가 계속해서 떠오르자, 버바에게 모든 팀원에게 5초 신관과 짧은 신관뿐만 아니라 기존의 휴대용 격발기도 주라고 말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걸어가는 동안 숨 막히는 듯한 열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버바와 나는 원래 더위가 조금 덜한, 북쪽으로 400마일 이상 떨어진 푸바이에 우리를 배치한 SOG 장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임무에 대해 일반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버바와 나는 소드 오프 M79와 CAR-15를 휴대하고, 사우 히엡, 푸옥과 함께, 신뢰할 수 있는 M-79 유탄수인 뚜안을 데리고 갔다. 뚜안은 200야드 거리에서 타이어 사이로 고폭탄을 쏠 수 있었다. 이번이 다니엘 분 작전 지대에 대한 첫 임무였기에 물과 식량은 매우 가볍게 하고 탄약, 수류탄, 크레모아를 최대한으로 챙겨 운용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탄약이 떨어지느니 차라리 아사가 낫겠다" 버바에게 말했다.
"3개 사단이랬지?" 버바가 물었고 고개를 저었다.
저녁 식사 후 버바와 나는 지휘관 사무실로 갔다. 직원에게 드레이크 중령이 브리핑할 때를 대비하여 내가 어디에 있을지 말해줬다. 2200시 이후에 TOC(전술 작전 센터)의 누군가가 지휘관이 나와 대화를 나누길 원한다고 전했다.
내가 드레이크 중령에게 보고하러 가자, 그는 책상 위에 일련의 사진과 지도, 그리고 기밀 및 일급 기밀 보고서를 올려놓고 있었다.
"내일 갈 수 있나?"
나는 6인 팀과 함께 임무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고 ST 아이다호의 각 구성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또한 음식과 물은 매우 적게 챙기고 탄약, 수류탄, 크레모아를 많이 챙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자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드레이크 중령은 각 보고서를 체계적으로 검토한 후 나에게 건네주었다. 일부 보고서는 마치 행방불명된 사단 근처에 있던 누군가가 작성한 것처럼 세부적이고 매우 구체적이었다. 다른 것들은 좀 더 개괄적이었다. 그런 다음 드레이크 중령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고고도에서 촬영한 고해상도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들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뉴욕 타임스에 인쇄된 사진들과 미국에서 90마일 떨어진 러시아의 의도에 대한 증거를 어떻게 제공했는지를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드레이크 중령의 사진은 쿠바 사진보다 훨씬 더 높은 고도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궁금해서 나는 어디서 찍힌 것인지 물었다. 그는 최신 고고도 사진 정찰에 대해 중얼거리며 계속 진행했다.
지휘관은 다니엘 분 작전 지대의 지도를 꺼냈다. 최근 월맹군의 공격을 받은 여러 A팀 기지와 캄보디아에 주둔 중인 월맹군과의 접촉이 예상되는 기지의 상태를 검토했다. 그런 다음 드레이크는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켜 착륙 지점으로 제안했다. 우리가 살펴본 모든 것을 토대로 보아 좋은 선택으로 보였다.
때는 자정쯤이었다. 내가 나가기 전에 드레이크 중령은 우리가 프레리 파이어 AO에서의 수칙과 비교하여 캄보디아 교전 수칙의 중요한 차이점에 대해 상기시켜 주었다.
첫째, 정찰팀은 국경에서 캄보디아까지 20클릭까지만 갈 수 있도록 제한되었다. 라오스에서는 서쪽으로 훨씬 더 깊이 갈 수 있었다.
둘째, 고정익 항공기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 수칙을 듣자 내 모든 것이 일시정지 됐다. 패스트무버도 없고 A-1E 스카이레이더도 없다니? 라오스에 있을 때 그 수칙이 우리에게 적용되었다면 여기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셋째, 헬기와 정찰팀은 백린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 국무부가 우리 같은 특수부대원과 승무원에게 강요한 이 교전 규칙은 우스꽝스럽고 범죄적인 수준이었다.
드레이크 중령은 우리가 추수감사절에 투입될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나는 그에게 목표물에 들어가기 전에 발진기지에서 최신 치킨 라이스 LRP 식량을 먹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드레이크가 투입 전에 팀과 승무원들에게 따뜻한 추수감사절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말하자 그가 농담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추수감사절의 날이 밝아오자마자 사우와 히엡은 숙소에 도착했다. 가족들과 함께 사이공에서 즐거운 밤을 보낸 후 그들은 빠르게 임무를 준비했다. 나는 히엡에게 작전 지역이 어떤지, 정보 보고서에서 추정한 내용과 우리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설명했다. 히엡이 사우에게 임무를 통역하자 베테랑 SOG 전사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사우는 히엡을 통해 나에게 목표 지역의 얇은 초목을 상기시켰고, 현지 대원 중 일부가 월맹군이 더 강해졌고 FOB 6 정찰팀을 향해 더 많은 무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경고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부돕 발진기지 도착했다. 활주로 북쪽 끝에는 공군기지가 있었다. 우리는 활주로 동쪽과 공군기지 남쪽에 있는 텐트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발진기지처럼 보였다.
내가 몰랐던 사실로, 텐트에서 가까운 곳에 그린베레 A 캠프가 있었는데 최근 밤에 월맹군의 강한 공격을 받았고 월맹군은 캄보디아로 후퇴했다고 한다.
새로운 AO의 교전 수칙에 대해 논의하는 동안, 헬기와 함께 뜨거운 칠면조, 크랜베리 롤, 그레이비, 으깬 감자와 같은 추수감사절 만찬이 도착했다. 버바와 나는 드레이크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란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새로운 AO로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식욕을 감소시키지는 않았다. 팀 전체가 추수감사절 만찬을 즐겼다. 오늘의 블랙 코미디는 이것이 죽기 전의 마지막 식사라면 적어도 잔칫상의 영역이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과식을 끝내자 미공군 UH-1F 모델의 휴이들이 우리를 캄보디아로 데려오기 위해 도착했다. 파일럿과 승무원은 공군 제20 특수작전비행단 소속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그린 호넷이라고 불렀다. 발진기지에 있던 그린베레 대원들은 그린 호넷은 매우 훌륭한 이들이며 UH-1F는 육군이 쓰는 휴이보다 더 힘이 좋고 더 빠르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브리핑 중에 교전 수칙이 다시 반복됐다. 나는 고정익 자산의 부족이 얼마나 불편한지 언급했다. 그린 호넷 편대장이 재빠르게 말하길, 일단 우리 팀을 투입하면 바로 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멀리 날아가겠지만, 만약 우리가 긴급 퇴출을 요청하면 AO로 5~10분 안에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린 호넷 건쉽은 도어 거너 위치에 있는 미니건, 로켓 포드 및 M-60 기관총을 비롯한 독특한 무기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파일럿은 우리를 투입한 후 선두 기체와 백업 기체가 해당 지역에 가짜 투입을 실시해 적을 혼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 호넷 파일럿은 항공기에 대한 지식으로 우리에게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이 모는 휴이가 당시 가장 강력했고, 평지로 인해 초저고도 비행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한 장교는 우리 "스네이크 이터"들에게 비행 중에 나무 꼭대기에 발이 부딪힐 수 있으니 너무 낮게 발을 내밀지 말라고 경고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전속력으로 목표 지역으로 날아가다 보니 나무들과 가까워졌는데,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초목들이었다. 라오스의 울창한 정글 잎 대신 사촌들과 함께 사냥을 했던 얇은 숲이 우거진 뉴저지 중부의 시골을 연상시켰다.
도어거너가 날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우리는 몇 초 안에 LZ에 도착할 것이었다. 내가 팀에게 경고하자마자 휴이는 빠른 착륙을 위해 플레어를 했다. 버바는 푸옥, 뚜안과 함께 왼쪽으로 나갔고, 나는 히엡, 사우와 함께 오른쪽으로 나갔다. 휴이는 이륙해서 사라졌고, 투입은 매끄럽고 빨랐다. 무릎 높이의 잔디 아래 땅은 젖어 있고 질척거렸지만 숲이 우거진 지역으로 들어갈수록 흙은 단단해졌다.
수목선에 도달하며 첫 번째 경계선을 설정했다. 그때 공군 헬기가 우리 위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짜 투입을 실행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올려다보니 이중 캐노피는 없었다. 머리 위에 두꺼운 정글이 없었고 바로 햇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나무 사이로 100야드 이상 전방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라오스와는 너무 달랐다. 나는 그린 호넷에 연락하여 팀 OK 신호를 보내 투입이 성공했음을 알렸다.
관례에 따라 LZ에서 10분 대기하는 대신, 나는 팀을 바로 이동시켜 서쪽으로 향했고 드레이크 중령과 내가 전날 밤 목표로 삼았던 곳을 향해 나아갔다. 식생이 너무 얇아서 이동할 때 팀원들 사이의 간격을 늘려야 했다. 작전 지역은 조용했고 새 소리도 거의, 전혀 없었다. 이는 현장에 있을 때 항상 나쁜 징조였다.
서쪽으로 조심스럽게 10분간 이동한 후, 우리는 첫 휴식을 취했다. 공군 지휘기와 함께 간단한 통신 점검을 했다. 이번에도 공군 파일럿들은 정확했다. 그들은 상공에 있었고 나와 제대로 통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브리핑 너머로 그들의 헬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초목이 너무 얇았기에 나는 히엡에게 크레모아에 5초 신관을 꽂으라고 모든 팀원에게 상기시켜 달라고 했다. 나는 포인트맨인 푸옥과 버바에게 크레모아 두 개에 5초 신관을 넣고 다른 몇 개에는 10초 신관을 넣으라 지시했다.
개방된 숲 지형은 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파트너인 사우가 연기를 발견하자 우리는 그쪽으로 이동했다. 푸옥과 나 사이, 대열 두 번째였던 사우는 조용히 "VC 없음"이라고 구두로 전했고 우리는 계속 전진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월맹군에 대한 사우의 해석은 정확했다. 사우와 푸옥이 베이스캠프로 보이는 곳을 향해 더 깊이 이동하는 동안, 버바와 나는 나머지 팀원들과 함께 경계선을 설정했다.
몇 분 뒤, 사우와 푸옥이 돌아와 보고했다. 우리가 거대한 월맹군 베이스캠프 주변에 있다고 말했다. 연기는 월맹군이 끈 모닥불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거기다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재가 있는 다른 모닥불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제 아드레날린이 본격적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전에 월맹군 베이스캠프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 그곳에 월맹군 인원이 없었다는 사실은 거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사우는 긴장했다. 그의 눈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말투도 점점 빨라졌다. 히엡은 사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긴장했다. 사우는 빠르고 영리하며 민첩하고 두려움이 없었지만 월맹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어떻게 일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내가 5개월 동안 SOG 목표에서 작전한 데 비해 사우는 3년 동안 월맹군과 싸워왔다. 사우와의 이전 경험을 통해 그의 눈은 바로 주변에 있는 적의 존재도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눈은 커졌다.
나는 무기나 식량 은닉처를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더 서쪽으로 가보자고 제안했다. 사우는 히엡의 통역 없이 바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헬기를 불러! 보꾸 VC, 지금 오고 있다!"
난 아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소리도 없었고 월맹군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FOB 6에 드레이크 중령에게 가져갈 무언가를 꼭 확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젠장, 드레이크 중령은 우리가 헬기에 타기 전에 추수감사절 식사를 제공했고, 그린 호넷은 우리에게 완벽한 투입을 제공했으며 우리는 일종의 베이스캠프에 있었다. 그러나 라오스의 동일한 상황에서도 나는 사우를 의심했고 겨우 살아남아 이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사우가 히엡을 바라보자 더욱 동요했다. 히엡이 한마디 꺼내기도 전에 나는 우리 대열의 후방사수인 버바와 푸옥에게 몸을 돌려 방향을 바꾸라고 지시했다.
나는 LZ로 돌아가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사우가 과민 반응한 것이었다면 나중에 얘기하도록 했다.
"사우는 여기가 큰 적 기지라고 하더라. 우리는 운이 겁나게 좋은게 여기에 VC는 없어. 사우가 저기로 가는 수백 개의 새로운 발자국을 발견했어."라고 하며 그는 남쪽을 가리켰다.
"디(가자고)!" 사우가 조용히 말했다.
"디 디 마우(빨리 가자고)!"
우리는 고정익 항공기 없이 팀 홀로 캄보디아에 있었다. 그리고 사우의 눈은 잔 받침만큼 커졌다.
나는 버바에게 5초 신관이 있는 크레모아를 달라고 했다. 이어서 버바와 푸옥에게 빨리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LZ로 돌아오면서 나는 사우와 함께 대열의 후방에 있었고 서둘러 우리의 흔적을 가렸다. 아직 멀리 가지 못한 시점에 사우가 "보꾸 VC! 보꾸 VC!"라고 말했다.
남쪽 저 먼 곳에서 피스 헬멧이 보였다. 나는 그린 호넷 지휘기에 무전을 보내 건쉽과 함께 최대한 빨리 주 LZ로 우리를 데리러 오라고 말했다! 지휘기는 10분 이내에 현장에 자산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라오스에서는 그런 대응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10분조차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뚜안과 나는 M-79를 발사했고, 이로 인해 월맹군은 몇 초 동안 느려졌다. 사우는 단발로 총격을 가하고 뒤로 이동했으며 더 이상 우리의 흔적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버바에게 두 배 더 빨리 이동하라고 소리쳤다. 목숨을 위한 경주가 시작되었다.
사우는 히엡에게 조용히 말하며 북쪽을 가리켰다. 젠장! 북쪽에서도 피스 헬멧과 월맹군 군복이 우리를 향해 전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쪽에서 온 부대는 베이스캠프를 떠난 사단에서 온 것으로 보이며, 북쪽의 월맹군도 그곳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좋은 소식은 월맹군은 더 이상 행방불명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녹색 AK 47 예광탄이 우리 머리 위로 날아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침의 고요함은 양측 사격의 시끄러운 크레셴도로 바뀌었다.
사우와 나는 나무 뒤에 크레모아를 놓고 점화퓨즈를 당긴 뒤 달렸다. 월맹군은 이제 격렬하게 총격을 가하며 달려왔다. 크레모아가 폭발하자 사우와 나는 팀을 따라잡기 위해 질주했다. 월맹군은 계속 돌격 중이었다. 사우는 재빨리 크레모아를 나무 앞에 놓고 달렸고, 뚜안과 나는 엄호 사격을 했다. 두 번째 크레모아가 폭발하자 이번에도 팀을 향해 질주했다. 달리며 등에서 후폭풍을 느꼈다. 푸옥과 버바가 LZ를 향해 밀고 나가던 중 나와 히엡, 뚜안, 사우는 팀 전체가 몇 시간 동안 연습했던 IA 드릴을 사용하여 총을 쏘고 뒤로 후퇴했다. 뚜안의 M-79 유탄은 치명적이었다. 내 M-79 유탄과 히엡과 사우의 CAR-15 사격의 조합으로 맹렬하게 돌격하는 월맹군 부대를 일시적으로 지연시켰다.
주의하며 빠져나온 것에 비해 우리는 LZ에 일찍 도착했다. 팀이 서둘러 경계선을 설정하던 중, 히엡은 남쪽에서 우리를 향해 돌격하는 월맹군의 경로에 또 다른 크레모아를 배치했다. 북쪽에는 버바가 인계철선에 접촉 격발 장치를 연결한 크레모아를 설치했다. 피스 헬멧의 웨이브가 우리 쪽으로 오자 버바와 나는 M-79로 사격을 가했고 사우와 히엡은 CAR-15로 전자동 사격을 개시했다. 더 많은 월맹군이 M-79 고폭탄의 연기 속에서 나타나 버바의 크레모아를 작동시켰다.
그때 첫 그린 호넷 건쉽이 도착했다. 나는 연막탄을 터뜨리고 경계선의 서쪽으로 사격을 가하도록 유도했다. 몇 초 만에 건쉽이 경계선 앞에서 포효하듯이 월맹군 대열을 분쇄하고 몇 초 동안 진격 속도를 늦췄다. 그린 호넷의 화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마침내 우리를 목표 지역으로 투입한 그린 호넷 헬기가 LZ에 도착했고 왼쪽 문이 우리를 향하고 기수는 북쪽 또는 북서쪽을 향한 채 최대한 우리 위치에 가깝게 왔다. 다행히 공군은 10분도 안 되어 우리에게 도착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월맹군이 계속해서 우리를 뒤쫓았다. 뚜안과 내가 각각 월맹군을 향해 M-79 고폭탄을 한 발 더 쏘는 동안 버바는 팀을 휴이로 이끌었다. ST 아이다호의 월남 팀원들과 관련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항상 미국 헬기에 대한 접근은 미군 팀원이 이끌었다. 월맹군의 웨이브가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나는 마지막 크레모아를 격발시켰다. 마지막 크레모아 폭발 덕분에 휴이까지 도달하는 데 필요한 몇 초의 소중한 시간을 벌었다.
나는 그린 호넷 휴이로 다가가 탑승하며 "올 클리어" 신호를 보냈다. 헬기가 LZ에서 이륙하기 시작하자 월맹군 여러 명이 숲에서 달려왔으나 우리가 탄 휴이와 엄호 사격을 제공하는 두 번째 헬기를 보고 놀란 듯 했다. 그들은 즉시 총살당했다. 내가 타고 있던 공군 헬기가 지상에서 이륙하기 시작하자, 월맹군 한 명이 얇은 숲속에서 전속력으로 뛰어나와 도어거너 바로 좌측에 있는 우리 LZ로 돌진해 왔다. 그 월맹군이 관성을 막기 위해 진흙탕에 군화를 박아 넣으며 진흙 덩어리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AK-47의 총구를 하늘로 들어 올리며 우리 헬기에 고정하려고 했다.
적 군화에서 나온 진흙 덩어리가 도어거너를 지나 로터를 향해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고 나는 적의 가슴을 총으로 명중시켰다. 마치 도어 거너의 M-60에서 날아가는 탄피를 셀 수 있을 것 같이 모든 것이 느리게 보였다. 총탄이 월맹군을 명중하자 그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전속력으로 달리다 총탄의 충격으로 머리와 발만 앞으로 나오고 가슴과 배는 뒤로 쑥 후퇴한 것이 순간적으로 만화 캐릭터를 떠올리게 했다.
총탄이 후퇴를 유도 했음에도 그 월맹군은 쓰러지지 않았다. 휴이가 빠르게 속도와 고도를 얻으면서 그 월맹군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는 수십 명의 월맹군들이 우리에게 총을 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시 동안 월맹군의 모든 녹색 예광탄이 우리 헬기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순간에 나는 월맹군을 향해 백린 연막탄을 던져 마지막으로 치명적인 폭발을 선사했다. 이전에 라오스 목표물에서 내가 했던 일이다. 아주 잠시, 나는 캄보디아에서 '윌리 피트'의 사용이 금지한다는 교전 수칙을 생각했지만, 우리는 캄보디아 깊숙한 곳에 있었기에 무시하기로 했다. 더 이상 이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몇 초 만에 그린 호넷은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내고 최고 속도로 발진기지를 향해 굉음을 내며 초저고도 비행을 시작했다. 나는 팀원들의 피해를 확인했다. 다행히 아무 피해도 없었다. ST 아이다호의 6명의 대원들이 조용히 앉아 있는 동안 나는 공군 도어거너가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마이크에 대고 신나게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았다. ST 아이다호는 조용했다. 너무나 조용했다. 우리는 매우 폭력적인 상황과 함께 죽음을 앞두고 있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월맹군들을 죽였다. 월맹군 역시 계속해서 우리의 변함없는 존경을 받는 군인이었다. 나는 적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단순히 우리냐 그들이냐의 문제였다.
부돕 기지에 착륙했을 때 약 1400시였다. 나는 드레이크에게 SITREP을 보내기 위해 기지 그린베레 대원에게 곧바로 갔다. 그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남겼다. 월맹군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중령의 추정이 옳았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버바는 우리 팀원들을 위해 차가운 음료수와 담배를 찾았다. 잠시 후 그린 호넷은 버바와 나를 초대하여 공군 식당에서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우리는 공군 친구들에게 우리가 저녁을 사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의 아슬아슬한 탈출은 정신을 차리게 했다. 버바와 내가 공군 구역을 향해 북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버바는 공군이 몇 분만 더 늦게 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내게 물었다. 버바에게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엉클 샘의 공군과 크레모아 5초 신관에 대해 감사하라고 말했다. 정찰의 신들이 ST 아이다호에게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공군 식당에서 추수감사절 식사를 둘러싼 사람들 중 버바와 내가 가장 얼굴이 더러웠으나 아무도 이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배고팠다. 나는 칠면조의 맛을 음미하고 최근 몇 년, 몇 시간 동안보다 갑자기 칠면조를 더 고평가하게 되었다. 으깬 감자는 어머니의 것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살아서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맛이 더해졌다. 그 후, 버바와 나는 식당에서 나와 텐트와 먼지만 날리는 그린베레 구역으로 다시 향했다. 그린베레 발진 기지 직원 중 한 사람이 보고를 위해 최대한 빨리 FOB 6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나는 드레이크 중령에게 직접 보고했다.
드레이크 중령이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간략한 설명을 해주게. 그럼 사이공으로 보내고, 다 같이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를 한 뒤에 자세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네. 1회의 임무와 2회의 추수감사절 식사면 하루 일과로 나쁘지 않지."
"정확히는 3회입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버바와 나는 히엡, 사우, 뚜안, 푸옥의 칠면조와 요리도 있는지 확인한 후 세 번째 저녁을 먹었다. 다시 한번 그린 호넷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금요일, 아침 훈련과 무기 유지보수를 마친 후 나는 모든 팀원에게 사이공 외출증을 주면서 또 다른 임무를 위해 동이 트자마자 기지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버바는 또 다른 보급품을 뒤지러 갔다. 우리는 다음 날 임무인 캄보디아 포로 생포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위해 작전 본부로 갔다. 유용한 정보를 얻는 데는 캄보디아에서 일하거나 운전하는 살아있는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은 없었다. 작전 본부는 추수감사절 목표에서 더 북서쪽으로 떨어진 지역에 도로가 여러 개 있으며, 토요일에 좋은 목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리핑 후 버바는 병참 본부로 돌아가 월맹군 트럭을 제압할 목적으로 지뢰 몇 개와 LAW 몇 개를 챙겼다.
다음 날, 동틀 녘에 ST 아이다호는 이른 아침 브리핑을 위해 부돕 기지로 다시 이동했다. 그린 호넷은 최근에 목표 지역 상공을 비행했으며 도로에서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우리를 투입시킬 여러 LZ를 미리 파악해 뒀다. 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목표 지역에서 병력 이동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그린 호넷이 추수감사절에 매우 큰 활약을 했기에 우리는 LZ 선택에 대한 그들의 판단을 신뢰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은 우리를 내려준 후 여러 차례의 가짜 투입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번째 연속 투입에서는 그린 호넷의 속도와 민첩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순식간에 우리는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헬기는 우리 목표 지역에서 가짜 투입 몇 회를 시행했다. 팀 OK 신호를 보내고 우리는 그린 호넷이 발견한 도로를 향해 나아갔다. 이번에도 초목이 라오스만큼 두껍지는 않았으나 이중 캐노피가 있어서 이전 임무보단 조금 더 밀도가 높아졌다. 팀원들의 간격이 멀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전통적인 10분 이동, 10분 휴식을 취했고 휴식은 주변 소리를 듣기 위함이었다. 은폐물도 좋고, 투입도 훌륭했기에 팀이 10분 이상 이동하도록 했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우리는 완벽한 투입을 이뤘고 *인디언 컨트리 속에서 계속해서 이동 중이었다.
*적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트럭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매우 조심스럽게 도로를 향해 전진했다. 남쪽으로 향하는 트럭들의 간격은 불규칙했다.
우리가 처음 들었던 몇 대는 단일 트럭이었다. 그러곤 여러 트럭으로 구성된 수송단이 지나갔다. 도로를 확인하기 위해 푸옥이 이동했다. 푸옥은 도로가 넓고 그 옆의 초목이 울창하다고 말했다. 나는 35mm 카메라를 꺼내 버바, 푸옥과 함께 길가로 이동했다. 울창한 초목 덕분에 트럭 운전병이나 월맹군의 눈에 띄지 않고 수풀 사이로 머리를 내밀어 카메라를 눈에 대고 트럭의 모습을 여러 장 찍을 수 있었다. 다음 한 시간 정도 동안 우리는 길가를 따라 이동하면서 매복 공격을 가할 최적의 지점을 찾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별다른 수고 없이 도로로 뛰어나올 수 있을 정도로 얇은 초목 무리에 이르렀다. 길가에 정차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북쪽으로 가다가 33번이라는 숫자가 적힌 도로 표지판을 발견했다. 순간 이것이 캄보디아의 33번 국도인지, 그리고 트렌턴의 33번 국도와 같이 해안 쪽으로 향하고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버바는 가장 좋은 매복 지점을 선택하고 지뢰 하나를 도로에 설치할 준비를 했다. 몇 차례의 실패 후, 버바는 도로로 나와 미친 듯이 땅을 파기 시작했고 나머지 팀원은 초목 뒤에 남아 있었다. 트럭이 오는 소리가 들리자 버바는 재빨리 구멍을 덮고 팀에게 합류했다. 그가 수풀 사이를 이동하던 중,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들었던 트럭 소리는 1946년 또는 1947년형 쉐보레 트럭 같았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1949년형 쉐보레 우유배달 트럭을 갖고 계셨기에 전 세계 어디에서든 쉐보레 트럭 소리만큼은 구분할 수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이걸 듣는 것은 또 다른 전쟁 속 기묘한 일이었다.
버바가 다시 지뢰를 설치할 준비가 됐다고 말하자 우리는 중앙에 크레모아 두 개를 두는 전통적인 정찰 매복을 준비했다. 매복 지대 중심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적들이 죽을 수 있도록 살상반경이 비스듬히 가도록 설치됐다. 정중앙에는 C4 성형 폭발물 조각이 있었는데, 이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사람을 충분히 기절시킬 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다음 북쪽과 남쪽 측면에 팀은 크레모아를 배치했고 후방 경계를 위해 뒤에 하나 더 배치했다.
매복 준비를 마치자 트럭 몇 대가 길을 따라 지나갔다. 트럭에는 월맹군이 탑승했지만 트럭에 탄 사람들 모두 우리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았다. 이는 추수감사절과 놀라울 정도로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나는 버바에게 매복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뢰를 설치하라고 말했다. 버바는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포로 생포 보너스를 어디에 쓸 것인지 물었다. SOG에는 포로를 생포한 정찰팀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5일간의 휴가와 100달러의 현금 보너스를 받는다는 정책이 있었다.
버바가 지뢰를 매설하자 나는 그린 호넷의 지휘기에 무전을 보내 철수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알렸다. 우리가 포로 생포를 시도할 것이라고 알리기 위해 코드를 댔다. 나는 흥분하며 응답을 기다렸다. 이건 최고의 정찰이었다. 우리는 완벽한 투입을 이뤘다. 적지 깊숙한 곳에 있는 데다 월맹군은 우리가 앞마당에 있다는 것도 몰랐다. 전형적이며 최고의 매복 시나리오였다. 존 웨인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나는 잠시 하와이나 홍콩, 이국적인 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정찰의 신들은 우리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그린 호넷 지휘기는 내 무전을 수신하자 "임무를 중단하라. 최대한 빨리 투입된 LZ로 철수하라"라고 말했다.
나는 핸드셋을 마치 방금 날 물어버린 살모사 보듯이 바라보았다.
"다시 반복해달라"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임무를 중단한다. 즉시 철수를 위해 빨리 LZ로 돌아가라"
나는 지휘기의 정신 상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몇 분 뒤에 살아있는 포로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충격 받았다.
한 번 더 반복해 달라고 했더니 "에이브럼스 장군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중단하고 최대한 빨리 LZ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부여됐다"라고 말했다.
이 노련한 전차 지휘관이 특수부대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는 군사적 원한이라도 선을 넘은 것이었다.
내가 철수를 지시하자, 팀원들은 마치 나를 캄보디아 붉은 마리화나와 페이요티 혼합물이라도 빤 놈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버바에게 수동 격발기를 압력 뇌관으로 교체하라고 말했다. 지뢰를 다시 꺼내라고 시키지는 않았다. 팀은 마지못해 LZ로 돌아왔다. LZ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도달하자, 버바는 연습으로 멀리 있는 나무에 LAW를 발사하고 싶어 했다. 나는 쏘고 난 다음에는 월맹군을 위한 추가 깜짝 선물로 LAW 튜브를 부비트랩화 하라고 버바에게 말했다.
그린 호넷이 도착했고 우리는 내가 팀에 있는 동안 ST 아이다호가 겪은, 몇 안 되는 접촉조차 없는 퇴출을 가졌다. 나는 도어 거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파일럿이 내게 말하려고 했지만 항공기 소음이 너무 심했다. 마지막으로 도어 거너 헬멧을 착용하고 인터콤으로 파일럿과 대화를 했다.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아누크 왕자가 추수감사절에 캄보디아에서 백린 연막탄을 사용한 것에 대해 미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항의했다고 말했다.
이는 SOG 팀의 캄보디아 작전을 허용한다는 국무부의 협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었다. 우리가 FOB 6으로 돌아오자, 드레이크 중령은 나를 불러 백린 연막탄에 관해 물었다. 나는 그에게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를 했다.
비공식 버전, 내가 백린 연막탄을 던졌고 이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그린 호넷이 우리의 철수 요청에 이렇게 신속하게 반응해주지 않았더라면 ST 아이다호에 심각한 피해가 생겼을 것임을 상기시켰다.
공식 버전에서는, 사랑스러운 나라인 캄보디아에서 불행히도 시기적절하게 폭발한 수류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이로 인해 식생에 피해가 생겼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것이었다.
공식 버전이 내 사후 보고서에 작성되었으며 이상이 우리가 사건에 관해 들은 마지막 이야기이다.
토요일이었기에 나는 모든 팀원에게 사이공 외박권을 줬지만 일요일 아침에 또 다른 목표를 준비하라고 말했고 모두 임무 준비 상태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현장에서 더 많은 화력 투사라는 이유와 함께 팀의 어린 대원들에게 현장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8명의 대원을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찰에는 일요일이 따로 없었기에 우리는 또 다른 다니엘 분 목표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다른 FOB 6 정찰팀이 대규모 적과 접촉했고 그린 호넷이 월맹군 제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투입이 몇 시간 지연되었지만 괜찮았다. 사이공에서 힘든 토요일 밤을 보낸 후 우리 모두는 부돕 발진기지에서 낮잠을 잤다. 이번 임무는 발진기지 북서쪽 목표에 대한 광역 정찰이었다. 포로를 생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또한 월맹군 통신선을 발견하면 도청을 수행하기 위해 도청 장비도 챙겼다. 백린탄 사건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였기 때문에, 지휘부는 트럭을 폭파하거나 큰 사건을 일으키지 말 것을 강력히 당부했다.

(월남 공군 219 특수작전비행단 소속 H-34 킹비 내부에서 FOB 1 정찰대원들이 촬영한 사진. 이 사진은 11월 29일에 촬영되었으며, 이들은 라오스의 엘디스트 선 작전에 자원했다. 왼쪽부터 린 M. 블랙 주니어, 릭 하워드, 존 E. 피터스, 킹비 도어 거너, 존 맥거번. 이 임무는 팀이 목표물로 이동하는 동안 악천후로 취소되었다. 다음날 또 다른 그룹이 임무에 자원했고 이동 중 대공 포격에 모두가 사망했다)
오후 늦게 그린 호넷이 도착했다. 빠른 브리핑 후, 우리는 가짜 투입을 포함해 두 대의 헬기가 동원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헬기에서 뛰어 내리기 전에 가짜 투입을 실시했다. 이번에도 투입은 완벽했다. 우리는 수목선에 있었고 광역 정찰을 위해 이동했다.
이번에는 10분 이동하고 10분 쉬면서 정석대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나는 다시는 8인 팀을 운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너무 번거로웠다. 이 목표에서는 일부 지역에 이중 캐노피가 있었기에 초목이 여전히 나를 약간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긴 시야를 제공했다. 같이 데리고 간 어린 팀원인 차우, 손, 까우는 수풀 속에서 잘 움직였다. 손이 특히나 잘했기 때문에 사우는 그에게 경험을 주기 위해 한동안 포인트맨을 시켰다.
밤이 다가오자 우리는 RON으로 좋은 지점을 찾아댔다. 평지 지형에선 좋은 RON을 찾기가 정말 까다로웠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고지대나 초목이 빽빽한 곳 또는 트레일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을 찾는다. 마침내 우리는 한 곳을 찾았고 사우가 경계 설정, 불침번 설정, 추가 크레모아 배치를 감독했다. 버바는 초목이 얇은 한 지역에 두 개의 발목지뢰를 매설했다. 그래도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평지 지형이 계속 떠올랐다. 또한 그린 호넷의 투입 능력이 얼마나 좋은지, 정말 놀라웠다. 추적자나 개가 따라 붙지 않고 투입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라오스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동이 트기 전에 팀 전원이 일어나 주변을 경계하며 크레모아를 회수하고 RON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글 바닥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나는 단단한 침대, 깨끗한 시트, 차가운 음료가 있는 휴가를 원했다. 내가 PRC 25를 들고 다니기를 고집했기에 배낭에 필수품을 제외하고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밤에 바닥에서 잘 때는 에어매트나 해먹도 없이 잠을 잤다. 유일하게 편안함을 줄 물건은 목까지 단추가 달린 군용 풀오버 스웨터였다. 밤에 스웨터를 입을 때마다, 나는 머리 위로 뒤집어쓰던 중 찰리가 우리를 공격할지 우려가 됐다. 그래도 스웨터는 스스로 허용하거나 배낭에 넣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편안함을 주는 물건 중 하나였다.
동이 튼 직후, 그린 호넷의 지휘기는 정기 통신 점검을 위해 작전 지대 가장자리로 날아왔다. 나는 빠르게 '팀 OK'를 보냈고 RON에서 팀을 옮길 준비를 했다. 그런데 지휘기는 임무를 마무리하라고 했다. 월맹군이 SOG FM 무전을 감청하고 무선 방향 탐지 장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개 주파수로는 논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지휘기 파일럿은 우리에게 LZ를 찾고 철수 준비가 되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히엡, 사우와의 짧은 토론 후, 손과 사우는 전날 밤에 우리가 RON에 접근하던 중 보았던 개활지를 찾기 위해 몇 분 동안 팀을 떠났다. 그리고 몇 분 후에 돌아왔다. 나는 그린 호넷에 연락해서 10분 안에 퇴출 준비가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전 지역이 너무 조용했기에 투입 LZ를 기준으로 경로를 제공하고 노란색 연막을 찾으라고 했다. 몇 분 후, 그린 호넷은 굉음을 지르며 새로운 LZ로 왔고, 우리를 태우고 기지로 복귀했다.
이번에 현장에서 끌려 나온 이유는 11월 30일, 프레리 파이어 작전 지역에서 발생한 비극 때문이었다. 엘디스트 선 작전 중 H-34 킹비가 격추됐다. FOB 1과 FOB 4의 그린베레 7명은 대공포탄이 시코르스키 헬기에 명중함과 동시에 탄약이 유폭되어 탑승자 모두가 사망했다.
엘디스트 선 임무는 빠르게 한타 칠 수 있는 임무다. SOG 팀은 병기 전문가들이 폭발하도록 개조한 월맹군 탄약과 박격포탄을 가져와 라오스의 호치민 트레일을 따라 배치했다. 이것은 월맹군을 대상으로 사용된 심리 작전 중 하나였다. 남쪽으로 이동하는 월맹군이 이를 수거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포탄은 산책로를 따라 배치되었다. 그 후 월맹군이 탄약을 사용하면 폭발하여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정찰팀은 종종 임무 수행 중에 몇 개의 탄약이나 엘디스트 선 박격포탄을 휴대했고 이 불량 탄약을 찾을 수 있도록 남겨 두었다. 정찰대원 중 일부는 농담으로 이러한 임무를 *"메달 미션"이라고 불렀다.
*거저먹을 수 있는 임무
하지만 이 농담도 11월 30일부로 끝났다.
끔찍한 킹비 격추로 사망한 사람 중 한 명은 아서 E. 베이더 주니어 하사였다. 나는 베이더를 좋아했다. FOB 6으로 오기 전날 밤 FOB 1에서 포커를 했고 베이더가 많은 돈을 쓸어갔다. 우리가 더 오래 플레이할수록 베이더가 더 많이 쓸어담았다. 하지만 승리할수록 베이더는 더욱 침울해졌다. 나는 베이더에게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이기고 있는데다 수백 달러를 앞서 있었지만 돈을 전혀 안 쓸 것이라고 계속 불평했다. 그의 반응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예감이었고, 곧 죽게 될 사람들은 결코 쓰지 않을 많은 돈을 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그를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베이더는 독특한 특수부대원이었다. 그는 세 번의 복무 기간 동안 세 번 재산을 벌기도 하고 잃기도 했다. 그는 30대였지만 여전히 그린베레 생활을 즐겼고 독일어와 기타 몇 가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싶어했다. 푸바이로 돌아가는 긴 비행 중에 그가 지난 밤 포커 테이블에서 말한 것이 계속 들렸다. 이제 그는 사라졌지만 말이다.
***
20여년이 지난 후, 수습 작업을 통해 베이더의 유해는 애틀랜틱 시티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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