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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그니까 5억년 동안 시간이 멈췄다니까요모바일에서 작성

ㅇㅇ(221.165) 2024.04.20 01:17:26
조회 29624 추천 380 댓글 65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대로면 5억 년 동안 시간이 멈췄다는 거잖아요."


"그렇다고요!!... 아니 왜 제 말을 못 믿어주시는 거죠?"


"아니 제가 그곳에서 5억 년 동안 지냈다니까요!!"


환자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가 울부짖고 있다.


이번에 새로 입원한 환자 '이용준' 5억 년 동안 시간이 멈췄다고 주장한다. 망상증 환자들을 많이 봐왔지만,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다.


"선생님 진정하시고 여기 차 드시면서 천천히 얘기해 봐요."


"5억 년 동안 시간이 멈춰서 무슨 일이 있으셨죠?"


"하…. 그러니까 말 그대로 지구에 시간이 멈췄어요. 하늘에 있던 비행기가 공중에서 멈추고 컵을 떨어트리면 떨어지지 않고 떠 있었어요."


"사람들은 움직이는데 시간은 멈춰서 5억 년 동안 개고생을 했다니깐요!!"


"아침은 오지도 않고 전기는 작동 한번 안 하고, 사람들은 미쳐가는데에에.!! 시바알!!!!! 그곳에서 죽지도 못하고…. 홀로 5억 년 동안…!!!


"환자는 마치 자신이 진짜 5억 년을 겪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선생님…. 진정하시고, 사람들이 움직이고 미쳐간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시간이 멈췄는데 사람은 움직일 수 있단 건가요?"


"그게..그러니까안...사람이 움직이고 생각할 순 있는데 배고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잠도 오지 않고"


"고통은 그대로 느껴져서 밖에선 비명만 들리고 아무 빛도 들어오지 않고 사람들은 미쳐있고…!!"


"2년쯤 지나니 밖에선 사람들끼리 서로에 몸을 찢고 있고…!!!"


"가족들도 전부 점점 서로에게 화만 내고 있고 부모님은 눈물도 나오지 않는데 울고만 계시고…."


사람에게서 이런 표정이 지어질 수 있을까. 환자의 얼굴엔 세상에서 처음 보는듯한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선생님 진정하시고, 천천히 심호흡 하세요"


환자에게 이런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 또한 5억 년을 겪은 듯한 느낌이 든다.


"선생님이 5억 년 동안 시간이 멈추는 걸 겪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겪었으니, 저희도 기억나야 하지 않나요?"


"그리고 선생님 5억 년 동안 그런 일이 있었고 다시 시간이 움직였는데 모든 게 정상적이죠?"


"저희는 5억 년 동안 시간이 멈춘 기억이 없습니다. 선생님 혹시 지난날 동안 힘든 일 없으셨습니까?"


"하…. 너도 나 못 믿는구나 시발…. 너도 그 지옥 같던 나날을 겪었을 텐데 왜 나만 기억이 있는 거지...?"


"우리 동네 사람들은 전부 미쳐서 서로 찢고 쳐 죽이기만 했는데 너는…."


"잠만 혹시, 너 이름이 뭐야? 내가 아는 그 사람일 수도 있어"


환자의 억양, 목소리의 떨림, 눈빛, 표정 모두 연기된 것이 아닌 실제 겪은 듯하다. 환자에 망상 증상은 중증으로 보인다.


"제 이름은 '김호정'입니다. 선생님이 겪은 5억 년 중에서 절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하."


"맞네"


"진짜로 겪었다니깐"


"5억 년 동안 동네 사람들은 전부 기억했는데."


"나에게 했던 짓들도 모두 기억하고 있는데."


"'김호정' xx 대학교 수석 졸업 후 정신의학과 박사 학위 취득"


"부(父)' 김호윤' 모(母)' 임수진' 25살에 결혼, 2년 후 출산하게 되지만, 계속되는 부부간에 말다툼과 부(父)' 김호윤'의 가정폭력으로, 모(母)' 임수진' 31살에 나이로 자살"


"4살에 나이로 부모에 자살을 보며 정신적 충격으로 우울증을 겪음."


"정신병의 고통을 알기에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의사가 되기로 함."


"맞죠?"


오금이 저린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머릿속에 땀이 맺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말은 모두 사실이니까.


부모님의 가정폭력으로 엄마가 자살한 것도, 정신병의 고통을 알기에 다른 이들을 치료해 주고 싶었던 것도 모두 진실이다.


"표정 보니 맞나보네"


"이제 제 말을 믿으실 수 있을까요?"


5억 년 동안 시간이 멈췄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순 없었지만,
지금까지 한 말을 보면 믿을 수밖에 없어졌다.


"선생님이 말씀이 사실인 거 같군요…. 선생님이 겪은 5억 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사실이라면…."


분명 의사로서 환자의 안위를 살펴야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궁금한 게 있었다.


"저는 5억년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의사로서 미쳐가는 사람들에 정신을 붙잡아 줬나요? 아니면 저도 공포에 질려있었나요?"


이런 것이 왜 궁금할까, 인간성을 잃어가는 난 어떤 사람일지 알고 싶었던 걸까.


"하…."


"드디어 제 말을 믿는 사람이 생긴 거 같네요…."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표정은 해탈한 듯 보였다. 5억 년 동안 시간이 멈춘 고통은 얼마나 끔찍할까. 그리고 그통을 아무도 몰라준다면 얼마나 더 끔찍할까.


"의사 선생님."


"김호정 선생님은 처음엔 자신에 병원을 꾸려 같이 생활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셨어요."


"하지만 그 신념은 320년쯤을 넘어갈 때 끝나셨어요."


끝났다는 게 무슨 말일까. 결국 포기했다는 것일까.


"김호정 선생님은…."


"병원에 있던 사람들을 의료용 망치로 전부 죽이고 빠져나오셨죠."


몸이 굳었다.


이게 무슨 말일까.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건가? 무한한 시간에 미쳐 사람을 죽였다는 걸까?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끔찍한 일이 겪어도 절대 인간성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선생님이 꾸린 병원에 가서 사지가 뜯겨나가고 머리가 짓눌려있던 사람한테 들었어요."


"'그 새끼가 전부 죽였다' '어느날부터 점점 실성하며 혼잣말 하기 시작하더니 전부 죽였다.'"


"라고.... 들었어요."


순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사람에 사지를 찢고 머리를 뭉갠다고? 이런 개소리는 있을 수 없었다.


"허…. 제가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다고요? 말이 되는 소립니까? 믿어주려 했는데도 이런 소리만 하시다니!!"


"개소리도 정도껏 하셔야죠!!"


옆에 있던 찻잔도 떨어트리며 소리쳤다. 나답지 않게 환자에게 화를 내다니, 너무나도 나답지 않았다.


환자에게 한 무례한 행동을 재빨리 사과 했다.


"하….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저답지 않게 화를 냈네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환자는 이 말에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악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선생님 왜 그러시는지…."


그러자 환자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해탈이랑 전혀 다른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로.


"하하하 시발….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또 시작인 거야???"


"하하....하.... 하.... 제발.... 꿈이라고 해줘.... 지금까지 일어난 일 모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웃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두려움에 질린 이유도 그가 애원하는 이유도.


아까 떨어트린 찻잔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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