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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프] 서희(2)

탑갤러(115.22) 2024.02.22 12:21:34
조회 33 추천 0 댓글 0
														


1년전



집에서 부모님과 심하게 다툰 후


무작정 집을 나왔다.


조그만 방두개짜리 낡은 빌라에

전세로 들어갔다.


전세라곤 하지만 매월 월세와 비슷한

관리비 명목으로 돈이 나갔다.



집 나올 당시에 통장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겨우 3000만원을 만들었고

그걸로 무작정 방을 구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30을 넘겼다.



부모님은 형이 사고로 죽은 뒤

나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셨다.


형은 똑똑하고 영민했다.

어딜가나 수재소리를 들었고

그런 형을 항상 부모님은 자랑스러워

하셨다.


모든 관심은 형에게 쏠렸고,

덕분에 난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것들을

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것들이야 해봤자 PC방가고

용돈 받아 친구들과 술먹고

아침 늦게 일어나고, 이런것들이였다.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중고차도 함께

가지고 나왔다.


밤늦은 시간

혼자 호프집에서 맥주를 잔뜩 마시고

운전대를 잡고

어둑한 골목길을 운전했다.


뭔가 보이더니, 쿵 소리가 났다.


순간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순식간에 술이 다 깨었다.


밖에 나가보니 아이보리 정장을 입은

여자가 쓰러져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차를 돌려 나가기도 힘들었고

그대로 그 여자를 밀고 앞으로 나갈 용기도

없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정신좀 차려보세요"



"으음" 하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옷은 얼룩이 잔뜩 뭍었고

우선 차에 태워 병원으로 데려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조수석에 태워

골목으로 빠져나올때,

만약 병원으로 데려간다면 음주운전으로

걸릴것 같았다.


멀지 않은 곳에 내 자취집이 있다.

우선 그곳으로 가서, 그녀를 부축해

2층 계단을 올라가

현관문을 열고 신발장 앞

그녀를 눕혔다.


다행히 크게 다쳐보이진 않았다.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부엌겸거실 사이로 끌어올린 후

수건에 물을 적셔 왔다.


이미 내 온 몸은 땀 때문인지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적신 수건으로 그녀의 무릎과 종아리

그리고 팔과 얼굴을 닦아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잠시 뒤 그녀가 일어났다.


주변을 잠시 두리번 거리더니

팔과 어깨를 돌려보곤

'아아' 라는 얕은 신음 소리를 냈다.


나를 바라봤다.

멍한 눈빛으로.


난 뭐라 이야기를 꺼내야 될지 몰랐다.


"물 좀 갖다 드릴까요? 정신이 들어요?"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어디냐를 묻자, 나는 내 집이며,

당신이 내 차에 부딪혀 쓰러져

우선 집으로 데려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녀가

"미안해요"라고 답을 했다.


왜 미안하지, 혼란스러웠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은것 같아 다행같다고

이야기 한 후에, 나중에 아침이 되면 같이

병원에 가보자가 말을 꺼냈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그녀와 아무말 없이 지새우고

아침 동이 트는게 보였다.


숙취로 머리가 약간 지끈거렸다.




"저.. 이제 같이 병원에 가보시죠. 제가 차로 모실게요"


"....."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정적이 계속 흘렀다.


그녀가 무언가를 이야길 해주길 바랐다.



"배가 고픈데, 먹을거좀 있을까요? 라면이라도 좋아요"


그녀의 첫마디는 배가고프다였다.


그 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을 그녀 곁에 앉아만 있다보니

무릎과 허리가 욱씬거렸다.


밥솥을 열어보니 누렇게 변한 밥이 보였고,

상단 싱크대를 열어보니 3분 카레가 보였다.


다행히 밥솥 옆에 즉석밥 몇개가 있었다.


"카레도 괜찮으세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그냥 끄덕였다.


큰 그릇에 즉석밥과 카레를 붓고

전자렌지를 돌렸다


"띵"


작은 상위에 큰 그릇, 숟갈, 그리고

봉지 김치를 꺼내어 그녀 앞에 내놓았다.


뜨거운지 '후,후' 불어가며 그녀가

숟갈을 뜨기 시작했다.


긴 머리칼을 한쪽으로 빗겨넘겨

조신하게 먹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그릇을 싹비운 그녀 앞에 생수 한컵을

놓았다.


시계는 어느 덧 10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저...병원 안가셔도 되요? 댁이 어디세요?

제가 집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혹시 집에 계시다가 아프시면, 여기 제 연락처인데

여기로 연락 주세요"


그리고 포스트잇에 내 전화번호를 적어 건내주었다.




두손으로 공손히 받은 그녀는 말이 없었다.


답답했다. 아무말 없이 있는 그녀가


"혹시 집이 이 근처세요?"


"....."



난 일어나 땀이 젖아 말라버린

셔츠와 바지를 갈아입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뜨거운물이 닿으니 긴장이 풀리며

아픈 머리가 조금 나아지는거 같았다.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그녀가 그릇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아...제가 치울테니 그냥 두세요"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설거지에

집중했다.


이내 설거지를 끝낸 그녀가

화장실을 좀 써도 되냐고 물었고


난 괜찮다고 대답했다.


세면대 수돗물 소리가 한참동안 들렸다.


그녀는 넘어지면 묻은 얼굴과 손의 얼룩을 닦아

내고 나왔다.



"죄송한데, 갈아입을 옷 좀 있을까요?"



"네?"


"제 옷이 더럽고 찢어져서요, 티셔츠나 아무 바지나..."


난 처음에 이해를 하지 못했다.


왜 나에게서 옷을 달라고 하지...



재차 물었고, 그녀는 끄덕였다.


대충 옷바구니에서

티셔츠와 반바지를 건냈다.


그것을 받아든 그녀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이번에는 샤워를 하더니

내가 준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머릿결엔 물이 잔뜩 묻었고,

화장이 지워진 맨 얼굴에


사고 때문인지 팔꿈치와

무릎 정강이 부근이

찰과상이 보였다.


"저,,, 일단 여기 앉아보세요"


난 약통을 가져와 간단한 소독약과

반창고를 찰과상 입은 부위에 붙여줬다.


따끔거렸는지, 그녀는 움찔거렸고

때론 후~후~ 하고 불기까지 했다.


다리와 팔이 엄청 하얗게 보였다.

팔뚝엔 투명한 솜털도 보였다.



그녀는 일어나

내 침대로 가더니

잠깐 한숨만 자겠다고 했다.



뭔가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잠든 동안

난 그녀의 옷가지를 뒤져보았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내리 20시간을 넘게 잠들었다 .

그리고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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