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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박진성x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11.18 05: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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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철에게


  오랜만에 블로그에 너의 이름을 쓴다, 친구야. 2005년에 시작한 이 블로그에는 네 이름이 종종 나온다. 검색해 보니 내 삶의 고비마다 네가 있었구나. 친구니까. 올해로 28년째 친구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그렇게만 생각한다. 어제 저녁엔 너를 만났었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네가 했던 말, 왜 그렇게 이번에 나온 시집에 집착하느냐고, 좀 가만히 두라고, 건강부터 챙기라고, 너는 내게 말했지.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수은주가 급격하게 떨어진 카페 창문 바깥이나 바라보다가 끝내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리고 네가 던진 질문을 계속 붙잡고 있다. 그렇게 오전 4시 40분의 새벽이다. 나는 왜 이렇게 이번에 나온 시집에 집착하고 있을까.


  타인의 삶은, 그 자신이 아니면 도저히 해명이 안 될 것들이 분명히 있다. 네게도 신념이 있고 네게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네게도 네 삶의 마지노선이 있다고 그렇게 믿는다. 친구야, 이 시집은 나의 마지노선이다. 


  2001년, 그러니까 스물네 살에 등단이라는 것을 했다. 제대로 된 직장 한번 가져본 적 없이 단 한 순간도 시를 놓은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문예지’라는 제도가 있어서 그곳 관계자들이 시인에게 시를 청탁한다. 시를 청탁 받으면 시인은 시를 쓰고 그 문예지에 시를 게재하고, 그리고 그 시들을 모아 시집을 낸다. 스물네 살부터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 그 시스템에 맞춰서 살았다. 많게는 1년에 30편정도, 아무리 적어도 1년에 10편, 나를 찾는 문예지들에 시를 발표하고 그 시들을 묶어서 시집을 냈었다. 그렇게 15년을 살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랬다. 문예지에서 청탁하는 시들을 쓰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았다. 그건 네가 잘 알 거다. 시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냐고, 자주 타박을 하던 너였으니까. 


  이제 어떤 문예지도 내게 시를 달라고 하지 않는다. 이제 어떤 문학 전문 출판사도 내게 시집을 내자고 하지 않는다. 출간되었던 시집도 출고 정지로 묶여 있는 상태다. 친구야. 이런 사정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니. 방법이 없다. ‘그 일’이 있고 시를 그만 쓸까 생각도 했었고 시를 쓰지 않았었다. 6개월 넘게 그렇게 살다 보니까, 꿈에서 내가 시를 쓰고 있더라. 어느 늦은 밤에, 꿈에서 쓴 시를 급하게 핸드폰으로 옮기다가 나는 울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다가 나는 이렇게 살게 된 걸까, 친구야. 


  시집 나온 지 3주 째. 이번 시집의 작품 자체의 반응이나 판매량이 꽤나 좋아서 인터넷 서점 중심으로 순위권에도 올라가니까 겨우, 정말 겨우 몇 군데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자고 제안이 오더라. 그마저도 문학 전문 출판사는 아니고 소규모 영세 출판사들이다. 이게 현실이다, 친구야. 내가 아무리 한국일보와 소속 기자 황수현을 상대로 승소를 했어도, 성폭력 폭로와 성폭력 고소가 거짓이었다는 판명이 났었어도, 그 어떤 출판사에서 내게 시집을 내자고 하지 않았었다. 내가 내 돈으로 시집을 내면 되지 않겠냐고? 차라리 일기장을 묶어서 책으로 내는 게 나을 것이다, 친구야. 


  다시 시를 쓰고 싶다, 친구야. 다시 시집을 내고 싶다, 친구야. 그러려면 시집이 좀 팔려야 한다. 내가 속물로 보여도 어쩔 수 없다. 내게는 시집 4권 분량의 시 원고가 있고 그것들을 세상으로 내보내고 싶다. 그게 나의 일생의 목표였고 목표이고 목표일 것이다. 그러려면 시집이 좀 팔려야 한다, 친구야. 


  시집 한 권 팔면 내게는 10프로의 인세가 온다. 시집 1권을 팔면 천 원 남짓, 10권을 팔면 만 원 남짓, 천 권을 팔아도 백만 원 남짓,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친구야, 극빈의 생활이라도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빼앗기더라도 시를 쓰고 그 시들을 묶어서 시집을 내고 싶다. 소원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 


  새벽이다. 친구야. 넋두리가 길어졌다. 

  다시, 시를 쓰고 싶다. 성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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