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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핫산) 정의가 총을 내려놓는 날 - 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0 14: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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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화


16361자





구두를 보라. 의미심장한 말이 나타내던 힌트는 분명 거기에 있었다. 확증에 가까운 것을 얻은 이치카는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심성 나쁜 출제자 본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수용되어 있는 시설에.


『――흔들림을 눈치챈 사람이 적었나. 천공기나 어스 드릴류를 채용하고 있지 않다고 하면 남은 수단은 한정되지. 소형 실드 머신 같은 걸까. 윤활제를 사용하거나 역위_상의 진동을 줌으로써 굴착시의 소음이나 지표의 흔들림을 저감시키는 기술은 확실히 있어. 그것을 채용하고 있다면 나름대로 자본이 있는 토목업자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은 높을 거야. 최근 몇 개월, 부근 지하 공사에서 신규 업자가 고가로 낙찰받고 있지는 않은지 조사해보면 좋아.』

「조금 범위를 좁힐 수 없겠슴까? 트리니티 전역이라면 꽤 많은 수라......」

『조인식 폭격 사건 이후 처음으로 입찰에 참가한 업자. 그걸 기반으로 성당을 중심으로 해서 반경 2km 이내에 지하 시공을 실시하는 전부. 실드 머신이라는 것도 꽤나 발이 느려서 말이지. 세그먼트 복공과 동시 진행이라면 한 달에 300m 정도 진행하는 게 고작이야. 오토마타를 최대한으로 동원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동시켜도 500m가 조금 넘는 정도일까.』

「......역시 잘 아시네요.」

『우리는 채용하지 않는 수단이지만 말이야. 풋워크를 중시하는 우리에겐 맞지 않은 기계고, 소음도 진동도 신경 쓸 문제가 아니지.』

「잡히는 걸 고려하지 않는다면 말임다.」

『이것만은 천성이니까!』

그 부분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카스미는 당당하게 공언한다. 타고난 테러리스트라는 건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음은, 게헨나에서 일어난 폭탄 사건이 신경쓰임다. 이 건과 관련이 있다면 겸해서 대책을 생각하고 싶습니다만. 마코토 의장 앞으로 보낸 짐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었던 모양이고 범행 예고까지 어딘가 비슷해서 말임다. 아마 「가축을 두려워하라」 였나.」

트리니티 측만 도움받고 있다는 부담감을 안은 채로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얘기한 시점에서 카스미는 간단하게 부인한다.

『동일범이라 해도 범행 타이밍을 맞추는 메리트는 희박해. 만일 탄약이나 거점 점거가 목적이라면 상당히 대규모 조직이 아닌 이상 전력을 분산시키게 될 테니까. 게헨나에선 일상다반사인 폭파 테러가 우발적으로 겹쳐 보였을 뿐이야. 폭파당한 의장에게는 유감이지만 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도록 하지. 우선해야할 건 트리니티일텐데.』

게헨나에선 이게 일상. 너무나 상식과 괴리되어 있어 이대로 가능성을 잘라내도 괜찮은 건지 이치카는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자 그럼,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 범인은 다른 자치구에서 트리니티로 탄약이 보충되기 전에 전격적으로 움직이려 하겠지. 빠르면 내일 밤쯤에는 결행돼도 이상하지 않을 거야. 어이쿠, 지금은 무기가 없었던가? 맞아! 모은 탄약에 불을 붙여 요격하는 건 어떤가? 그 어느때보다도 성대한 발파가 될 테지! 꼭 이 눈으로 보고 싶구만――』

「저기......」

『응?』

통화 저편에서 미안해하는 듯한 이치카의 목소리에 카스미는 말을 멈춘다.

「트리니티에서 온천개발부가 활동할 수 없는가 하고 윗선에 타진해 봤슴다만...... 그, 지혜를 빌려준 답례로. 근데 허사였슴다. 트리니티에는 D.U.가 관할하고 있는 지구도 있어서 우리만의 판단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역부족이라 죄송함다.」

긴 침묵이 흘렀다. 이치카는 통화가 끊겼나 싶어 귀를 기울여 저쪽 소리를 들으려 시도한다.

『핫핫하!!』

「으앗!」

갑작스런 귀청을 찢는 듯한 큰 웃음에 스마트폰을 떨어뜨릴 뻔 했다.

「뭐, 뭠까, 대체!? 제가 뭔가 이상한 말을 했슴까?」

『아니――실례!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일 줄은, 정말 솔직하고 귀여운 아가씨구만! 핫핫하!』

그건 농담이었나. 복잡한 감정이 이치카의 뺨을 붉게 물들인다. 전화 너머로는 안색이 전해지지 않는 게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키누가와 카스미는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기대 같은 건 하지 않았어. 뭐, 트리니티의 지리 사정을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으니까. 이번에는 그걸 보상으로 받아두지.』


우리는 대립하는 입장이니까. 의리조차 없어야 마땅하며 그런 건 신경쓰지 말라고, 카스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게헨나는 결코 좋아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쾌활하게 거리를 두는 듯한 그녀의 어조에 이치카는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전화 면회 규정 시간을 넘겼기에 간단한 인사만 남기고 통화는 갑작스레 끝났다.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다. 싸움을 위해 준비를 해야한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건만 더라며 스마트폰으로 연락처를 불러내지만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복두의 본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겨우 마음을 먹고 이름을 탭한다. 분명 바쁜 몸이겠지만, 불과 두번의 통화음만에  연결되었다.

「바쁘신 와중에 죄송함다. 선생님――」



「지금부터 성당 방위 작전 회의를 시작하겠다.」

대표인 츠루기가 선언하고, 회의실에 모인 정의실현부 주요 멤버들은 표정을 다잡았다.


「적의 목표는 탄약의 접수가 아닌, 고성당 지하의 카타콤 침입 및 점거로 단정한다. 목적은 학생에 의한 자치 철폐와 계열사 PMC에 의한 치안 유즈 비즈니스의 확대 가능성이 높아.」


츠루기가 시선을 모은 것을 신호로 이치카가 설명을 이어받는다.

「에덴 조약 조인식 사건으로 학원내에서만 공유되고 있던 지하 카타콤이나 숨겨진 유적의 존재가 누설됐다고 생각함다. 이전에는 시스터후드 소속에게조차 소문 수준으로밖에 인지되지 않았던 장소임다만, 조인식 사건 전후에 그걸 알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고성당의 수리 시공업자임다. 참여한 건 카이저 컨스트럭션. 자본 출처는 민간 군사회사 같은 것도 경영하고 있다는 검은 소문이 끊이지 않는 기업임다.」

이어서 조사 자료를 한 손에 들고 긴장한 표정으로 마시로가 읽어나간다.

「그리고 최근 트리니티 자치구 공사를 낙찰한 신규 업자를 조사해 나온 해당 건에 대해....... 해당 공사 이전에는 상당히 장기간 사업 실적이 없었고, 거의 페이퍼 컴퍼니 같습니다. 명칭은 옥토퍼스 건설로 되어 있습니다만, 자금의 흐름으로 보아 카이저 그룹의 자회사인 건 틀림없습니다. 또한 하스미 선배가 지진 같은 흔들림을 느끼기 시작한 시기와 옥토퍼스 건설이 지하 공사를 시공하기 시작한 시기가 대체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흔들림에 관한 증언을 통계로 내보면...... 공사를 구실로 성당 방면을 향해 지하 갱도를 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건입니다만, 사건이 있던 지구의 탄피 회수업자와 특정 시기 정의실현부의 탄약 납품업자도 배경이 일치했습니다.」

「"죽음의 탄환"은 무작위로 뿌려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정의실현부를 겨냥해 납품물을 속였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발사될 대략적인 시기는 파악되어 있었다는 거죠. 최근 묘하게 학생간 트러블이 많았던 것도 정의실현부에 의한 발포 기회를 늘리기 위한 범인 그룹의 공작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건으로부터 범행 성명이 나오기까지가 너무 빨랐다는 걸 더 의심했어야 했어요. 범인은 처음부터 우리의 행동을 감시・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간 일이야. 반성점은 많지만 우선 다음 습격을 대처하지 못하면 상처 입은 학생들을 볼 면목이 없어.」

분한 나머지 이를 가는 하스미를 달래듯, 츠루기는 대처를 위한 화제로 전환한다.

「습격까지 계속 고성당에 붙어 있는다는 방법도 있지만, 기업이 뒷배라면 지구전은 아마 규모에서 뒤처지는 이쪽이 불리. 시간을 허비하면 트리니티 내의 불신도 커질 수밖에 없어.」

「그에 대해서는, X데이를 이쪽에서 지정하겠슴다.」

「어떻게?」

「"내일, 정의실현부가 밀레니엄에서 탄약을 긴급 양도받는다."라는 가짜 정보를 아침 보도에 유출하도록 하겠슴다. 트리니티가 재무장하기 전에 결행을 노릴테니 누설 방송 개시부터 양도 지정일까지 사이에 조급하게 공격해 오도록 유도하는 검다.」

「스피드한 대응입니다만, 그만큼 이쪽의 응전 준비가 시간에 맞을 지도 불안하네요. 침공 루트도 하나가 아닐텐데.」

하스미의 우려에 이치카는 신중하게 입을 연다.

「그 대처에 대해 제안이 있는데――」



「카타콤 내부 방어에는 시스터후드 및 구호기사단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들에게 그 장소는 지키고 계승해야 할 위령의 장소.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죠. 하지만.」

하스미는 우울한 듯 이마에 손을 대고 한숨을 내쉰다.

「미확정 침공 루트에 대한 당신의 대처 방안. 솔직히 말해서 저는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어요, 이치카.」

「현상황에서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함다. 걱정은 지당합니다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함다.」

「당신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요. 오히려 총학생회의 결정에 대한 놀라움이 더 클 정도로......」

「하스미 선배. 역시 저, 들뜬 걸까요.」

「......이치카?」

이치카는 작전 회의 중 드러내지 말아야 할 감정을 저도 모르게 드러내 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싸움 전에 어떻게든 전해두고 싶은 것이었다.

「저, 트리니티도 정의실현부도 정말 좋아함다. 이 장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은 가리지 않을 검다. 설령 게헨나 같은 녀석이라고 여겨진다 해도.」

조용히 감정을 고조시키는 이치카의 말에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하스미였다.

「이치카. 혹시 단신으로 게헨나에 보낸 걸 이상하게 오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네?」

하스미는 정곡을 찔려 동요하는 이치카를 흘끗 보며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말을 이었다.

「츠루기에게는 정치적 교섭 같은 건 맡길 수 없고, 저도...... 부끄럽지만 만마전에서 실수를 한 경험이...... 있기도 하고.」

과거, 게헨나와의 중요한 회의 자리에서 하스미가 체형에 대한 야유를 받고 난동을 부렸던 건을 말하는 것이리라. 불가항력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안심하고 대외협상을 맡길 수 있는 인원을 검토한 결과가 당신이었다는 것뿐입니다. 비굴해지지 말고 앞으로의 정의실현부를 짊어진다는 자각을 가져주세요. 저도 츠루기도, 당신을 따르는 하급생들도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하스미의 기탄없는 칭찬과 부원들의 따스한 시선이 모이고 이치카는 쑥스러운 듯 뺨을 긁는다.

「뭐, 뭔가 제 지레짐작이었던 거 같네요..... 아하하......」



「그리고, 무기네요. 최악의 경우 개머리판으로 후려치면 그만임다만.」

매거진이 뽑힌 상태의 소총을 바라본다. 손에 익은 애총은 분명 둔기로서도 활약해 줄 것이다.

「"죽음의 탄환"은 그 한방뿐...... 가설대로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수집한 탄약에 손을 대면 아마 상대가 바라던 바가 되겠죠.」

「육탄전으로 충분해.」

「모두가 츠루기처럼 될 수는 없어요.」

가장 중요한 요소. 애초에 예측대로 적과 대치하게 됐다고 해도 제압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것도 이쪽은 총기 사용이 묶인 상태고. 적의 규모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이상 여전히 불안이 남았다.

「저, 저기! 선배!」

골머리를 앓_는 일동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누군가가 호소한다. 회의실 문틈으로 1학년 부원, 압수품 관리 담당 시모에 코하루가 불안한 얼굴을 내비치고 있었다.

「무슨 일임까, 코하루? 회의 참가자 외의 1학년은 밤샘 금지임다.」

수면 부족과 긴장 때문인지 눈도 얼굴도 새빨간 채로 코하루는 고개를 숙였다.

「불안함까? 괜찮슴다. 실전 경험이 적은 아이는 전선에 나가지 않도록 편성하고 있으니까.」

코하루는 붕붕 고개를 흔들며 뭔가를 부정한다. 이치카는 내성적인 후배가 용기를 낼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이윽고 코하루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저기, 그...... 무기라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밤낮없이 답답한 갱도를 빠져나간 끝에는 한없이 광활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구시대부터 이어진 공동묘지[카타콤]. 이곳을 개수하고 군사거점으로 삼으면 D.U. 관할구를 포함한 트리니티 전역에 신속한 파병이 가능해진다. 이곳만 함락한다면 이정도로 국가 전복의 발판으로 삼기 편한 곳은 없을 것이다.

「여기는 알파. 잠입에 성공했다.」

리더의 핸드사인에 따라 무장한 십여기의 오토마타가 갱도에서 쏟아져 나온다. 벽을 따라 나아가면 긴 오르막 계단이 있고 예정대로 트인 공간에 도달한다. 상층――고성당 내, 예배당에는 달빛이 비치고 고요함도 어울려 어쩐지 으스스함을 느끼게 한다.

나이트비전을 조정하고 공간을 둘러보니 대대적으로 찾을 필요도 없이 대량으로 쌓아올린 탄약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천벌받을 녀석들이다. 우리가 효율적으로 감사히 활용하도록 하지. 블랙마켓에 풀어도 좋고.」

계획대로의 성과에 리더는 비웃듯 내뱉는다. 확인을 위해 지시를 내리고 대원 중 한 명에게 탄약 박스를 개봉하게 한다.

잠금장치를 벗기고 상부의 뚜껑을 분리한다. 그 순간, 상자 안에서 붉은 연기가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함정인가!」


부대원들은 소총을 들고 사방을 경계한다. 설치되어 있던 붉은 스모크가 시야를 가리기 직전, 리더는 이층 회랑에 달빛의 역광을 받는 무수한 검은 날개의 실루엣을 보았다.


「사격 개시――!!」


규칙적으로 늘어선 실루엣들은 겨눈 기다린 통의 트리거를 일제히 당긴다. 연속된 작렬음이 정적을 깨고 예배당 안에 반향을 일으키고 둔탁한 착탄음과 함께 부하들의 비명이 울려퍼진다. 리더는 가장 먼저 몸을 숨기고, 윗층의 적을 향해 말을 건다.

「역시 눈치챘나. 하지만 총알을 쓴 건 실수였군. 이 전투의 영상 기록은 곧 본부로 보내져 트리니티 전역에 방송될 거다. 무고한 시민들에게서 이유를 대며 빼앗은 탄약을 너희들이 손댄 증거로 말이야. 치안유지를 주장하는 조직으로서는 치명적인 신용손실이지 않을까?」

「총알 같은 건 안 썼슴다. 진짜는 이미 다른 곳에 숨겨놔서.」

실루엣 중 하나가 대답한다. 동시에 고성당 안에 설치된 가설 조명이 일제히 켜져 침입자인 오토마타 부대와 위층에서 대열을 이룬 정의실현부 학생들, 서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리더는 나이트비전을 끄고 사격에 노출돼 바닥에서 몸부림치는 부대원들의 모습을 확인한다. 총탄에 맞은 흔적은 없고 뭔가 흰 천으로 시야가 가려져 공황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었다.

「뭐, 뭐냐, 그 무기는?」

「뭐냐니, T셔츠 캐논임다만. 라이브로 쓰고 남은거라고 함다. 그 밖에도 여러가지 있슴다.」

당당하게 소개하지만 리더의 의구심이 풀리지는 않는다. 그 불가해한 무기의 설명이나 해설을 해주는 전문가는 여기에 없다.

상황을 이해할 틈조차 주지 않고 가차 없는 공격이 오토마타 부대를 덮친다.

「있는 거 전부 쏴버리는 검다! 쏴!」

부원들은 구령에 따라 긴 통에 물풍선, 야구공, 봉제인형까지 장전해 당황하는 침입자들을 사정없이 저격한다.

「타바스코 머신건, 쏘겠습니다! 유탄에 주의해주세요!」

「섬광탄, 발사합니다!」

「연습용 스위퍼 기동, 투하합니다!」

「드릴 달린 커피 머신? 저기, 이거 뭐에 쓰는 거야?」


「탄환」이외의 모든 물체가 긴 통에서 발사되어 침입자를 요격한다. 파괴력은 전무하지만 그것들은 시야를 빼앗고 발치에 걸린다. 도망친 차폐물 뒤에는 진짜 와이어 트랩이 설치돼 있어 오토마타 부대를 차례차례 묶어나갔다.

그 모든 것은 정의실현부의 압수품 창고나 비품 창고에 잠자고 있던 잡동사니들이다. 비록 후방 담당이지만 제대로 물품을 관리・기억하고 있던 코하루의 업무 덕분이었다.

「공적임다, 코하루.」

지금쯤 분명 본부에서 불안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을 후배를, 이치카는 돌아간 후 다시 한번 칭찬해 주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돼, 이런 어린아이 속임수 같은 짓으로 부대가 와해되다니......!」

스모크가 걷힐 무렵, 장난감처럼 생긴 무기에 농락당한 잠입 부대는 얼핏 봐도 리더를 남기고 전멸해 있었다.

「그렇네요. 애들 속임수. 다행임다. 카타콤에는 육탄전에 능한 분들이 지키고 있으니 저쪽으로 간 인원들은 지금쯤 빈 깡통처럼 찌그러져 있을 검다.」

대세는 정해졌다고 보고 이치카는 아래층으로 뛰어내려 적의 리더와 마주한다.

「당신들 같은 비겁한 상대라면 이걸로 충분함다. 남길 말은 있슴까?」

「......부잣집 연약한 아가씨가. 어른을 앞에 두고 너무 들뜨지 않는 게 좋아.」

적대적인 웃음과 함께 리더는 손에 쥔 단말기를 조작한다. 한박자 뒤 지면이 크게 흔들리며 굉음과 함께 예배당 바닥이 뚫린다. 요란한 구동음과 함께 바닥에서 이치카 키의 몇 배나 되는 인간형 기동병기――파워로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더는 매뉴얼 모드로 전환하고 즉시 조종석에 올라탄다.

「만약을 위해 아래층에 대기시키고 있었는데 설마 사용하게 될 줄은. 어른을 얕잡아 본 벌이다. 조금 따끔한 꼴을 맛봐야 겠어.」

오른팔에 장착된 대형 개틀링건이 이치카를 노린다. 이미 사정거리 안에 있지만 소녀의 얼굴을 공포로 일그러지게 하기 위해 일부러 한 발짝 앞으로 나선다.

――하지만, 머신의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구동계 트러블을 의심하지만 모니터는 이상 없음을 보여준다. 리더는 짜증내며 서브 카메라로 발밑을 비춘다.


「키힛......」


파워로더가 뚫은 바닥의 거대한 구멍에서 기어 나온 검은 그림자가 따라붙어 머신의 다리 부분을 잡고 있었다.

「뭐, 뭐야, 이 녀석...... 괴물......!?」

「츠루기 선배! 아래쪽은 이미 정리하셨슴까!」

「키히히....... 히야하아아아아아――!」

그림자의 정체는 정의실현부 부장이자 「걸어다니는 전략병기」라는 별명을 가진 켄자키 츠루기였다. 그녀는 포효와 함께 파워로더의 다리를 잡아채고 무기를 내려쳐 마치 민들레의 솜털을 떼듯 기동병기를 맨손으로 해체해 나갔다.

「"연약한 아가씨"라......」

이미 익숙한 난동이라고는 하지만, 손에 익은 샷건이 없이도 전혀 핸디캡이 되지 않는 강함에 이치카는 새삼 감복했다.

이윽고 고철이 된 머신에서 탑승자가 끌려 나와 이치카의 발밑에 난폭하게 내동댕이쳐진다.

등을 부딪친 리더는 곧바로 양손을 들어 항복의 뜻을 나타낸다.

「......항복이다.」

「아뇨. 아직임다.」

내려다보는 이치카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는다.

「수상한 업자는 지하 공사를 10건 가까이 낙찰받고 있었슴다. 즉, 침공용 지하갱도는 아직도 다수. 그렇죠?」

「.......」

리더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는 묵비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그저 선발대. 이제 본대가 투입되어 본격적으로 제압에 들어간다는 그런 절차죠? 장난감 무기로는 더 이상 상대할 수 없슴다.」

침묵하는 오토마타의 강화 세라믹 안면에 표정이 떠오르는 일은 없다. 하지만 내심 웃고 있껬지. 이치카의 지적대로 선발대의 10배 가까운 전력이 지금부터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약간의 반격조차 예상내였다. 기습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대국에 영향은 없을 거라 리더는 확신하고 있었다.

기분나쁜 침묵을 유지하는 적. 위층에서 후배들이 침을 삼키며 지켜보는 가운데 이치카는 입을 연다.

「......그러니 이게 저희 비장의 카드임다.」

허세. 그렇게 단정하고 마음속으로 승리를 확신하는 리더를 앞에 둔 채 이치카는 무전기를 꺼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외쳤다.


「온천개발 시간임다!!」



「신호다! 온천개발 시간이야!!」

무선연락을 받고 작업반장 메구가 외친 구령을 시작으로 게헨나 온천개발부의 트리니티 자치구 온천화 계획이 이제 막 시동을 걸었다. 200명 가까운 부원들과 수많은 중장비들이 활기를 띠며 으르렁댄다.

「허가가 나왔어――!」

「오오~~~!!!」

「부숴라 부숴! 전부 철거다!」

「발파하자! 내려가!」

한밤중인 트리니티 시가지에 엄청난 폭발음이 울린다. 아무리 봐도 과도한 양의 화약은 지상에 새빨간 불꽃을 피우며 아름답게 포장된 도로를 산산조각 낸다. 활활 타오르는 지면을 대형 굴삭기가 뒤집고, 드릴이 맹렬한 스피드로 지면을 파고 들어간다.

트리니티 자치구에 둘러쳐진 테러리스트 침공용 지하 갱도를 일망타진하기 위한 이치카의 비장의 카드였다. 적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인근 주민들에게는 직전에 대피 권고를 내렸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라? 뭐에 부딪혔는데? 터널의 세그먼트 외벽?」

「상관없잖아. 박살내!」

「폭파해라――! 연소해라!」

드러난 지하 갱도 외벽이 강제로 뜯겨나가자 내부를 나아가던 테러리스트 부대가 지상으로 끌려나온 두더지처럼 당황했다.

「우와악!? 뭐야 이녀석들!? 트리니티의 공작부대인가!?」

당황하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온천개발부 멤버들은 성가시기 짝이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그쪽이야말로 뭐야? 외부인이 온천 개발을 방해하지 마!」

「반장! 이 녀석들 어떻게 합니까?」

「아 진짜! 여기는 우리가 허락받고 파는 거라구!」

작업에 찬물을 끼얹은 분노에 메구는 뺨을 부풀린다. 바이저를 장착하고 화염방사기를 겨누자 테러리스트들은 주춤했다.

「태워버리자!」

「폐쇄된 곳에서 화염방사기......? 이 녀석 제정신이 아니야!」

비명과 함께 갱도 안팎에 거미 새끼를 풀어놓은 듯 테러리스트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것을 몰아세우듯 무자비한 불꽃과 폭풍이 퍼붓는다.


지금, 고성당을 중심으로 한 반경 2km 이내의 땅속에서 비슷한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온천개발부는 아는지 모르는지 테러리스트들의 노림수를 속속 물리적으로 파괴해 나갔다.



「저, 전부대 통신두절......!? 대체 무슨 일이?」

「증원은 안 올 검다.」

히든 카드인 파워 로더는 고철로, 본대는 갑작스러운 소식 불명. 리더는 자신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현실을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온천은 잘 모르지만 개착식 공사? 라는 수법인 거 같아서 생매장 걱정은 없을 검다. 한 명도 빠짐없이 끌고 나와 포박임다.」

「애새끼가......」

그럼에도 여전히 적개심을 드러내는 리더는 숨겨둔 권총을 꺼내 이치카의 눈앞에 들이댄다.

「너희 같은 애들이 자치놀이를 하고 있으니 PMC의 자금 사정이 안 좋은 거다! 애새끼들은 얌전히 어른을 따르고 있으면 좋을 것을......」

「그렇네요. 풋내나는 애임다. 하지만 그걸...... 당신들의 검은 야망으로 뒤덮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치카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그 미간을 향해 권총의 방아쇠가 당겨진다.

그 찰나, 이치카는 발사된 탄환을 바로 앞에서 피한 후 기세 그대로 뻗은 발차기로 권총을 쳐낸다.

「뭣......!」

「――정의[우리]가 있는 검다!!」

이치카는 부릅뜬 눈으로 포착한 적의 안면에 전력으로 주먹을 내리친다. 세라믹 장갑이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기세대로 뻗은 충격에 전신이 날아간다. 고철 더미에 뒤통수를 부딪혀 리더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여자아이에게 괴물이라든가 말하면 안 됨다.」


결말이 난 것을 지켜본 후배 부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축포로 T셔츠 캐논을 펑펑 발사한다. 이치카 주위에 발사된 모모프렌즈 인형들이 산처럼 쏟아진다.

「......잘했어.」

당장 가세할 수 있도록 노려보고 있던 츠루기도 임전 태세를 풀고 웃는 얼굴로 이치카를 격려했다.

「에헤헤......」

위기를 넘긴 안도감에 이치카는 그만 뺨이 풀린다.

운명을 건 싸움은 끝났고, 정의의 사도는 평범한 소녀로 돌아왔다.


이치카는 떠오른 듯 무전기를 꺼내 승리의 일등공신들에게 연락한다.

――게헨나 온천개발부. 부장인 키누가와 카스미 본인은 지하 감옥에 수용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현장에 참가할 수 없었지만 부원들은 자유롭게 마음껏 온천 개발 활동을 즐길 수 있었을까. 작전의 일부에 강제로 끼워 넣는 형태가 됐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그녀의 소원에 대한 보답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생하셨슴다, 온천개발부 여러분. 작전은 끝났으니 작업은 중단하고 철수 준비에 들어가주셨으면 함다.」



―――



......대답이 없다. 무전기는 무기질적인 노이즈를 낼 뿐 아무리 기다려도 소리를 낼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불온한 낌새에 이치카는 전신의 핏기가 빠져나가는 걸 피부로 느끼고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온천개발부의 동향 감시 담당으로 시가지 빌딩 옥상에서 임무를 맡고 있는 마시로에게서 6건이나 되는 착신 이력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스마트폰이 7번째 착신을 알린다.


「뭐, 뭔가 굉장히 기분 나쁜 예감이......」



「발파다――! 화약 더 가져와!」

「잠깐, 저 빌딩 방해돼. 한두 동쯤 더 철거해 버리자!」

「딱 좋아. 그 근방의 가로수는 모두 온천향의 목재로 만들어 버리자구.」


전력질주로 시가지에 도착한 이치카의 눈에 비친 것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오늘 아침과는 전혀 다른 폐허로 변해버린 아비규환의 트리니티 자치구 모습이었다. 분명히 사전에 설명한 작전 구역・내용을 일탈한 온천개발부의 파괴 활동에 빌딩도 지면도 회색의 잔해 더미로 변해 있었다. 이치카보다 앞서 달려가던 하스미는 분노를 넘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망연자실해 있었고, 그 옆에서 마시로도 무릎을 꿇고 지면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섬광과 파괴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속수무책으로 서 있는 이치카의 눈에 더욱 믿기 어려운 게 들어온다.


「핫핫하!! 아직 더 부족해...... 부족하다고! 끝없이 파고 들어가라, 거기에 온천이 솟아오를 때까지!」

그곳에는 백의를 그을음과 진흙으로 더럽히며 생기넘치게 파괴 활동에 종사하는 키누가와 카스미의 모습이 있었다.

「어, 어째서 저 사람까지 여기에......!?」

실의의 구렁텅이에서 말을 잃은 정의실현부 멤버들과는 대조적으로 카스미가 이끄는 온천개발부 멤버들은 불길을 배경삼아 꿈과 희망에 넘쳐 목숨을 걸 정도로 열중해, 그야말로 청춘을 구가하는 소녀의 모습 그 자체였다.

「뭐니뭐니 해도, 오늘 활동은 총학생회가 보증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사양 같은 건 장작에 파묻어 태워버려! 핫핫하!」

카스미가 사양이라는 고상한 말을 알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며, 이치카는 천천히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끝없이 귀에 남는 큰 웃음소리. 무너져가는 빌딩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치카는 중얼거린다.

「끄, 끝장이야......」


◇◇◇


「――바쁘신 와중에 죄송함다. 선생님.」


"이치카의 전화라면 설령 상어에게 쫓기고 있을 때라도 받을 거야."


「그게 뭠까? 히힛.」

여느 때와 같은 선생님이었다. 안심하고 풀어질 것 같았다.

「......선생님, 갑작스럽습니다만 무리한 부탁을 드려도 괜찮겠슴까? 게헨나 온천개발부를 한시적으로 트리니티의 D.U. 관할구역 내에서 활동하게 해주셨으면 함다.」

이치카는 정말로 터무니없는 일을 부탁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말한다. 권한을 가진 어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초법적인 조치를 요구한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독선적이고, 어른을 곤란하게 만드는 아이의 어리광이다. 하지만――


"알았어. 바로 총학생회에 문의해 볼게."


이유도 묻지 않고 곧바로 승낙의 대답이 들려왔다.

「괘, 괜찮으신 검까? 그렇게 간단히. 좀 더 이유를 묻거나......」

이치카는 선생님의 대답에 따라 몇 가지 교환 조건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헛수고였던 모양이다.


"학생의 억지를 이뤄주는게 어른의 일이니까. 교섭 같은 건 필요 없어."


알고는 있었지만, 선생님은 이런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걱정할 건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치카. 열중할 수 있는 건 찾았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픈 곳을 찔린 것처럼 가슴이 메인다.

「......아직, 아닌 거 같슴다. 기타도 결국, 완전히 놨고. 죄송합니다.」


"사과할 일이 아니야. 분명 지금은 정의실현부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거네."


선생님의 말에 어쩐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치카는 선배들을 비롯한 정의실현부 멤버들과 지내는 걸 좋아했다. 힘든 나날이지만.


"초조해할 필요 없어. 누군가의 『열중할 수 있는 내일』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지금의 이치카는 멋있으니까."


그 말에, 이치카의 망설임도 콤플렉스도 지금 이 순간에 날아갔다. 악을 처단하는 정의의 마음이 푸른 하늘 아래 다시 점화된다.

「선생님. 저, 지금은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임다. 반드시 트리니티의 평화를――」


"아!"


「에?」


"미안. 따라잡힐 거 같아서 일단 끊을게. 이치카도 힘내!"


「네? 혹시 진짜 상어에게 쫓기고 있는 검까? 뭔가 철퍽철퍽 소리가 들립니다만, 선생님!」


뚝 하는 소리와 함께 통화는 거기서 끊어져 버렸다.


◇◇◇


사태가 어떻게든 수습된 후, 트리니티 외곽 대교에서.

하늘에 뜬 둥근 달은 서쪽으로 기울면서도 아직도 찬란히 빛나고 있다.

온천개발부 일동은 대부분 파괴 활동...... 아니, 온천개발을 끝내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차량에 올라 트리니티를 뒤로한다. 오늘은 아쉽게도 온천이 샘솟지 않았다고들 하지만 모두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그녀들이 행한 파괴행위의 책임 소재에 대해서지만, 총학생회의 허가증이 나와 있는 것, 테러리스트 체포에 공헌한 것, 「다소」 일탈은 했지만 어디까지나 개발활동의 범위 내였던 것 등을 정상참작해 특례 중의 특례로 온천개발부 멤버들은 정식으로 무죄가 되었다. 발생한 수많은 부채는 총학생회 소유가 되는 것 같다.


「카스미씨.」

이치카는 트리니티 자치구를 떠나려는 키누가와 카스미를 불러세웠다.

「어이쿠, 아가씨가 아닌가.」

카스미는 돌아보며 평소의 호방한 태도로 화답했다.

말은 걸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꺼낼까 고민하는 이치카를 보고 카스미 쪽에서 말문을 열었다.

「"정의"는 찾은 거 같구만, 아가씨.」

「아......」

이치카는 왼팔에 찬 완장을 건드린다.

게헨나 자치구 어딘가에서 떨어뜨려 버린 완장. 친절한 누군가가 주워 선도부를 경유해 트리니티에 보내준 덕분에 이치카의 수중에 돌아온 것이었다.

「네. 게헨나에도 양심이...... 친절한 사람이 있군요.」

「글쎄다. 거기에 속셈이 없다고까지는 아무도 보증해 주지는 않지만 말이야.」

변함없이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끊었지만 이치카는 정말로, 아주 조금이지만 게헨나에 존재하는 정의를 믿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배달해 준 우체부, 파업 후 일이 늘어나서 뭔가 미안하게 됐슴다.」

이치카가 문득 전차장이 말했던 게헨나 자치구의 노동쟁의를 떠올리며 말을 꺼내자 카스미도 이어서 언급했다.

「우체국 단식 농성인가. 그건 유쾌했지. 직원이 번갈아가며 배달 피자를 먹던 게 생중계로 나온 장면은 볼만했어. 그 탓에 민중의 지지는 물건너가고 요구는 전부 일축당한 거 같은데 초지일관이란 게 쉬운 일이 아니구만. 하하! 의외로 만마전 폭탄 소동도 그녀들의 보복이었을지도 모르고.」

「복역중인데 의외로 정보통임다......」

「하루아침에 교칙이 바뀌는 게헨나에서는 정보가 항상 전국을 좌우하니까.」

이치카는 카스미가 특별 감옥에서 태연하게 탈옥하고 있는 걸 빈정대듯 말한 거지만, 전해지지 않은 걸까, 일부러 패스한 걸까.


그때 문득 이치카의 사고 속에서 몇 개의 점과 점이 연결되어 하나의 그림이 떠오른다. 이 자리에서 그것을 지적하는 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치카 속에서 생겨난, 악의로 악의를 꿰뚫는 게헨나적 사고를 지금 여기서 형태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치카는 마음을 다진 후 카스미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단언했다.

「카스미씨. 만마전에 폭탄을 보낸 범인은 당신이었죠?」


――정적. 보름달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깐의 틈을 두고 카스미가 입을 열었다.


「호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그 표정에 불안은 추호도 없고 은은하게 미소마저 띠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치카의 사고에 대한 순수한 흥미가 거기에 있었다.


「우선 전제임다만...... 당신은 제가 방문했을 때 이미 탈옥에 성공했었죠. 선도부 본부 부근에서만 일어난 지진 소동은 천공기 같은 걸로 온천개발부 동료들이 특별 감옥 아래 탈출 갱도를 뚫을 때의 진동. 저 테러리스트들과 비슷한 수법이었슴다. 하지만, 그대로 탈옥하지 않고 드나들고 있던 건 히나 부장의 동향을 알아내 그녀의 장기 출장과 겹치는 날을 노려 단번에 도망치기 위해서....... 이려나요? 그래서 밖의 정보에도 정통했고 부원에게도 여러가지 지시도 할 수 있었던 거고.」

「호오. 좋은 상상력이지 않나. 그래서, 폭탄 사건에 어떻게 연결되지?」

카스미는 흥미로운 듯 계속하길 재촉한다. 마치 이치카의 추리를 즐기듯이.

「아까 말투부터가 당신은 탈옥한 후 뉴스 중계를 보고 우체국 파업이 일어났다는 걸 알았잖슴까. 특별 감옥의 면회 기록에는 저 이외의 이름도 없었으니 감옥에서 동료에게 들었다는 가능성은 없고, 하지만 당신 말대로 하루아침에 상황이 바뀌었슴다. 노동자 측이 의회 비리 의혹의 제보를 쥐고 있어 결국 만마전이 꺾이게 됐죠. 범행 시각은 폭탄 사건 전날, 만마전 사람이 우편함을 확인한 후 다음날 아침까지의 사이로 좁혀지는데 그때는 태도로 보아 우체국 국원은 스캔들을 쥐고 있었을 테고 동기가 없슴다. 파업에 감화된 제 3자의 범행 가능성도 아마 없음. 배달 피자 중계 사건으로 분명 돌을 던지는 쪽으로 돌아섰을 테니까.」

카스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그러나 눈썹이 약간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그렇게 되면 범행 성명에도 위화감이 있슴다. 『가축을 두려워하라. 힘을 향한 의지가 지배를 무너뜨린다』. 추상적임다만 파업 탄압에 대한 보복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듯 함다. 사실은 과거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양심적이고 파격적인 재량이 내려졌으니 이제 그런 엄포는 필요없는데도, 우체국 직원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 했는지, 교란의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만, 만마전 사람도 상황과 맞지 않아서 감이 오지 않았슴다. 이는 당신이 특별 감옥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파업의 결말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긴 어긋남이었군요.」

「......인식을 바꾸지. 하지만 몰랐을 뿐이고 범인으로 단정지으면 참을 수 없는걸. 애초에 나는 죄수니까.」

시치미를 떼는 카스미에게 기죽지 않고 이치카는 계속한다.

「아직 더 있슴다. 파업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5일 이상 멈춰 있던 물류가 단번에 움직이기 시작하고, 특히 만마전 같은 큰 조직에는 분명 대량의 짐이나 우편물이 도착할 검다. 폭탄은 그 많은 양의 짐 속에 섞여 버렸고.」

「폭탄이 만마전에 도착하기만 하면 범인은 그걸로 목적 달성이잖나. 혹은 우체국 직원이 아니라면, 의장에게 원한을 품은 만마전 내부의 범행일지도 모른다고.」

카스미가 끼어들지만 이치카는 이내 부정한다.

「폭발하는 장소와 규모가 문제임다. 저는 마코토 의장 앞으로 보낸 짐이 폭발했다고 당신에게 말했슴다. 하지만 그게 의장의 집무실이라고는 하지 않았죠. 사람을 모아 처리하기 위해 대량의 짐은 일단 홀에 모아뒀슴다. 거기서 어쩌다 폭탄이 든 짐도 개봉해서 기폭되어 버린거죠. 의장에게 보낸 짐이었다고 판명된 건 이후 현장 검증에서였슴다. 의장 본인은 그 때 홀에 있지 않아 실제로는 피해를 입지 않았고 폭탄의 위력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았슴다. 설령 집무실에서 폭발했다 하더라도 의회가 통째로 무너질 정도의 폭탄이었을지도 모름다. 하지만 당신은 전화 통화에서 마코토 의장 한 사람이 작은 피해를 입었다고 단정한 것처럼 이야기를 진행시켰슴다.」

만마전에서 본 광경을 기억과 정합성과 허세를 섞어 형태로 만든다. 카스미는 입을 다문 채 평가하듯 눈을 가늘게 뜨고 조용히 이치카를 바라보고 있다. 한 호흡 틈을 두고 이치카는 생각을 남김없이 모두 말로 한다.

「우편함에 폭탄을 설치한 건 당신 자신인지, 지시를 받은 부원일지. 하지만 폭탄을 설치하고 난 뒤로 폭발할 때까지의 틈에 파업은 노동자측의 역전승으로 끝나 버렸슴다. 그 무렵 이미 당신은 특별 감옥에 돌아갔기 때문에 사실을 알 방법은 없고 부원에게 지시하거나 성명문을 변경하는 것도 불가능...... 범행시에는 파업의 결말을 몰랐지만 폭탄이 의장의 수중에서 폭발했다고 확신하며 그 위력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는 인물. 그건 범인 말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임다. 카스미씨. 당신은 자신의 말로 그것을 증명해 버렸죠. 트리니티 건에 생각을 할애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꽤나 나를 높게 사주는 거 같군.」

빈말이 아니었다. 이치카가 급한 전화로 단편적으로만 정보를 전했기 때문에 생겨난 틈이며 보다 상세한 정보를 요구했다면 카스미는 정합성이 있는 알리바이를 그 자리에서 생각해내 교묘하게 말을 만들어냈을 것임을 상상할 수 있다. 그것도 전부 그녀가 트리니티의 사건 해결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이치카는 몰아세우는 일에 심적 부담조차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폭탄 소동을 일으킨 동기는...... 음, 그걸로 만마전의 주의를 끌어 탈옥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서...... 라는 걸까요.」

갑자기 톤 다운. 사실 동기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물음에 카스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이치카를 바라보고 있다.

「음, 정황증거뿐이라 조금 힘들려나요......」

이치카는 침묵을 참지 못하고 얼버무리듯 머리를 긁적인다. 근거가 빈약한 어설픈 사고를 평소의 큰 웃음과 함께 일축당할 예감이 들어 고개를 숙였지만 카스미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구만. 역시 너는 게헨나로 와야했어.」

카스미는 추리에 대해 역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칭찬인지 험담인지 판별할 수 없는 말을 했다. 

「그건 좀 봐줬으면 함다만....... 음, 맞았슴까?」

「글쎄, 상상에 맡기지.」

있어보이는 말투는 얼버무리기 위해서일까.

「무슨 이유에서는 폭탄을 보내는 건 좋지 않슴다. 무슨 피해가 나올지......」

「후추 폭탄으로 다친 사람은 없을 테지만, 뭐. 개봉한 사람의 눈과 코에 막대한 피해를 줬을 거라는 점은 부정하지 않아.」

「후, 후추 폭탄......?」

만마전의 전차장은 도착한 것을 폭탄이라고만 했다. 하긴 그때 홀에는 파괴 흔적 하나 보이지 않았긴 했어도. 후추 하나로 법석을 떠는 의회라 여겨지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게 사실이라면 대외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전차장 나름의 정보 통제였을지도 모른다.

「어라. 만마전도 공표하지 않은 폭탄의 내용물을 알고 있다는 건 정말로 당신이 범인이라는 검까!?」

「어이쿠! 무심코 폭로해버렸구만. 어쩔 수 없지. 이번에는 아가씨의 승리라고 해둘까! 핫핫하!」

승부로 할 생각은 없었고 게헨나에 환영받는 것도 사절이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 이치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곧 온천개발부 부원들이 멀리서 카스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시간이군. 해가 뜨기 전에 철수해볼까. 역시 간수들도 소란을 피울 때가 됐으니 말이야.」

재빨리 등을 돌려 도망갈 자세를 취하는 카스미였지만, 문득 뒤를 돌아 마지막으로 이치카에게 말했다.

「돌아가기 전에 나도 하나 전해 둘까. 우리 부원들에게 오늘은 좋은 추억이 되었을 거야. 기회를 마련해 준 것에 감사하지.」

숨기고 있던 의도는 전해진 듯했다. 그을음투성이에도 당당한 카스미의 웃는 얼굴에 이치카는 부러움과 조금의 분함을 느꼈다.

「......그건, 다행임다. 이쪽은 두번은 사절이지만!」

「그런가! 그럼 다음은 허가가 없어도 가도록 하지. 핫핫하!」

카스미는 부원이 운전하는 트레일러에 올라탔고, 여전히 귀에 거슬리는 큰 웃음소리와 함께 트리니티를 떠났다.


◇◇◇


「카스미 부장~ 어째서 의회에 후추 폭탄을 보내는 거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메구에게 중장비 위에 걸터앉은 카스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트리니티와 게헨나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나면 부원들의 사면을 방패삼아 온천개발부도 출병을 명령받을지도 몰라. 그런 건 재미없으니까 잠시 만마전의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어.」

「전쟁? 그런 건 귀찮고 아무도 안 해. 해도 무시하면 되잖아!」

「맞는 말이야. 누구나 왠지 모르게 그런 도덕관을 갖고 있지. 그래서 위험한 거야. 어느새 누군가가 쌓아놓은 선악이라는 가치관은 결속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기도 쉽지. 지금 트리니티를 공격해야 한다는 흐름이 생기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에~ 무슨 말이야? 어려워서 전혀 모르겠어!」

「즉, 온천이 필요한 거다! 언제 어디서 솟아날지 예측도 할 수 없는 비일상은 틀에 박힌 군중심리를 깨트려 개끗이 씻어주지. 청춘이란 반드시 그래야 하는 법이야.」

「오오~! 확실히 온천이 필요하네!」

메구는 팔짱을 끼고 음음, 하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중장비에서 뛰어내려 메구 옆에 위태롭게 착지한 카스미는 그대로 소리높여 선언한다.

「그 말대로. 그럼, 온천개발 계획을 시작해볼까!」


◇◇◇


트리니티를 위협한 죽음의 탄환 사건은 악명 높은 카이저 그룹의 자본을 가진 전자회사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이전에 관계는 끊어져 있던 모양이라 재차 그룹에 들어가기 위한 선물을 노린 범행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의 일. 성 테레사 종합병원의 한 병실 앞에서 이치카는 안의 상황을 슬쩍 묻는다. 사건으로 중상을 입은 학생이 어제 겨우 눈을 떴다는 소식에 달려왔지만 지금은 불량배들이 면회 중인 듯했다.

쾌유를 축하하는 말. 오열을 흘리며 우는 소리. 병실 안은 다양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검은 제복은 분명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거라고 생각해 이치카는 문병용 거베라 보존화를 간호사에게 맡기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난다.


다음으로 이치카는 트리니티 학생 기숙사의 한 방을 방문했다.

「이치카 선배......」

「야호~ 상태는 어떰까? 좋은 소식이 있슴다.」

이치카는 사건으로 불량학생을 쏴버린 이후 마음에 상처를 입어 울적해진 후배에게 자주 병문안을 다니고 있었다. 직접 대화하지 못하는 날도 많았지만 오늘은 조금 안색이 좋아 보여 방으로 초대해 주었다.

「그 아이, 눈을 떴슴다! 몇 주만 더 있으면 퇴원할 수 있을 거 같슴다.」

「네. 하스미 선배에게도 연락을 받았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진심으로 안도한 목소리지만 표정은 아직도 딱딱하고 애처롭다. 그 학생이 무사했다고 해도 마음의 상처가 금방 아물지는 않겠지.

그런 후 선물용 도넛을 둘이서 먹으며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나눴다. TV나 책 이야기. 음악 이야기. 수업 이야기. 이치카는 왠지 모르게 정의실현부에 대한 이야기는 피했지만 후배 쪽에서 먼저 꺼냈다.

「저, 정의실현부로 돌아가고 싶어요.」

「정말임까! 기쁘네요! 하지만......」

용기를 내어 입 밖으로 꺼냈을 말. 그러나 손에도 목소리에도 떨림이 남아 있다.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간 공포가 아직도 거기에 짙게 배어 있는 듯하다. 이치카는 떨리는 후배의 손을 잡고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무리하는 거 아님까? 초조해하지말고 푹 쉬는 것도 중요함다.」

후배는 머리를 흔들고 이치카의 손을 강하게 되잡았다.

「저, 이치카 선배처럼 되고 싶어요. 강하고 멋있고 상냥한. 그런, 정의의 편이......」

여전히 고개 숙인 채, 조금 눈물이 섞였지만 강하고 명료한 말이었다. 그 올곧음에 이치카도 조금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은, 잘 알겠슴다. 기대하고 있겠슴다.」

소극적이지만, 후배에게 조금 웃는 얼굴이 돌아왔다. 안도한 순간 스마트폰의 진동이 착신을 알린다. 이치카는 후배에게 한마디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는다.


「......아아, 또임까?」

트리니티 시가지에서 일어난 사건 알림이었다. 화과자 가게 앞에서 알갱이 팥소파와 으깬 팥소파가 다퉈 총격전이 섞인 싸움이 된 것 같다. 기댈만한 선배인 츠루기는 샬레 당번으로 부재. 하스미는 디저트 가게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모습이 목격된 이후 연락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다이어트 중이라고 말했던 거 같지만...... 그래서 달리 지휘할 사람이 없어 이치카에게 출동 요청이 돌아왔다는 얘기다.

사건으로부터 시간이 흘러 트리니티에는 완전히 일상이 돌아와 있었다. 즉 디저트로, 우정으로, 청춘으로, 서로 쏘아댄다.

요청에 응해 임무에 향하는 이치카를, 후배는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푸른 하늘 아래, 장비를 갖추고 대열을 이루는 정의실현부 학생들. 소녀들은 정의를 지키고 관철하기 위해 오늘도 청춘을 동분서주한다.


「정의실현부, 출동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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