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렇게 힘을 낼 수 있는건가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작은 공간 안에 퍼진다.

그러나 돌아오는것은 대답도 메아리도 아닌 침묵 뿐이었다.

그렇든 말든, 흐릿하게 보이는 남자는 계속 움직인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진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에게 등을 찔린다.

그래도 일어선다.

이것은 용사라 불렸던 누군가의 기억.

어느샌가 기억은 마침표가 찍히고, 작은 구슬로 변해 내 손에 쥐어진다.

내쉬었던 숨과 함께 들이삼키니 쓴 맛이 난다.

이제 내 앞에 남아있는 것은 그의 시체 한 구 뿐.

이미 잿더미가 되어버린 마왕의 성에서 쓸쓸하게 누워있다.

성의 주인과 주민은 모두 이 남자에게 썰려 가루가 되어버렸고, 유일하게 인간인 그만이 시체라는 작은 기록을 남겼다.

혼과 기억도 먹었겠다, 시체는 이제 볼일이 없으니 내비두고 성의 바깥으로 유유히 걸어나간다.

나는 영혼을 먹는 유령이다.

거울에는 비춰지지 않고, 검과 마법은 투과해나가며, 신성한 빛은 나를 비추지 못한다.

그러나 나 또한 남을 만질 수 없기에, 이런식으로 누군가의 몸을 빌려 세상을 순례하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대체 뭘 하다가 이런 꼴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몸의 주인이 세상 밖을 알고싶었다는것만은 안다.

몸을 준 은혜도 있으니 앞으로 90년정도는 그 소원을 이뤄줄 예정이다.

혹시 모른다. 이런식으로 영혼을 먹고다니다 보면 나에게 특별한 변화가 생길지.

나랑 똑같은 존재를 만날지는 모르는것 아니겠는가.

"거기 아가씨? 여기서 혼자 뭐하는지··· 잠깐 물어봐도 될까?"

누군가 말을 걸어오기에 살짝 고개를 돌려본다.

은빛 갑옷을 두른 기사, 를 필두로 3명쯤 되보이는 모험가들로 보인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이들은 모험가니까, 이들이랑 같이 여행을 다니면 무언가 지금까지랑은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난 이야기를 좋아한다. 생생한 이야기일 수록 더욱.

마침 용사의 여정을 따라가는 일도 끝나서 할만한 일도 없다.

결정했다. 이번에는 나도 누군가의 모험을 따라가보자.

충동적이고 뜬금없다 생각해도 할말은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남는게 시간이고 인생이다.

10년동안 세계를 돌아다녔기에 지식도 있다.

식사도 물로 충분하며 체력이란 개념은 없다.

배설도 소변을 제외하면 침과 땀조차 나지 않으니 따라다닌다 해도 이들에게 폐를 끼칠 일도 없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해서 죄송하지만···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시나요? 깨어나보니 여기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