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과 에고에 관한 담론

팝콘기계인간 · 2021.06.13 23:37:27

아침에는 프로필 풀린 걸로 후드려 맞고 오후에는 공식 단편으로 존나 후드려 맞은 나머지 손이 근질거려서 쓰는 글

당연하지만 개인의 주관이 많이 반영된 글이므로 재미로만 봐주셈

상당히 횡설수설함 김지훈한테 대가리 박살나버려서 그럼 김지훈 사랑해

롤랑 에고 발현 할 법도 한데 추가 '해줘'

검침 - 잔향 2차가 추가되고 나서부터 이 이야기는 롭갤에서 제법 꾸준히 나왔음

뒤틀린 아르갈리아 vs 에고 발현 롤랑 생각만 해도 가슴이 존나 웅장해지잖아 ㄹㅇ

스토리 상으로도 앤젤라를 용서하고 굴레를 끊어내었으니 개연성도 매우 적절하게 확보된 것처럼 보이고

그런데도 어떠한 에고 발현의 기미도 없이 엔딩이 난 이유는 뭘까?

4월 9일부터 정말 한참동안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이거같음

아무리 정신적으로 성장했더라도 안젤리카의 부재로 인해 비어버린 마음 한 켠을 채울 수는 없어서

그게 에고 발현과 무슨 상관이죠? 라는 생각이 들 것

에고 발현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은 크게 두 가지

아주 강렬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신념은 흔들리지 않음

그리고 그 신념은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나, 결론적으로 그 자신과 주변의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함

이렇게 말하면 참 두리뭉실하니 직접적으로 에고 발현자인 칼리와 샤오의 케이스를 가져와서 생각해보자

칼리

애초에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검을 들었고 그렇게 지켜낸 결과 칼리 본인이 바랐던 세상이 변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음

이 선택은 스스로 원해서 내린, 오롯이 이기적인 선택이지만 그렇기에 주변인과 도시의 모두가 빛을 받았으니 한없이 이타적인 선택이기도 함

샤오

남편을 구하기 위해 도서관에 왔고, 중간에 잠시 신념이 흔들리며 복수심에 젖은 나머지 뒤틀릴 뻔 했지만 충신 미리스좌 덕에 마음을 다잡고 에고를 발현함

로웰을 위해서 1과 부장 자리도 때려치고, 부하들이 도서관에 따라와주길 바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등 상당히 이기적인 선택을 했음

하지만 부하들 또한 샤오가 로웰의 책을 되찾길 '원해서' 어떠한 강요도 없이 본인의 의지로 따라와 죽음을 불사하고 샤오를 도움

샤오의 이기적인 소망은 동시에 다른 누군가의 소망이 되었고, 그렇기에 그 소망을 위해 나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의 소망을 이루는 행위이기도 하니 이타적인 성격을 띄게 됨

서론이 존나 길었는데 아무튼 에고 발현자의 특징들에 롤랑을 갖다대고 생각해보자

롤랑의 신념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롤랑은 알다시피 회피-의존적인 성향이 상당히 강함

가면, 안젤리카, 복수... 여러가지에 기대어 스스로 판단하기를 유보하고 끊임없이 도망치길 반복하는 인생을 살아왔지

그리고 엔딩 시점에서 이 성향은 좀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사라지진 않았음

대충 의존에서 깊은 의지 정도로 바뀐 느낌

물론 이번의 의지 대상은 앤젤라이고

잔향 2차 접대 전, 후 스토리에서 롤랑은 '앤젤라가 제멋대로 가버린 길을 따라가려' 한다고, '나를 위해 하고 싶은 거 하나 정도는' 해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함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점

앤젤라가 제멋대로 가버린 길 = 도시의 굴레를 끊어내는 것

롤랑이 앤젤라를 용서하는 선택지는, 앤젤라가 '먼저 굴레를 끊어냈기에' 나타난 선택지임

바꿔 말하면 롤랑이 먼저 앤젤라를 용서하는 일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거지

검침 접대 전에도 롤랑은 네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나 또한 다른 길을 걷지 않았을까~ 같은 말을 함

심지어 앤젤라가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겠다 선언하고도 굴레는 그리 쉽게 끊을 수 없다며,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들은 뭐가 되냐는 양 반쯤 절규하면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

혼자서는 '절대로' 먼저 굴레를 끊어낼 수 없는 거임 롤랑은

전적으로 앤젤라의 판단과 선택에 의존하고 있음

나를 위해 하고 싶은 것? 이것도 구체적인 신념과는 거리가 먼 말임

말을 좀 빙빙 돌려서 했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롤랑은 본인만의 뚜렷한 신념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임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오롯이 본인의 의지로 앤젤라를 빛의 기둥에서 꺼내고, 책을 써보고 싶었다며 의사표명을 하기야 했지만 이 선택들은 에고 발현의 실마리가 되기에는 너무 단편적임

아 이거 설명이 어렵네

신념이라고 부르기엔 단발적, 단편적인 데다 알맹이가 없음 롤랑이라는 인간의 핵심 요소로 자리하기엔 많이 부족함

아무튼 그래서 1차적으로 에고 발현을 할 건덕지가 없음

안젤리카 얘기는 왜 나왔냐? 이게 이제부터 말할 내용

롤랑이 구체적인 신념을 갖지 못한 이유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아마도 "안젤리카의 부재"라고 생각함

롤랑의 험난한 인생에서 본인피셜 고민 한 점 없이 행복하기만 했던 유일한 시기가 잠시지만 안젤리카와 가정을 꾸렸던 시기

세계가 무너졌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롤랑의 마음이 크게 망가지게 된 사건도 안젤리카의 죽음

도시에 깽판을 치고 괴로워 하면서도 끝내 가장 친한 친구마저 제 손으로 죽이게 만든 복수심이 생긴 원인 또한 안젤리카의 죽음

그만큼 롤랑이라는 사람에게 있어 안젤리카의 비중은 엄청난데... 과연 몇 달 동안 도서관에서 미덕치료 받은 걸로 상실의 고통이 쉽게 아물었을까?

다시 말하는 내용이지만 롤랑은 의존하는 성향이 강했고, 이 의존 대상은 하나같이 롤랑의 인격과 행동 양상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이었음

모든 행동과 판단의 근거였던 사람을 잃어버렸으니 눈 먼 분노에 잠겨 미친 놈처럼 사람을 죽이며 다니고, 복수의 허무함을 알지만 끝끝내 친한 친구에게 칼을 겨누게 된 것도 롤랑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었을까

복수를 멈춰버리면 자신의 소중했던 그때를 잊고 놓아버리는 것만 같으니깐

물론 복수를 포기했으니 아주 천천히 상처가 아물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엔딩 시점에서는 안젤리카 이상의 삶의 동기니, 신념이니 하는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거야

말을 너무 장황하게 한 듯

아무튼 엔딩 시퀀스에서 그 모든 것을 딛고 에고 발현을 하기엔 롤랑의 마음에 난 상처가 너무나도 크고 덜 아물었다고 생각함

그래서 뭐... 롤랑의 베이스 되는 성격과 행적을 생각해 보면 복수 포기도 ㄹㅇ 인간 찬가급의 어려운 일이었으니 에고 발현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나? 싶어

쓰면서 느낀 거지만 롤랑이 도시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 중 하나인 특색의 자리에 앉아있다는 게 존나 아이러니임

라오루에서 나온 인간들 중 손에 꼽게 의존성이 강하고 무른 사람인데 말야

ㅁㄹ

개똥글 읽어주셔서 감사

나 근데 뇌절 한 번만 더 해도 됨? 아르갈리아와 뒤틀림에 관한 담론도 쓰고 싶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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