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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산] 큐러어블 페인 번역 - 3&4

하나비나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6.06 23:59:00
조회 762 추천 18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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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층의 주거구역 울버스는 전이문 광장을 중심으로 사분할된 구조로 되어있는데, 남쪽 구역은 상점이 즐비한 시장, 동쪽 구역은 주택가, 서쪽 구역은 낙농가, 북쪽 구역은 지저분한 뒷골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술집은 남쪽 시장에 대여섯 채, 전이문 광장과 동쪽 광장에도 한 채씩 있었을 텐데 지금은 어느 쪽도 만석일 것이다. 미토는 중앙부를 피해 울버스 거리를 가로질러 남쪽 구역에서 북쪽 뒷골목으로 이동했다.


 베타 시절의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며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나아갔다. 몇 번 길을 잘못 들어선 끝에 겨우 목적지를 발견하고 한숨을 내쉬며 윈도우를 열었다.


 애슐리에게 가게 좌표와 간단한 길 안내를 보내고 처마 밑에서 팔짱을 끼고 대기 태세를 취했다.


 30분은 걸릴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불과 5분 뒤——.


 "여어, 기다렸지."


 조금 허스키한 메조소프라노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에 미토는 고개를 들었다. 순간, 정면에서 몸집이 작은 사람이 달려 들어와 반사적으로 양팔로 받아냈다.


 "1층 클리어 축하해!"


 이번 목소리는 달콤하고 맑은 소프라노. 미토를 꼭 껴안으며 외친 것은 한쪽만 땋아서 묶은 미디엄 쇼트 형태 머리에 깃털 장식이 달린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자아이였다.


 기습적인 포옹에 잠시 주춤하다가 미토는 어색하게 여자아이의 등을 두드렸다.


 "고마워, 유나. ……레이 씨도."


 그렇게 속삭이자, 여자아이는 포옹을 풀고 물러서서 동행자 옆에 나란히 섰다.


 시크한 베레모를 쓴 키가 큰 여성이 미토에게 메시지를 보낸 애슐리다. 두 사람을 만난 것은 미토가 아스나를 버리고 도망쳐 버린 11월 26일 밤. 그 후로 아직 8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꽤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애슐리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내밀었고 미토는 그 손을 가볍게 잡았다.


 "나도 축하하고 싶지만 건배할 때까지 아껴둘게. 여기가 미토가 추천하는 가게야?"


 손을 떼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사람이 오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선택했으니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특히 음료의 맛과 종류는 레이젤에 있는 그 가게를 절대 따라올 수 없을 거예요."


 "아니아니, 맛을 결정하는 건 맛뿐만이 아니야."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는 애슐리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토의 등을 유나가 힘껏 밀었다.


 "레이 씨, 미토 씨, 얘기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자. 나, 목이 칼칼해."


 "응."


 고개를 끄덕이며 미토는 색이 바랜 나무문을 밀어서 열었다.


 안쪽이 길쭉한 가게 안은 오른쪽은 돌로 쌓은 벽, 왼쪽은 카운터로 되어 있고 테이블석은 없었다. 가죽으로 된 스툴이 6개, 한 줄로 늘어선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안쪽의 카운터가 왼쪽으로 90도 꺾여 있고, 그 뒤에 일곱 번째 의자가 있었다.


 미토는 가게 안쪽까지 걸어가면서 분명 어른의 세계에서는 입구에서 가장 떨어진 자리가 상석이라는 매너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갑인 유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분명히 연상인 애슐리에게 안쪽 자리를 권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미토의 망설임을 눈치챘는지, 애슐리가 먼저 말했다.


 "미토, 그냥 그대로 안쪽에 앉아. 윳짱은 거기에 앉을 거야?"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인 유나가 여섯 번째 스툴에 빠르게 자리를 잡았기에 미토도 하는 수 없이 카운터 모퉁이를 돌아 일곱 번째 의자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애슐리가 유나와 나란히 앉았을 때, 카운터 안쪽에서 알아듣기 힘든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옵셔."


 미토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천장의 랜턴은 객석 쪽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을 뿐, 카운터 내부는 거의 암흑에 가까웠다. 간신히 점주로 보이는 사람의 그림자를 구별할 수 있었지만, 나이도 성별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카운터에 메뉴판이 마련되어 있으니 적어도 술집임은 확실했다. 미토는 얇은 판자에 양피지를 붙인 메뉴판을 들고 유나에게 건네려 했지만 양손으로 가로막혔다.


 "오늘은 미토를 위한 축제야! 나랑 레이 씨가 대접할 테니 뭐든지 주문해!"


 "아……, 그렇구나.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메뉴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알파벳으로 쓰인 음료 종류는 레이젤 마을에 숨어 있는 바와 비교하면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데다 그 대부분이 미토가 알지 못하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첫 줄에 있는 【Brown Ale】은 다른 가게에서 한 번 주문한 적이 있다.


 "……브라운 에일 한 잔 주세요."


 카운터 안쪽의 어둠을 향해 주문하자 "예이."하는 무뚝뚝한 대답과 함께 콸콸 액체를 붓는 소리가 이어졌다.


 몇 초 후, 쿵 하고 무거운 소리를 내며 카운터에 놓인 것은 유리로 만든 큼직한 술잔이었다. 갈색의 에일주가 가득 담겨 있고, 표면은 희고 흐렸다.


 갈증이 되살아나서 침을 꿀꺽꿀꺽 삼키게 된다. 이를 본 건지 애슐리와 유나도 한목소리로 "같은 걸로."하고 주문했다.


 다시 한번 "예이."라는 대답에 이어 새로운 술잔 두 개가 등장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았다.


 손바닥을 얼얼하게 저리게 하는 냉기를 느끼며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어……, 오늘은 초대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두 사람을 다시 만나서 정말로 기뻐."


 "나도 그래! 미토, 다시 한번 1층 플로어 보스 격파 축하해!"


 유나에 이어서 애슐리도 입을 열었다.


 "축하해, 미토. 너라면 해낼 줄 알았어."


 ——나, 사실은 죽기 위해서 보스전에 참가한 거야.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미토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레이드에 참가한 모두가 노력한 결과니까……. 그래도 고마워."


 다시 한번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고 건배를 위해 술잔을 내밀려다 문득 생각이 났다. 레이젤 마을의 바에서 애슐리가 "이런 바에서는 유리잔을 부딪치는 건배는 하지 않아."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었다.


 "저기……, 애슐리 씨. 술잔이라면 부딪쳐도 되나요?"


 일단 확인하자 애슐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괜찮지."


 "그럼……."


 쨍그랑 소리를 내며 두 사람과 술잔을 부딪치고 미토는 말했다.


 "재회를 축하하며, 건배!"


 "건배."


 외치고 나서 술잔을 입으로 옮겼다. 잔을 기울이자 시릴 정도로 차가운 액체가 흘러들어와 건조한 목에 직격했다.


 탄산의 자극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상관하지 않고 두 모금, 세 모금 계속 마셨다. 더 이상 무리야! 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단숨에 들이마시고 나서야 겨우 술잔의 각도를 되돌렸다.


 자극과 차가움이 사라지자 대신 상큼한 쓴맛과 신맛, 풍부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초등학생 시절, 어떤 축하 자리에서 어른이 마시는 맥주를 몰래 핥았을 때 다시는 안 먹을 테다, 라고 생각했고 아인크라드에서 아스나와 함께 에일주를 시도했을 때도 단순히 쓴맛과 신맛이 나는 액체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8일 전에 레이젤에 있는 바에서 마신 바이올렛 피즈라는 칵테일이 깜짝 놀랄 만큼 맛있어서 그 이후로 하루 공략을 마치고 도시나 마을에 돌아오면 술집에서 두석 잔씩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언제부턴가 에일주도 맛있다고 느끼게 되었는데, 좋은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머리 한구석에서 떠올리며 숨을 깊게 내뱉고 70퍼센트 정도 줄어든 잔을 내려놓았다. 순간 왼쪽에서 작은 박수가 들려왔다.


 "미토 씨, 굉~장해! 원샷하는 줄 알았어."


 유나에게 예상치 못한 칭찬을 들어 고개를 움츠리며 대답했다.


 "목이 마른 나머지……. 너도 그렇게 말하면서 많이 마셨잖아."


 "그치만, 이 에일 맛있는걸. 게다가 엄청 시원하고."


 "확실히 차가운 걸 마실 수 있는 가게는 드물지. 무슨 구조일까……."


 미토와 유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과 동시에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확인해 보니 애슐리가 술잔을 카운터에 다시 내려놓는 소리였다. 아낌없이 담겨있던 에일은 흰 거품으로 된 고리만 남아있을 뿐.


 미토와 유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나서 함께 짝짝 하고 양손을 쳤다.




 "그나저나, 이런 좋은 가게를 잘도 알아냈네."


 몇 분 후.


 첫 잔째 에일을 다 마신 미토에게 애슐리가 그렇게 말을 걸었다.


 미토는 일단 벌리려던 입을 다시 닫았다. 《좋은 가게》인지 아닌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가게 이름도 모르는 이 가게를 알게 된 것은 베타테스트를 통해서인데, 애슐리와 유나에게는 아직 자신이 베타 경험자라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미토에게 잘해주는 두 사람에게 더 이상 숨기는 것은 불성실한 행동일 것이다. 보스전이 끝난 직후, 레이드 멤버들로부터 뿜어져 나온 베타테스터에 대한 반감을 홀로 짊어지고 떠나는 키리토의 모습을 보고 나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심을 한 미토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나, SAO 베타테스트에 참가했었어. 이 가게는 테스트 중에 찾은 거고."


 "우와, 슈퍼 울트라 럭키네!"


 하고 유나가 곧바로 외쳤다.


 "베타테스트는 천 명 한정이었지?!? 배율도 엄청났잖아!"


 "응, 뭐……,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백배 이하는 아니었던 것 같아."


 "음~, 분명 더 높을 거라고 보는데. 그렇구나……. 그래서 미토 씨가 레이젤 마을을 알고 있었구나."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던 유나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미소를 지우고 긴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아……, 미안해, 무신경한 표현이었지……."


 "어, 뭐, 뭐가……?"


 "그게, 베타테스트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정식 서비스에도 참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


 "……아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스나를 SAO에 권유한 일이라면 셀 수 없을 만큼 후회했다. 그러나 이 세계가 로그아웃할 수 없는 데스 게임으로 변해버린 후에도 베타테스트에 응모했던 것을 후회하거나 당첨된 것을 불운이라고 느낀 기억은 없다……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왜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미토는 말했다.


 "음~, 글쎄. 베타에 떨어졌다고 해도 서비스 개시 첫날부터 플레이했을 것 같기도 해. 너브기어와 소프트웨어를 구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렇구나……. 그러면 베타테스트에 당첨된 건 역시 럭키였을지도 몰라. 그래도 재미있었지?"


 아스나의 눈동자와 흡사한 연갈색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미토는 빨려 들어갈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재밌었어. 나는 이 게임을 계속 기다려 왔구나 싶었어. 매일 정신없이 다이브하는 사이에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났지……."


 그래. 아마 그게 후회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 재미를 아스나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식 서비스가 시작된 지 불과 4시간 만에 모든 것이 뒤집히고 말았다. 환희는 두려움으로, 흥분은 초조함으로, 희망은 절망으로.


 어쩌면 "아스나를 지킨다."는 말에 매달린 것은 미토 쪽이었을 지도 모른다. 약속을 계속 지킴으로써 아스나를 SAO에 끌어들인 꺼림칙함을 멀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 약속마저도…….


 "미토, 두 잔째 주문하지 않을래?"


 차분한 애슐리의 목소리에 미토는 어느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네, 주문할게요."


 유나가 메뉴판을 건네줘서 술 이름을 위에서부터 확인했다.


 레이젤 마을에 있는 바에서 애슐리는 "내가 아는 한 아인크라드에서 유일하게 현실세계와 같은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가게야."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 가게에서 미토가 주문한 바이올렛 피즈나 유나가 마셨던 문라이트 쿨러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에 다른 종류의 에일주와 과실주나 증류주로 추정되는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아래로 내려갈수록 독한 술이 되는 것 같았다. 물론 강하다고 해서 그런 맛이 날 뿐이지, 진짜 몸에 알코올이 도는 것은 아니지만.


 "음……, 그럼, 이 엘븐 글라스 와인으로……."


 말하면서 왼쪽을 보니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카운터 너머로 "석 잔 주세요."라고 주문했다. 메뉴판을 다시 목제 스탠드에 돌려놓고 나서 '어라…….'하고 눈썹을 치켜세운다. 【Elven Grass Wine】의 Grass를 미토는 와인잔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했는데, 그쪽은 Glass가 아니었나. Grass라면——풀 와인? 풀?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예이."라는 목소리와 함께 퐁 하고 코르크 마개를 따는 소리가 이어졌다.


 몇 초 후,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손이 세 개의 잔을 차례로 내려놓았다.


 길쭉한 유리잔 속에서 흔들리는 것은 연한 녹색 액체. 역시 아무리 봐도 포도로 만든 평범한 와인은 아니었다. 유나와 애슐리도 유리잔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는 미토가 책임지고 맛을 봐야 한다. 비록 내가 싫어하는 녹즙 풍미라도 내뿜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유리잔을 들어 올렸다. 먼저 코 밑에서 가볍게 흔들어 보니 확실히 풀 같은 향이 났지만, 신선한 꽃과 향초를 연상시키는 달콤함과 상쾌함이 있어 역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을 먹고 조금만 입에 담았다. 아까 마셨던 에일만큼은 아니지만, 잘 식은 액체가 혀 위를 굴러 목구멍으로 미끄러져 넘어갔다. 부드러운 산미와 고급스러운 단맛이 은은하게 퍼지며 상쾌한 허브향이 코끝으로 느껴졌다.


 "아……, 맛있다."


 미토가 중얼거리자 유나와 애슐리도 유리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숨소리와 표정으로 동의를 표했다.


 베타테스트에서 이 가게를 찾은 것은 어떤 퀘스트의 중계 포인트로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주인에게 술 한 병을 맡겼을 뿐이고 스툴에 앉지도 않았지만 가게 모습이 신기하게 기억에 남아서 다시 한번 가볼까 하다가 테스트가 끝나버렸다.


 레이젤의 숨겨진 바를 알고 있는 애슐리와 유나를 이 가게에 데려온 것은 약간 도박이었지만, 아무래도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안심이 되자마자 아스나에게도 이 와인의 맛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면서 미토는 가만히 유리잔 속 작은 수면을 바라보았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한 게 불과 몇십 분 전인데, 벌써 외로움을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이건 외로움이 아니라 집착이다. 보호의 대상인 아스나를 자신의 손안에 두고 싶다는 자아가 드러난 욕망. 아스나는 미토에게 보호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해졌는데 말이다.


 "……저기, 유나."


 양손으로 유리잔의 다리를 감싼 채 미토가 속삭였다.


 "왜 그래, 미토 씨?"


 "레이젤 마을에서, 외각에서 떨어질 뻔했을 때 말해줬잖아. 내가 버린 친구는 절대로 살아있다고. 믿어야만 한다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유나에게 작게 미소를 짓는다.


 "친구……, 아스나는 살아있었어. 내가 포기한 네펜트 무리의 포위를 HP가 1도트 남은 상태로 뚫고 나왔어. 그 후, 일주일 만에 플로어 보스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고……아스나가 없었다면 보스를 쓰러뜨리지 못했을 거야."


 "역시!"


 순간 유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뻗어 미토의 왼손에 포갰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미토 씨."


 "응. 나도 고맙다고 해야지……, 유나, 애슐리 씨, 그때 나를 끌어올려 줘서 고마워. 거기서 죽었다면 아스나와 재회할 수 없었을 거야."


 "아냐아냐, 인사는 필요 없어. 그때 미토가 외곽에서 뛰어내린 건 나와 유짱, 그리고 레이젤 주민을 구하기 위해서였잖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안전한 방법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


 "두 사람 다 끝이 없어!"


 유나는 질린다는 듯이 외치며 얼마 남지 않은 풀 와인의 유리잔을 들어 올렸다.


 "자, 한 번 더 건배하자! 아스나 씨가 무사한 것과 우리가 그때 살아남은 것을 기념해서."


 미토는 애슐리와 얼굴을 마주 보며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유리잔의 다리를 잡고 이번에는 매너에 따라 부딪치지 않고 얼굴 옆으로 들어 올린다. "건배."를 외친 후, 3분의 1정도 남은 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향이 좋은 액체가 가슴속의 단단하고 뾰족한 덩어리를 감싸며 통증을 조금이나마 덜어줬다.


 아스나를 잊을 수도 없고, 잊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SAO가 클리어되거나 이 세계에서 힘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후회와 적막감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비워진 잔을 카운터에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며 미토는 다시 한번 왼쪽 대각선 앞쪽을 바라보았다.


 "저기 유나, 네 이야기도 들려줘. 노래 연습은 계속하고 있어?"


 "당연하지."


 유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표정이 흐려졌다.


 "하지만 레이젤을 대신할 연습 장소를 좀처럼 찾지 못해서……. 지금은 시작도시의 구석진 곳에서 하고 있지만 역시 사람이 몰리게 되더라……."


 "그건 어쩔 수 없지. 나도 거리를 걷다가 네 노래가 들리면 반드시 찾아갈 거야."


 "그렇게 말해 주는 건 기쁘지만……."


 복잡하게 웃는다.


 8일 전에 레이젤 마을에서 만난 유나는 미토가 아는 한, 아인크라드에서 《음유시인》을 지향하는 유일한 플레이어다. 류트 실력도 그렇지만 그녀의 노랫소리는 힘과 섬세함을 겸비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연습 장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실내에서 노래를 부르면 구경꾼을 불러들이는 일은 없지만, 반향의 상태가 현실세계와 미묘하게 달라서 그게 기분이 나쁘다는 것 같다. 어렵게 찾은 곳이 대부분의 플레이어에게 알려지지 않은 권외 마을인 레이젤이었는데, 8일 전에 사건이 일어났다. 미토가 유나와 애슐리를 만난 바로 그날, 누군가가 레이젤 주변 필드에 출몰하는 몬스터를 송두리째 긁어모아 마을로 유도한 것이다.


 세 사람과 바 마스터의 분투로 마을 NPC를 포함해 사망자가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누가 무엇을 위해 그런 짓을 했는지는 지금도 불분명한 상태다. 누군가의 나쁜 장난이었을까, 아니면 실험이었을까——아니면, 명백한 살의를 가지고 유나와 애슐리를 노린 것일까.


 만약 세 번째라면 권외로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 미토와 애슐리의 설득으로 유나는 레이젤에서 연습하는 것을 포기했지만, 아직 대체할 장소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저기, 미토 씨는 베타테스터 출신이잖아, 안전하면서 사람이 오지 않는 곳 혹시 몰라?"


 유나가 태평한 어조로 묻자 미토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알았다면 더 빨리 가르쳐 줬지. 2층에는 울버스 말고도 범죄 방지 코드 권내에 있는 도시나 마을이 몇 군데 있는데, 거기에 가려면 결국 권외를 한참 걸어야 하니까……. 가기만 하는 거라면 기꺼이 호위해 주겠지만, 유나는 매일 시작도시로 돌아가야 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매일 데려다주는 건 무리일 것 같아……."


 "당연히 공략집단의 사람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는 없지!"


 유나가 크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더 이상 공략집단에 참가하지 않을 거야.


 라는 말을 미토는 다시 한번 삼켰다. 이유를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색한 침묵을 깨뜨린 것은 애슐리였다.


 "윳짱, 네 소꿉친구 군은 아직 생각을 바꿀 기색이 없니?"


 옅은 미소를 머금은 물음에 유나는 다시 얼굴을 붕붕 좌우로 움직였다.


 "없어없어! 노 군은 옛날부터 한 번 마음 먹으면 고집이 무지 셌거든. 지금 상태라면 정말로 무기 스킬 숙련도가 150이 될 때까지 권외로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그렇구나……. 그건 그것대로 훌륭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면 시작도시나 이 울버스의 어딘가에서 연습 장소를 찾을 필요가 있겠네……."


 "시작도시는 이제 무리야. 구석구석 탐험하고 여기라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한 곳도 10분 정도 노래하니 사람들이 와 버렸는걸."


 한숨을 쉬는 유나에게 미토는 망설이며 물었다.


 "저기……, 차라리 이제 그것도 포함해서 연습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언젠가는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를 거잖아?"


 "음, 하긴, 그렇긴 한데……."


 유나는 유리잔을 들어 올린 후, 잔이 비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메뉴판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스스로 보지는 않고 미토에게 건네주었다.


 "미토 씨, 한 잔 더 어때?"


 "괜찮지만……, 직접 안 골라?"


 "여기까지 왔으니 오늘은 전부 미토 씨의 초이스에 맡기려고 해."


 "……이제 와서지만, 미토로 괜찮아."


 그렇게 대답하면서 미토는 메뉴판을 받았다.


 브라운 에일은 위쪽, 글라스 와인은 중간쯤에 있었기에 세 번째 술은 아래쪽에서 고르기로 했다. 글자로만 봐서는 좀처럼 꽂히지 않는 상품 목록을 내려보다가 마지막 줄에 눈길이 끌렸다.


 【Urbus Whiskey Cream】……첫 번째 단어는 2층의 주거구역인 울버스일 것이다. 두 번째는 위스키, 세 번째는 크림, 어느 쪽도 틀림없이 읽을 수 있는 영어단어지만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으니 상상하기 힘들었다. 설마 위스키에 크림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 테니, 크림 풍미가 나는 위스키……일까.


 풀 와인보다 더 모험적인 느낌이 들지만, 전체 메뉴 중 유일하게 도시 이름을 딴 술이다. 다시 올 기회가 있을지 어쩔지도 모르겠고,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에 미토는 고개를 들었다.


 "……울버스 위스키 크림……을 석 잔 주세요."


 "예이."


 이번에는 뽀득뽀득 하고 스크루 마개를 비트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콜콜콜……하고 무게감 있는 주출음.


 그로부터 수십 초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미토 일행 앞에 높인 것은 작은 텀블러였다. 담겨 있는 것은 마치 카페오레처럼 투명감이 없는 연갈색 액체, 게다가 그 위에 새하얀 휘핑크림이 듬뿍 얹혀 있다. 아무래도 미토가 설마 하고 치운 상상이 정답이었다——그렇기는커녕 세 배나 더 크리미했다.


 "와아, 맛있어 보인다……! 보기에는……."


 환호성에 최소 음량으로 한마디 덧붙인 유나가 텀블러를 들어 올렸다. 그대로 미토를 바라보는 것은 이번에도 건배를 할 생각이기 때문일까.


 미토도 텀블러를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첫 번째 건배는 세 사람의 재회를, 두 번째 건배는 아스나의 생존을 축하하는 것이었으니 세 번째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만, 자신의 앞으로의 모습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공략집단에서 물러난 뒤 무엇을 해야 할지, 심지어 이 가게를 나와서 어디로 갈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그럼……, 유나가 아인크라드 최고의 가수가 되고, 애슐리 씨가 아인크라드 최고의 재봉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건배, 라고 말을 이으려 했는데 애슐리가 한발 먼저 끼어들었다.


 "미토는? 아인크라드 최고의 검사가 되지 않을 거야?"


 "저는…………."


 순간 말문이 막힌 미토는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닫고 애슐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혹시 애슐리 씨도 베타테스터 출신인가요?"


 "……왜 그렇게 생각해?"


 "그 《검사》라는 호칭은 다른 게임에서는 보통 검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플레이어만 가리키는데, SAO의 베타테스트에서는 전투직이라면 도끼술사도, 창술사도, 겸사도 모두 검사라고 불렀어요. 정식 서비스에서는 아직 많이 퍼지지 않았으니 혹시나 해서요."


 미토가 입을 다물자 애슐리는 믹스펌의 숏보브를 가볍게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건 발뺌할 수 없겠네. 확실히 나도 베타테스터 출신이야. 미토, 윳짱, 그동안 숨겨서 미안해."


 "사과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어째서 숨긴 거야?"


 유나의 솔직한 물음에 애슐리는 안도한 듯, 조금은 부끄러워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SAO가 데스 게임이 되었을 때, 테스터 출신은 모두 최전선에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조금이지만 있었어. 나는 베타 때에도 옷만 만들었고, 몬스터와는 소재를 모으려고 싸우는 정도여서 전투에는 전혀 자신이 없었거든. 그래서 테스터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버릇이 생겼고……. 윳짱과 알게 된 후에도 계속 말할 기회를 놓치고 있던 거지."


 "……죄송합니다, 폭로해 버려서……."


 미토가 고개를 움츠리자 애슐리는 재빨리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언젠가는 털어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미토가 알아봐 줘서 다행이야. 그런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니 공략집단에서 톱 플레이어를 노릴 수 있겠는걸."


 "…………."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미토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텀블러를 가볍게 흔들었다.


 "……제 목표는 지금 고민 중이니 일단 건배합시다."


 두 사람이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기에 다시 한번 텀블러를 들어 올렸다.


 "건배."


 ""건배!""


 외치고 나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살짝 머금었을 뿐인데 농밀한 단맛과 씁쓸함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바닐라와 견과류, 캐러멜을 연상케 하는 향이 코끝으로 느껴졌다. 알코올감은 앞서 마신 와인보다 강하지만, 목을 태우지 않고 매끄럽게 넘어갔다.


 "와, 맛있다……."


 중얼거리던 유나가 텀블러를 들어 올려 안에 담긴 액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위스키 봉봉이나 브랜디 케이크는 잘 못 먹는데, 이건 술맛이 제대로 나면서도 굉장히 순한 맛이야. 위스키와 크림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부드러운 건 이 크림 덕분이 아닐까."


 애슐리가 텀블러 위로 솟아오른 휘핑크림을 할짝 핥았다.


 "진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해서 이거라면 듬뿍 넣어도 느끼하지 않을 것 같아. 2층은 베타테스트 때도 유제품이 명물이었는데, 이렇게 맛있는 크림은 먹어본 기억이 없네."


 "유제품이 명물……?"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나에게 미토는 넉 달 전 기억을 더듬으며 설명했다.


 "제2층은 소가 테마인 플로어야."


 "소라면……, 음머음머 거리는 소?"


 "맞아. 필드에는 엄청 큰 소형태 몬스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미궁 구역에는 토러스족이라는 소머리 아인이 살고 있는데……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야. 대부분의 도시나 마을에 목장이 있고, 우유나 버터나 치즈가 굉장히 맛있어. 물론 크림도."


 "헤에에……, 그러면 이 크림은 현지에서 갓 만든 거구나."


 하고 유나가 감탄한 듯 말했다. 이럴 때 레이젤의 숨겨진 바라면 댄디한 주인장이 설명해 줬을 텐데, 이 가게 주인은 아무런 말이 없다.


 "아마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토는 크림이 들어간 위스키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아마 비율로 따지면 절반, 어쩌면 70퍼센트 정도가 크림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세계에서 이런 음료를 만들면 역시 너무 느끼할 것 같지만 가상세계이기에 가능한 튜닝으로 지방 성분에서 유래하는 느끼함을 덜어낸 것 같다. 덕분에 크림의 부드러움에 휩싸인 위스키와 향신료의 향기와 녹아내리는 달콤함만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베타테스트 시절에는 이렇게 무언가를 천천히 맛볼 여유가 없었다. 누구보다 먼저 앞서서……오로지 그것만 생각하며 무언가에 홀린 듯이 계속 달렸다.


 아니, 어쩌면 현실세계에서도 그랬을지 모른다.


 자신 속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혹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학교 시험에서도 게임 대회에서도 1등을 차지하려고 악착같이 싸워왔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계속 타일렀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었다. 쎃아 올린 허울을 모두 벗겨내면, 거기에는 그날의——친구에게 외면당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서성이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알고 있지만…….


 한숨을 위스키 크림과 함께 삼키며 미토는 시야의 우측 하단을 바라보았다. 오후 다섯시——마로메 마을을 향하려면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가는 길에 밤이 되어버린다.


 미토의 낌새를 눈치챘는지 애슐리가 빈 텀블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석 잔 모두 정말 맛있었어. 좋은 가게에 데려와 줘서 고마워, 미토."


 "저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정말 기뻤어요. 애슐리 씨, 유나, 아인크라드 어딘가에서 계속 응원할 테니 꼭 꿈을 이루세요."


 두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며 미토가 그렇게 말하자 유나는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응, 약속할게. 언젠가 반드시 이 세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가수가 될 거야."


 "그럼 나도 아인크라드 최고의 가수가 입을 정도의 옷을 만들 수 있는 재봉사가 되어야겠네."


 "제 주문은 까다로우니까 각오해요, 레이 씨."


 서로 웃는 두 사람을 보며 미토도 그제서야 진심 어린 미소를, 조금이나마 지을 수 있었다.




 4


 전이문 광장 입구까지 함께 걸어가서 파랗게 빛나는 게이트 안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토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대금은 선언대로 애슐리가 냈지만, 술 석 잔에 한 사람당 120콜이라는 가격은 전혀 저렴하지 않았다. SAO에서는 적어도 10층까지는 권내에서의 음식값이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시작도시에서도 이 정도로 받는 가게는 그럭저럭 있지만, 아직 재봉사로 수행 중인 애슐리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반면 미토는 플로어 보스 공략 레이드에 참가한 덕분에 3천 콜을 넘는 금액이 자동 분배된 상태였다. 차라리 "내가 내겠다."고 말할까도 생각했지만, 애슐리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조만간 뭐라도 이유를 찾아 두 사람에게 대접하고 싶은 참이었지만, 그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 이전에 미토가 주거구역을 떠나면 두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걸로 된 거다.


 더 이상 친해지면 언젠가 다시 아스나를 버렸을 때와 같은 일을 반복하고 만다. 다시는 누군가를 배신하지 않도록 혼자서 조용히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전이문 광장을 등지고 황혼이 지는 샛길을 따라 북쪽으로 돌아갔다. 마로메 마을은 울버스의 남동쪽에 있지만, 해질녘을 맞아 더욱 붐비기 시작하는 남쪽 지역을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시내 중심부를 크게 우회해 동문을 향해 가기로 했다.


 발밑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차갑지만 후드 망토 덕분인지, 아니면 석 잔이나 마신 덕분인지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레이젤의 숨겨진 바에서 마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술이 맛있다고 진지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혼자서 과음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건강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경찰에게 끌려가는 것도 아니지만 현실세계에 돌아와서도 술을 마시고 싶어질 것 같아서 걱정이 됐다.


 …………바보 같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무의미한 사고를 쓴웃음으로 끊어낸 미토는 적자색으로 물든 하늘——정확히는 3층의 바닥을 올려다보았다.


 울버스는 납작한 냄비를 엎어놓은 모양의 테이블 마운틴을 가장자리만 남기고 파낸 도시인데, 원래 산 정상의 중심부만 원반 모양으로 파진 채 남아있고 가장자리에서 뻗어 나온 일곱 개의 돌다리로 유지되고 있다. 두께 1미터, 지름 10미터 이상 되는 바위 테라스가 전이문 광장으로 낙하하지 않는 것은, 아까 마신 위스키 크림처럼 가상세계의 허구겠지만 환상적인 광경임은 틀림없었다.


 베타테스트에서 미토를 포함한 많은 플레이어가 그 테라스에 오르기 위해 지혜를 짜냈다. 도시 안에서는 바닥만 보이는 테라스 위에 특별한 퀘스트 NPC, 혹은 희귀 아이템이 들어있는 보물상자가 설치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토가 알기로는 한 달의 테스트 동안 도달한 사람은 없었다.


 테라스 상부에 도달하려면 울버스 도시를 둘러싼 성벽 형태의 외륜산을 오르는 수밖에 없는데, 높이 40미터의 외륜산은 1층의 달하리 지루와 마찬가지로 거의 수직으로 깎여 있어 안쪽도 바깥쪽도 디딜 곳이 거의 없는 데다 강철 말뚝마저 튕겨냈다.


 그렇다면 달하리 지루가 그랬듯이 어딘가에 위로 빠져나갈 수 있는 숨겨진 통로의 입구가 있을 것이다……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여 직경 300미터, 즉 둘레가 약 940미터, 안팎을 합치면 1880미터에 이르는 외륜산의 밑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입구는 찾지 못했고 테라스 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겨진 채 베타테스트는 종료되고 말았다.


 아마 정식 서비스에서도 처음 울버스를 방문해 저 테라스를 올려다본 플레이어 중에 적지 않은 인원이 "저 위에는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며 올라갈 방법을 찾을 것이다. 미토는 이제 도전할 생각이 없지만 베타 때와 달리 정식 서비스에는 시간제한이 없다. 언젠가 누군가 외륜산을 오르는 방법을 발견하고 테라스의 비밀을 밝혀냈다는 이야기를 소문으로 들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토는 고개를 돌려 다시 이동을 재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한번 머리 위의 테라스를 확 올려다보았다.


 "……저기, 괜찮을지도 몰라……."


 중얼거린 이유는 테라스 위에 있는 것을 밝혀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다.


 저 위라면 유나가 연습 장소로 원하는 《권내에 있으면서도 다른 플레이어가 오지 않는 장소》라는 모순되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려면 당연히 외륜산을 오르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게다가 완력에 맡기는 프리 클라이밍 같은 위험을 감수하는 수단이 아닌, 레벨 1 플레이어도 쉽고 안전하게 왕복할 수 있는 루트가 필요했다.


 "…………무리겠지……."


 다시 중얼거렸다.


 배타 시절에 백 명 이상의 도전자를 물리쳤던 절벽에 이제 와서 그런 루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만일 존재한다고 해도 탐색에 며칠, 몇 주가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 사이에 2층이 공략되어 3층의 주거구역인 줌프트에서 더 좋은 장소를 찾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미토에게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으니 탐색이 헛수고가 되더라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보다도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친구에게 보답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우선 인적이 드문 북문부터 탐험을 시작하려고 몸을 돌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베타 시절에는 아무도 테라스에 오르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일까. 만약 숨겨진 통로를 발견한 플레이어가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다면 당연히 소문도 나지 않았을 것이고 외부 정보 사이트나 SNS에도 돌아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가 존재한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는 그 외에는 있을 수 없다.


 10초 정도 망설이고 나서 미토는 인스턴트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윈도우를 열었다.


---


오탈자 제보 바람

5장도 이번 주 안으로 올릴 수 있게 노력해보겟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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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닉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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