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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2

[자유] 갤기장) 더퍼슬은 즐거웠다앱에서 작성

볶음우동

2024.03.03 22:34:47

조회 517 추천 23 댓글 26

2023년은 말 그대로 더퍼슬로 시작해서 더퍼슬로 끝난 한 해였다. 연재 종료 27년 만에 극장에서 만난 더퍼슬은 어릴때부터 좋아했던 작품이 영화화 되었다는 기쁨 그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2D에서 벗어나 사람처럼 움직이는 등장 인물들, 원작에서는 잘 체감되지 않았던 산왕의 강함, 작가의 세계관 밖으로 나온 송태섭의 또 다른 모습 등 많은 발견이 있었지만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수확은 새삼스럽게도 강백호라는 캐릭터와의 조우이다.

사실 나는 원작에서 강백호에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열혈 남고생의 모습을 한 전형적인 소년만화의 주인공 정도로만 여겼기 때문에. 그런데 영화를 20회차 쯤 보았을 무렵 벤치에 앉아있던 강백호가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느닷없이 눈물이 터져나왔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당황했지만 멈출수가 없었고 그날부터 거의 매회 강백호의 표정과 움직임을 눈으로 쫓으며 숨죽여 울게 되었다. 모두가 웃는 장면에서도 눈물이 났다. 도대체 왜?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다.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고 명확한 인과 관계를 근거로 결단을 내리는 과정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매우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다.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싶은 마음에 주말마다 영화관을 찾았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꽤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술자리에서 이미 결말을 알고있는 영화를 왜 수십번씩 반복해서 보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취기가 올라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정화되는 느낌이에요’라고 답을 해버린 그 순간 정신이 들었다. 아 이거였구나..

강백호의 웃음이 날 정도로 크고 불필요한 동작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에너지와 생동감, 강인한 외형 속에 감춰진 순수함,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올곧음, 서툴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뜨거운 열정, 단호하게 빛나는 결의..

그 모든 것들이 진심으로 와 닿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동안 만큼은 이성의 스위치를 끄고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열정에 대한 감탄과 그런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 거기에 더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내 어린시절의 여름날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 뒤섞여서 눈물이 났던 것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모든것이 납득이 되었고 그 뒤로는 더이상 영화를 보며 사연있는 사람처럼 울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강백호가 있었다는 점에서 역시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는 녀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장황하게 쓸 일은 아닌데.. 오늘 코트사이드 보면서 갤주가 나에게 건네준 선물은 결국 뭐였을까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됨ㅋㅋㅋㅋㅋ 글재주가 없어서 횡설수설 했지만 아무튼 결론은 더퍼슬 덕분에 감동을 느낄 줄 아는 인간으로 아주 조금 발전하게 되었다는 거임.. 뭐 그래도 쌉T임에는 변함이 없겠지만ㅋㅋㅋㅋㅋ 갤주가 주신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고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갤기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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