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무 작가라면 누구나 다 한 번쯤 고민하는 전투씬.
잘 쓴 전투씬에 대한 기준이야 각자 차이가 있을 거고 선호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을 거임.
독자들 또한 마찬가지겠고.
더욱이, 실상 전투씬을 위한 전투씬이 되어선 안되긴 함.
해당 씬으로 인해 주인공이 성장하는 것에 대한 뽕을 연출하거나, 주변의 경악과 인정, 달라질 세력 구도, 새로이 얻게 될 보상 등이 더 중요하긴 하지.
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전투씬 자체를 잘 쓰고 싶어하고 스스로의 전투씬에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거임.
뭔가 최대한 자세하게 묘사 해보려고 하는데 그럴수록 짜치는 느낌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고민 말임.
해서, 본 글에서는 각기 전투씬 자체에 관한 미세 팁을 써보도록 하겠음.
당연히 고수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사안이며, 이 문제로 인해 고민하고 깊이 사유를 하는 친구들에게나 도움이 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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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전투씬의 유형을 나눠보자면 약 다섯 가지쯤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함. 완전히 내 편의로 나눈 것이며, 순서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음. 후술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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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굴형.
왜 불굴형이라 했는가 하면, 그런 성향을 지닌 주인공. 성장물. 긴장감과 긴박함을 지녔으며 스피디한 매력으로 치고 박고 싸우는 듀얼 방식의 전투씬이기 때문.
언더독 상황이고 상승욕구가 지대한 주인공일 때 잘 어울리는 전투씬이 주를 이룸. 장르는 퓨판, 무협 전반적으로 잘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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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우는 소리마저 자취를 감춘 깊은 숲 속, 만월이 가리키는 공터에는 두 사람의 인영이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각기 나무 기둥 뒤에 자리한 기척들은 자신들이 낄 계제가 아니라는 듯 조용히 두 눈만을 빛냈다.
“그래,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한 것이냐? 네 어디까지 발재간을 보여줄지 기대했거늘.”
흐드러지는 하늘빛 머리칼이 물결처럼 넘실거렸다. 청풍명검. 가진 바 이명만큼이나 시원스러운 이목구비와 귀를 씻겨주는 듯한 음색을 지녔다. 저리 영롱한 음성으로 사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하르뉴, 내가 정말 아무런 생각없이 이곳으로 널 이끌었다고 생각하나?”
꾸드득. 주먹을 말아쥔 유진산이다. 넘실거리는 투기가 팔뚝 위로 일렁거렸다. 몸을 휘감는 강기가 유형화 되어 두 눈에 보일 정도다. 전장의 흔적을 하나하나 아로새긴 듯한 두 팔의 검흔들이 그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푸르른 물빛 광채 역시, 사내의 몸을 훑고 있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5위계는커녕 3위계에 간신히 머물렀던 놈인데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별호까지 붙은 마당이다. 염열권성이라 했던가. 이제 8위계를 목전에 둔 자신에게 도전할만 했다. 그 역시 한 명의 강자라 자처할 수 있었음에.
“본좌의 뇌격 마법을 방해하려는 심산일 테지. 이곳 오를레우스 숲엔, 마탑주 셋이 모여 펼쳐둔 뇌기 흡성진이 있으니까.”
빙그레 말아올린 입꼬리다. 얄미울 정도로 헌앙한 용모에 만월이 어렸다. 달빛이 부서지는 콧대 아래로 우우웅 일렁이는 기운이 그의 몸을 옭아맸다. 대륙 십성보다도 더욱 위, 삼황이라 불리우는 자신 아니던가.
하르뉴를 견제하기 위한 마탑주 셋의 영역 확보 내지는 제국 보호의 진은, 저 먼 서대륙 끝에 자리한 용의 질주를 멎어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알면서도 왔다는 말이로군!”
콰앙! 순간의 멈칫거림을 놓치지 않는 유진산. 벼락처럼 질주해 땅을 내달렸다. 꾸구국, 한계까지 수축한 대퇴근이 콱콱 혈액을 짜냈다. 동시에 숫제 끓어 오르는 쇳물과 같은 염열의 기운이 전신으로 흘렀다. 내딛은 발 뒤로 구덩이가 크게 패이며 분진이 휘날렸다.
“그야, 네 녀석의 주먹과 본좌의 검을 같은 선상에 두려 하는 우매한 아해들이 있을진대 본좌가 어찌 서대륙에만 있을꼬.”
발검 소리조차 없이 뽑혀 올려진 보검이었다. 달빛을 산란시키며 소리없이 내리긋는다. 서걱. 채 한 호흡이 되지 않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보다 동작이 빨랐다.
카아앙!
벤 줄 알았으나 베어지질 않았다. 상처 가득한 두 주먹을 휘감은 열기였다. 강력한 열양진기가 호신강기 이상의 공능을 발하고 있었다. 이미 제 심상과 의념을 육신에 구현하는 경지였다. 한낱 무투가로 바라볼 순 없었다. 청풍명검의 목전까지 다가와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을지도 모를 사내였다.
“네 오만한 미소와 저 뒤에 자리한 수하놈들, 모두 박살을 내주마.”
꾸구구국! 검에 베이긴커녕 외려 검날을 밀어냈다. 두 눈에 넘실거리는 불꽃이었다. 이미 제 스스로 불길로 화했다. 전신을 휘감은 열기에 타닥 거리며 잿가루로 휘날리는 초목이었다. 강력한 열기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화신이나 다름없었다.
···치이익.
보검 백로에 그을림이 번졌다. 유진산의 강기 때문이었다. 특유의 집착적인 성향이 주먹을 휘감은 기운에도 똑같이 어려 있었다. 스아악! 떨쳐내려 휘두른 검이다.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호선을 그리며 마치 한 마리의 백학이 된 듯 유려한 움직임을 보였다. 주먹과 주먹 사이를 헤집고 어깨 어림으로 짓쳐 들어가는 일검. 카카카갉! 곧바로 틀어막혔다. 씨익 웃고 있는 유진산의 얼굴. 사내는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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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를 들려니 어려운데 이와 같은 느낌임.
공격을 주고 받는데 일부러 호흡을 짧게 짧게 가져가면서 지금의 순간을 보여준다는 느낌으로.
쓰다보니 유진산인지 머시깽이를 너무 강하게 묘사해버린 감은 없잖아 있는데,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실시간 듀얼’의 스피디함이나 긴장감을 가져 가는 게 내가 정의하는 불굴형이다 이거지.
아마 주인공이 좀 더 약한 상태에서 싸웠다면, 조금 더 처절하고 온갖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전개로 갔겠지.
2. 천재형.
이건 보통 먼치킨 주인공이 주를 이루며 수려한 묘사나, 다소 원맨쇼처럼 보일 수 있는 때가 많음. 보통 무협이 잘 어울리며 하이 파워 대결에서도 써먹을 수 있음.
다만, 헤비 독자로 하여금 장황한 묘사다. 묘사가 뜬구름 잡는다. 잔뜩 힘을 줘서 제 잘난 맛으로 쓰는 느낌. 이거 무슨 소리임? 유치한데.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음.
역시나 간단한 예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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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이 올 줄이야.”
거대한 석계의 맨 윗층, 숫제 천자라도 되는 양 금실로 수놓인 곤룡포를 입은 사내가 읊조렸다. 순백의 눈이 사람의 형상을 이룬 듯 하얗디 하얀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그 속에 홍옥처럼 박힌 두 보석이 특유의 안광을 흘리며 이쪽을 응시했다.
“네 손에 놀아난 강호의 동도가 산을 이루고 강을 이루었다. 천마, 오연한 네 얼굴을 보니 구역질이 인다. 이제 그만 죽어라.”
협의신검, 운혁의 뇌까림에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것조차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흐릿해진 신형이었다.
쩌어어엉!
숫제 벽력탄 다발이 동시에 터진 듯한 폭음이 일었다. 우르릉. 천둥이 울리는 것 같은 충격에 복마전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서까래 아래로 분진이 떨어졌으며 제천대성의 여의봉 같은 석기둥이 곧 부서질 듯 전신에 균열을 아로새겼다.
콰르르르.
서로 간의 거리는 십여 장. 한 번의 격돌로 밀려난 거리다. 운혁은 검을 고쳐 쥐었다. 처음부터 극성으로 전개해야 했다. 발바닥 용천혈에서 시작한 진기가 등허리 명문혈을 지나 손바닥의 노궁혈까지 질주했다. 눈 한 번 깜짝하기도 전이었다. 곧바로 검이 떨었다. 영산 화산의 선기를 가득 머금은 맑은 검명이다.
“하하, 본좌의 대전에서 매화 향이라. 광오한 작태로다.”
천마는 그리 읊조리며 스르르 손을 들어올렸다. 한 올의 진기가 손가락 끝에 얽혀들었다. 천마신공을 펼치면서다. 그저 그런 동작이 아니었다. 이미 육신 자체가 하나의 무기인 까닭이다.
스아악!
허공을 찢어 발기며 날아간 기격 경파가 석기둥 하나를 두부 자르듯 반듯하게 잘라놓았다. 그럼에도 그 위력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기다란 손가락이 움직이자 반월형의 검기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흐릿한 신형을 쫓았다. 운혁을 향해서다.
“······신강의 사이한 기운으로도 매화꽃이 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을진저.”
미끄러지듯 내뻗은 검결지에 홀씨같은 기운이 어렸다. 흩날리는 꽃잎이 아스라이 스며드는 태양빛을 팔방으로 산란시켰다. 우수에 쥔 검날에 흑단같은 복마전의 정광이 이지러졌다.
봄바람을 타고 노니는 듯 대전을 가득 채운 꽃잎들이다. 물경 수백에 달하는 갯수였다. 그것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쏟아져 내렸다. 중원의 악적이요. 살아 숨쉬는 마귀인 천마를 향해 쇄도하면서다.
콰콰아ㅡ!
사내가 살아있었다는 흔적을 모조리 지우려는 듯 했다. 춤을 추듯 흐느적거리는 동작에는 천마신교의 정수가 모조리 녹아 있었다. 쳐내고 흘리고 비틀고 찢어발겼다.
···스걱.
그러는 사이에도 한 곳씩 베였다. 묵빛의 장포가 점차 진해졌다. 그를 휘감고 도는 돌개바람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까닭이다. 더욱 짙은 흑색이 되었을 때 쏟아져 내리는 꽃의 비를 뚫고서 돌연 서슬퍼런 날붙이가 짓쳐 들어왔다.
곧바로 왼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돌렸다. 터엉. 따로이 외공을 단련하지는 않았으나 두터운 공력을 지닌 만마의 주인이다. 내공 화후만 놓고 보자면 천하제일을 넘어 장삼봉이나 달마를 견준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지이이이익.
길게 뒤로 밀려난 운혁의 입가에 울컥 핏물이 새어 나왔다. 후두둑 떨어진 사혈이 순백의 도포를 지필묵삼아 화공의 붓질마냥 그림을 그렸다. 하나, 그럼에도 그는 외려 웃어 보였다.
뚝··· 뚝···
이곳 신강에선 그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이 존귀한 이의 혈액 역시, 제 검끝에서 아롱지고 있었다. 선기를 마기로 뒤덮으려는 더러움을 공력을 일으켜 털어냈다.
먼저 간 사형제들이 눈꺼풀 뒤에 맺혔다 사라졌다. 부서져 내리는 내벽 너머로 천지자연의 풍경이 거침없이 스며들고 있었다. 복마전을 물들이는 섬서 화산의 물결이었다.
“진혼제 따위는 기대하지 말아라. 얌전히 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천하만민을 위하는 길일 것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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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이런 느낌.
보면 알겠지만 원맨쇼 느낌이 강하고 여러 묘사를 빡세게 욱여 넣어야 함. 물론 서로 주고 받을 수도 있는데, 앞선 1번에 비해서 한쪽의 액션이 과하다라는 게 결론.
하이 파워 레벨을 묘사하기에 좋으나 여러 모로 인풋이 상당히 필요함.
원래 마법 대결쪽도 써넣으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지면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일단 패스.
3. 디테일형.
보통 중세 판타지, 로우 파워 전투씬을 그려내기에 적합하며 체험형 묘사라는 특징점을 보임. 주변의 정물을 자세히 그려내는 점도 있음. 로우파워 현대 배경에도 괜찮을 것으로 사료됨.
* 이제 짧게 쓰겠음. 앞에 너무 길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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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후욱···”
어크로스는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었다. 도처에 화살이나 녹슨 검 따위를 맞고 쓰러진 전우들이 피와 신음을 흘려대고 있었다. 끄으으. 신음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질주했다.
“살··· 려···”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우습게도 그가 이곳의 사령관이었다. 전세가 크게 밀리자 상황을 뒤집겠다며 참전했음에도 비명횡사를 벗어나지 못했다. 폐쇄형 투구인 아흐메를 쓴 게 무색했다. 투구 한쪽이 크게 찌그러져 있었다. 숫제 쇠망치로 수십 번을 내려찍은 듯한 광경이었다.
“······제길.”
까드득 이를 악 물었다. 그 순간 후웅 휘둘러진 일격이 머리 한 치 위쯤을 스치고 지나갔다. 광풍이 일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옆으로 나뒹굴었다. 몇 바퀴를 구른 다음 고개를 들자, 숫제 곰이라도 되는 것처럼 커다란 덩치를 가진 적측의 백인대장이 있었다.
“흐··· 쥐새끼 같은 놈.”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는 사내다. 어크로스처럼 갬비슨을 입지도 않았다. 가벼운 경장차림. 아니. 거의 일상복이나 다름없었다. 산적과도 같은 몰골이었지만 그 손에 들린 커다란 도끼와 한 손의 커다란 할버드는 그의 완력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할버드의 끝에 머리통이 쪼개어진 아군의 수가 수십 명을 넘었다. 그만큼 휘둘렀음에도 지치지 않는 것이다. 커다란 구덩이가 이곳저곳에 자리했다. 포탄이 날아드는 와중에도 제 집 내원을 거닐 듯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입안이 텁텁했다. 구르는 동안 흙을 머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뱉어낼 여유따위는 없었다. 꺼끌꺼끌하고 피맛이 감도는 입안과 터질 듯한 폐부는 이미 적측 병사들과 검을 나누기 전부터 그러했으니.
시야가 어그러졌다. 아흐메가 멋대로 돌아간 까닭이다. 목과 하관을 보호해야 할 고짓(gorget)이 외려 고개를 돌릴 수 없게 하고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화살에 목이 꿰뚫리는 것보다 방어구에 질식하는 게 먼저일 듯 했다.
텅그렁. 있어보아야 무용한 갑옷을 스스로 벗어냈다.
쿵쿵 거리며 할버드를 휘두른 거한이 아군 서너 명을 그대로 반으로 갈라 놓았다.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상반신이 쓰러지자 핏물을 잔뜩 머금은 허연 내장이 특유의 장력없는 움직임으로 쏟아져 내렸다. 철퍽철퍽. 땅 위로 나부끼는 생기없는 거대 지렁이였다.
······이런 곳에서 죽어줄 성 싶으냐.
어크로스는 백인대장이 아닌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이곳에 떨어뜨려 놓은 저주스러운 신을 표독한 얼굴로 노려보았음이다.
“누가 그러더군. 죽지 않는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신을 부정하고 운명을 부정했다. 콰악. 그립을 강하게 움켜쥐고서 그대로 휘둘렀다. 퍼억. 뭉툭한 폼멜에 부딪힌 적군의 관자놀이 움푹 패였다. 일찍이 특별 제작된 물건이었다. 묘하게 더 무거운 어크로스의 검 손잡이 끝이 둔기로 화했다.
제법이라는 듯 이를 드러낸 거한을 향해 눈을 부릅 떴다. 다음은 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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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보면 알겠지만 가급적 체험적인 묘사나, 좀 더 현실적인 서술을 곁들임. 보니까 말똥 냄새 나는 정판 및 중판은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았음. 그만큼 쓰기도 힘들고 상당한 집중을 요하기도 함.
4. 헐리웃형.
왜 여기를 헐리웃형이라고 했는가 하면, 내가 생각할 때 무언가 헐리우드 촬영장을 생각나게 하는 연출이 많았어서 그럼. 크레인으로 길게 사다리 뻗어선 그 위에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
어떤 의미로는 요즘에 MZ샷이라고 하나? 그렇게 위에서 사선으로 보일 때도 있고 하여튼 ‘전체적인 상황’을 동작으로 보여주는 느낌이 종종 있었음.
이것도 로우파워물에 적합한데 뭐랄까. 연출이나 그런 게 동작을 보여주는 묘사가 많은 것 같아서 3번이랑 궤가 비슷할지도 모르겠음. 다만, 정물이나 소품 하나하나를 묘사하는 것보단 인물의 동작을 좀 더 크게크게 보여주는 느낌으로.
의외로 퓨판, 하이파워 대결에서도 어울리긴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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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쾅!
몇 개의 이를 허공으로 흩뿌린 사내가 속절없이 날아갔다.
불과 십여 분 전 여관으로 들어선 이에게 시비를 걸었던 것 치곤 빠르게 확인한 결과였다. 스윙도어가 그의 퇴장을 허락했다. 끼익, 끼익. 앞뒤로 움직이는 도어에 의해 낡은 경첩이 비틀린 신음을 토해냈다.
“개새끼가··· 모두 한 번에 쳐!”
한 손에 자그마한 단도를 쥔 이가 소리쳤다. 눈두덩이에 길게 그은 자상이 인상적이었다. 이곳 서극 여관에선 그의 명을 거스를 수 있는 이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양쪽으로 짧게 기른 수염을 지닌 여관주인은 이미 머리를 잔뜩 웅크린 채 직사각형의 다탁 밑으로 몸을 욱여 넣었다.
“차륜전의 수치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 중원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백항은 그리 뇌까리고는 아직 손에 들고 있는 투명한 유리잔을 쥐었다. 잔의 밑부분이 단단했다. 세공 기술이 중원보다 월등히 앞서 있다는 소리다. 곧바로 우측으로 몸을 틀며 손을 펼쳤다. 쐐액. 콰자작.
“크악··· 악.”
자고로 일 대 다수의 싸움을 벌일 때엔 우두머리부터 제압해야 하는 법.
명령을 내렸던 조비랑의 면전에 집어던진 잔은 깨어지긴커녕 외려 그의 누런 이들만 부서놓았다. 21세기 현대였어도 수 백, 아니 수 천은 들여야 재건할 수 있을진대 이곳에선 평생 피죽만 먹고 살아야 할 신세가 된 셈이다.
“이, 이 놈이 감히 두목을!”
커다란 작부를 한 손에 쥔 이가 힘껏 머리 위로 도를 치켜 들었다. 커다란 몸을 하고선 무음보행에 꽤 능했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이곳 서대륙의 자그마한 마을에 군림해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빙그르르 몸을 돌리며 텁- 하고 오른손으로 다탁을 짚었다. 곧장 우측 반신을 축으로 벌렁 드러눕듯 땅을 박찼다. 한 순간 허공에 몸을 뉘인 백항은 그대로 손님과 주인 사이의 일선을 타고 넘었다. 콰지지직. 토킹바가 쪼개어지며 나무조각이 휘날렸다. 누군가의 평생이 어린 직장이 때아닌 행패에 당하는 형국이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삼대가 벌어먹고 살 정도의 금력을 보유한 게 아니라면, 강호 부근에서 객잔은 절대 열지 말라고.”
하다못해 포목점과 표구점이었다면 허구한 날 부서지진 않았을 것이다. 벌벌 떨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바텐더를 두 눈에 담았다.
“심심한 유감을 표하는 바요. 부서진 기물값 정도는 받아내 보겠소.”
그리 말하는 사이, 토킹바에 깊숙히 박힌 도끼를 빼내려 용을 쓰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쪽의 검과, 저쪽의 도끼, 그리고 각자 두 손의 봉인 유무.
백항의 웃음에 상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불뚝. 도끼 든 이의 팔에 힘줄이 치솟는 것과 백항의 움직임이 한 호흡에 교차됐다. 도끼의 자루 부분을 콱 발로 밟으며 솟아 올랐다. 오른쪽 복사근에 힘을 주며 무릎을 쳐올렸다. 퇴법이라 불리는 기예다.
콰직. 다행스럽게도 혀는 깨물지 않은 사내가 침을 흘렸다. 흰자위를 잠시간 보였다. 곧바로 우수에 쥔 검을 좌수로 고쳐잡고 그대로 내리그었다. 스아악. 붉다란 선이 그의 목에 새겨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빙글 돌렸다.
회전력을 유지한 채 경악한 염소 수염의 사내 턱밑까지 파고 들었다. 우득. 손목을 뒤틀었다. 잠시간 근육과 힘줄이 비명을 내질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역수로 고쳐쥔 검을 힘껏 뽑아 올렸다. 서걱. 툭. 섬뜩한 소리 이후, 서극 여관에 핏빛 비가 아래에서 위로 승천하듯 솟구쳐 올랐다.
쏴아아아아.
쏟아지는 혈우(血雨)아래에서 한 사내만이 중심에 자리했다. 자신을 둘러싼 이들을 하나씩 훑어 보았다. 크게 몸을 떠는 이들과 실금을 지리는 이들이 있었다. 뒷걸음질을 하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나동그라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목숨값, 두둑히 준비되어 있는 것이겠지.”
단지 외지인을 좀 털어먹으려던 대가가 너무나도 가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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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또 이런 느낌.
어떻게 보면 3번과 비슷한데, 내 나름대로는 최대한 동작을 체험하고 카메라 연출처럼 보이게 노력해봤음. 확실히 필력의 문제로 머릿속만큼 구현이 힘드네.
여하간 4번의 특징은 좀 영화적인 액션이라고 할까. 촬영본을 바라보는 카메라 감독의 눈 혹은 1인칭 시뮬레이션이라는 느낌이 강했음.
5. 반응형.
이건 앞의 전투씬들보다 확연히 난이도가 낮다고 할 수 있겠음. 전투씬의 화려한 연출이나 기깔나는 필력에 심력을 쏟아붓는 대신, 전투 자체는 가볍게 넘기고 그 이후의 관계 변화, 상황 변화 내지는 성장과 보상. 주변의 인정에 더 주안점을 두는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전투씬 자체는 ‘의외로’ 단조로운 경우가 많음. 지극히 짧기도 하고(어떻게 보면 당연한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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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지 말고 나와라.”
대천마신교의 영역 안이다. 외유를 나간 상황이라면 모를까. 신교의 영역 내에서 천마의 다섯 번째 아들인 천서휘를 노린다는 건 어지간히 정신이 나가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끌끌.”
복면으로 정체를 숨긴 걸로도 모자라 흑색의 피풍의를 둘렀다. 족히 예닐곱을 될 것 같은 이들 전부가 그러했다. 저마다 손에 내려쥔 검붉은 비검이 요사스러운 빛을 발했다. 달이 없는 밤임에도 말이다.
이를 가느다란 눈으로 바라보던 천서휘가 입을 열었다.
“묵영대.”
한 순간 서로간에 정적이 흘렀다. 선두에 선 이가 눈짓으로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코 아래를 가리고 있던 천을 더욱 끌어올려 눈밑까지 가렸다. 이제와서 더 가린다고 하기엔 무용한 일이었다.
“그래, 부교주 그 작자가 기어이 나를 제거하라 일렀나보군. 어지간히도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야.”
작금의 천마신교는 교의 일에 무관심한 천마로 인해 다섯 자제들이 보이지 않는 정쟁을 벌이곤 했다. 실상 천서휘는 반쯤 내놓은 자식이었다. 날 때부터 경맥의 곳곳이 끊어져 있거나 진기를 운용하기 힘들 정도로 좁았다. 구음절맥까진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절맥을 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만, 신령스러운 천마의 피를 잇고 있다는 전제 하.
터럭만한 모두의 값싼 동정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신세였다. 어떤 의미로는 이 시간에도 암투를 벌이고 있을 네 명의 형들이 죽고 나면, 허수아비로나마 소천마가 되어 다음 대 천마 위(位)에 올라야 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장남인 천극호를 지지하는 부교주는 어느 형제에게도 들러붙지 않은 내가 거슬렸던 모양이다. 납작 몸을 엎드리고 고개를 조아리긴커녕 그저 소천서고에 틀어박힌 채 책벌레마냥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의미로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신세일진대,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 부교주.”
고개를 내젓는 순간, 선두에 있던 흑의인이 짓쳐 들었다. 눈을 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빈틈이 보였다 생각한 듯 했다. 애당초 진기 운용조차 제대로 못하는 천마의 아들 따위가 무어 그리 경계의 대상이겠냐마는.
핏!
“하,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굴더······ 니, 커윽.”
흐릿해진 신형이 천서휘의 뒤편에 있었다. 꾸르륵 일어난 피거품이 사내의 목젖을 치고 입안을 가득 채웠다. 뒤늦게 제 목을 틀어쥐었으나 후끈한 핏물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지지대를 잃은 머리통이 하릴없이 굴러 떨어졌다. 통. 통. 데구르르. 마른 침을 삼키는 묵영대를 가만히 바라보는 천서휘였다.
“이상한가? 절맥일 천마의 막내 자제가 쾌검을 펼친다는 것이.”
소리조차 없이 발검한 애병을 늘어뜨린 채 읊조렸다.
ㅡ
아.
이건 생각보다 내 스타일이 좀 더 가미되긴 했는데 원래 표현하려던 건 이것보다 조금 더 단조로움. 전투 자체의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 하거나 굉장히 짧고 간단함.
그것보다는 대사, 서로간의 상황과 마음, 성격 변화가 주를 이루는 형태임.
의외로 엄청난 성적을 자랑하는 작품에도 이와 같은 전투씬이 있음.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전투씬의 퀄리티 고저 차이가, 작품 전체의 성적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는······ 아니다.
작품을 이루는 근간에, 성적을 나타내는 것에, 전투씬 하나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함.
최종.
일단은 위에 마지막 문단과 최초에 언급한 점처럼, 전투씬을 위한 전투씬이 되어선 안될 것이며 이 자체로서 작품의 수준을 논할 순 없을 것임.
다만 ‘어떻게 하면 전투씬을 다양하게’ 내지는 ‘지금보다 나은 수준의 전투씬을 쓰려면’ 혹은 ‘내 작품의 장르나 성격상 어떤 유형이 어울릴까?’를 고민한다면, 앞선 예제들을 살펴 보면서 조금 더 구미가 당기거나 마음이 이끄는 쪽을 택해보길 바람.
언제나 그렇듯, 이건 정답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방법들 중 하나이며 전하고자 하는 바가 완전히 전달되지 않은 건 내 필력 부족의 문제임.
덧붙여 인풋이라는 압도적인 무기가 이미 각자들 손에 쥐어져 있으니까 그것 횃불이요. 무장 삼아 작품들 세계를 살펴보길 바람.
1만 1천자에 달한 관계로 여기서 종료하겠음.
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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