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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서] [괴문서] 2회차 : 메지로 맥퀸 - 1

NN(49.169) 2022.09.24 18:41:16
조회 4163 추천 68 댓글 13
														




긴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달콤한 환상에서 깨어난 기분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씨발 여기서 대체 뭘 더… 아니 애초에 어떻게 해야 성공인건데?’


분노를 토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크릭… 크릭은 어디있지?”


나는 다급히 훈련용 코스로 달려가 크릭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후로 트레센 학원을 샅샅히 뒤져가며 크릭을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학원 바깥을 뒤져볼 생각으로 트레센을 떠나려는 그 순간.


“저기…”


“…어.”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잊을 수 없는 얼굴.


그녀가 여기에 있었다.


“크릭…”


“어머나. 제 이름을 아시나요?”


“당연히 알지… 잊을 수 있을리가 없잖아.”


“저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을텐데… 그것 참 신기하네요~”


제발 그녀의 태도가 그저 장난이기를 바랐다.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사실 다 장난이었다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이미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그 사실이 너무나도 슬퍼서 눈물이 나왔다.


“어머어머. 갑자기 왜 그러시나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여전히 너무나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크릭… 혹시 나를 본 적 있어?”


“으음… 배지가 있으니까 학원 소속 트레이너분이시죠?”


“죄송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래… 그렇구나…”


더 이상 나는 그녀의 트레이너가 아니었다.


3관 우마무스메 슈퍼 크릭의 트레이너가 아닌, 담당 우마무스메가 없는 신출내기 트레이너였다.


3년 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3년 동안 만든 모든 관계가.


한순간에 무의미한 것으로 사라져버렸다.


[헌신]


단지 그녀를 육성하고 얻은 이상한 능력 하나만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다 농담이었어. 내가 좀 이상한 놈이거든.”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며 트레이너 전용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더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공허한 마음으로 익숙한 길을 걸어가던 중, 옆으로 보이는 훈련용 코스에서 달리고 있는 한 우마무스메를 발견했다.


“…”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열심히 뛰고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많이 지쳐보이네…’


한때 무리한 트레이닝으로 크릭에게 패배를 안겨준 경험이 있던 탓일까.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리하지 말고 좀 쉬는게 어때?”


“…당신은…?”


그녀는 내 옷에 달려있는 트레이너 배지를 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트레이닝을 중단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꼭 이겨야만 하는 레이스가 있어서…”


“…그러냐.”


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3년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나에게는 실력이 있었다.


우마무스메를 보고 견적을 낼 수 있는 눈이, 그녀들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에게 주어진 유일무이한 축복.


나는 수첩을 꺼내서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인게임 스토리에 의하면… 지금의 메지로 맥퀸은 다이어트를 위해 무리하게 식단조절을 해서 힘을 잘 내지 못하고 있겠지.’


나는 필기를 멈추고 페이지를 찢어서 그녀에게 쥐여주었다.


“이 정도는 먹어도 괜찮을거야.”


“이건…?”


쪽지를 읽어가는 그녀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난 이만 가볼게.”


나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다시 트레이너 전용 기숙사로 향했다.


‘메지로 맥퀸을 위한 저칼로리 스위츠라면 저정도가 전부겠지.’


한편.


메지로 맥퀸은 트레이너 전용 기숙사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힘을 잘 내지 못하는게 식단 관련 문제 때문이라는건 어떻게 아신걸까요?’


‘게다가 제가 스위츠를 특히 좋아하는 것도…’


‘…하지만 그 모든걸 알고 있었다고 해도 왜 저에게 이렇게까지…’


어쩌면 저 사람이라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확신이 메지로 맥퀸의 머릿속에 한순간 존재를 드러냈다.


그러나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파멸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녀였기에, 쉽사리 그를 믿을 수는 없었다.


‘대신 이 은혜는 잊지 않겠사와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짐을 정리하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날 메지로 맥퀸은 잠들기 전 자신의 컨디션을 확인하면서 더 트레이닝을 했더라면 다리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시 한 번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에게 다짜고짜 담당 트레이너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건 무례한 짓이겠죠.’


‘대신 이번 선발 레이스에서 제대로 된 결과를 내고 정중하게 요청하겠어요.’


그시각 그는 트레이너 전용 기숙사의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크릭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전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저는 당신을…’


어쩌면 그녀가 나에게 베풀었던 사랑은 그저 모성애가 아닌 연심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의심이 한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 의심을 증명할 방법 따위는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순간 내 머릿속에 한 번만 더 노래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던 크릭의 말이 떠올랐다.


내일 중으로 트레센의 음악실을 빌려서 녹음을 하고 그녀에게 노래를 전해줄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말에 담겨진 감정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마지막 부탁 만큼은 내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 ⏰ —————


상점가에서 적당한 기타와 녹음기, MP3를 구매하고 이사장에게 부탁해서 음악실을 빌렸다.


위닝 라이브를 위한 목적도 있어서 그런지, 시설이 생각보다 좋았다.


‘방음 부스까지 있네…’


나는 방음 부스로 들어가 준비해둔 녹음기를 켜고 크릭의 캐릭터송을 불렀다.


녹음을 마치고 파일을 MP3에 옮긴 다음 방음 부스를 떠나려는 그 순간.


나는 잠깐 멈칫 하며 다시 방음 부스에 앉아서 녹음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MR… 같이 녹음해 줘야겠다.’


이 노래는 내 노래가 아닌 그녀의 노래다.


그러니 나보다는 그녀가 이 노래를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는 MR을 녹음하고 MP3에 파일을 옮긴 뒤, 배터리 커버 부분에 ‘슈퍼 크릭’이라고 적은 다음 타즈나씨에게 분실물을 발견했다며 전해주었다.


나는 지난 회차의 여름 합숙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생각했다.


‘네가 이 노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 ⏰ —————


한동안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되찾았다.


‘저번 회차가 끝나고 분명 ‘추가’할 패널티를 고르라고 했어.’


‘어쩌면 패널티는… 일시적인게 아닌 누적되는 걸지도 모른다.’


‘저번 회차에는 크릭이 아리마 기념을 대차로 마무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지.’


‘전설적인 경기의 조건이 ‘1착’같이 단순한게 아니라는 말이야.’


‘아직 궁금한건 많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있다간 실력있는 우마무스메를 섭외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빨리 담당 우마무스메를 구하고 실적을 내야만 해.’


————— ⏰ —————


훈련용 코스에 가자 메지로 맥퀸이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것이 보였다.


‘저번보다는 낫네.’


나는 짧은 감상평을 내고 한동안 그녀의 달리기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너무 조급하다.’


이겨야만 한다는 경기가 있다는 사실은 동기부여의 목적으로 충분하지만, 그것이 훈련 과정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


무리한 트레이닝으로 인해 신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그저 이긴다는 것만을 의식하는 나머지 중요한걸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저런 페이스로 장시간 트레이닝을 하니 저번에 그렇게나 지쳐보였던 거겠지.


“…응?”


그녀는 트레이닝 도중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저번보다는 나은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저번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동작 하나하나에 기품이 있네… 역시 메지로는 다르다 이건가?’


“그정도로 뭘. 보아하니 지금 개인 기록 재고 있었지?”


“…네.”


그녀는 어딘가 불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분명 기록이 잘 나오지 않았겠지.


그 사실이 메지로 맥퀸을 조급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루.”


“네?”


“하루만 내가 하라는 대로 해봐.”


나는 메지로 맥퀸의 인게임 정보를 확인하고 나서 대강 구상했던 트레이닝 메뉴를 알려주었다.


물론 하루만에 극적인 효과가 일어나는 것은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하루 만으로도 극적인 효과를 낳는다.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트레이닝도 좋지만… 지금의 메지로 맥퀸에게는 자세를 교정하는 트레이닝이 필요해보인다.’


그녀는 내가 말해주는 트레이닝 메뉴를 받아적더니 나에게 말했다.


“…궁금한게 하나 있습니다.”


“뭔데?”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건가요?”


“저는 당신의 담당마도 아니고 아직 신입일 뿐인데…”


“신입끼리의 동질감… 인거로 치자.”


“네?”


“나도 신입 트레이너거든.”


나는 문득 그녀와 통성명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을 아직 못들었네.”


“네 이름, 알려줄 수 있을까?”


“저는… 메지로 맥퀸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좋은 이름이네. 맥퀸.”


전설적인 경기의 조건을 제대로 모르는 지금, 나는 그녀가 그 조건을 충족시키고 목표를 달성하게 할것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혹시 괜찮다면…”


한순간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꼬리는 뒤에 이어질 말을 기대하는 것처럼 살랑거리고 있었다.


“네 담당 트레이너가 될 수 있을까?”


그녀는 내 말을 듣더니 잠시 침묵했고, 이내 입을 열었다.


“…스카우트 제의는 선발 레이스가 끝나고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대로 제 실력을 봐주신 다음 결정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짧게 작별인사를 나눈 뒤 그 자리를 떠났다.


메지로 맥퀸은 그가 떠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예상도 하지 않았던 스카우트 제의에, 한순간 그녀의 감정이 요동쳤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할 뻔했네요.’


메지로의 이름을 듣고도 오롯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그의 태도는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메지로가 아닌 메지로 맥퀸으로서 대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청나게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는 않은 오묘한 느낌.


“…특이한 분이시네요.”


하지만 어째서 그의 모습이 어딘가 슬퍼보이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메지로 맥퀸은 그 이유를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슬퍼하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남아있었으니까.


————— ⏰ —————


그가 제안한 트레이닝 메뉴를 수행한 맥퀸은 몸 상태를 점검하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몸이… 움직이는 느낌이 엄청 부드러워졌어요.’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이라면 개인 기록을 갱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 맥퀸은 곧장 훈련용 코스로 달려가 기록을 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신기록이네요. 절대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벽이 이렇게나 간단하게…’


그녀는 스톱워치를 손에 꾹 쥔 채로 그의 말을 떠올렸다.


‘하루만 내가 하라는 대로 해봐.’


자신을 신입 트레이너라고 주장한 그의 지시는 너무나도 날카롭고 효과적인 것이었고.


그녀는 그의 트레이너로서의 역량이 얼마나 거대한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지간한 베테랑 트레이너… 아니. 어쩌면 그 이상…’


‘키류인 가문도 아니신 것 같던데, 대체 어디서 저런 분이 솟아난 걸까요?’


————— ⏰ —————


슈퍼 크릭은 우연히 마주친 타즈나로부터 건네받은 MP3를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으음… 분명 제 이름이 적혀있기는 하지만, 저는 이런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데…’


그녀는 MP3를 켜자 음악이 단 두 곡 밖에 없다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심지어 하나는 그저 MR…’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 받은 것 같은 상황.


크릭은 노래를 재생하고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


노래를 듣는 크릭의 눈이 커졌다.


‘…!’


여지껏 들어본 적이 없었던 노래.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도 자신과 잘 맞는 노래.


마치 자신만을 위해 작곡된 것 같은 그 노래에, 크릭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대체 이 노래는… 하지만 대체 누가?’


————— ⏰ —————


선발 레이스의 열기 속에서, 메지로 맥퀸은 침착하게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레이스가 진행되면서도 맥퀸은 자신의 몸상태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동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런 컨디션이라면 결코 질리가 없사와요!’


어느덧 경기는 최종 코너.


메지로 맥퀸은 순식간에 선두로 치고 나가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결코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벽이.


결코 할 수 없다고 느껴졌던 주법이 그녀의 몸을 통해 그 궤적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결과는 당연히 1착.


그녀의 달리기에 매료된 트레이너들이 경기가 끝나자 일제히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오직 한 사람만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인파를 가르고 그에게 다가갔다.


자신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엄청난 재능의 신입 트레이너.


하지만 단순히 그의 재능에 감탄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가… 좋은 이름이네. 맥퀸.’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거리를 두면서도.


자신을 진지하게 대해주는 그의 태도에.


메지로 맥퀸은 매료된 것이었다.


‘이 사람이라면…’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친 것 만으로도 서로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입을 열었다.


“너를 스카우트 하고싶어.”


“제안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저는 메지로의 우마무스메. 화려하게, 우아하게, 완벽하게 승리하는 것이 이 이름의 의무입니다.”


“저를 담당하시게 된다면, 당신도 메지로가의 트레이너라고 자각하셔야만 합니다.”


“당신에게는… 그럴 각오가 있나요?”


그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가 없었으면 너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어.”


그녀는 그의 대답을 듣고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후훗… 믿음직한 대답이네요!”


“그럼 앞으로 잘부탁드려요, 트레이너님.”


————— ⏰ —————


그녀의 목표는 천황상 제패.


나는 그녀의 인게임 정보를 조사하고 직접 그녀의 달리기를 살펴본 뒤, 적당한 트레이닝 메뉴를 짜주었다.


앞으로 트레이닝 메뉴는 계속해서 바뀔 것이고, 강도도 더 세질 것이다.


만약 그녀가 이 트레이닝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면… 그녀도 전설적인 기록을 낼 수 있겠지.


————— ⏰ —————


그녀의 ‘살찌기 쉬운 체질’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먹고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정신적으로 상당한 악영향을 줄것이다.


“…살찌기 쉬운 체질을 바꾸는 방법. 하나 있어.”


내 말에 그녀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정말인가요?! 돈은 얼마가 들더라도 좋으니 바로…!”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고 가만히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메지로 맥퀸’에게서 ‘살찌기 쉬운 체질’을 제거하는 대가로 당신에게 ‘살찌기 쉬운 체질’이 부여됩니다.]


나는 눈앞에 뜬 글자를 읽어나가며 작게 미소지었다.


‘고마워. 크릭.’


“그 방법은… 이 물을 마시는거야.”


나는 그녀에게 적당한 500ml 생수병을 건네주었다.


“…뭔가 믿기 어렵습니다만…”


“날 믿어.”


“으음… 일단 알겠습니다…”


그녀는 생수병 안에 들어있던 물을 남김없이 원샷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이제 된건가요?”


“응.”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서도 믿기 어렵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 초콜릿이 있는데… 한번 먹어볼래?”


“네…? 하지만…”


“살찌면 내가 책임질게.”


“아뇨 그러실 필요까지는…”


나는 나를 믿어달라고 말하며 그녀를 설득했고, 그녀는 마지못해 초콜릿을 먹기 시작했다.


“…달콤하네요.”


황홀함에 젖은 그녀의 표정은 그녀가 얼마나 단것을 좋아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초콜릿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고는 말했다.


“이건 어디서 파는 제품인가요?”


“마음에 안들어?”


“아뇨 그건 아니고…”


“그럼 다행이네. 기껏 직접 만들었는데 맛없다고 하면 슬플 것 같았어.”


내 말을 들은 그녀의 꼬리가 세차게 흔들렸다.


“직접…?”


‘사실 나 먹으려고 만들다가 남은거 준거긴 한데…’


“당분간은 먹고싶은거 마음대로 먹어. 그래도 괜찮을거야.”


“만약 찐다고 해도 제대로 다이어트용 식단이랑 운동도 준비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녀는 아직도 잘 믿기 어렵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딱히 상관 없었다.


결과를 보면 그녀도 생각이 달라질테니까.


————— ⏰ —————


그날 이후로 1주일이 지나갔다.


평소와 다름없이 메지로 맥퀸의 레이스 일정을 확인하고 과거의 레이스를 찾아보던 중, 메지로 맥퀸이 큰 소리를 내며 트레이너실로 들어왔다.


“트레이너님…!”


트레센 식당의 한정판 몽블랑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기쁨이 표정에 전체적으로 녹아들어있다.


그녀의 얼굴에 피어있는 함박미소를 보자 나는 그녀가 이어서 하고싶은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믿어도 된다니까.”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하신 건가요?”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다른 걱정거리는 없어?”


“물론이죠! 이제 저에게는 더이상 단점이란게 존재하지 않답니다!”


“오 그래…”


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귀가 축 늘어지면서 그 반응은 뭐냐고 캐물었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놀리는거 재밌네.’


————— ⏰ —————


저번 회차에서는 첫 G1급 경기였던 호프풀 스테이크스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었다.


지금은 뭐 이미 익숙한 일들이라 금방 끝내버렸지만, 그래도 귀찮은건 매한가지.


일반적인 경우라면 당장 목전에 둔 레이스에 심혈을 기울이겠지만…


‘나한테는 해당사항이 아니지.’


나는 ‘무조건 1등’을 한다는 가정 하에 레이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실제로도 그녀는 내가 지시하는 트레이닝을 잘 따라주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위한 모든 대비를 어느 정도는 해둔 상태다.


이대로만 간다면 1회차에 그랬던 것처럼 클래식급 아리마 기념에서 실수할 일은 없겠지.


‘만약 클래식급 아리마 기념과 시니어급 아리마 기념을 모두 1착으로 완주하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 ⏰ —————


메지로 맥퀸이 클래식급 아리마 기념에 도전하기 위한 전주곡이 필요하다.


나는 1회차에 그랬던 것처럼, 클래식 3관을 목표로 트레이닝을 하고있다.


아리마 기념에 출주하기 위한 인기를 얻기 위해 꼭 3관을 할 필요 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메지로 가문을 빛내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고 있으니 열심히 해야겠지.


그녀는 나를 신뢰하고 있다.


처음 내가 그녀에게 도움을 준 이후로 쭉 나를 신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의 ‘살찌기 쉬운 체질’을 고쳐준 이후로는 거의 맹신에 가까운 신뢰를 보내고 있다.


가성비 죽이는데?


————— ⏰ —————


사츠키상과 일본 더비.


메지로 맥퀸의 2관 달성 소식은 메지로 가문에 큰 명예를 안겨주었다.


나는 이미 한 번 경험한 승리인 만큼 큰 감흥은 없었다.


그저 어린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유려한 춤선과 아름다운 목소리는 그녀의 위닝 라이브를 한층 더 인기있게 만들어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의 팬이 생겼다.


그런데 메지로 맥퀸의 팬카페 이름이 ‘메지로시티’인건 대체 무슨 경우지?


괴문서가 현실을 고증한건가?


아니면 현실이 괴문서를 고증한걸까?


그녀는 나에게 내 덕분이라며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그저 네가 열심히 한 것일 뿐이라고 다독여주었다.


실제로 그녀가 한 노력을 알고 한 말이었기에,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내가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 ⏰ —————


또 여름 합숙…


나는 겸사겸사 대형마트를 찾았다.


1회차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우마무스메들은 여름 합숙에 기본적인 세면도구나 옷들을 가져가는 것 외에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 추가적인 물건들을 챙겨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수요가 많고 부족했던건 역시…


“당근 아홉 상자… 배달 해드릴까요?”


“네. 중앙 트레센 트레이너 기숙사…”


‘당근을 그렇게 많이 쳐먹을줄 누가 알았냐고.’


당근을 호소하는 우마무스메들의 요구에 주변 야채가게를 미친듯이 찾아다녀야만 했던 경험을 다시는 하고싶지 않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당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말을 하면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 ⏰ —————


나는 우마무스메들이 더 많은 당근을 요구하자 준비해둔 당근을 제공해주었다.


키류인은 이런 상황이 일어날줄 어떻게 알고 있었냐고 놀라했고.


이사장은 눈물을 흘리며 감탄했다.


당근으로 만드는 기상천외한 요리들은 솔직히 모양은 좋았지만 먹고 싶지는 않았다.


메지로 맥퀸은 편식을 하면 몸에 좋지 않다며 나를 혼냈다.


네가 무슨 크릭이냐…


————— ⏰ —————


믿을 수 없었다.


여름 합숙 공연날…


슈퍼 크릭은 자신의 캐릭터송을 부르며 공연했다.


들어줬구나…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아려왔다.


역시 저 노래는 크릭이 불러야 가장 좋았다.


크릭은 노래를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이 노래는 음원조차 존재하지 않는 자작곡입니다.”


“어느날 타즈나씨가 분실물이라며 저에게 건네주신 MP3에는 마치 저에게 전하는 편지라도 되는 것처럼 제 이름이 적혀있었고, 거기에는 이 노래의 풀버전과 MR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노래를 작곡해주신 분이 이 자리에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노래는 저에게 정말 큰 힘이 되어주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드라마 같은 사연에 우마무스메들이 박수를 치던 중, 나는 타즈나씨와 눈이 마주쳤다.


타즈나씨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새것같은 MP3를 다짜고짜 분실물 이라면서 건네주셨을 때는 왜일까 싶었는데…”


“그녀에게 저 노래를 전하고 싶어서였군요.”


“뭐… 그렇죠.”


“작곡 실력이 좋으시던데요, 크릭양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곡이었답니다.”


“제 정체를 그녀에게 말하셨나요?”


“아뇨… 사연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항상 신중하게 대하는 편이랍니다.”


나는 문득 타즈나씨에게 느꼈던 위화감이 신경쓰였다.


“타즈나씨에게도… 어떤 사연이 있나요?”


“사람들은 누구나 사연 하나쯤은 갖고 있는 법이죠.”


“물론 우마무스메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테고…”


타즈나씨는 어딘가 씁쓸해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모처럼 즐거운 여름 합숙인데,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는거로 괜찮을까요?”


“네… 그럽시다.”


그녀가 숨기고 있는 사연은 무엇일까.


그걸 알게 될 날이 오기는 할까.


————— ⏰ —————


국화상에서 우승하고 3관을 달성한 맥퀸은 승리의 전율에 무의식적으로 꼬리를 미친듯이 움직이면서도 사람들에게 기품있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3관…


누군가는 그저 닿을 수 없는 꿈이라고 여기는 명예.


처음 3관을 달성했을 때는 나도 무척이나 기뻤지만, 두 번째로 달성하는 지금은 조금 다른 것이 보였다.


국화상에서 꼴지를 하고 눈물을 참아내고 있는 한 우마무스메.


분명 이 경기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겠지.


승자가 있으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패자가 있다.


그 사실을 의식하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우마무스메.


그중 명예를 얻고 반짝일 수 있는 우마무스메는 몇 명이나 있을까?


그 아래에서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도 닿지 못하는 우마무스메는 몇 명이나 있을까?


————— ⏰ —————


메지로 맥퀸은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항상 메지로 가문을 빛내려고 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이야기를 재차 하는 이유는, 그 태도가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을 필사적으로 감추려는 듯한 느낌.


“조금은 자신을 드러내보는게 어때?”


“…무슨 말씀이신가요?”


“메지로라는 이름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했거든.”


“…”


그녀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모두의 앞에서 메지로의 이름을 내세우는 그녀의 태도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만큼 그녀는 많은 것을 스스로 부담하려고 하는 거겠지.


자신의 행동 하나가 가문에 영향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말 한 마디가 메지로 가문을 대변하는 거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분명… 괴로울 것이다.


어마어마한 부담감을 스스로 짊어진 채로, 무척이나 괴로워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잠깐 움찔 했으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3관의 명예를 안게된 메지로 가문의 유력한 후계자, 메지로 맥퀸.]


문득 한 기사의 제목이 떠올랐다.


“3관 축하해. 맥퀸.”


“…읏.”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더니 트레이너실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이런. 실수한건가?”


————— ⏰ —————


“하아…”


맥퀸은 한동안 기숙사 방에서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어째서 그렇게 내면이 요동치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정말이지 당신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에게 있어서 메지로의 명성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가… 좋은 이름이네. 맥퀸.’


그저 ‘맥퀸’.


단지 그뿐이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 ⏰ —————


클래식급 아리마 기념을 앞두고 있는 지금.


그는 1회차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몇 배는 더 열심히 노력했고.


그 피로가 쌓여 트레이너실에 접이식 침대를 펴고 잠을 자고 있었다.


“트레…”


트레이너실을 찾아온 맥퀸은 그 모습을 보자 몸이 굳었다.


‘이런… 깊게 잠드신 걸까요?’


그녀는 그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자고 생각하며 트레이너실을 둘러보았다.


‘항상 트레이너실은 들어올 때마다 인스턴트 커피 향이 잔뜩 났었죠… 제대로 쉬기는 하시는 걸까요?’


‘쓰레기통에는 식사 대용 간단식품 쓰레기만 잔뜩…’


한동안 그의 건강을 걱정하던 그녀는 문득 책상 위에 놓여있는 자신에 관한 자료를 보았다.


자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을지.


자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을지.


그녀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잠들어있는 그의 곁에 다가가 몸을 수그리고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가에 다크서클이 생기셨사와요.’


무방비하게 잠들어있는 그의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 어떤 충동이 느껴졌다.


‘그런가… 좋은 이름이네. 맥퀸.’


자신을 바라봐주는 트레이너를 누구에게도 넘기고 싶지 않은 마음.


우마무스메 특유의 독점력.


‘정말이지 당신은…’


그녀는 그의 뺨에 수줍게 입을 맞췄다.


‘이상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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