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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서] 괴문서) "이번 새해에는 집에 있어야 하겠네"

불쏘시개(58.125) 2023.12.30 23: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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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년에는 돌아가시지 않는 건가요?"


한창 신년을 맞이하기 전 자신들에게 찾아 들어온 연하장들을 정리하는 트레이너에게 그의 담당, 메지로 아르당이 입을 조심스레 열었다.


"올해는 안 돌아갈까 싶어."


해 마다 신년을 맞이 하기전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가 제 부모님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트레이너가 이번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자 아르당은 걱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머, 의외네요. 해마다 신년이 찾아오기 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셨잖아요. 어떤,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그도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르당의 눈길을 눈치챘기에 올해 돌아가지 않을 이유를 곧장 설명했다.


"아르당이 걱정 할 정도의 일은 아니야. 우리가 겨울방학을 맞이할 때 한 번 찾아뵙기도 했고, 그때 부모님이 올해에 더는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거든."


"먼 타지에서 일하는 자식이 힘들지 않게 배려하는 거군요..."


"아마 그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배려하려는 모습을 떠올린 아르당은 자식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아름답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기전 짐이 한가득 들어가 빵빵해진 캐리어와 옷장에서  못 보던 여름 피서 복장을 눈 여겨 보고 있었다.


십중팔구 동생들이나 트레이너 몰래 따뜻한 남쪽 나라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란걸 눈치채고 있었지만, 감상에 젖은 아르당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작업하고 있던 연하장를 정리했다.


"그런데 이 연하장들은 뭐죠? 분명 편지지는 신년맞이 연례행사처럼 보내는 편지가 맞는데... 아직 신년이 찾아오려면 멀었잖아요. 그런데 왜 지금 연하장을 보내는지?"


"내가 신년에는 본가로 돌아가잖아. 날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신년에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신년이 오기 전에 미리 보내는거지."


"그러면 보통은 트레이너씨의 자택으로 편지가 찾아오지 않나요? "


"연말 연초에는 이리저리 부르고,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집에 있는 경우가 거의 없지."


이맘때 쯤에 그가 바쁘다는건 그의 지인이라면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비단 트레이너뿐만 아니라, 연말연초에 바쁘지 않은건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들뿐이고, 학업도 끝난 시점에서 아이들만 누릴 수 있는 아이들의 특권이었다. 


그의 담당인 메지로 아르당도 지인에 속하기에 트레이너가 바쁘다는것 쯤은 얼추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집에도 못 돌아갈 정도의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트레이너씨 그말은 즉슨... 지금까지 집에도 제대로 못 돌아가시고 있었다는 뜻이예요?!"


아르당이 화들짝 놀라 단번에 트레이너에게로 달려갔다. 너무 바짝 다가온 그녀 때문에 바짝 긴장된 그를 그녀는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정작 그에게서는 피곤해서 나오는 짙어진 눈가도 그 흔히 일어나는 피부의 트러블 조차 보이지 않았다.


연말연초에는 술 약속도 잡혀있을 터 그런데, 그의 몸에선 알콜냄새는 고사하고 향기로운 라벤더향만이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다.


"트레이너씨...? 분명, 집에 못 들어간다고 들었었는데..."


"아, 아르당 양? 조금은 떨어져 주시는게 좋을 것 같습..."


그의 입에서 높임말이 들려왔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본의 아니게 흥분을 하는 바람에 트레이너씨를 곤란하게 만들어버렸네요."

 

"아닙니다. 저야 말로 아르당 양을 놀라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트레이너의 사과가 끝나자 무섭게 아르당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옛날 트레이너씨의 모습이 남아있네요."


"네... 습관이라는건 쉽게 사라지지 않는법이니까요."


트레이너는 먼 타지에서 온 사람이었다. 연고조차 없는 일본에서 일본인들도 들어가기 힘든 중앙 트레센에 당당하게 합격을 하고 근무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이방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변에서 걱정 어린 시선은 물론이요, 시기와 질투, 이유 모를 혐오도 받으며 차별을 스스로 이겨내야했다.


일본 우마무스메계에서 감히 넘 볼 수도 없는 메지로 가의 규슈이자 보물과도 같은 메지로 아르당의 선택으로 트레이너 발탁이 되었을 때도, 그러한 시선은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어찌 일본을 상징하는 메지로가 트레이너를 외국인에게 맡기냐는 목소리도 존재했고, 그들에게서 은근히 가해지는 압력도 받았다.


심심치 않게 혐오 단체에서 협박 전화와 팩스로 전해진 살인 예고도 심심치 않게 받았다.


그럼에도 그가 지금까지 문제 없이 아르당의 트레이너로 지내온 배경에는 그의 태도가 큰 역할이 되었다.


메지로에서 대외적인 그를 향한 비난을 막아주었어도 뒤에서 일어나는 그를 향한 무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문화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라는 점도 사람들이 그를 쉽게 믿지 못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아르당의 트레이너는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동료들을 비롯해 트레센의 직원들, 후배, 학생들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그들에게 높임말을 사용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쉽게 동요하는 모습 없이 감정을 조절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망설임 없이 찾아가 도움을 주었다.


아주 사소한 도움일지라도 그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면 트레이너는 반드시 감사의 말을 전하고 그 일을 잊지 않고 도움을 준 이들에게 살갑게 대해주었다.


가장 기본적인 예의를 스스로에게 강조하며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주는 트레이너에 대한 거리감도 이내 사라졌다. 싫어하는 사람들도 사라졌다. 물론, 그의 훤칠한 외모가 그에 대한 호감을 쉽게 사버리는 요인으로 크게 작용했다. 


메지로 아르당도 이러한 친절한 점 때문에 그를 트레이너로 삼았다.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 트레이너가 아르당을 비롯한 친한 지인들에게는 높임말과 같은 신사적인 태도로 줄였으나 간혹, 일련의 일과 같이 누군가 너무 깊이 다가온다면 이번에는 적절한 거리감을 두려고 높임말을 사용했다.


"그러면, 트레이너씨는 집에 돌아가지 않으셨다면 숙식은 어디서 해결하신 거죠?"


"트레센에서 트레이너들을 위한 휴게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잠은 거기서 자고, 식사는 카페테리아에서 해결해왔지."


"옷은요? 집에 못 들어가셨다면 갈아입으시지도 못하셨을 텐데..."


"이런 일은 익숙해져서 휴게실에 내 옷 몇 벌 가져와서 갈아입고 있어. 샤워도 거기서 해결해. 널 매일 봐야 하는데 꾀죄죄하게 있을 순 없으니까."


"저기... 이런 식으로 집에 안 들어 가신지 몇 칠 되신 건가요...?"


"아마... 쓰읍... 일 주일 됐나? 크리스마스 전에도 집에는 자주 못 들어갔던 것 같은데... 아르당?"


언제 집에 돌아갔는지 유심히 고민을 하는 동안 트레이너는 손을 꽉 진 체 몸을 떨고 있는 아르당을 보았다. 


트레이너가 바쁘다는 걸 알았지만, 이토록 바쁘게 살고 있는 줄은 모르던 그녀는 트레이너의 손을 덥석 잡았다.


"트레이너씨, 당장 트레이너씨 집으로 가죠."


-------------------------------------------



트레이너는 아르당이 집으로 데려가자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아직 근무시간이 남아있었고, 처리하지 못한 작업들도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뭣 보다 자기 제자여도 일단은 여자아이인데 그런 여자아이인 아르당을 자신의 집에 들인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아르당, 중전차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약점인 유리와도 같은 다리를 가지고 트레센에 도전하던 그 고집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반쯤 체념하고, 나머지 반은 억지로 끌려간 체로 그녀를 집으로 들이고야 말았다.


트레이너가 절대로 들이고 싶지 않았던 집에 아르당이 먼저 들어서자 그녀가 가장 먼저 한 건 집안의 간단한 청소였다.


깔끔하던 성격이 어디 안 가는지 집안은 대체적으로 깔끔한 편에 속했다. 어디 하나 어질러진 흔적조차 없이 설거지도 끝나있었으니, 에어 그루브가 이 광경을 본다면 바쁘다는 이유로 집안 정리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제 트레이너에게 잔소리 융단폭격을 할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집안을 싹 훑어보더니 청소기로 바닥부터 먼지를 청소했다. 집안의 상태가 좋더라고 하더라도 오랜 비운 시간만큼 먼지가 쌓이는 건 피할 수 없었기에 집안 곳곳에는 창 밖으로 나가질 못한 먼지가 쌓여있었다. 


청소를 마친 아르당이 부엌으로 가 있는 동안 소파에 강제로 앉혀져 있던 그는 휴대폰을 꺼내 트레센의 비서의 연락처를 찾았다.


"보고도 없이 근무지 이탈이나 하고... 일단 전화라도 해놔야..."


"휴대폰은 압수예요."


전화를 걸기 무섭게 어느새 뒤에서 찾아온 아르당이 휴대폰을 빼앗았다.


"트레이너씨의 근무 이탈은 제가, 저희 메지로가를 통해서 트레이너씨의 휴가 처리를 부탁했습니다."


그녀가 전화를 한 흔적은 전혀 안 보였는데... 이토록 빠르게 처리 할 줄은 몰랐다.


"휴가 처리... 그렇게 해준다면 괜찮기는 한데, 그... 내 휴대폰은 돌려주지 않을래? "


"안 돼요. 휴대폰으로 연락이 오면 또 나가실 거잖아요. 기껏 쓰신 휴가인데, 트레이너 씨는 지금 밖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활동하셔야 해요."


"음..."


맞는 말이어서 이렇다 할 반박도 못 하고 아르당이 휴대폰의 전원을 끄고 앞치마 주머니에 넣는 걸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주방에서 뭐해?"


휴대폰도 빼앗기고 집에서 외출 통제까지 당한 그의 관심은 자연스레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무거워지기 싫은 엉덩이를 일으켜 아르당이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트레이너씨는 원래 신년에 무얼 하실 계획이셨나요?"


"신년게획? 그냥, 떡국이나 만들어 먹고 술 약속 있어서 나가려고 했는데... 아!"


"그 술 약속도 취소시켜 드리죠."


약속을 멋대로 취소시킨다는 말에 그는 어떠한 변명의 입장도 내비치지 않았다. 약속을 취소시키는게 예의에 어긋나는 일 일수 있어도 제자가 제대로 쉬지 못하는 자신을 쉬게하려는 노력이 기특해서라도 말을 아꼈다. 


대신, 트레이너는 대화의 주제를 아르당이 가져온 식재료로 대화를 이어가려고 했다.


"대파에, 달걀, 소고기, 간장에다가 다진 마늘?"


"그리고 참기름하고 사골 육수도 준비했답니다. 떡도 준비해왔고요."


식재료를 보자 말자 한 가지 요리가 머리 속을 강렬하게 치고 떠올랐다.


"떡... 국? 진짜?!"


"네."


"야호!"


떡국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트레이너의 얼굴이 곧장 환해지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평소에는 보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들뜬 그를 보니 아르당도 덩달아 웃음 꽃을 터트리며 그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응! 당연히 좋지. 내가 얼마나 떡국을 좋아하는데. 떡국을 만들 줄 알았던 거야? 언제부터?"


"떡국을 만들 수 있게 된 건 최근이에요. 사실은 신년에 끝나고 트레이너씨에게 떡국을 대접해드리고 싶었어요. 같이 떡국을 나누어 먹고 신년 분위기를 같이 즐기고 싶었거든요."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새해를 보내는 건 그녀의 바램이었다. 허나 그 바램은 트레이너가 신년에 맞춰 고향으로 돌아가버리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않은 바램으로 남을 뻔 했으나, 우연한 기회로 그는 일본에 신년을 보내게 되었다. 이 기회를 아르당은 놓치지 않고 준비해둔 새해 계획을 미루지 않았다.


"아르당의 떡국이라, 기대되는 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네요. 그래도 트레이너씨의 입맛에 맞을지는 몰라서 조금은 걱정이에요."


"걱정하지마, 요리는 정성이야. 아르당이 날 위해서 만들어 주는 떡국인데 내 입맛에 안 맞을 리가 없잖아."


"어머..."


떡국에 정신이 팔린 그는 아르당의 뺨이 약간 붉어진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르당 대단하네. 언제부터 준비한 거야?"


"구상은 작년 연말부터 준비를 해왔어요. 원래는 떡국이 아니라 일본식 새해로 트레이너 씨를 놀라게 해드리려고 했으나, 트레이너 씨를 놀라게 하려면 오세치보다 떡국이 트레이너 씨를 더 놀라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다면 성공이네. 나 지금 엄청 놀랐거든. 일본식 새해라. 트레이너가 되기 전 까지는 늘 혼자 지내와서 새해는 챙기지도 못했는데, 챙겨도 그때는 고향에서 새해를 맞이했고."


"분명, 한국에서 새해는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한 다음에 떡국을 먹죠?"


차례와 세배를 알고 있다는 말에 트레이너를 또 한번 놀래켰다.


"그렇기는 한데 우리는 일본처럼 새해에 뭔가를 많이 하질 않아. 요즘은 차례를 안 지내는 집도 많고 세배를 하는 모습도 요즘은 보기 힘들어졌거든. 옛날에는 세배하는 모습도 많이 보고 세배도 매일하고 싶었는데 말이지."


"세배는 집안의 어른들께 큰 절을 올리는 거 아닌가요? 그걸 매일 하고 싶은 이유가 있나요?"


"세배를 하면 우리는 집안 어른들이 세뱃돈을 주셨거든. 떡국 먹는 것도 좋았어. 새해에 먹는 떡국은 특별했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나보네요."


"그것까지 알고 있었던 거야?"


"네. 떡국을 만들면서 떡국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조사를 했어요. 떡국에 관한 조사만 한 건 아니에요. 한국 문화에 관해 관심도 생기고 한국말도 착실하게 배워왔으니까요. 이제 간단한 인사말이나 제 소개를 하는 말 정도는 한국어로 할 수 있어요."


의기양양해진 아르당은 또박또박 한국어로 자신의 이름과 자기소개를 마쳤다.


"너무 잘해서 한국인 인줄 알았어."


"그 정도는 아니에요."


트레이너의 칭찬에 어찌 몸둘바를 모를 아르당이 쑥스러워하며 뒤로 묶은 머리를 매 만지고 있었다.


"한국말 배우는건 어렵지는 않았고?"


"네. 트레이너씨 하고 대화를 하고 싶어서 그런지 어렵지 않았어요. 그리고, 좋아하는 말도 생겼고요."


어쩜 저렇게 말을 예쁘게 잘할까. 늘 생각해 온 거지만, 그는 자신의 담당이 아르당이었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늘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이긴 해도 자기 마음을 전하고자 할 때는 확실하게 전하는 아이.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의 상처에 괘의치 않은 자기희생이 강한 아이.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갔다.


불가능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 계속 자신이 겪는 상처를 괜찮다고 하며 숨기는 모습, 그러면서 남을 함부로 험담을 하지 않고, 걱정을 가장한 무시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이겨내는 아이. 그게 메지로 아르당이었다.


자신과 닮은 꼴 때문인지 첫 대면에서의 알 수 없던 호기심이 서로가 숨긴 모습을 보여주며 관심으로 발전했고, 관심이 지금까지 이어져 지금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그는 아르당에게 연심이 있다.


아르당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고, 그 점이 트레이너가 다행이라고 여기는 점이었다.


자기 감정에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나머지 납치와 최면, 공갈과 빼앗는게 디폴트값인 트레센에서 아직 고백을 하지 않는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기다려주는 아르당이였다.


지금은 학생의 신분이기에 고백을 못해왔지만, 성인이 되고 그녀가 자신의 삶에 자기를 절실하게 필요하게 되면 고백을 할 것이었다. 그 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평범한 트레이너와 담당으로 지내는 주는 그녀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르당이 이제 떡국을 준비하는지 꺼내 놓은 재료들을 하나하나 집어가기 시작했다. 부족한 재료가 있었는지 냉장고의 문도 함께 열었다. 그러다가 트레이너는 아르당이 준비해둔 떡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떡이 너무 적어. 딱 2인분 양이긴한데... 우리 둘이서 먹기에는 부족해.  밥이라도 말아 먹으려 하나? 국에 밥 말아 먹는 것도 맛있긴 하지.'


트레이너가 아르당의 떡국을 기대하는 동안 그는 그녀의 다음 행동에 의아해 했다. 꺼내 놓던 재료들을 다시 냉장고안으로 넣는데 아니겠는가. 그리고 앞치마도 뒤로 머리를 묶던 머리의 머리 끈도 풀고 있는 그녀에게 떡국을 만들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문제라도 생긴 거야?"


"네, 떡이 없어서요."


떡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건 우연히 아니었다. 요리를 준비하던 그녀도 재료를 준비하는 동안 같은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리 여기고 트레이너는 지갑을 챙겨 들었다. 떡이 부족하다면 사오면 그만이니까.


"앞에 마트에서 사올게. 금방 다녀올 거야."


"그럴 필요 없어요. 이제부터 하면 되니까요."


나가려는 트레이너를 제지하는 아르당. 뭘 하는 걸까 의문을 가지기 시작할 때 그녀가 무얼 만들지 말해주었다.


"떡을 칠 거예요."


"....."


순간 잘 못 들었나 싶었다. 한국어로 또박또박하게 떡을 칠 거라고 했다. 머리가 까마득하게 하얘지기 시작했다.


"떡을... 만들 거란... 이야기지?"


그녀가 한국어 패치가 잘 못 되었길 빌었다. 혹시나 싶겠지만, 한국어를 배웠다면 떡을 친다는 말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쯤은 알고 있을 수 있다. 공공연하게 알려진 그들만의 은어인 우마뾰이를 하고 싶다. 그런 말을 그녀의 입에서 듣을거라곤 상상조차 안 해본 그는 아찔해진 정신줄을 어떻게든 붙잡아보았다.


"... 네, 트레이너씨의 생각이 맞아요."


잠깐의 침묵이 숨을 막았다면 그 뒤에 이어진 대답으로 막힌 숨이 이제야 쉬어지는 느낌이다. 그럼 그렇지, 말이 잘 못 나온 게 맞았다.


"트레이너씨, 그런데 저는 떡을 친다는 한국말을 좋아해요. 일본의 새해에는 떡을 쳐서 모치츠키를 만들어 새해에 가족들과 나누어 먹지요."


모치츠키를 만드는 법을 우마튜브에서 봐왔다. 건장한 남성 한 명이 손에 물을 묻혀 절구 속 떡을 치기 좋게 만들면 나무망치를 든 건장한 남성이 떡을 치는 장면은 그의 기억에 깊게 뇌리 박혀있었다. 그 보다 너 뇌리에 박히는 장면은 앞으로 한국말로 떡 치고 싶다는 아르당이었다.


"모치츠키도 맛있지. 그래도 지금 여기서 떡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칠 수 있어요. 지금 당장도 가능해요."


눈빛이 바뀌었다. 언제나 온화하게 웃던 눈이 도끼눈으로 바뀌어 트레이너에게 다가오고 있다. 트레이너가 침을 삼켜 뒷걸음질을 해보지만, 여기는 갇힌 공간이었다. 도망쳐도 우마무스메를 상대로 도망칠 수는 없었다.


긴장되어 떨리는 트레이너와는 대비되게 아르당은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어요. 한국말을 지난 연말부터 배워왔는데 틀릴 리가 없잖아요."


"언제부터... 언제부터 계획한 거야...?"


언제부터 계획했는지는 답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까 같이 신년을 보내고 싶어서 계획을 구상했다고 언급했으니, 지금 그의 질문은 그녀의 입장에선 쓸데없는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


"트레이너씨는 언제나 제 옆을 지켜주셨죠. 제 다리가 제 꿈을 앗아가도 언제나 트레이너씨는 곁을 지켜주셨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임에도 저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요. 저는 그런 트레이너씨가 좋았어요. 옆을 지키는 트레이너씨가 마치 기사와 같아서요."


"이, 이러면 안돼 아르당... 아직 우리는 이래선 안돼, 너도 미성년자이기도 하니까 이런 건 성인이 되고 나서-"


"새해가 지나면 어른이 되는 걸요."


"일, 일본은 생일이 지나야 나이가 드는데..."


"한국은 새해가 지나면 나이를 먹잖아요."


"우리도 이젠 생일 지나야 나이를..."


"새로 만든 법보다, 오랜 풍습을 지키는 게 새해를 즐기는 거 아닐까요?"


아르당의 말도 안되는 궤변에 그는 더 이상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음을 직감했다.


다가오던 그녀는 흐뭇하게 웃으며 그를 껴안고 말았다. 교복 넘어 전해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감촉으로 온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굳어버린 그의 몸에서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신체는 그녀의 향으로 간지럽히는 코 끝과 방황하는 두 손이 유일했다.


그녀는 그의 선택을 존중해서 기다린 게 아니었다. 곁에 있으면서 중요한 순간에는 자리를 지키지 못해 기회를 얻지 못한 메지로가의 아가씨였다. 그녀는 기회가 오지 않아서 실망하기보다 굳은 심지마냥 때를 기다렸다.


자길 위한다고 휴가조차 가질 않는 그, 일에 치여 집에 들어가지 않는 그, 절대 거리를 두며 그녀를 집으로 들이지 않는 그를 잡기 위해서. 트레이너의 부모님께 해외 여행권을 제공하고 신년에 집에 머물게 만들었다. 그가 연말에도 쉬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트레센에 휴가를 사용케 했고, 억지로라도 쉬게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집에 들어오는데도 성공했다. 방해 받지 못하게 외부와의 연락도 휴대폰을 뺏음으로 차단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러는 제가 싫어진다면 높임말을 써주세요."


거리를 둔다면 그는 그녀에게 거절의 말이 아닌 그녀에게 평소처럼 높임말을 사용할 거다. 그게 그가 거절하는 방식이니까. 그러나, 그녀의 예상대로 그는 차마 높임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는 승낙의 의미로 고개만 떨굴 뿐이었다.


"나가실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예요. 트레이너 씨가 휴가를 안 써주신 덕분에 이번 연말 연초 휴가는 아주 기니까요. 떡국을 먹을 기회도, 그 떡국을 더 먹기 위해 부족해진 떡도 저와 함께 많이 쳐야 할 테고요. 저의 한국말, 알아들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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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새해 떡국을 소재로 삼지 않았지. 없으면 가내 수공업으로 만들면 그만이야.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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