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신분인 것을 들킬까봐 군복을 벗어던지고 도망가 도로에 널브러진 남베트남군 군복들
남베트남 대통령궁으로 진입하는 월맹군 59식 전차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후, 남베트남군은 미국에서 공여 받은 수많은 최신 무기들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졸전을 계속하였다.
전방에서 "최정예"라고 목에 힘을 주고 다니던 1군단과 2군단은 몇번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하룻밤 사이에 사단급 병력이 무기를 버리고 탈영하는 사건이 벌어질 정도로 순식간에 와해 되었고
남베트남군에 유의미하게 남은 병력은 후방의 부실한 3군단과 4군단 만이 남아 있었다.
(이 때 이미 남베트남 대통령과 정부 고위 관료들은 남베트남에서 탈출했다.)
그나마도 3군단은 감편 사단으로 최약체라고 조롱 받던 레민다오 소장의 18사단과 잔존 남베트남 레인저 여단 등 일부 특수부대만이 남아 있어 도저히 "군단"이라고 불러줄 수 없을 정도의 규모였고
4군단은 민병대와 경찰 병력만으로 이루어져 군대조차 아니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3군단은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으로 향하는 길목인 "쑤언록"에 배치되었고
이윽고 월맹 공산군의 3개 사단이 공격해옴으로써 사이공과 남베트남이 끝장나나 싶었으나
레민다오 소장의 18사단은 공산군 3개 사단의 공세를 저지시키고 심지어 반격을 가해 쑤언록 근처의 고지들을 재점령하는 쾌거를 올린다.
이 과정에서 무려 12일 동안이나 월맹군에게 5000여명의 사상자를 입히며 쑤언록과 사이공을 방어해냈는데
이 12일 동안 수많은 남베트남 민간인과 미국, 동맹국 인원들이 피난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낸 것이다.
(그 시각 사이공에서는 마지막 권력의 한줌을 붙잡기 위해 쿠데타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공산군은 사이공을 함락시키기 위해 곧 기갑 여단과 10개 사단을 추가로 투입했고
결국 레민다오 소장과 18사단, 레인저 여단은 사이공으로 후퇴해서 최후의 방어를 준비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 후 치열한 전투 끝에 결국 사이공 방어선은 붕괴되었고 수도가 공산군에게 함락되며 베트남 공화국은 적화통일 되어 멸망하고 만다.
1975년 4월 30일에 남베트남이 항복한 이후에 레민다오 소장은 체포되어 17년 동안 북베트남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1993년에 석방된 이후에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로마숫자로 3이라고 써져있는 군복을 입은사람이 레민다오 소장.
마지막 명령을 내리면서 울고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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