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중이던 1960년대에 김일성은 베트남전과 한국전을 동시에 치룰수 없는 미국의 상황을 이용해 남한에 무장공비를 다수 파견하여 남한에서 저강도 무장투쟁 벌여서, 한국군의 베트남 추가파견을 막고자 했음
실제로 66년에 파견된 무장공비는 35명 67년에는 131명이 남한으로 파견되었음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남한도 무장한 북파공작원을 다수 파견함
당시 1967년도에는 여름 육군 첩보대 인천101지구대와 속초903지구대, 서부·중동부 전선 5개 군단에 배속된 201문산대·202춘천대·203양구대·205운천대·206전곡대의 북파 무장공작대 8개팀 48명이 북한으로 파견되었는데, 군사분계선을 넘어 적진으로 침투해 북한군 군관 막사 건물을 폭파∙기습공격해 적병을 사살하고 장비를 노획해 오라는 중앙정보부와 한,.남동 HID본부의 전통(電通) 지령에 따라 파견됨
당시 북파 무장공작대 1개팀은 장교인 팀장과 척후조(1명)∙폭파조(2명)∙전후방 경계조(2명) 등 6명으로 편제되었음
인천101지구대(위장명칭 '한국문화사')의 번개1팀과 번개2팀은 각각 인제 12사단과 양구 21사단 관할 GOP(전방초소) 철책선 통문으로 침투해 임무를 완수하고 귀환하라는 지시를 하달받았고
이행근 팀장(육군 대위)이 지휘한 번개2팀은 북한군 군관 막사 폭파 임무를 완수하고 천신만고 끝에 귀환했지만.
최강형 팀장(육군 대위)이 지휘한 번개1팀의 팀장과 김덕재∙김창덕∙장정혜∙전운성 등 5명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음. 속초903지구대의 북파 무장공작대원 강교춘∙김용태도 작전중에 북한군한테 사살됨
67년 8월 응징보복 작전에서 전사한 7명 가운데 장교인 최 팀장을 제외한 6명은 인천 국립소년직업훈련소 출신의 소년병이었음. 당시 국립소년직업훈련소 '운영규정'(보건사회부령 제155호)에 따르면 입소 연령은 '시설에 수용된 14세부터 18세 이하의 아동'으로 제한되었다. 정부가 '고아이면서 신체가 건강한 아동들'을 데려가 북파 무장공작의 '소모품'으로 쓰고 버린 것임
당시 북한의 대응은 상당히 강경했는데 북한측이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 옆에 전우들의 시신 7구와 유류품(遺留品)을 전시해 놓고 남측의 정전협정 위반을 강력히 항의했는데, 유엔사측은 중앙정보부와 육군 첩보대의 부인 방침에 따라 "북측의 자작극"이라며 북파 무장공작 사실을 강력 부인했고 시신을 인수해가라는 북한의 통신을 과감히 씹음
당시 번개 1팀 폭파조 홍재곤 씨(17세), 그리고 전우들과 판문점 현장에 간 육군 첩보대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북측은 북한군 복장을 한 전우들의 시신 7구와 북한군 배낭, 그리고 개머리판 없는 M2카빈소총과 수류탄 등 노획품을 판문점 회담장 주변에 '정전협정 위반 증거품'으로 전시해 놓고 본회의에서 강력 항의했다고함
그자리에서 하지만 유엔사(한미) 측은 북측이 침투 중에 전사한 북파 공작원 사체의 확인을 요구하자 "우리 군의 병사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오히려 "우리는 정전협정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면서 "시신에 북한 군복을 입혀 놓고 꾸민 자작극"이라고 덮어 씌우기로 일관했다고함
번개 1팀 홍재곤은 1년 뒤인 68년 8월 북측 강원도 평강군에 침투하는 호랑이 공작을 수행했는데,
팀장 김일동 대위와 척후조 임창호∙폭파조 홍재곤∙전방경계조 최운권∙후방경계조 이용우 등 5인이 수행한 '호랑이공작'은 아군 3사단(백골부대) 지역에서 북강원도 평강군에 침투해 적 잠복호를 폭파하고 잠복조를 사살하고 귀환하는 응징보복 전선공작이었음
왜 호랑이냐하면 북파 무장공작원은 '북괴군('당시 군의 공식 용어) 복장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귀환할 때 남파공작원 침투에 대비해 매복한 아군의 총에 맞는 '개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침투한 지역으로 되돌아와야 하는데. 다른 아군 부대에서는 북파 공작원 침투 및 복귀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으로. '호랑이'라는 암구호는 백골부대 수색대 및 매복조에 아군임을 알.리는 암구호여서 호랑이 작전임
호랑이공작 팀은 68년 8월 하순 아군 3사단 지역에서 제초제가 살포된 군사분계선을 넘어 적진 DMZ 들어가자마자 고인돌처럼 넓고 납작한 바위에 오른팔과 왼팔, 두 다리, 그리고 목까지 절단된 끔찍한 시신을 목격했는데. 한 맺힌 표정으로 눈을 부릅뜬 그 시신은 북한군에 사살된 단독첩보수집 공작원이었음
1개팀 5~6명이 폭파∙납치∙사살 임무를 수행하는 무장공작원과 달리 첩보수집∙정찰 공작원은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했는데. 북측은 단독공작원의 토막 낸 시신을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시해서 북파 공작원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사기를 꺾고 투항을 유도하려는 심리전을 전개함
그리고 대원들은 잠시 침투를 멈추고 고개 숙여 묵념으로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척후조가 잘려진 몸통의 배 위에 조그만 돌 하나를 올려 놓는 것으로 예(禮)를 다하고 대원들은 침투를 계속했다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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