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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souvenir(203.243) 2019.01.19 09:58:44
조회 80 추천 0 댓글 1
														

어쩐지 지금 분위기랑은 안 맞는 글인 것 같지만.

유월의 마지막날에 쓴 글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시원한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반가워서 창 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온통 흐렸다. 태풍이 오려는건가 긴가민가했는데 잠시 후 많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날씨가 시원해지기를 바라려면 하늘이 온통 먹빛이 되고 거리에 비가 쏟아져 내리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 여름날의 이중성이란 그런 것이다. 이중적인 것으로 말하자면 비 또한 마찬가지. 실내의 누군가에게 비 내리는 거리는 운치있는 풍경이지만 거리 위의 누군가에겐 그런 풍경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 자신부터가 풍경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비에 대해서 - 건물 안에서 지켜본 비가 아니라 거리 위에서 맞아본 비에 대해서 - 얘기해보자면, 그냥저냥 오는둥 마는둥 흩뿌리는 비보다는 차라리 대책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가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작년 여름 한강공원에 내린 비가 꼭 그런 비였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와 놀고 있는데 하늘이 정말이지 순식간에 먹빛으로 바뀌고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상황파악이 안 돼서 다소 신이 난 채 근처 파라솔로 들어갔는데, 잠시 후 내린 비는 태어나서 맞아본 비 가운데 가장 격렬한 비였다. 파라솔 아래서 우산을 펴봤지만 우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장났고 결국 우산이고 나발이고 흠뻑 젖어야만 했다. 파라솔 아래서 상황 파악이 끝난 후 정말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와 ㅈ댔다 느끼던 그 기분을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볕 아래서 배를 까고 낮잠 자던 외국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던 것도. 내리는 비를 보고 와 ㅈ댔다 생각은 했지만, 막상 ㅈ대고 나니깐 비를 맞으면서 이상하게 신나던 그 기분도. 비는 그렇게 십몇분 가량을 내리다가 잠잠해졌고, 비가 지나간 한강은 꽤나 특별했다. 온통 젖은 채 버스를 타는 것은 싫었지만 (그리고 죄송스러웠지만).

비는 실내의 누군가에게나 운치있는 풍경이겠지만. 맞는 입장에서는 성가시고 짜증나겠지만. 만약 그 때 내가 어느 건물 안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면 과연 그 날의 기억이 이렇게나 선명했을까.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생각했다"는 김애란 작가의 문장을 많이 좋아하지만, 어떤 눈은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일부일 때 특별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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