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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제로의 사역마 23 3화 - 돌아온 지구

ㅇㅇ(121.163) 2018.01.05 22:42:21
조회 669 추천 3 댓글 0
														
3화 - 돌아온 지구

 타원형의 구체가 점으로 시작하여 점점 커지며 서서히 공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위는 한적하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구체를 발견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구체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크기를 갖추자 커지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사람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두 개 토해내고는 커졌을 때 처럼 서서히 작아지더니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사이토는 루이즈를 껴안는 자세로 뒤로 쓰러졌다.
 게이트를 통과하는 건 벌써 세 번째지만 통과하는 도중의 감각에는 도통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래도 경험치가 쌓였는지 루이즈보다 먼저 정신을 차렸다.
 사이토는 자신의 품에 안겨 눈을 찌푸리고 있는 루이즈를 바라봤다.

"루이즈!"
"우으......"
 몸을 살짝 떨며 천천히 눈을 뜬 루이즈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 나서 코앞의 사이토를 바라봤다.
"사이토...사이토!"
애타는 목소리로 사이토의 이름을 부르면서 루이즈는 지면에 누워 자신을 받치고있는 사이토를 힘껏 껴안았다.
루이즈가 껴안은 것 치고 무척이나 강렬했던 지라 사이토는 놀랐다.
"두 번 다시 못 보게 될 줄 알았어..."
사이토는 흐느끼는 루이즈를 보며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이제는 루이즈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안다. 나와 헤어졌을 때마다, 루이즈는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간신히 버텨왔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없는 채로 수십년을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루이즈..."
루이즈는 이세계에 혼자 내던져져 원래 세계를 그리워하는 내 모습을 언제나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면서까지 나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살아갈 수십년을 슬픔으로 보내려 하면서까지.
루이즈도 알고 있을 터이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등진다는 것의 의미를. 이제 두 번 다시 가족과도, 마법학원의 친구들과도 만날 수 없다. 모든 것이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곳에 사이토가 있기에, 그것만을 바라고 그녀는 원래 세계를 등지고 새로운 세계를 택했다.
사이토의 품 안에서 겨우 진정한 루이즈가 고개를 들어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사이토. 그런 슬픈 얼굴 하지 말아줘. 이건 내 선택이니까."
"루이즈..."
 사이토는 루이즈를 애틋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루이즈가 겪게 될 슬픔이 걱정됐지만, 한편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따라와 준 루이즈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안타깝고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넘쳐흘러서 키스를 하려고 얼굴을 가까이 한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트너, 여러모로 감상에 젖어있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주위의 시선을 살펴보는 게 어때."

 "데르프!"
 루이즈를 신경쓰느라 미처 잊고 있었지만 본래 한 명만 통과할 수 있는 게이트가 두 명을 통과시켜준 것은 데르플링거 덕분이었다.
 경황이 없어 이제야 눈치챘지만, 그때의 목소리는 데르플링거였던 것이다.
 루이즈에게 생명을 주고 소멸했다고 생각한 데르플링거는 무슨 영문인지 살아있었다.
 "데르프, 어디야?"
 사이토는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리다 눈치를 챈듯 루이즈의 머리카락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이세계에서 가져온 물건인 데르플링거의 날밑을 품에서 꺼냈다.
 루이즈에게 생명을 주면서 조각나버린 데르플링거의 도신은 라그도리안 호수에 가라앉혔지만 날밑은 사이토가 간직하고 있었다.
 "여어, 오랜만이구나 파트너."
 "데르프, 너 살아있었던 거야? 나는 네가 죽은 줄로만..."
 사이토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최고의 친구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래. 도신을 가라앉힐 때는 본체까지 가라앉혀지는 게 아닐까 하고 식겁했다고."
 "너 본체가 날밑이었냐...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살아난 거야?"
 "나도 몰랐는데...브리미르 녀석, 무기로서 부여된 '체계'는 소멸해도 '의사'는 소멸하지 않도록 해놨더라고. 그건 그렇고 아가씨도 오랜만이야."
 루이즈는 진지한 표정으로 데르플링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데르플링거가 루이즈에게 생명을 주고 잠들었을 때 입에 담았던 감사의 인사말을 재차 반복했다.
 "데르프. 나를 살려줘서 고마워. 그리고,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데르플링거는 쑥스러운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이토도 루이즈를 이어 진지한 표정으로 데르플링거를 바라보았다.
 "데르프, 루이즈를...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줘서 고마워.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정말로..."
 "...뭐 나도 이젠 전설이 아니게 됐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해 파트너. 그리고 아가씨도."
 "물론이지. 내가 간달브가 아니더라도, 데르프가 전설의 검이 아니더라도 우린 친구야"
 "나도...지금까지 말하지 못했지만 데르프를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어."
 세 명 모두 전설이란 칭호이자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그 인연은 여전히 굳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前) 전설들의 감동적인 해후를 방해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어머, 어머. 요즘 애들은 정말이지."
 "그러게 말이에요. 발랑 까져서는. 부끄럽지도 않나봐요?"
 주택가를 지나가던 주부들이었다.
 입가에 손을 올리고 수다를 떨 때 특유의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
 아무래도 사이토와 루이즈가 길가에 드러누워 껴안고 있던 때부터 지켜본 모양이다.
 사이토와 루이즈는 창피해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사이토는 생각했다. 아니 잠깐, 나와 루이즈는 결혼했으니까 이 정도는 별로 상관 없...
 거기까지 생각하다 어느 부부가 길가에 드러누워 사랑을 속삭일까 하는 생각에 다다른 사이토는 말을 아꼈다.
 다행히도 주부들은 서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금세 떠나갔다.
 
 겨우 부끄러움에서 벗어난 사이토는 이제서야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주택가의 한가운데, 자신의 바로 뒤에 자리잡은 낯익은 전원주택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꿈에서까지 보았던, 그리운 자신의 집이었다.
 벽돌담과 좁다란 콘크리트 바닥, 거기 놓여 있는 화분.
 싸구려 합판 문에 달린, 수없이 쥐었다 놓았던 스테인리스 손잡이.
 자신과 부모님의 이름이 적혀 있는 문패...
 눈앞의 현관이 온갖 기억을 되살려냈다. 집 앞에서 만나 같이 등교하던 이웃의 소꿉친구. 방과후 집으로 놀러 왔던 친구. 학교에 지각할 것 같아 정신없이 뛰쳐나가던 일. 어린 시절의 자전거 연습. 벽을 상대로 하던 캐치볼. 그런 별 것 아닌 일들이 선명히 떠올랐다.
 비토리오가 열어준 게이트 너머로 잠깐 살펴보았었던 광경이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보는 순간 그리움과 망향의 감정이 북받쳐왔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이제는 만날 수 있다. 그리운 부모님과 친구들을. 
 가장 소중한 사람과 꿈꿔왔던 순간을 함께 맞이할 수 있다. 

 사이토는 루이즈의 작은 손을 잡고서 초인종을 살며시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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