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창작] 한태후본기 (中)

까다로프스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12.09 19:46:59
조회 1855 추천 70 댓글 21
														




한태후본기 (上):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808229








태후께서 답하셨다.


“천하를 천하로써 써야만 비로소 천하를 얻은 뒤에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大夫)들은 다른 대부보다 앞서 영달하여, 자신이 얻은 부귀를 집안에 길이 물려주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대부의 집안처럼 쓰면, 반드시 다른 대부들에 의해 망하게 될 것입니다.


군주들은 나라의 백성을 늘리고 강역을 넓혀, 다른 나라를 제압하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하나의 나라처럼 쓰면, 반드시 다른 나라에 의해 망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혼군(昏君)이라 불리는 자는 그러므로 대부와 다를 바 없었고, 패자라 불리는 자는 범용한 군주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싸움은 그치지 않고, 무너져야 마땅할 나라가 무너지지 않으며, 사민(士民)은 진멸됨을 면하지 못합니다.


감히 아뢰건대, 진나라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진의 국토는 사방 수천리에 이르며, 용맹한 군사는 수십만입니다. 칠국 가운데 진보다 군령이 명확하고 상벌은 엄정한 나라 또한 없습니다.


그런데 영토를 몇 천 리나 넓혔건만, 그토록 짓밟히고 무너진 조나라도, 초나라도 귀부해오지 않고 있습니다. 군기는 망가지고 백성은 병들었으며, 축적한 곡량은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진의 영광이 곧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여쭙겠나이다. 천하의 절반인 진을 지니고도 이러할진대, 천하의 나머지 절반을 삼킨 뒤는 또 어떻겠습니까?


무릇 법이라는 것은 마땅한 술(術)로써 세우고 세(勢)로써 뒷받침하여야 합니다. 전란에 맞는 법을 태평한 때에 지키는 것은 올바른 술(術)이 아니며, 수십만 군사를 제압하는 힘으로 수천만의 천하 백성을 제압하려 하는 것은 대세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천하에 먼저 공표하십시오. 진이 여섯 나라를 아래에 거느려 천하를 하나로 합하면 천하에 진나라의 법을 세울 것이 아니라, 칠국이 기꺼이 한마음으로 따를 천하의 법을 세울 것이요, 이로써 난세를 영구히 끝마칠 것이라고 뜻을 드러내십시오.


그리하면 진나라 백성들의 세금을 뇌물로 받아 대왕께 이로운 말을 하고 저의 나라에 있는 충신들을 모함하는 육국의 대부들은, 이제 당당하게 ‘천하를 위하여 나라를 바칠 뿐이다’라 할 것입니다.


아직 쓰임을 얻지 못한 선비들, 치술(治術)을 알고 또 권세를 권세로서 사랑할 줄 알며, 세상의 어지러움을 나라의 적보다 더 미워하는 육국의 뜻있는 선비들은 이제 대왕이시야말로 오랜 전란으로 곤궁한 사민을 고루 어루만질 분이시라 칭송할 것입니다.


진나라에 영합하려는 대부들과 천하라는 말에 고취된 선비들을 모아, 육국을 무너뜨리십시오. 마침내 천하가 하나로 모인 뒤에는, 오로지 그 뜻대로 법을 세우고, 이 법을 도(道)로써 섬기십시오. 선비들을 높이 등용하고 쓸모 없는 대부와 육국의 말예들을 억누르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로 모인 천하는 대왕의 뒤에도 나누어지지 않고 일월과 함께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태후께서 말씀하시니, 고조께서 답하셨다.


“좋구나 (善)!”


[이상의 내용은 『한자(韓子)』 <초현고조(初見高祖)>에 실린 바를 발췌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고조께서 하문하시기를,


“하면 그 천하의 법도라는 것은 어찌 세울 수 있겠느냐?”


그러자 태후 답하시기를,


“저자의 장사꾼조차 가장 좋은 물건은 함부로 중인(衆人)에게 보이지 아니하거늘, 어찌 처음 알현한 자리에서 모든 계책을 유세로써 드러내 보이오리까.”


하시었다.










일(逸).






나는 기억한다.


달거리를 시작할 무렵, 아버지의 집 여종들이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여기는 곳에서, 사타구니 한 곳을 제하면 모두 사내와 같노라 수군대던 것을.


진왕 정의 어전에 들기 전 몸을 수색할 때, 자신이 여인 하나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토록 질투와 시기에 붙잡혀 살았음을 깨닫고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며 그저 탄식하던 이사의 모습을.


살면서 처음으로, 감옥과도 같은 집의 바깥에서 나의 목소리를 말더듬이 시늉 없이 그대로 내었을 때, 정(政) 너의 눈에 감돌던 그 이채를.


그리고 또 나는 기억한다.


천하의 법도에 대해 더 듣기를 바란다면, 오직 나를 살려두고 가까이 하여야만 할 것이라는 내 당돌한 말에, 그토록 나를 질시하며 어설픈 논리로 나보다 앞서 스승께 질문하려 애썼던 이사도, 진의 충신을 자처하면서도 진의 국고를 나라 바깥의 요인들에게 퍼주는 데는 그토록 씀씀이가 넓었던 대부 요가도 차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오직 너 홀로 나의 눈을 들여다보았던 것을.


『춘추(春秋)』도, 『승(乘)』도, 『도올(檮杌)』도 모두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면, 무엇을 기록에 남기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 또한 승자의 마땅한 전리품일 터.


그러므로 내 기억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정아, 가련한 아이야, 너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한왕의 서녀 비는 남녀의 분별을 어지럽히고 군주를 속였으니 벌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또한 이처럼 양책(良策)을 지어 바치니, 포상하지 않을 수도 없다.”


만일 내가 정녕 사내였다면, 너는 나를 죽이려 했을 것이다. 가질 수 없는 인재는 죽여 없애는 것만이 답이었으므로.


그러나 너는 항상 영악하였다. 내가 여인임이 밝혀진 이상, 육국의 그 어떤 임금도 이제 나를 들어 쓰지 않으려 할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명하노라. 대부들은 들어라. 즉시 한왕에게 글을 보낼지어다. 그 서녀 비(非)를 내 비(妃)로 들일 것이니, 한왕은 함양으로 찾아와 예물로써 한나라의 남양(南陽) 땅을 바치고 나라 사이의 경사를 축하하도록 하라.”


모두가 명을 받들겠노라며, 형형색색 얼굴빛을 감추면서 고개를 숙일 때, 너와 나 둘만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미 너는 새장에 갇힌 것과 다름없다. 나머지 육국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나머지 세상 어디서도 너의 유세를 비웃음 없이 들어줄 자가 없을 것이다. 너의 정체가 드러난 이상, 네가 그토록 바라는 천하를 펼칠 길은 오로지 하나, 나 정과 함께하는 것뿐이다.'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은 그러하였다.


아아, 정아,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나는 너를 더 이상 탓하지 않는다.


장사꾼 여불위의 아이, 역적 태후의 아들, 태어날 때부터 거짓에 휩싸여, 홀로 나머지 세상과 싸워야 했던 아이야. 어머니의 품에서조차 안식을 배우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신하이자 아버지로부터도 믿음을 배우지 못한 아이야.


너는 참으로 너의 백성을 닮았을 뿐이었다.


봄과 가을을 오랑캐와 싸우는 데 보내고, 여름과 겨울은 너희를 오랑캐라 부르는 육국과 싸워야 했던 너의 백성들처럼, 너 또한 나머지 세상을 두려워한 나머지, 오직 싸움만을 알고 나머지는 잊었다.


세상이 곧 네가 되는 날이 도래한다면, 그때부터 너는 너 자신과 싸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난세가 끝나기를 바랐던 온 천하는, 스스로 난세를 불러오고자 발버둥을 치게 되겠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품게 되었을까?


내 어리석은 아비가 함양에 끌려오듯 찾아온 그날 밤, 너는 나를 침소로 들였다.


알몸 위에 비단 한 겹을 두른 것이 내 옷차림의 전부였다. 암기로써 군주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한 관례라 하였으나, 나의 옷을 갈아입히는 궁녀에게서도, 나를 네 침소로 인도한 환관에게서도, 그리고 내 어깨와 허리에서 비단을 벗겨내던 네게서도 느껴지는 것은 그저 하나뿐.


“추(醜) 또한 이만하면 길이 남으리라. 너의 얼굴과 몸을 보고 색(色)을 떠올릴 자가 천하에 어디 있겠느냐?”


“그리하면 불을 끄시옵소서. 어둠 속에는 색도, 미추(美醜)도 없나이다.”


그리고 너는 내 말에 따라주었다. 함양의 달빛만이 침소를 은은히 비추었다.


“너를 취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사내는, 오로지 눈먼 자들 뿐일 터. 그러나 네게 여인의 쓸모는 없을지언정, 사람으로서의 쓸모는 누구보다 뛰어나지 않겠느냐? 내 이미 너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그리 여겼다.”


거짓말이었다. 너의 마음은 설레고 있었다. 벗이라는 것을, 네가 보는 세상을 함께 보아줄 사람을 처음으로 만났기에. 지금껏 이 침소에 비단 한 겹만 두른 채 찾아온 여인들을 맞이하던 때와 달리, 너의 허리춤은 고요했으나 너의 가슴만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나는 법과 술, 세의 논변을 너로부터 듣기를 원한다. 죽간의 글씨도, 말더듬이 노릇으로 얼버무린 목소리도 원치 않는다. 너의 참된 목소리로, 네가 그리 자랑하던 천하의 법도를 말해다오.”


그리고 나는 그리하였다.


보름달 아래에서도, 그믐달 아래에서도. 불 꺼진 침소에서의 기묘한 담소는 이어졌다. 그사이 내 알몸에 닿은 비단은 한 번도 벗겨진 적이 없었고, 너 또한 맨살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만은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달빛이 드리운 그림자와 어둠 속에서 한없이 이어져 나갔다. ‘너’는 ‘비(非)야’가 되고, ‘비야’가 ‘누님’이 되기까지.


그리고 마침내 네가 격정을 이기지 못하였던 그 밤, 배운 적 없고 풀어내는 방도도 익히지 못한 그 감정의 풍파 속에서 내게 안겨왔을 때, 나는 이미 너의 태후가 되어 있었다.













고조 십오년(BCE 232), 고조께서 운양(雲陽)에 단을 쌓고 태후를 비에서 높여 비로소 태후로서 맞이하였다.


그와 더불어 백관에게 명하기를, 장차 태후와 더불어 국사를 다룰 것이라 하였다.


고조께서 그때까지 만기(萬機)를 친람하시니, 하루에 일백이십 근(斤)의 글을 읽고 처리할 때까지 정사 돌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태후께서 이를 다듬어, 백관에게 올바른 직책을 부여하고 기강을 바로잡으니, 하루에 삼십 근을 처리하여도 족히 이전보다 갑절은 더 많은 국사를 돌보게 되었다.


이로써 태후를 업신여기던 이들은 혹은 감탄하여 심복하고, 혹은 질시하면서도 그에 따르게 되었으니, 세 해 사이에 진과 육국 사람들 중 고조의 배필이 그 국사(國師)임을 모르는 자가 없게 되었다.


[『수경주(水經注)』에서 말하였다.


고조는 태후를 크게 아꼈다. 태후가 박색하여 바라보는 이들이 속으로 비웃을 것을 근심한 고조는 태후를 맞이한 후 몰래 사람을 풀어, 가장 솜씨 좋은 장인으로 하여금 미인의 탈을 만들게 하고, 더불어 방사(方士)들로 하여금 추(醜)를 미(美)로 바꾸는 방술을 베풀도록 하였다. 장안 서쪽 삼십 리에 변검수(變臉水)가 있어 위수(渭水)와 합류하는데, 그 강의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는 이렇게 일렀다.


고조는 영명한 군주였는데, 오직 한 가지 흠결이 있으니 바로 태후를 올바르게 대하지 못함이었다. 여인의 미색을 탐하는 것이 어찌 부부 사이의 도에 들어가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후대에 크고 작은 어지러움이 일어났으니, 어리석은 세인들은 방술과 탈의 힘으로 태후가 천하의 절색(絶色)이 되었노라 떠들고, 그 설로써 후대의 폐행(嬖幸)들이 권세 있는 이들의 부인에게 아첨하는 폐단이 말미암았다. 군자의 한 가지 잘못된 마음으로 후세에 길이 폐단이 이어지게 되었으니, 어찌 ‘깊은 못에 임한 것처럼, 살얼음 밟고 가는 것처럼(如臨深淵 如履薄氷)’이라는 싯구가 헛되다 하겠는가!]


고조 십칠년(BCE 230), 한왕 안이 칭신(稱臣)하며 함양에 찾아와, 몰래 태후 뵙기를 청하였다. 이는 곧 나라를 지키지 못할 것임을 깨닫고 구명을 청탁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구원(舊怨)이 가득한데 사사로운 효심에 의지하여 나라의 대계를 삼으려 하였으니, 한왕의 어리석음이 또한 이와 같았다.]


이에 태후께서 고조께 표문(表文)을 올려 한을 구하는 일을 고하겠노라 하니, 안이 기뻐하며 돌아갔다.


그러나 그 표문에 이르기를,


‘이미 남양 땅을 내사(內史) 등(騰)이 군사를 이끌고 지키고 있으니, 그로 하여금 남은 한나라 땅으로 나아가 그 모든 땅을 몰수하고 영천군(潁川郡)으로 삼게끔 하십시오.


한왕을 영천후로 봉하고 그 도읍을 식읍으로 내리되, 식읍의 조세 일부만을 그의 것으로 살 것이요 실권을 주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또한 그에게 약조하여, 후일 진이 나머지 다섯 나라를 모두 얻고 새로이 천자의 나라가 된 후에는 승작(陞爵)하여 영천군왕으로 삼겠노라 하십시오. 그리하면 한왕은 반심을 차마 품지 못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한의 유신(遺臣)들 중 뜻이 있으나 크게 쓰이지 못한 자들에게는 벼슬을 내리고, 이미 우리 진에 영합하였으나 이제 쓸모가 없어진 자들은 짐짓 후대하는 시늉을 하면서 조금씩 박대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들 중 불만을 품은 자가 나오면 이를 빌미삼아 모두 쓸어버리고, 그 빈자리에 등용된 선비들을 채우십시오. 이리하면 오 년 안으로 한(韓)을 그리워하는 자가 사라질 것입니다.’


이에 고조께서 크게 기뻐하며 그에 따랐으며, 한왕 안을 영천후에 봉하고 수효궁(守孝宮)에 두었다.


[무릇 태후의 치술(治術)은 사람을 대할 때 그 욕심을 먼저 살펴, 상으로 회유하고 벌로써 억누르는 것이 한 치 어긋남 없이 맞물리도록 하는 것을 그 요체로 삼았다. 이는 어질지는 못할지언정 길게 보면 모두 태평을 지키는 법도였다. 여섯 나라 중 처음으로 한을 이와 같이 얻었으니, 곧 나머지 다섯 국인들 또한 이것을 보고 크게 감응케 되었다.]


[『색은』에서 말하였다. ‘한왕을 수효궁에 두었다’라는 것은 어질지 못한 처사를 에둘러 말한 것이다. 이때 은일(隱逸)들이 말하기를, 수효궁이란 곧 ‘올빼미 가두는 궁전(囚梟宮, 수효궁)’이라 하였으니, 즉 어질지 못한 아비를 가두었다는 뜻이다. 자식이 그 아비를 함부로 해쳤으므로 이를 풍자한 것이다.]


[『정의』에서 말하였다. 수효궁이란 곧 효성스러움을 지킨다는 뜻이다. 혹자는 이것을 일컬어 어질지 못하다 하지만, 한왕 안은 품성이 용렬하여 사방 백리의 땅조차 스스로 지키지 못할 인물이었다. 그를 그대로 두었다면, 반드시 어리석은 자들에게 흔들려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잊고 재차 작란하였을 것이요, 이로 말미암아 한나라 사람들이 크게 상하고 자신도 망신(亡身)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한왕을 가둔 것이 효성스럽다 하지 않으리오?]


고조 십구년(BCE 228), 장수 왕전과 강외가 조나라 땅을 모두 평정하고 그 왕 천(遷)을 사로잡으매, 태후께서 친히 동양(東陽) 땅에 임하시어 옛 조나라 땅에 군을 두는 일을 감독하였다.


이때 고조께서 한단(邯鄲)에 행차하시어, 조태후의 집안과 원한이 있는 자들을 모두 산 채로 묻고자 하시었으나 태후께서 만류하시어 그만두었다.


[이는 고조께서 여불위의 소생이라는 소문을 조태후의 원수들이 퍼뜨렸다 의심하였기 때문이었다.]


태후께서 고조께 유세하기를,


“망령된 소문을 퍼뜨리면 산 채로 묻는 것이 진나라의 법입니까?”


하니, 고조 답하시기를,


“그렇지 않소.”


하자, 태후 또한 이르시기를,


“조나라에도 또한 그러한 법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이에 고조께서 자못 분하게 여기시며,


“그러나 무릇 왕이란 한없이 높은 자리인데, 저들이 감히 사사로운 원한으로 망령된 소문을 퍼뜨리니 벌하지 않을 수 없소.”


하시니,


“이제 육국 가운데 겨우 둘을 무너뜨렸을 뿐입니다. 옛 주나라가 실덕하여 천하가 태평을 잊은 지 오백여 년이니, 천하를 천하로 다스리는 법은 실전되어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새로운 전례가 될진대, 어찌 우리가 세울 법을 스스로 가볍게 만들겠습니까?


잘못을 법대로 다스리되, 대왕의 원한을 또한 풀어드리고, 더불어 대왕이 옛 조나라 땅을 다스리는 데 더욱 보탬이 될 방도가 있으니, 허여하여 주신다면 이를 행하고자 합니다.”


하시매 고조께서 이를 따르셨다.


곧 태후께서 한단에 사법(司法)을 두고,


“조나라의 옛 다스림은 혼미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나라가 망한 까닭이다. 이제 태평한 다스림의 때가 찾아왔으니, 권세에 기대어 법을 피한 죄인과 권세에 눌려 억울함을 당한 사민은 사법으로 나아와 고하라.”


하고는, 조태후의 이름을 빌어 옛 원수 집안 모두를 고변하였다.


태후께서 그 집안의 가산 한 톨 한 톨까지 세어 잘잘못을 따지시니, 옛 조나라의 대부와 호민(豪民)들이 여럿 연루되었다. 이에 태후 판결하시기를,


“무릇 법은 대소인민과 군국(君國)를 위함이니, 죄인의 목숨을 가혹한 형벌로 빼앗는 것은 이에 맞지 않다. 마땅히 죄인의 목숨을 그들이 잘못 범한 이들을 위하여 써야 하리라.”


하시며, 온갖 죄를 입은 이들을 모두 북방으로 보내 조나라가 태원과 중산 땅에 쌓은 장성(長城)을 보강토록 하였다. 이때 한단에서 쫓겨나거나 죽은 이들이 삼만 호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 삼만 호의 가산이 전란으로 해를 입은 억울한 백성에게 보상한다는 명목으로 나머지 옛 조나라 사람들에게 고루 돌아갔으므로, 사람들은 쫓겨난 옛 한단 사람들이 마땅한 벌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그와 더불어 태후의 덕을 칭송하는 자들도 늘어났는데, 이는 아첨하는 자들이 고조께서 자신을 칭송하는 것보다 태후를 칭송하는 것을 더 기꺼워하심을 깨우쳤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남은 나라의 왕과 대부들이 앞다투어 태후께 사람을 보내 만나뵙기를 청하니, 그 번잡하기가 마치 여불위가 상방으로서 한창 위세를 누릴 때와 같았다.


고조 이십년(BCE 227), 연나라 태자 단(丹)이 진나라가 장차 연을 칠 것을 두려워하여, 형가를 부려 계책을 꾸몄다.


[이는 <이사열전>과 <자객열전>에 전하는 바다.


이 무렵 대부 요가와 이사는 태후를 크게 질투하여, 매양 비방하여 말하였다.


“한태후는 본디 한나라의 사람이라, 지금 대왕께서 천하를 일통하려 하시건만 태후는 진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열국을 쳐서 없애자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능히 없앨 수 있는 것을 없애지 않고 후환을 남기니, 과연 이것이 대왕과 우리 진을 위한 계책이라 할 수 있는가?”


“무릇 아첨하고 뇌물을 바치는 자들이 나타나면 군자조차도 마음을 간수하기 어려운데, 지금 태후는 그보다 더 위태롭다. 대왕께서 이를 깨우치지 못하시니, 신하로서 슬퍼할 따름이로다!”


진나라 장수 번오기는 요가와 친하였는데, 그 말을 듣고 망령되이 궁에서 떠들었다가 고조의 노여움을 샀다. 죄를 얻었으나 부끄러움을 모르고, 도리어 태후를 모욕하는 언사를 남기고는 연나라로 도망하여 그 태자 단(丹)에게 의탁하였다.


단은 진나라에서 인질로 있었기에 고조를 깊게 미워하였다. 그 원한을 갚고 연을 지키고자 하였는데, 마침 저자에 현명한 선비 전광(田光)이 있음을 듣고 그를 만나고자 청하였다.


단이 전광을 스승의 예로 맞이하며 물었다.


“진이 강성하여 이미 삼진(三晉, 조·위·한)을 모두 삼켰으며, 장차 온 천하를 거두어 하나로 하겠노라 그 뜻을 숨기지 않고 있소. 삼가 선생께서는 어떠한 현책(賢策)이 있으신지 여쭙고자 하오.”


전광이 답하였다.


“태자께서 어리석은 노인을 스승으로 받아들이시니, 이 은혜를 마땅히 갚겠습니다. 세 가지 계책을 아뢰어 태자의 근심에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이 장차 천하를 하나로 하고자 하니, 이는 연에게는 큰 근심입니다. 진왕은 성품이 승냥이와 같이 포악하고 욕심이 많으니, 장사를 얻어 그자를 찔러 죽인다면 그 근심을 풀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책입니다.


진왕과 그 아래의 문무백관은 모두 뛰어나지만, 진나라의 법도를 스스로 고치지 못하니, 그 나라의 법규와 부강함은 조금씩 바뀌었을지언정 그 속내는 위앙(상앙)이 만든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설령 진이 천하를 얻었더라도 위앙의 법대로라면 오래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를 바꾸는 자가 그 태후 한비인데, 이 한비를 쳐내면 설령 연이 진에게 망하더라도 한 대가 지나기 전에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중책입니다.


온 천하가 전란에 휩싸여 사민이 공히 빈궁해지고 죽음을 면하기 어려워진 지 오백 년이 지났습니다. 바야흐로 진이 여느 재상보다 뛰어난 태후를 얻었으니, 이는 범이 날개를 단 것과 같아 지금껏 어떤 패자도 해내지 못한 것을 해낼 기세를 얻었습니다. 태자께서 나라를 위하여 이 늙은이에게 고개를 숙이셨다면, 천하를 위하여 나라를 버리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태자께서 연을 진에 바치되, 천하가 된 진 안에서 연과 나머지 나라 사람들을 위해 일하신다면 이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이에 태자가 크게 기뻐하며 기꺼이 하책을 택하겠노라 하니, 전광은 장사 형가를 태자에게 천거하였다.


전광은 형가에게 찾아가 세 계책을 알려주고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었다.


형가가 태자의 부름을 받아 찾아간 뒤 말하였다.


“장사가 쓰임을 얻은 이상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상책은 취할 수 없습니다. 태자께서 진왕을 죽이라 말씀하시니 이를 따를 것이로되, 만약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중책이라도 이룰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번오기를 찾아가 태후를 치고자 한다 말하니, 번오기가 기꺼이 저의 목을 내주었다.


그리하여 형가는 비수 상절(霜切)을 숨긴 채, 연나라의 사신으로 가장하여 번오기의 목과 독항(督亢) 땅의 지도를 들고 역수(易水)를 건넜다.]


형가는 함양에 이른 뒤, 고조를 알현하기 전 몰래 태후께 사람을 보내 만나뵙기를 청하였다.


[이 무렵 조나라 공자 가(嘉)가 대(代) 땅으로 도망쳐 스스로 그 임금을 칭했으므로, 태후께서는 고조와 더불어 이를 정벌할 논의를 하고자 함양에 돌아와 계셨다. 태후를 뵙고자 다른 나라에서 사람을 보내는 일이 이미 익숙하였으므로, 누구도 형가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70

고정닉 24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3006 설문 여행 같이 다니면 고난이 예상되는 스타는? 운영자 25/04/28 - -
1109522 공지 신문고 [2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5.02.19 15251 18
1118889 공지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 공지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5.03.20 1226 4
1067693 공지 106.101,223.39,62,118.235,211.234,1.211 [20]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10.06 5167 40
1017257 공지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 갱신차단 목록 [9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6.01 10527 27
728432 공지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 시트 [8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5.20 23866 37
1131760 일반 왼쪽이 오늘 연참 해달라고 맘속으로 기도중임 대붕이(59.6) 14:40 4 0
1131759 일반 ㅋㄷㅌ) 선발대 행님들 계십니까?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37 27 0
1131758 일반 시발 폴프메 팬지도 인간승리 각이냐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36 26 0
1131757 일반 자유방임주의 입장에서는 [8] 대붕이(220.84) 14:32 60 0
1131756 일반 띵군 재밌음??? [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31 39 0
1131755 일반 ㄱㅈㅇㅅ 대포도 안쏘고 인질도 안잡음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27 62 0
1131754 일반 ㄱㅇㄷ)고려장이 실제로 조선에서 일어났다면 [8]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27 86 0
1131753 일반 명군) 3부에서 제일 가슴 아픈 재석이의 말 [6] 로르샤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27 72 3
1131752 일반 (ㄱㅈㅇㅅ)유럽인들은 담합을 모르는 것인가? [7] 대붕이(211.201) 14:12 186 1
1131751 일반 ㄱㅈㅇㅅ) 오늘 포르투갈에 보낸건 메세지지 [2] 대붕이(211.234) 14:08 137 2
1131750 일반 유비쟁패) 아직 강릉에서 한수로 가는 수로 안 닫혔지 않음? [1] 카이사로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 78 0
1131749 일반 유비쟁패) 진짜 합비는 생각도 안하는구나 [5] 심심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1 128 1
1131748 일반 띵군) 3부 은이가 죽던 파트가 어디임? [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0 64 0
1131747 일반 마르크스가 거유 금발 금안 초절정 미소녀인 대역 [4] 대붕이(117.111) 13:58 119 1
1131746 일반 앤드류 존슨이 탄핵당했으면 어땠을까 [9] 대붕이(222.121) 13:54 70 2
1131745 창작 카르타고)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 세계지도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51 94 4
1131744 일반 ㄱㅈㅇㅅ) 정식으로 항의 X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50 169 4
1131743 일반 1588) 그럼 무덤발굴 어찌하려나 [1] 청하랑청하한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48 84 1
1131742 일반 ㄱㅈㅇㅅ)"리스본 대훈도"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47 156 5
1131741 일반 시리즈 왜이리 똑똑하냐 domo_same_des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39 102 0
1131740 일반 ㄱㅈㅇㅅ) 어떻게 보면 원한 덜사면서 제일 잘풀었네 [1] 대붕이(125.179) 13:31 229 6
1131739 일반 ㅋㄷㅌ) 최근 연재분은 롬멜 빌드업한듯 ㅇㅇ(125.133) 13:31 123 6
1131738 일반 띵군) 밑에 글들처럼 호주도 가르면 [2] ㅇㅇ(223.39) 13:26 117 1
1131737 일반 [정보] 매리 웨이드, 사형 선고를 받은 호주의 초기 정착민 여성 [2] 대붕이(211.251) 13:23 100 3
1131736 일반 난 이작가만큼 필력 느는게 보이는작가가 없음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18 183 0
1131735 일반 띵군) 지금 정세가 모비 딕에서 묘사하는 거랑 똑같네 [1] ㅇㅇ(223.39) 13:14 138 1
1131734 일반 띵군) 이거 서호주 아닐까 [5] ㅇㅇ(223.39) 13:11 188 1
1131733 일반 판도학적으로 요런 중국 판도를 어떻게 생각함? [2] 淸皇父攝政王.. ■x■x(121.167) 13:09 113 0
1131732 일반 ㅍㅍㅁ) 아들들 많아도 분봉은 안시킬거같은데 [3] 대붕이(221.141) 13:07 149 4
1131731 일반 띵)여기서 영국이 호주로 딜하지는 않겠지 [6] qq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05 163 1
1131730 일반 조혁시)여기 소련은 좌파혁명당도 살아있는거아니냐? [2] 공룡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01 85 1
1131729 일반 글 좀 써보니깐 새삼 앙금고라니가 달라 보인다 [12] 대붕이(223.38) 12:55 335 9
1131727 일반 ㄱㅇㄷ) 개인적으로 중국판도 근본력은 전한이 [7] 헤트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48 170 0
1131726 일반 띵군,AI)채찍피티한테 만평 좀 그려달라했다 [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31 193 4
1131725 일반 ㄱㅈㅇㅅ) 해병들 판단 기준 재밌네 [6] ㅇㅇ(106.101) 12:29 746 24
1131724 일반 유비쟁패) 근데 강릉성이 아예 허벌도 아니고 [5] 똥카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3 237 0
1131723 일반 유비쟁패) 쥐새끼가 그럼 그렇지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1 161 0
1131722 일반 유비쟁패) 오나라 특 시전했네 대붕이(180.69) 12:20 125 0
1131721 일반 [폴여왕] 그분은 촉수처럼 오시리라 [12] 淸皇父攝政王.. ■x■x(121.167) 12:17 272 5
1131720 일반 우물파는늙은이 쓰는 대붕게이야... [4] 이펜시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14 124 2
1131719 일반 1588) 어제 이상하게 로맨틱한 부분 [2] 대붕이(49.164) 12:12 211 2
1131718 일반 본인 뉴비인데 대역중에 ㄱㅊ은거 있음? [2] ㅇㅇ(222.232) 12:10 64 0
1131717 일반 띵군) 저놈들에겐 바다의 소유권 개념을 확실히 인지시켜야할듯 [2] 대붕이(106.101) 12:09 441 17
1131716 일반 총통미국 솔직히 좀 양산형 대역같긴 한데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5 126 0
1131715 창작 ㄱㅇㄷ) 그...왜 여기 계십니까? [7] ㅇㅇ(59.10) 12:05 245 2
1131714 일반 유비쟁패) 양양성 점령, 번성 점령 직전, 손제리 뒤통수 시작 [1] 카이사로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65 0
1131713 일반 중국은 전통 권역만 가져야 한다는 떡밥을 보면 [7] 헤트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58 214 0
1131712 일반 ㅋㄷㅌ) 2대전은 김시혁 학교 동창회가 되겠네. [2] 닉이거되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57 240 2
1131710 창작 1588) 당신은 서기 1589년 체셔피크 만에 도착했습니다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53 299 13
1131709 일반 1900년대에 일본하고 적대적이지 않다면 순양함급 주력함으로 운용해도 [10]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52 93 0
뉴스 이수진 배우, '5·18영화제 홍보대사' 위촉 디시트렌드 10:0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