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대회] 괜찮을거야. 규칙서가 있으니까.앱에서 작성

졸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3.05 06:56:36
조회 2235 추천 28 댓글 4
														





나는 평범한,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못한 판타지 소설 작가였다.

인터넷 소설 사이트에서 적당히 하루 이틀에 한 편씩 글을 끄적이고, 나머지 시간은 소잿거리를 생각하거나 현타에 드러누워 반쯤 잠든 상태로 보내는 인간.

폐인이나 다름없는, 스스로에게도 불만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다.

늘 이런 생활이 끝나기만을, 차라리 내가 죽어서라도 이 일상이 멈추기만을 기도했다.

대가 없이 풍족하기에 더욱이 허무하고 초라한 내 일상이.






그리고 그런 일상이 정말로 무너진 것은 불과 몇 시간 전.

낮잠에 빠진 내가 눈을 뜬 곳은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방이었다.

유튜브에서 납량특집이라며 나오는 낡은 폐가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도 아닌.

그저 아래쪽에 작은 구멍이 뚫린 문 하나가 밖에서 잠겼을 뿐인 평범한 방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노트로 빽빽히 들어찬 책장.

그 옆에 붙어 있는 책상에는 아마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양의 샤프심들이 샤프 한 자루와 함께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놓인 작은 쪽지.

쪽지에는 단 한줄의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당신이 탈출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작성하세요.
단, 일정 수준 이상의 난이도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탈출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작성하라니.
그게 이 방을 나가는 방법인걸까?

그것도 그냥 문 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난이도라니.



나는 잠시 고민하다 책장 옆에서 노트 하나를 꺼냈다.

조형진.

노트에 적힌 이름과 필체가 꽤나 익숙하다.


사각. 사각.


샤프를 들고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판타지기는 해도 소설을 쓰는 것이 취미였던 나였기에, 글 한 편을 써내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늘상 생각하던,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엑스트라가 잡몹을 잡고 살아남는 컨셉의 이야기를 썼고, 난이도도 내가 넉넉히 탈출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다른 노트를 꺼내들었다.

더는 쓸 수 없게 된 조형진이라는 노트는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인간은 내가 생각한 것 보다도 훨씬 더 약하고, 각오가 부족한 생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최민형이라는 노트에 작성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냥 문에 비밀번호만 하나 걸어놓고, 바닥에 놓인 힌트대로 자물쇠를 풀어 탈출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비밀번호를 세 차례 틀렸다.
내가 써 준 비밀번호를 맞추었는데도.


사각. 사각.


노트에 내가 쓰지 않았던 전개가 추가로 작성되었다.


정답은 힌트를 거꾸로 돌려봤을 때 나오는 숫자였습니다.

그것을 보지 못한 주인공은 안타깝게도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사용했고, 흔적조차 남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답니다.


노트는 마지막 한 마디를 허공에 그리며 흩어졌다.


일정 수준 이상의 난이도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임의로 이야기가 보충됩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총동원했다.

여러 장의 노트에 동시에 같은 이야기를 써서 협동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결과는 성공적이었지만 동시에 실패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무사히 탈출했지만 노트는 나를 비웃었다.


당신에게는 도움을 청할 누군가가 존재하나요?






극한의 기다림을 끝으로 죽기 직전 간신히 구출된다는 이야기도 써냈다.

그는 실제로 아사 직전 문을 열고 돌어온 무언가에게 구조되었다.

그리고 노트는 다시 한 번 나를 비웃으며 사라졌다.


이곳에서 나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랍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범한 사람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공격당하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그 사람을 두고 떠나는 바람에 목숨을 구한다는 전개.

주인공이 패배 직전까지 몰리지만, 일단은 물러나준다는 클리셰를 이용한 이야기였다.

곧 내 시선이 닿는 저편에 내가 써낸 존재와 이 노트의 주인이 맞닥뜨렸고, 약 20분 뒤 그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이곳을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2시간 뒤, 책장이 불타올랐다.

모든 책들이 잿더미가 되어 사라진다.

새로이 책들이 채워졌지만, 이내 모두 재가 되어 흩어진다.

한 권, 두 권, 책이 남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내 그것들도 형체를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책장은 몇 달에 걸쳐 사라지고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단 26권의 노트가 남은 책장을 바라보았다.

한번에 30권 정도가 채워지는 책장이 계속해서 불타오르고 교체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절망감과 함께 볼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이 하나 있었다면, 적어도 내 눈으로 본 사라진 책들은 억이라는 벽을 넘어가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25권의 이야기를 읽는다.

비어있어야 할 노토에는 처음 보는 이야기들이 한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들이 살아남은 방법들을, 다른 책이 몇 번이고 사라져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단 한 권의 책에 적어두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대중교통을 조심할 것.


경찰을 믿지 말 것.

더 이상 이곳에는 치안을 유지할 만큼의 인간이 존재지 않는다.


고층 건물에 다가가야 한다면, 차라리 내부로 이동할 것.


날붙이보다는 둔기류가 효과적이다.


화기를 사용하지 말 것.


단체생활을 철저히 중시할 것.


그것의 눈이 붉은 빛일 때, 눈을 마주친 사람만을 남기고 도주할 것.



식량은 외부에서 구하지 말고 내부에서 구할 것.




마지막 문장을 적는 사이 한 권의 노트가 사라졌다.

그들만의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였을까, 이니면 그들만의 규칙을 지켜서였을까.

마지막까지도 무더기로 사라지던 노트가 고작 한 권만 사라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규칙을 적어놓은 노트 한 권.

그 마지막에 단 한 줄의 이야기를 적었다.


주인공은 평범한 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망설임을 그만두고 문을 열어, 이전과는 달라진 현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거야.







규칙서가 있으니까.


- dc official App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28

고정닉 8

4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 설문 주류 모델하면 매출 폭등시킬 것 같은 아이돌 스타는? 운영자 26/01/05 - -
- AD 함께하는 즐거움! 명품 BJ와 함께~ 운영자 25/10/24 - -
- AD 겨울 스포츠&레저로 활력 충전 운영자 25/12/22 - -
14803 공지 나폴리탄 괴담 갤러리 이용 수칙 (25.12.2) [24] 흰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29 99568 415
14216 공지 나폴리탄 괴담 갤러리 명작선 (25.10.17) [34] 흰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747071 417
30011 공지 [ 나폴리탄 괴담 마이너 갤러리 백과사전 ] [26] winter567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5.02.28 17134 58
20489 공지 FAQ [25] 흰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8.04 7245 94
38304 공지 신문고 winter567(218.232) 25.07.21 6543 43
46275 대회 ㅇㅇ고1 20■3년 2학기 기말고사 분석 [1] 에코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29 15 2
46274 찾아줘 글 하나만 찾아줘 [2] ㅇㅇ(125.189) 18:25 65 0
46273 연재 메타인지 (괴담은 현실을 이길 수 없다 제 1화) aftE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1 57 1
46272 규칙괴 행복이 가득한 테마파크에 어서오세요! - 요원 루트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0 62 5
46271 대회 아래를 보지 마십시오 인셍이나를억까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42 53 1
46270 나폴리 취향대로 허연색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41 23 2
46269 대회 미워할 수 없다 [1] dhodlfowjdakf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7 44 5
46268 잡담 존나 무서운 꿈 꾼적있음 라따뚜이맛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3 25 1
46266 기타괴 적색 질문, 녹색 질문. [1] 충전케이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24 61 6
46263 잡담 난독의 수기(手記). [2] 작문제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30 117 12
46261 기타괴 여보 나 퇴근했어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33 53 2
46260 잡담 아니 게수탈트븅괴 [4] 라따뚜이맛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47 98 1
46259 대회 대회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7] marketvalu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35 162 7
46258 나폴리 악취 dd(211.241) 12:19 47 2
46257 대회 툴파맨시 칼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6 75 4
46256 잡담 오타는 올리고 나서만 보이냐 [5] ㅇㅇ(106.101) 09:38 105 1
46255 잡담 나폴리탄 갤러리 인원 감소에 대한 주관적 의견 [21] 블루워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56 1188 34
46252 기타괴 (클릭 주의) [2] ㅇㅇ(121.133) 02:52 581 5
46246 나폴리 청산별곡 [2] ㅇㅇ(220.65) 01:20 498 11
46245 기타괴 여기 불면증 앓고 있는 사람 있냐 [1] 옹기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10 198 7
46244 찾아줘 이 나폴리탄 뭔지 아는 사람 ㅇㅇ(211.241) 00:32 24 0
46243 잡담 예전에 읽었던 나폴리탄 뭔지 아는사람 ㅇㅇ(211.241) 00:29 22 0
46242 기타괴 위경(僞經) Saant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25 70 3
46241 나폴리 검은색이구나! 아밀레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97 5
46240 방명록 규암2동 디스코드 소모임 [7] ㅇㅇ(119.196) 01.05 986 38
46239 대회 마지막의 최후 [1] 한서린_피드백환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92 3
46238 나폴리 Doc. Thanatos 유수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88 3
46234 대회 자판기 버섯갤러(14.43) 01.05 91 4
46233 기타괴 눈을 먹는 아이들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141 9
46231 방명록 ⚔+전설의 배드워즈 & 인생게임 서버⚔+ [2] n2snac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479 11
46230 잡담 뭐야 대회야??? [3] dhodlfowjdakf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142 1
46229 잡담 눈알 사진은 혐짤로 처리되나? [2] wondernois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173 0
46228 잡담 구로1동은 도대체 뭐하는 동네임? [1] 콜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196 2
46227 나폴리 열차 탔는데 지금 보니까 뭔가 이상한데? [4] ㅇㅇ(39.121) 01.05 232 2
46226 기타괴 세상이 먼지로 뒤덮인 지 7년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75 1
46225 규칙괴 낮에는 즐거운 이곳. 그러나 당신의 근무 시간은 낮이 아닙니다. [1] 마크웨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285 9
46224 잡담 폭탄테러 의심 차량 식별법 ㅇㅇ(222.234) 01.05 197 2
46222 대회 초3 때 겪은 실화임 [11] 박준상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1553 50
46221 기타괴 사랑하는 딸, 생일 축하해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120 2
46220 나폴리 재택근무, 고수익 보장 dd(211.241) 01.05 107 2
46218 찾아줘 나폴리탄..글하나만 찾아주세요 ㅜㅜ [2] ㅇㅇ(211.221) 01.05 256 1
46217 나폴리 멈추지 않는 룰렛 ㅇㅇ(218.153) 01.05 95 3
46214 대회 나는 손이 없다. 그리고 나는 박수를 쳐야 한다. [5] 방울한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1208 29
46213 대회 회귀자가 회고하는 법 [20] 작문제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1908 122
46212 잡담 다음에 쓰고싶은거 고양이는왜오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69 1
46211 잡담 oo를 하면 oo이 돼 ㅇㅇ(218.153) 01.05 79 1
46210 잡담 요즘 뭔가 이상하네 [6] ㅇㅇ(121.133) 01.05 280 6
46209 기타괴 킬코드 사태이후 디시 ㅇㅇ(121.125) 01.05 154 5
46208 규칙괴 숨으십시오. [1] ㅇㅇ(222.119) 01.05 143 3
46207 대회 나는 자주 넘어진다. 티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5 140 9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