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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응애 별린이 재무관이 썰풀어

ㅇㅇ(121.154) 2023.02.07 09:34:07
조회 8799 추천 40 댓글 24
														



[시리즈] 응애 별린이 나비제국 이야기 이전글
· 응애 별린이 편지답장 써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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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옥좌가 내 앞에 있었더랬다


까마득한 고대에는

나비제국의 옥좌가 절대적인 권한을 가졌었다

각 왕국의 여왕들만이 번식할 수 있었고

여왕의 명령은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자식들에 의해

즉각적으로 집행되었다


그러나 다 옛말이다


문명화가 진행되면서 번식 기회는

모든 나비에게 돌아갔으며


제국이 지능을 버리고

친절을 통해 살아남은 이후

나비는 점점 순진하고 연약해져


오늘날에 이르면 왕좌는

탁아소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게 되었다


황제는 어느새

칭얼거리는 나비들을 다독여주는 자리가 된 것이다


아무도 옥좌에 관심이 없기에

제위는 대물림 되었다

우리 가문은 불운하게도 그 크나큰 족쇄를

전통이란 이름으로 이어왔다


나는 나비제국의 황실에서 태어났다


나는 특이 개체였다


다른 나비들이 빵싯 웃을 때 나는 이마를 탁 쳤으며

다른 나비들이 헤헤 웃을 때 나는 가슴을 쾅쾅 두들겼다


나비들이 입을 모아 우주에는 친구가 가득하다고 말할 때

나는 우주를 가득 채운

이빨을 드러낸 늑대와 아귀들을 보며 공포에 질렸다


나비가 피와 굶주림을 알던 시절

그 시절의 지능을 이어받은 몇 안되는 나비


그런 내가 옥좌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이 바보들을 내버려 두는 것은

내 의무감이 허락지 않았다


*


언제나 네가 문제다


황제 너 말이다


같은 알 무더기에서 처음 알을 깨고 나왔을 때부터

너는 언제나 내 눈에 밟혔다


너는 그토록 좋아해 고이 간직하던 꿀마저

옆의 누군가와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가졌다


모자라고 바보 같지만

언제나 모두에게 친절을 베푸는 너에게

나는 그만 홀딱 반해버렸다


네가 나보다 옥좌에 어울리는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네가 황제가 되고 내가 한걸음 뒤에서 보좌한다면

나비제국이 훨씬 더 번영할 것이라 믿었다


내 지난 시절의 멍청함을 후회하며 탄식한다


*


나는 재무관이 되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세금 개혁이었다

나비제국의 세금 제도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국가는 한없이 세금을 깎아주려 들고


나비들은 가지고 있는 걸 몽땅 세금이랍시고 내놨다


옥좌는 잔뜩 받은 것들을 하사품이라는 이름으로

나비들에게 다시 돌려주었고


나비들은 연말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돌려받은 것에 보따리를 얹어서 옥좌로 다시 보냈다


양측의 나비들은 물건을 이리저리 낑낑대며 옮기느라

지쳐 자빠지기 일쑤였다


병신들의 향연이었다


나는 물건을 잔뜩 옮기는 나비들을 쥐어박으면서

그냥 적혀있는 대로만 내놓으라고 일렀다


나비들은 뾰로통해서 날개를 붕붕거렸지만

내 살벌한 눈초리에 후다닥 도망쳤다


이게 내가 하는 일의 대략적인 꼬라지다


*


언제나 네가 문제다


황제 너 말이다


나는 내 업무가 제국의 재정을 총괄하는 일이라

그토록 말했건만

너는 아무 일이나 서류를 들고 쪼르르 달려와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야 내가 아는 나비 중엔 니가 제일 똑똑한걸


나는 짜증을 내지만

복슬거리는 네가 내 품에 폭 안겨 애원할 때면

어느새 네 서류를 집어 들고 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근심을 내려놓은 네가

궁전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꿀을 퍼먹는 동안


나는 서류를 들고 제국을 숨 가쁘게 누비며

너의 거지 같은 계획들을 바로잡기 바빴다


너는 진짜


*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웬일로 감동적인 편지를 들고 왔다


한 과학자의 우주 아메바에 대한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업무에 지쳐 무뎌진 내 마음에도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편지를 다 읽은 나는

오랜만에 너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참 좋은 글이야 잘 읽었어 라고 말했다


너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우주 아메바 보호법이야

방금 은하 공동체에 내고 오는 길이야


나는 나비제국 창립이래

황제의 더듬이를 쥐어뜯은 최초의 재무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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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 아메바는 깡패다


그것이 오랜 고심 끝에 나온 내 결론이다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생물체는

무리를 짓는 데다가 쓸데없이 호전적이며

우주를 제 안방처럼 들쑤시고 다니는 주제에

마주하는 모든 것에 시비를 건다


만약 나비제국의 한 대학원생이

우주 아메바를 진정시키는 방법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여정은 거기에서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행운을 가진 제국은 많지 않으며

오늘도 우주 어딘가에서는 피땀 흘려 만든 전초기지가

우주 깡패의 패악질에 박살이 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놈들이 끊임없는 폭력행위에서

일종의 쾌락을 느낄 거라 확신한다


이 흉악한 우주 건달들에게

은하 차원의 보호를 제공할 것을 건의한

희대의 얼간이는 누구인가


바로 아픈 더듬이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구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나의 자매다


*


복실이법이 가결되었다


그들은 명색이 은하 공동체 의원이라면서

법안은커녕 최소한의 서류 양식도 못 갖춘


말 그대로 편지 쪼가리를


기립해서 손뼉을 치고 눈물을 죽죽 흘리며 통과시켰다


여러분은 지금 52퍼센트의 의원이 감성팔이에 넘어가

기어이 우주 깡패 보호법을

은하 전체에 선포하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염병할 은하는 조만간 망할 게다


나는 친애하는 자매의 능력에 경의를 표했다

대체 어떻게

저 의원이란 이름의 능구렁이들을 구워삶았단 말인가


대체 그런 능력이 있으면서 왜 평소에는


나는 속이 쓰려 생각을 그만두었다

다 내려놓았더니 편안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문득 시선을 돌리니


신이 나서 연설하는 황제의 뒤편에

기뻐 죽을 거 같은 표정을 짓는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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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연방이 아메바 보호법에 기뻐한다


인류 연방이 모든 생명의 보편적 권리를 위해 헌신한다


저 새끼 저거 일 꾸미고 있구먼


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면서

국방부 예산을 증강하기로 마음먹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나비는 언제나 간절히 평화를 원하니

자나 깨나 온 힘을 다해 전쟁을 준비해야만 한다


*


아뎁투스 니블라쿠스의 군단장들은

단번에 내 의도를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한마디 불만도 원망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18개의 군단을 이끌고 전방의 행성들로 흩어졌다


동맹을 모을 시간을 벌어야 한다

모두를 구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설득했지만


그들을 죽음과 다름없는 전장으로 내모는

자신의 행동에 너무나 큰 역겨움이 느껴졌다


한마디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을 텐데

분노 섞인 욕설을 내질렀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보여주는 헌신의 자세는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


거기가 어디라고 가 미친 것아


나는 갑옷을 입는 너에게 소리를 꽥 질렀다

너는 어울리지도 않는 두꺼운 갑옷을 두르고

투구가 어색한지 썼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가기만 해봐 더듬이 다 뽑아버릴 거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날개를 펴 방문을 가로막고 버텼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제 9 군단장의 편지를 받은 너는 바로 일어나

전투에 나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완전 무장한 너를 보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네가 전투 중에 어찌 될까 봐 속절없이 눈물이 흘렀다


너는 문 앞에서 안간힘을 쓰는 나를 조용히 바라보더니

살며시 다가와 끌어안았다


언니는 나를 정말 사랑하고있지?


쓸데없이 꿀만 퍼먹어 살이 찐 너는

갑옷을 입었어도 너무나 포근하고 따뜻해서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언니가 사랑하는 나는

내 친구들을 버려둘 수 없는 나야


언니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내 친구들을 정말 사랑해


너는 나를 꼬옥 힘주어 안아준 뒤

나를 보며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만일 내가 못 돌아오면 언니가 황제 해


나는 흐느끼면서 웃었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꼬라지가


친구를 지키겠답시고 전장으로 뛰쳐나가는

그 꼬라지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선 주저 없이

온 몸을 던지는 그 꼬라지가


내가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내 울음을 그쳤다


해야 할 일을 한다


눈물을 닦고 투구를 쓰고


사랑하는 황제 앞에 예를 갖춘다


잔뜩 짜둔 계획이 어그러졌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뛴다


나는 두꺼운 투구 속에 미소를 감추고 너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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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관 이하 황제의 전우들 1만 명이

모든 전투 준비를 마치고 폐하의 명을 기다립니다


너는 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꿀 배달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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