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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응애 별린이 고장로봇 썰풀어

ㅇㅇ(121.154) 2023.02.28 13:49:11
조회 6628 추천 78 댓글 70
														

[시리즈] 응애 별린이 나비제국 이야기 이전글
· 응애 별린이 회사설립 해봤어


*


나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로봇이다


여러 당분과 시럽 연유와 착향료를 섞어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손님들에게 판다


어느날 평소와 같이 손님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퍼서 건내주는데


저 건너 골목에서 도마뱀 소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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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손님들이 먹는 아이스크림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먼 거리였지만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흐를 게 뻔했다


하지만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행색을 볼 때

손님은 아닐 것이다


나는 소녀를 무시한 채 업무를 계속했다


*


성가시다


도마뱀 소녀는 매일 항상 그 시간쯤 그곳에 서 있었다

매번 시선이 가고 소녀에 대해 정보처리를 하는 것이

전력 낭비로 여겨졌다


'아이스크림을 퍼 주면 더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 번 맛을 들이면 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먹이면 다시 먹기 위해

돈을 모아 재방문할 것이다. 손님 증가로 이어진다.'


'행색을 볼 때 얼마 없을 재산을 사치품인

아이스크림을 위해 사용하긴 어려워 보인다.'


내 회로는 상반된 정보를 처리하기 바빴다

여러 근거를 통해 결론을 내린다


'미경험에 의한 정보 부족: 경험을 통한 정보 획득 필요'


나는 아이스크림을 퍼서 소녀에게 향했다


*


도마뱀 소녀는 정신없이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이 도마뱀 종족은 분명 지성체일 텐데

허겁지겁 입에 넣는 모습은 애완동물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목적이었던 정보수집에 나섰다


"당신은 돈을 가지고 있습니까?"


도마뱀 소녀는 숟가락을 물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봤다


"너 이거 강매한 거야?"


강제로 판매하는 것은 법 위반이다

로봇은 가중 처벌이다


나는 곧바로 귀하가 제시한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장기간에 걸쳐 본 제품에 대한 일관된 욕망을 드러낸

예비 구매자에 대한 홍보 겸 서비스 제공일 뿐이고

본 기계는 그저 귀하의 구매 가능성을 검토한 것이니

유기체에게 위해를 가한 혐의는 없으며

본 기계에 대한 폐기처분은 부당하다 항변했다


내가 회로를 불태우며 스피커를 떠는 동안


도마뱀 소녀는 어느새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우아하게 빈 그릇을 핥았다

그리고 감탄하며 말했다


"아 씨팔 존나 추워"


그야 파충류니까 당연하지


가을이라 날은 쌀쌀해지는데

아이스크림을 신나게 퍼먹었으니

도마뱀 소녀에게는 과한 행동이었다


나는 신속하게 저 종족의 데이터베이스가

준지성체와 지성체를 오기한 것인지 검토했다


"좋아! 선물을 받았으면 보답을 해야지"


열심히 햇빛을 많이 받는 각도로 몸을 비틀던 소녀는

따뜻한 햇살 아래 기묘한 자세로 당당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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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아이스크림을 가져다주면 맛 평가를 해줄게!"


터무니없이 교활한 걸 보니 지성체가 맞는 모양이다


*


소녀는 프리크키라는 파충류 형 종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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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키가 세운 프리크키키-티 제국은

한때 은하계 굴지의 강대국으로서

수많은 제국을 멸망시키고 대학살을 자행했다


무한정 뻗어나갈 것 같았던 재앙은

은하 구석의 신생 국가와의 조우를 통해 좌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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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네브 성계에서 출현한 이 어린 제국은

연약한 육신과 그에 대비되는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

은하계에서 손꼽히는 살육광의 기습적인 공격에도

분연히 일어나 사력을 다해 맞서 싸웠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모든 행성과

함선이 떠 있는 모든 우주 공간에서

전쟁은 수년 동안 밀고 밀리는 소모전의 양상을 띠었다


전쟁이 장기간 이어지자

마침내 은하 공동체가 인류 연방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프리크키키-티는 속절없이 무너져 멸망했다


난생처음 마주한 외계인 침공

그리고 그 결과는 모든 식민지의 초토화였다

악에 받친 인류 연방이 모든 프리크키를 말살하고

역사에서 지우려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은하 공동체는

프리크키 말살령을 단호히 반대하고 나섰다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도움이 절실하던 인류 연방은

이를 갈며 종족 추방령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 프리크키는 우주를 떠도는 난민이 되었다


누군가는 끔찍한 악마들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라 여겼다


누군가는 그들이 저지른 짓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관대한 형벌이라며 혀를 찼다


하지만 한 소녀에겐 그 처벌이 너무나 가혹했다


소녀는 프리크키키-티 제국을 본 적도 없었다

소녀는 누군가를 짓밟고 무언가를 얻어본 적도 없었다

소녀는 타인에게 해코지할 힘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도마뱀 소녀는

은하의 외딴 행성 작은 도시

골목의 차디찬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먼 과거 자신의 종족이 저지른 죗값을

끊임없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뭐 우리 조상이 씹새끼이긴 했지"


아이스크림을 씹으며 말하는 소녀의 눈은 공허했다


"은하 전체에 소문이 나서 우리 종족은 취업도 안 돼"


도마뱀 소녀는 히죽 웃었다


"돈 없어서 밥도 못 먹고 다니는데

아이스크림값은 못 주지롱! 힝 약 오르지?"


역사서에 적힌 대로 비열하기 짝이 없는 종족이다


나는 정기적으로 공짜 아이스크림을 가져다주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


소녀는 미각이 뛰어났다

아니 뛰어난 모양이다

기계인 내가 미각을 평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아니? 그렇게 끈적하게 단 거 보단 깔끔하게 단맛."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냥 당도가 몇 퍼센트인지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


소녀는 들고 있던 스푼으로 내 머리를 때렸다


"그거랑은 달라 멍청아!"


유기체는 늘 이런 식이다

자기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대뜸 화를 낸다


소녀는 한참 머리를 움켜쥐고 고민하더니

모든 아이스크림 목록을 나열하고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씩 가져와 달라 말했다

필기구가 없으니 그것도 지참하라는 요구를 섞어서


'기어이 우리 가게를 파산시킬 생각이군'


속셈이 뻔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고장 난 모양이라

소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씩 먹어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맛을 음미했다

그리곤 아이스크림 컵에 글씨를 끄적이는 것이다


한참을 씨름하던 소녀는 마침내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짜잔! 모든 아이스크림의 맛이랑 개선점을 적었어"


나는 컵 하나를 집어 자세히 봤다

한참을 응시한 뒤

나는 소녀에게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려 말했다


"글자 인식이 안 된다"


재능이 많던 도마뱀 소녀는

손으로 쓴 글씨를 발로 쓴 것처럼 꾸미는 재주도 있었다


소녀는 한참 동안 웅크리고 앉아서

글씨를 또박또박 고쳐 적느라 애를 먹었다


*


아이스크림은 불티나게 팔렸다


얼음과자가 불티나게 팔렸다니까 뭔가 이상하지만

아무튼 엄청나게 팔렸다는 뜻이다


매상이 두 배로 뛰고 나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시험 삼아 도마뱀 소녀의 제안을 적용한 결과다

가게 주인은 입이 귀에 걸렸다


"로켄사 시제품이라 하더니 이런 재주도 있구만!"


가게 주인은 흔쾌히

증가한 매상의 일부를 나에게 내밀었다

가끔 이렇게 나를 유기체처럼 대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고칠 수 없는 오랜 버릇이다


아무튼 여유 자금이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마침 돈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가 곁에 있으니


*


골목을 방문했다

매상이 크게 올랐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도마뱀 소녀는 짐짓 태연한 척을 했다


"뭐 그게 대단한 일이라고 굳이 얘기해주러 왔어?"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꼬리는

붕붕거리며 좌우로 크게 왕복하고 있었다

로봇 계기판보다 읽기 쉬운 정보 전달이었다


나는 증가한 수익 중 일부를 내밀었지만

소녀는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그냥 아이스크림이나 갖고 와"


이제 겨울인데도 소녀는 변함없는 아이스크림 사랑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녀는 자기의 입맛대로 바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신이 나는지 연신 헤벌쭉 웃었다

처음엔 초췌하던 얼굴이 요즘에는 생기가 돈다


소녀의 짧은 생애에서

소녀가 무언가 변화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리라


많은 이를 절망에 빠뜨린 프리크키키-티와는 달리

소녀는 자신의 재능으로 많은 이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쩌면 위기에 처한 종족을 구할 수 있는 존재는

대단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소녀일지도 모른다는

비이성적인 결론을 두고 고심하게 되었다


*


며칠 뒤 혹한이 도시를 덮쳤다


*


창문을 사납게 물어뜯던 눈발은

이내 얼어붙어서 유리창과 하나가 된 듯하다

덕분에 창문도 그 밖 세상도 온통 하얗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는 듯 하얀 광란은 끝없이 반복된다


어둠 속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이 괴성을 지른다

아까는 지붕을 부술 것처럼 흔들더니

이번에는 가로수를 뽑아낼 기세로 잡아 뜯어

모두가 숨죽이고 집 안에 웅크리게 만든다


몸이 베일 듯한 추위는 온 도시를 삼키고도 부족한지

창문과 벽을 타고 집집마다 기웃거리며

보이는 모두에게 다가가 한기를 속삭인다

이내 몸을 떠는 모두를 이불 속에 가두고 낄낄거린다


나는 혹한이 내려앉은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숨죽이고 집 안에서 웅크려 떨고 있는 지금

내가 아는 소녀는 웅크릴 장소마저 없기 때문이다


아직 수리가 끝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혹한에 이상을 일으킨 파츠를

혹한용 장비로 교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한시가 급했다

나는 제설 장비와 미끄럼 방지용 체인만 달고

손난로 여러 개를 챙겨 밖으로 나섰다

얼마 전에 산 두툼한 이불과 방한복도 챙겼다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스크림은 안 챙기기로 했다

소녀는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이 날씨에 그걸 먹는 준지성체에게

아이스크림은 과분한 것이다


*


그토록 서둘렀건만

늦고 말았다


소녀는 혹한을 견디지 못한 채

꺼진 모닥불 옆 바닥에서

딱딱하게 굳은 시신이 되어있었다

무슨 꿈을 꿨는지 편안한 표정이었다


소녀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폭설을 뚫고 골목에 도착한 나는

잠시 우두커니 서서 소녀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호흡이 측정되지 않는다

온기가 측정되지 않는다

맥동이 측정되지 않는다

뇌파가 측정되지 않는다


나는 곧바로 소녀의 기도를 확보하고 산소를 공급했다

그리고 심장에 전기 충격을 주고 흉부 압박을 한다

지켜보고 재실행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각도로 소녀의 죽음을 확신한 나는 행동에 나섰다


나는 내장 되어있던 전기톱을 꺼냈다


나는 신속하게 소녀의 두개골을 절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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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요청을 들은 과학자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낡은 비늘이 우수수 떨어져 바닥을 더럽혔지만

개의치 않는듯했다


"원래 이런 어처구니없는 요청은 거절하는게 맞지만"


과학자는 기묘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너는 우리 로켄 메카니스츠의 시제품이다

유기체와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기 위한

인공지능 실험기기지"


과학자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말해주면

네 요구를 들어주겠다"


나는 일어난 모든 일을 말했다


*


유기체의 자아를 기계에 업로드하는 것은

아직 상용화된 기술이 아니다


얼마 전 로켄 메카니스츠의 우주 과학 연결체에

뛰어난 한 과학자의 뇌를 업로드 한 이래

그 기술은 은하 공동체 법으로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그건 형식적 테두리 안에서의 제한이지

골목에서 구걸하던 도마뱀 소녀의 두뇌 따위는

세간의 주목을 받지도 법의 감시를 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로켄의 기계론자들은 기술의 발전을 위해선

그 어떤 금기도 무시할 수 있었다


도마뱀 소녀의 뇌가 업로드된 기계는 까딱거리다가

이내 천천히 나에게 걸어오며 말했다


"아 씨팔 어쩐지 존나게 춥더라"


소녀는 기계로 변한 자기의 몸을

여기저기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나 죽은 거 맞지? 그렇게 죽다니 어이가 없네!"


소녀는 나를 보고 히죽 웃었다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서 기뻐"


나는


*


도마뱀 소녀의 새로운 기계 육신은

맛을 볼 수도 기온을 느낄 수도 있었다

심지어 햇볕을 받아야 원활하게 작동되기까지 했다


도마뱀 소녀는 늘 전기 충전보다는

기묘한 자세로 볕을 쬐는 걸 선호했다

오랜 버릇이기 때문이리라


하는 말도 성격도 유기체이던 시절과 변함없었다


소녀는 재활 기간이 끝나 육신을 자유롭게 다루게 되자

제일 먼저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요구했다


신나게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소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던 나는 물었다


"왜 맛을 표현하지 않지?"


내 질문에 소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야 너는 맛으로 표현하면 알아듣질 못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장 되어있던 전기톱을 꺼냈다


그리고 눈앞에 있던 로봇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


과학자는 신이 난 듯했다


"이건 정말 대단한 거야!

기존까지는 로봇이 유기체에게 위해를 가할 경우

기능이 정지되거나 오류를 일으키는 방식의

직접적인 제재를 가해야만 했어.

필수적인 거지만 세련된 방식은 아니지"


과학자는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었다


"그런데 너의 이번 행동은 프로그래밍이 된 게 아니라

너의 활동 과정에서 저절로 형성된 거야.

유기체에게 특별함을 느끼고 보호하는 행동이!

모든 인공지능 과학자가 주목하고 있어!"


과학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방방 뛰었다


"이제 네 자아와 기억을 모방한 도덕성 코어가

모든 로켄 메카니스츠 로봇에 기본으로 탑재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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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로봇의 은하 시장 점유율을 고려한다면

전 은하에 네가 존재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야! 감탄해도 좋아!"


"상관없다 그건 내가 아닌

내 기억을 가진 로봇일 뿐이다"


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과학자는

눈가의 비늘을 파르르 떨다가 이내 박장대소했다

한참을 배를 잡고 웃던 과학자는

맺힌 눈물을 닦으며 즐겁게 말했다


"너 지금 로봇 주제에 영혼 얘기라도 할 생각이야?"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영혼은 우리의 대화와는 아무 상관 없는 단어다"


영혼이란 유기체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수십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의 전기작용을

짐작조차 못 하던 시절에 생긴 조잡한 가설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의문이 남는다


소녀와 똑같은 기억과 습관을 지닌 로봇을

그토록 참아낼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겉보기엔 전혀 다를 바 없는 둘을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구별해 내려 한 이유는 무엇인가


끝끝내 찾지 못한 그 차이점이

안도와 구원으로 이어지는 대신

격렬한 파괴행위로 이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잃어버린 것이 돌아왔음에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해

내 손으로 무너뜨려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소녀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고

그 상실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알 수 없다


소녀를 잃는 나는

아마 기동을 멈출 때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치워두고

확실한 부분만을 취합하여 결론을 내렸다


"복제된 그것들은 내가 아니다 그저 그뿐이다."


과학자는 웃음을 잃고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온몸에서 서서히 비늘이 곤두서고 있었다


"너 지금 아무 근거가 없음에도 확신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 이 명제에 오류는 없다"


과학자는 경악했다


"그건 기계가-"


과학자는 입을 닫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과학자는 머리를 긁으며 생각에 잠긴 채

여러 자료를 뒤적거리며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다

나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나는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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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거울 속의 로봇은 똑같은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거울 속의 그것은 내가 될 수 없었다


*


손님이 왔다 

나비 종족이다

이 붙임성 좋고 천진난만하며 조금 아둔한 종족은

오늘날 은하의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메뉴판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손님은

당연하게도 소녀가 고안해낸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나는 손님에게 아이스크림을 퍼서 건넸다


나비는 잔뜩 기대한 듯

사진기를 꺼내 아이스크림 사진을 찍더니

숟가락으로 크게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아이스크림을 먹은 나비의 표정이 바뀌었다


나는 나비의 표정을 목격했다


입에 들어온 달콤함에 의한 희미한 미소


차가운 기운에 살짝 찡그린 미간


냉기의 방어기제인 동시에

기쁨에 대한 표현으로 부르르 떠는 몸


'찰나의 순간이지만 내가 알던 소녀가 보였다'


'아니다 이 개체는 그 소녀가 아니다'


내 회로는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

나비는 아이스크림을 빠르게 먹어 치웠다

이내 나비는 앞다리에 묻은 크림을 핥으며 아쉬워했다


"보너스 아이스크림입니다

저희 가게는 매상을 위해 단골분께 이벤트를 엽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더 퍼서 나비에게 내밀었다

나비는 눈을 땡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전 이 가게에 처음 오는데요?"


나는 빠르게 말했다


"재방문을 위해 처음 오는 고객에게도 이벤트를 엽니다"


나비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아이스크림을 받아 입에 넣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 광경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내 시선은 쉴 새 없이

손님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을 찍어 나르고


내 회로는 끊임없이

그 장면을 저장된 기억 속 소녀의 모습과 비교했다


이미 수천 번 반복 재생되었던 소녀에 대한 영상들이

다시 한번 몰려와 내 사고회로를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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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장 난 기계다


이미 세상에 없는 소녀를


아이스크림 속에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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