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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번역] CROSS ROAD 제6장

물붕이 2021.11.09 23: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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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절친


1학기 시험이 끝나고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대학 시험은 '가(可)' 보다 낮다면 반년의 노력(했느냐 안했느냐를 떠나)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니까 무섭다. 그러니까, 나도 소수의 친구들과 정보를 교환해 어떻게든 이수한 과목은 전부 '가(可)'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무래도 시험 기간까지 아르바이트를 할 용기는 없어서 오늘은 오랜만에 'Little Cage'에 일하러 와 있다.


"이렇게나 일했는데 성적이 떨어지지 않은거야? 빈틈없네~ 요우쨩은"

"자주 들어요. 그치만 코토리 씨도 그렇죠?"

"음~, 그런가~, 그럴지도~"


개점 전의 휴식 시간. 소파에 앉은 코토리 씨의 깍지 낀 손가락을 바라본다. 호노카 씨네와 만난 날, 처음으로 잡은 손바닥의 부드러움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만약 '사랑'이라는 것이 몇 종류나 있다면, 나는 리코쨩과는 다른 형태의 연심을 코토리 씨에게 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머리를 툭툭 쳤다. '사랑'이 몇 종류나 있다든가, 그런 정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버리는 자신의 지저분함이 유감스러웠다. '사랑'은 한 종류로 정해져 있다. 태풍처럼 동시에 몇 개나 발생하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 나는 리코쨩을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도쿄에 와서 3개월이나 지났는데도 문자 한통조차 보내지 못할 정도로 좋아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고개를 떨궜다.


"요우쨩, 아까부터 머릿속이 바쁜 것 같은데, 뭘 생각하고 있어?"

"제가 여러가지 일에 '빈틈 없는'만큼, 연애가 엄청나게 서투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흐~음, 뭔가 잘 모르겠지만, 동료네"


코토리 씨가 키득 웃었다. '악수'란 말을 듣고 꽉 하고 손을 잡혔다. 굉장히 텐션이 올라서, 이 감촉만으로 오늘도 25시까지 쭉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요우쨩! 오-랜만이야!"

"치카쨩! 오랜만!"

"오늘만 안경인거야?"

"아니, 계속 쓰고 있어. 이게 훨씬 편해서"


여름 방학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평일, 고향 우치우라에서 치카쨩이 왔다. 변함없이 섬에 머무르며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치카쨩은 성수기가 오기 직전에 2일간의 연휴를 받은 것 같다. 본가에서 느긋하게 지내는가 했더니 망설임 없이 도쿄로 와버리는 부분이 치카쨩 답다고 생각한다.


한 쪽만 땋은 밝은 머리. 혈색 좋고 화장하지 않은 얼굴. 커다란 눈과 입. 가타카나 로고 티셔츠 위에 하얀 옷깃이 달린 셔츠를 걸치고, 아래는 중간 길이의 바지를 입고, 고등학교 때와 다르지 않아서 안심한다. 뭐랄까. 재회 했을 때 기억을 '버전 업'하지 않아도 되니까 심리적으로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아마, 나는 아직, 리코쨩을 도쿄판으로 '버전 업'하지 못했다.


"리코쨩은 오전 중에 아르바이트가 많으니까 3시즈음에 합류하겠대"

"그렇구나?"

"그런데 있지, 저녁부터 학과 사람들이랑 회식인 것 같아서 5시까지밖에 같이 있을 수 없다나봐"

"그래?"


같은 도쿄에 있는데도 리코쨩에게 연락하는 것은 치카쨩에게 맡겨 두었다. 다행히도 리코쨩은 거절하지 않고 3명이서 만나는 걸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연락했더라면 우회적으로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Little Cage'에서 무시당했던 사건은 그렇게 생각해버릴 정도로 내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여전히 도쿄의 지하철은 어렵네에. 요우쨩, 익숙해졌어?"

"아니, 요즘은 자전거만 타니까"

"5만이나 했댔지!? 나중에 시승시켜줘!"

"좋아!"


내용은 다소 변했지만 고향에 있을 때 처럼 대화한다.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역시 치카쨩뿐이라고 생각한다. 학부의 친구들과는 아직 탐색하고 있는 듯한 부분이 있고, 연상의 코토리 씨나 에리 씨에게는 역시 말을 골라가며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보통'의 인간관계라는 놈이고, 그걸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특별'한 절친이란 녀석이겠지.


'특별'한 절친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싶고, 소중히 여겨야만 한다고 실감도 한다.


"요우쨩이 알바하는 곳에 가보고 싶었어! '바' 같은거 가 본적이 없는걸!"

"아쉽지만 수요일에만 쉬는걸"

"바텐더한테 '내게 어울리는 칵테일을'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엄청 썰렁하니까 그런거 절대 하면 안된다구?"


치카쨩은 진짜로 말할 것 같아서 무섭다. 그걸 들은 에리 씨에게 나중에 설교를 듣는 것은 더 무섭다. 치카쨩은 그 밖에도, '옆의 손님으로부터'라고 하는, 남이 사는 칵테일이 슈욱 하고 카운터를 미끄러져 오는 장면이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싱글인 여자 손님에게 1잔 정도 사려고 하는 남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잔을 슈욱 하고 미끄러트리지는 않으니까.


"짧은 반바지를 입었다면서!? 다음번엔 꼭 보여줘!"


엣? 지하철 안에서 멍청한 모습이 됐다. 나는 아르바이트 때의 복장 같은 걸 치카쨩에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짧은 반바지에 대해 아는 것은, 치카쨩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는 물론 리코쨩밖에 없다. 그렇다는 것은, 리코쨩은 그런 식으로 나를 무시해 놓고, 그러면서 치카쨩에게는 나를 이야깃거리로 했단 말이 된다. 어쩔 생각인지를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점심에 라멘을 먹고 조금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가 집합 장소로 향했다. 나와 치카쨩 모두가 설레고 있었다. 만나기로 한 카페에 리코쨩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소매 없는 꽃무늬 원피스. 커다란 꽃무늬가 여름철 같아서 엄청 멋졌다. 우윳빛의 팔이 뻗어 나와 북커버를 한 문고본으로 이어진다. 다 같이 합숙을 했던 밤처럼 오늘은 와인 색의 머리카락을 고급스레 묶고 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어 있어서 아가씨의 오후라는 느낌이 든다.


이거야 말로 '그림의 떡'이라고, 멀게 생각해 버린다.


"리코쨩!"


치카쨩이 먼저 말을 걸었다. 리코쨩은 고개를 들고 '치카쨩, 오랜만이야'라고 기쁜 듯이 입 주변을 풀었다. 박스석으로 옮겨, 'Aqours'의 2학년은 재회를 마쳤다. 리코쨩은 아이스 티를 마시고 있고, 치카쨩은 오렌지 쥬스를, 나는 아이스 코코아를 시켰다. 마치 고향의 '쇼게츠'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는 것 같았지만, 여기는 도쿄라 각각의 다른 거처가 있어서.


"리코쨩 완전 도쿄의 아가씨네! 화장도 빈틈 없고! 정말, 호텔 직원은 화장하는게 의무긴 한데, 전혀 할 수가 없어서 매일 다른 얼굴이 되고 있다구!"

"그래도 역시 사회인이네. 뭔가 얼굴에 책임감이 생겨 있어"

"고등학교 시절엔 무책임했던거 같잖아!?"


그러곤 3명이서 정보를 공유한다. 하지만, 리코쨩은 마키 씨의 일 같은 건 한 마디도 화제로 삼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가끔 술을 마시고. 물론 음대의 커리큘럼은 특수하기 때문에 그건 이야깃거리가 될 만 했지만, 내가 알고 싶어하는 정보는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다.


"저기, 치카쨩은? 연수는 잘 되어가?"

"그게 말이지, 정말! 연수 기간이니까 프론트 일손을 돕는것부터 방 정리까지 대충 체험하고 있는데, '이 방은 ◎◎가 청소했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방에 남겨두잖아?"

"호텔에는 대부분 놓여있지"

"그걸 본 손님이 지명해서 프론트에 불평하러 온다구!? '타카미 치카 씨의 침대 정리가 엉성합니다'라고! '엉성하다'라니, 구체적으로 어떤지 말해주지 않으면 말이지! 난 할 만큼 했다구!"


치카쨩은 거기서부터 많이 투덜댔지만 7할 정도는 치카쨩의 '배려 부족'이 원인이어서 그다지 동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 뭔가가 일어나고 나서 열심히 생각하는 타입인 치카쨩은 예측해서 이것 저것 주의하는 것이 엄청 서투르다. 나는 반대로, 가급적 미리 문제의 싹을 잘라내려 한다. 귀찮은 문제가 생기고 나서 당황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려고 한다.


"그래도, 10월부터 이동하게 된단 말이지. 그 때까지 기초를 마스터 해야만 돼"

"에엣!? 치카쨩 전근이 있어!?

"어라? 요우쨩한테 말하지 않았나?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의 외딴 섬까지 있어!"

"헤에, 오키나와에도 있구나. 역시 리조트 호텔이겠지"

"맞아 리코쨩! 오키나와 같은 곳에 간다면 휴일에는 바다에 잠수해!"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로, '고향에서 일하고 싶어'라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 걸까. 하지만, 치카쨩의 말에 일관성 같은걸 요구해도 어쩔 수 없다. 아이돌을 하고 있을 때도 '반짝이고 싶어'라든가 'μ's를 뒤쫓고 싶어'라든가 '제로를 하나로 만들고 싶어'라든가, 말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이래저래 변해 왔었다. '지금'의 자신이 어떻게 있고 싶은가. 그 생각에 솔직한 것이 치카쨩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치카쨩이 이동하면 대학의 친구들이랑 놀러 갈게"

"오옷, 꼭 와줘! 말단이라서 아무런 서비스도 해 줄순 없지만!"


리코쨩이 키득키득 웃는다. '요우쨩이랑 놀러 갈게' 같은 선택지는 의식의 한구석에도 떠오르지 않았겠지. 그럼, '리코쨩과 가고 싶네에'라고 내 쪽에서 말해버리면 되는 일이지만 왜인지 정말로 불쾌한 표정을 지어버릴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이렇게 움찔움찔하는 자신도 싫었다.


8할 정도 먼저 사회에 나온 치카쨩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리코쨩은 치카쨩에게 스스로를 오픈할 수 없었고, 나는 그런 리코쨩에게 신경을 너무 많이 썼고, 그래서 치카쨩의 독무대였다. 그런 분위기를 살피지 않고 수다를 계속할 수 있는 것도 치카쨩다운 일이었다.


"슬슬 가봐야겠다. 미안해. 예정이 있어서"

"괜찮아. 사회인이 되니 도쿄는 '의외로 가깝다'는 걸 알았고"


치카쨩은 사회인의 여유를 보였고 리코쨩은 재밌는 듯이 웃었고 우리들의 짧은 재회는 끝났다. 카페를 나와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 리코쨩을 배웅한 뒤, 치카쨩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언제나 배려가 부족했으면서 이렇게 날카로운 말을 했다.


"요우쨩, 리코쨩이랑 무슨 일 있었어?"


………


아까도 말했지만 아르바이트 하는 곳인 'Little Cage'는 정기 휴일이라 술이나 안주를 사서 내 하숙집에서 마시기로 했다. 나도 아쉬운 척을 했지만, 사실은 꽤나 안심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치카쨩을 코토리 씨나 에리 씨와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치카쨩이 'μ's'의 멤버와 갑자기 조우해 소란을 피워 폐를 끼칠것 같다든가, 그런 아이 같은 이유가 아니다.


뭐랄까. 우치우라와 도쿄 사이에 큼직한 '칸막이'를 놓아두고 싶었다. 그건 감각적인 이유였기 때문에 좀 더 상세한 설명은 어려웠다. 그리고, 어쩌면, 리코쨩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어서 나와의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도 언뜻 들었다.


"요우쨩, 이런 방에 사는구나?"

"좁지? 이게 집세 7만이라구? 광열비랑 통신비를 합치면 8만이라구?"

"으음, 싱글 1박에 2500엔 정도인가. 잠만 자면 다 그런건가아"

"잠만 잔다니, 청소부터 빨래까지 다 해야 한다구?"


작은 테이블에 안주를 늘어놓고 캔 술을 딴다. 나는 항상 먹는 각하이볼이었고 치카쨩이 고른 것은 자몽 츄하이였다. 냉방을 켜고 재즈를 작은 소리로 튼 채 캔을 탁 하고 건배한다. 음악 같은 건 본가에서는 거의 듣지 않았지만, 여기에서는 소리를 켜 두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텔레비전을 켜서 정보에 쫓기는 것은 싫고, 그랬더니 코토리 씨나 에리 씨가 여러 CD를 빌려주었다. 제목 같은 건 외우지 않은 채 스마트 폰에 아무렇게나 넣어두고 스피커로 적당히 틀어놓고 있다.


"요우쨩이랑 이렇게 마신다니"

"그렇네.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딱히 놀람이나 감동은 없네"

"으음, 그래도 왠지, 조금 어른이 된 거 같아!"

"치카쨩은 사회인이니까 특히 말이지"


우치우라에 있을 시절, 이런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계속 우치우라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줄곧 치카쨩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치카쨩과 떨어지는 세계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두 개의 선택지에서 도쿄를 선택하고 치카쨩은 수험에서 떨어져 고향을 골랐다. 내가 하숙집으로 이사한 날, 치카쨩은 누마즈 역까지 배웅하러 왔지만 헤어짐이 아쉬워서 울지는 않았다.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인사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분기점에 도달해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것은 아니고 비슷한 방향으로 뻗은 길을 제대로 나란히 걷고 있다. 두 길은 지금은 아직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 있고, 다행히도, 손을 뻗고 싶지 않다니 요만큼도 생각이 들지 않아서.


어라?


"그래서, 요우쨩, 리코쨩이랑 무슨 일이 있었어?"


자신의 생각에 위화감을 느꼈을 때, 치카쨩은 첫 번째 자몽 츄하이를 비웠다. 점심 때 물어왔을 때에는 '별 일 없어'라고 얼버무렸지만, 치카쨩은 묻는 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내가 얼버무린 것으로 치카쨩은 '무언가 있었다'라고 확신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치카쨩에게 알려지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해서 노골적으로 '칸막이'를 갖다 놨다.


"왜? 그렇게 신경쓰여?"

"'왜'라고 했지 지금? 요우쨩, 나 바보 취급하고 있어?"


치카쨩이 눈썹을 찌푸리고 커다란 눈으로 노려봤다. 가슴을 찔려서 '미안해'라고, 곧바로 사과했다. 역시 나는 인간관계에 너무 담백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대로, 사회에 나온 치카쨩은 고등학교 시절보다도 더 동료를 소중히하는 마음을 두텁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치카쨩이 '3명'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인연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숨겨온 듯한 것들도, 옆에 있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있던 것들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 오고나서 리코쨩과 둘이서 만난 적이 없어. 게다가 문자 한 통 조차 하지 않았어. 물론 전화도 한 적이 없어. 나, 있지, 처음 이야기하는건데, 리코쨩을 좋아해. 여자아이지만 연인이 되고 싶고 말도 안될 정도로 의식하고 있어. 지금까지는 치카쨩과 3명이었으니까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이야기 했었지만, 사실은 말이지, 우치우라에 있을 때부터 리코쨩에게 가볍게 문자 같은 걸 할 수 없었으니까"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치카쨩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시면서이긴 해도, 이렇게 진지하게 내 말을 듣고 있는 치카쨩을 처음으로 보는 것 같다. 아니, 미안해. 나는 왜 이런걸까. 내가 너무 거만해서, 혹시 그래서 절친이 생기지 않는 걸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치카쨩에게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 모두 도쿄에 있는데도 '만나자' 같은 간단한 말 조차 할 수 없고 눈치를 살피는 것 같은 문자도 주저하게 돼서. 점점 시간만 가는거야. 그리고 말야, 있잖아, 지금부터 하는 말, 절대로 리코쨩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치카쨩이 끄덕였다. 나도 두 번째 캔을 들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리코쨩이 보자면 '반칙'이겠지만, 치카쨩에게 내 갈등을 전하기 위해서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리코쨩 있지, 여기에 동경하는 사람이 있어. 예전에 가정교사를 했고, 의학부를 다니고 있고, 피아노까지 칠 줄 알아. 아마 리코쨩은 그 사람을 좋아할거야.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장면을 봐 버려서, 이제, 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려서, '놀자'라든가 문자하는 건 이제 할 수 없어"


캔을 한 손에 들고 고개를 숙였다. 무릇 '능력'이라고 하는 면에서 패배감 같은 것을 느낀 적이 없는 나였지만 내가 할 수 없고 리코쨩이 할 수 있는 것을 똑같이 할 수 있는데다가, 나이도 경제력도 장래성도 나를 한참 상회하고 있어서. 공주님을 만나기 위해 모험을 이제 막 떠난 용사가, 갑자기 대마왕을 만난 것 같아서.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야할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어"


대마왕이 그 'μ's'의 작곡 담당이었다는 것 이외에는 전부 털어놓았다. 푸슉 하고 치카쨩이 3번째 캔을 따는 소리가 났다. 꽤 마실 수 있는건지, 마시는 것으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는건지, 모르겠어. 꿀꺽꿀꺽 목을 울리고 치카쨩은 '답지 않게' 침착한 말투로 말을 되받았다.


"저기, 요우쨩"

"왜? 치카쨩"


치카쨩이 커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꿀꺽꿀꺽 하고 츄하이를 마셨다.


"'가볍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주저했다' '시간만 지나갔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할 수 없게 되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응. 알겠어. 그래서 있지, 요우쨩. 한 번이라도, 한 마디라도, 요우쨩의 입으로 리코쨩의 기분을 확인하려 한 적이 있어?"


한 순간에 말을 잃었다. 치카쨩은, 앞질러서 대인 관계의 위험을 피해왔던 내 어깨를 뒤에서 잡아왔다. '특별'한 나를 어릴 적부터 멀리 있는 듯한 눈으로 지켜보았던 치카쨩이, 나 때문에 '보통'의 자신에게 열등감마저 품고 있던 치카쨩이, 마침내 와타나베 요우라고 하는 녀석의 어깨를 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아니. 조숙한 내 성장 쪽이 멈추고 있어서, 치카쨩은 '보통'의 페이스로 따라왔다.


"한 적, 없긴 한데, 아마, 무리, 니까"

"그럼, 포기할거야?"


치카쨩은 어깨를 작게 흔드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마치, 내가 치카쨩에게 '그럼, 그만둘래?'라고 매번 똑같이 물었을 때와 비슷한 울림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건방졌다.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없어서 곤란했던 적은 없는 주제에, 잘난듯이 치카쨩의 투쟁심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치카쨩에게 시험당하고 있다. '재어지고 있다'라고 해도 좋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


치카쨩이 무섭게 느껴졌다. 사회에 나와 책임있는 어른으로 한 발 내딛은 그녀가, 와타나베 요우라고 하는 녀석의 본질을 깨닫고 포기하게 되어버리는 건 아닐지 무서워졌다. 리코쨩의 마음에 파고 들어 미움받는 것도 분명히 싫지만, 치카쨩이 '요우쨩은 사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네'라고 실망하게 되는 쪽이 훨씬 더 싫었다. 결국에는 절친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떨렸다.


"그런가. 리코쨩, 미인이니까. 나는 요우쨩의 사랑을 응원해줄거니까"


치카쨩은 빨개진 얼굴로 히죽 웃었다. 내 쪽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지금까지 빌려준 것에 '덤'을 잔뜩 얹어 돌려받은 기분이었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멈춰 서려는 치카쨩을 항상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몰아붙였던 것은 틀림없이 내 쪽이었다.


그래. 치카쨩의 말대로였다.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리코쨩과의 거리를 한 번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구질구질하게 겁쟁이인 자신에게 핑계를 대고 손을 뻗어보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선 안된다. 그대로 놔둬도 같이 있을 수 있던 고등학교 시절과는 다르다. 1300만명이 살고 있는 이 대도시에서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다면, 스스로 손을 들고 다가가지 않으면 안된다.


다가가야만 한다. 내 쪽에서.


그날 밤.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빈 캔과 곯아 떨어진 치카쨩에게 둘러싸인 채, 나는 스마트폰을 조작해 열심히 메시지를 만들고 있었다. 몇 번이나 고쳐 쓰면서, 몇 번이고 고개를 흔들면서, 몇 번이고 머리를 감싸쥐면서, 마지막에 완성된 문장을 기도하듯이 리코쨩에게 보냈다. 스쿨 아이돌을 함께 한 동료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어쨌든 긍정적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안녕. 방금까지 치카쨩과 마셨어. 오늘, 리코쨩이랑 오랜만에 이야기해서 즐거웠어. 모처럼 둘 다 도쿄에 살고 있으니까, 다시 이야기하거나 하고 싶은데, 초대하거나 해도 될까?'


답장을 기다리는 것이 무서워서 치카쨩의 담요를 다시 덮어주고 침대에 뒹굴었다. 약간 과음을 한 듯, 푹신푹신하고 어중간한 잠에 빠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 9시 즈음에 눈을 뜨고 라인의 답신이 온 것을 깨달았다. 아직 자고 있는 치카쨩을 깨우지 않도록 내용을 확인했다.


'딱히 상관 없지만, 치카쨩한테 선생님 얘기 안했지?"


딱히. 상관 없지만. 동의라기보다는 차가운 겉치레로, 분명히 후반이 더 중요해 보이는 답장이었다. 사랑은 강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거구나. 부서질 것 같은 채로, '안 했어'라고 거짓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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