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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번역] CROSS ROAD 제7장

물붕이 2021.11.09 23: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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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돌아가기 / CROSS ROAD 링크 모음: https://gall.dcinside.com/mini/llss/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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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회개


'다녀왔습니다!'


신칸선과 재래선과 버스를 갈아타고,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후지산까지 보이는 사치스런 마을로 돌아왔다. 잔잔한 만에는 초록빛 아와시마가 거북처럼 떠 있어서 한가로움을 한층 더했다. 역시 난 이 동네 사람이다. 이 마을의 풍경에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안해져, 오늘은 재충전 할 수 있다.


푸른 하늘은 올려다보지 않아도 눈 앞에 가득 펼쳐져 보인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네온이 아니라 햇빛을 받은 파도 뿐. 뒤돌아보면 선명한 초록빛이 넘쳐난다. 오가는 사람들은 부딪힐 리 없는 속도로 걷고 있다. 눈에 들어오는 문자는 민박에 써있는 숙박 요금이나 버스 정류장의 시간표 정도로, 정보의 양이나 사람이 움직이는 속도에 당황하는 일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다!


다녀왔습니다.


아까 전 누마즈 역에서 'Aqours'의 후배들과 점심을 먹고 왔다. 진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선배로서 밥을 사주고 왔다. 2시 정도까지 역 앞의 하야마에 있었는데, 3명의 후배들 앞에서 '진로는 정한거야?'라고 선배 노릇을 했다. 후배들은 '애인 생겼어요?' 같은 걸 파고들지 않는 아이들 뿐이라 안심이었다.


오늘 밤에는 본가에서 묵고, 하지만, 내일 밤에는 이미 도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어머니는 없고, 아버지는 점심때엔 일을 하고, 어차피 집안일은 전부 해야만 한다. 치카쨩은 아와시마에 살며 일하고 있고, 사이가 좋았던 반 친구는 나고야나 간사이로 가 버렸다. 게다가 치카쨩도 말했지만, 의외로 우치우라는 도쿄에서 멀지 않았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한 덕분에 돈도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금방 돌아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여기에 며칠씩 머무는 것 보다 가끔 자신을 리셋하고 싶을 때 훌쩍 돌아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녀왔습니다"


본가의 입구는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오랜만에 집의 자물쇠를 열었다. 거실은 정리되어 있다. 청소도 제대로 되어 있다. 냉장고에는 식재가 이것저것 들어 있다. 제대로 요리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있다.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 올라가니, 역시 청소를 자주 하는 듯한 낌새가 있다. 아버지, 마음만 먹으면 집안일도 할 수 있잖아!라고 감탄하게 될 정도로, 언제까지고 순수하진 않구나 싶어진다.


하룻밤 지낼 짐을 담은 가방을 방에 둔다. 하이 다이빙 대회에서 이곳 저곳 원정했을 때 사용했던 스포츠 백을 중학교 시절부터 계속 사용하고 있다. 꽤나 너덜너덜해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2~3박 정도의 짐을 담을 수 있는, 여자아이다운 보스턴 백 같은게 갖고 싶네.


바구니에 있는 아버지의 잠옷이나 속옷, 셔츠를 세탁기에 넣는다. 3일치가 쌓여있다. 더우니까 샤워를 하고 앞치마를 두른다. 앗. 물론 옷 위에 말이지. 빨래를 널고 나서 누마즈 역 앞에서 산 식재료를 펼쳐놓고 조림이나 나물 무침을 만들어 간다. 내친 김에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함바그도 살짝 만들어 둔다. 레시피는 하숙하고 있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참고로, 아버지 취향의 양념은 따로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은 아니다.


오후 5시. 잠깐 보리차를 마시며 휴식. 빨래가 마른 것을 확인하고 걷는다. 한여름에는 낮을 지나서 빨래를 해도 잘 마르니까 좋다. 다림질을 해야하는 것 이외에는 잘 개서 항상 두는 장소에 정리한다. 그리고 오래 쓴 다리미대를 세팅하고 아버지의 셔츠나 바지를 펼쳐 정성스레 다리기 시작한다. 치카쨩과 놀 예정이 없는 고등학교 시절의 일요일 같아서, 셔츠의 주름을 펴며 생각에 잠긴다.


"다녀왔다"


오후 6시 반. 아버지가 돌아왔다. 거실에서 종종걸음으로 나가 맞이하자, 넓은 등을 향하고 쭈그리고 앉은 채 구두를 벗고 있다. 그리곤 돌아서 일어 선다. 하숙하고 4개월이 지났지만 역시 반갑고 안심이 돼 미소가 지어진다. 나에게 유전되진 않았지만, 키는 180센티미터나 된다. 꽤나 먹고 마시는데도 전혀 살찌거나 풀어지거나 하지 않는다. 얼굴은 깊고 단정한 타입. 주름도 많아졌지만, 웃는 얼굴은 '젋다'기보다 '달콤하다'는 분위기가 있다.


아직 40살을 조금 넘은 정도라 50살을 넘긴 치카쨩의 부모님과는 꽤나 차이가 있어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는 '요우쨩의 아빠는 젊어서 좋겠네에'라고, 가끔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야, 취직하자마자 속도위반으로 결혼해버렸으니까, 라고, 그런 걸 알고 있다고 해도 말할 순 없었지만.


"다녀오셨어요?"

"모처럼이니 치카쨩네랑 밥이라도 먹으러 가면 좋을텐데"

"요 전에 도쿄에서 만났으니까 괜찮아. 거기다가 치카쨩, 오봉엔 계속 일이라구"

"아와시마 호텔이랬나, 그러고보니"


지금도 회색의 얇은 쟈켓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아무것도 멋 내는거에 대한 지식은 없으면서 키와 어깨가 있으니까 도쿄의 비즈니스맨보다도 어울린다. 무엇보다도 선장의 제복을 입고 있으면 지금의 몇 배나 멋지다.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변신 타입의 히어로 같아서, 가장 가까이 있는 아버지가 그런 느낌이었기에 나는 예전부터 제복이라든가 의상을 정말 좋아했다. 소위 '여자 아이의 놀이' 같은 건 어릴 적 거의 하지 않았지만, '옷 갈아입히기 인형'만은 홀로 빠져 있었다.


"목욕물 데워뒀으니까 씻고 와요. 그 사이에 함바그 굽고 있을테니까"

"너, 대사에 색기가 생겼다? 저쪽에서 남자친구라도 만든거야?"


뭐라는거야?라고, 황당해하며 쟈켓을 받는다. 19살이나 됐으면 색기 정도는 생기겠지. 그렇달까, 좀 생겨라!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응. 10살 즈음부터 이어지는 '아줌마'의 흉내도 꽤 몸에 배었다. 생각해 보면, 고2때만은 아이돌을 하며 땡땡이 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했던 것과 비슷할 정도의 '아줌마' 경력을 쌓은 것이 된다.


"너, 맥주 따르는 게 익숙한데?"

"조금 배웠을 뿐이고 익숙한게 아니라니까"

"카페 바라든가 거짓말하고 이상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하는거 아니지?"

"안했다니깐! 이상한 가게라니 무슨 말이야!?"


목욕을 마치고 나온 아버지와 오랜만에 마주 앉는다. 함바그에 병 맥주. 큰 병 하나를 비운 후, 좋아하는 토속주 '이소지만(磯自慢)'을 술잔에 1홉* 정도 마시는 것이 정해진 순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저녁 반주를 한다. 맥주는 차치하고 찬 술까지 같이 마셔준 것을 아버지는 무척 기뻐하시는 것 같았고, 그래서 일본주의 맛을 가르쳐준 노조미씨에게 조금 감사했다.


* 약 180 mL


"음, 잔치도 한창이니까 물어봐도 될까?"

"뭐를?"


방치해도 상관 없지만, 내 방까지 깨끗이 정리해준 이상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혹시나, 어쩌면, 언젠가 '어머니'라고 부르게 될 일이 될지도 모르고.


"밥을 해주거나 청소해준 사람이 누구야?"

"아아, 시마 씨야. '토치만'의"

"엣? 잠ㄲ!? 겟!? 말도 안돼!? 진짜로!?"

"뭘 패닉에 빠지고 그러는거야. 농담인게 분명하잖아. 여자친구야, 여자친구"


40살을 넘은 아저씨가 태평한 얼굴로 '여자친구'라고 말한다. 그 전의 농담이 역사상 최악이었다는 것에는 눈을 감도록 하자. 그렇다 치더라도, 본 적 없는 여자가 이 집에 드나든다면 또 마을 모두의 소문이 되어버릴 텐데. 그런걸 전혀 신경쓰지 않으니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어머니를 닮아 주위의 눈을 신경쓰는 편이고, 아버지가 '여자친구'를 쉽게 집에 들이는 것도 신경이 쓰여버린다. 뭐, 독신이니까 상관 없긴 하지만 말이야. 근데 있지, 마을의 모두한텐 말이지, '딸이 도쿄에 가자마자 독신 귀족이 놀기 시작했다'라든가 소문이 돌잖아?


"여자친구분, 몇 살이야? 아버지랑 비슷한 나잇대?"

"24살"

"하? 뭐야 그게? 사이에 내 인생이 딱 끼어들어 가는데!"

"들어가지 않아도 되잖아"


에리 씨랑 동갑이잖아. 어떻게 20살 가까이 연하인 여자친구를 간단히 만들 수 있는거야. 그렇다기보다, 어떻게 20살 가까운 연하의 여자한테 '나랑 사귀자'라고 진지하게 말할수 있는거야. 이런 사람에게 '닮았다'라는 말을 계속해 들어왔단 걸 생각하면, 여러 의미로 우울해져 버릴 것 같다.


"청소도 정리도 제대로 되어 있고, 세심한 사람이네. 결혼할 생각 있어?"

"아직 사귄지 3개월째고, 지금이 가장 즐겁다 해야할까"

"무슨 고등학생이야!?"

"게다가 뭐, 툭 까놓고 말해서 요우 쪽이 더 좋은 여자니까"


딸이랑 비교해서 어쩌자는 건데. 태클을 걸면서도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딸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아버지도, 아버지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딸도, 어느쪽도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학부의 남자라든가, 'Little Cage'에 찾아오는 남성 손님 등을 보아도, 솔직히 우치우라의 시골에 있는 아버지보다 멋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나의 남성 관계는 아버지로 완결되어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


문득, 코토리 씨의 말이 생각났다. 계속 어머니와 살아온 코토리 씨와 계속 아버지와 살아온 나는 어떻게 좋은 점을 잘 섞어서 딱 좋은 가족같은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있잖아, 고등학교 이사장을 하던 50살 정도인 누님이라든가 관심 없어?"

"뭐? 이사장? 50살? 어떤 사정이 있는 사람인거야? 뭘 웃고 있는거야 너?"


아버지와 코토리 씨의 어머니가 재혼해서, 나와 코토리 씨가 자매가 되고, 그러면 즐거울 거 같네 라든가 바보 같은 것을 상상하며 히죽히죽 웃어버린 것은, 아마 둘이서 4홉짜리 병을 비워버린 시즈오카의 토속주 '이소지만'의 탓인 것 같다.


………


다음 날, 아버지에게 아침밥을 지어 드리고 배웅한 뒤, 다시 조금 자고, 그러고 또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고 점심때를 지나 본가를 떠났다. 좋아하는 조림을 넉넉히 끓여 통에 담고, '사랑하는 달링에게'라고 메모를 올려 두었으니까, 여자친구를 데리고 돌아오면 싸움이 나서 재밌을거라 생각한다.


오후 1시를 넘긴 시각. 누마즈 역에서 3분 정도 걸어간 초밥집. 회전하지 않는 카운터뿐인 수수한 가게에서, 수건을 비틀어 머리띠를 한 대장이 항구에서 막 건져올린 신선한 재료를 쥐어 준다.


"왜 누마즈야?"

"이제 돌아갈거야. 마지막으로 맛있는 초밥이 먹고 싶어서"


고등학생 때처럼 미역을 과식한 것 같은 흑발을 높은 포니테일로 묶고, 카난쨩은 그을린 얼굴 속에서 늠름한 눈살을 찡그리고 있다. 커다란 가슴이 검은 탱크톱을 밀어 올리고, 견실한 복근이 살짝 보인다. 그 탱크톱에서 뻗어나온 두 개의 팔뚝은 여자아이의 굵기가 아니다. 거유와 근육이 옷을 입고 있는 카난쨩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양한 자격증을 따며 본가의 다이빙샵을 돕고 있다.


"그게 아니라. 왜 고향에 돌아와놓고 우리 집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건데?"

"섬에 가면 엄청 마시게 될 거 같아서"


카난쨩은 마뜩찮은 얼굴을 하더니 갑자기 큰 사이즈의 맥주를 두 개 주문했다. 이 곳은 카난쨩의 집과 사이좋게 지내는 가게로, 40살을 넘은 대장은 다이빙이나 서핑을 정말 좋아한다. 카난쨩의 아버지에게 배운 것도 있고 해서, 그 답례 같은 느낌으로 주도로 1개를 100엔에 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론 10대 여자아이가 가볍게 먹으러 올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니까, 이거야말로 이득! 이라는 느낌이 든다.


"넌 사시미 싫어하니까 달걀만 먹어"

"달걀만!?"

"달걀에 가리* 올려서 먹으면 '가리달걀'이라 엄청 맛있으니까"

"싫어. 초밥집에서 그런거!"


* 생강을 얇게 저며 식초에 절인 음식


카난쨩은 웃으면서 스마트폰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분명히 과도한 술에 취했다고 생각되는 치카쨩의 이마에는 '에로치카세븐!'*이라고 마음껏 쓰여져 있고, 상반신은 알몸에 가슴 끝부분만 고둥 껍질로 가려져 있어서 웃기지만 너무 불쌍했다.


* 일본의 록 밴드 '사잔 올 스타즈'의 곡 'エロティカ・セブン EROTICA SEVEN' (에로티카 세븐)의 패러디


"너를 왕창 취하게 해서 '사랑스러운 리리'*라고 쓸 생각이었는데"

"낙서를 왜 사잔으로 맞추는거야"

"파렴치한 영상을 사쿠라우칫치에게 보내주려고 꾸몄는데"

"그런 짓 했다가 경멸하는 눈빛 받을 것 같으니까 하지마!"


* 마찬가지로 '사잔 올 스타즈'의 곡 'いとしのエリー' (사랑스러운 에리)의 패러디


그렇다기보다, 이 사람은 어떻게 내가 리코쨩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는거지. 대충대충인 주제에 몰래 관찰하고 있고, 관찰하고 있지만 뭔가 도와주는 건 아니고. 그러면서 자신의 일에는 정말로 무관심하다고 할까 둔감하고, 남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해서. 요약하자면, 최대급의 민폐가 되는 녀석이다.


"이거 마시고 나면 역 앞에서 여고생 헌팅할까? 나랑 요우가 팀을 짜면 '바로 낚을' 수 있을거야"

"외롭다고 적당한 말 하지 마. '바로 낚고' 난 다음에, 어쩔 생각인데?"

"그러면, '벗긴' 뒤에 '포옹'이지!"

"잘난 듯이 말해놓고선 역 앞에 가면 분명 날 두고 도망갈거면서"


카난쨩의 연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대학으로 진학해 버렸다. 카난쨩의 가장 친한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국립 대학으로 진학해 버렸다. 우리와 같은 3인조였는데 카난쨩만이 우치우라에 남겨졌다. 물론 가업인 샵이 있으니까 '남겨졌다'라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지만.


"뭐, 당분간은 우치우라와 뉴욕의 롱디를 즐기라구"

"캘리포니아라고 몇 번이나 말했을텐데?"

"오옷? 언니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으시네요?"

"대장! 밖에서 문 잠궈! 그리고 한 되*짜리 병 2개 줘! 이 녀석이랑 죽을때까지 마시기로 했어!"

"안된다니까! 이제 도쿄로 돌아가야 한다고!"


* 약 1.8 L


잡힐 것 같아서 큰 사이즈의 맥주 1잔으로 도망가기로 했다. 카난쨩이 사주는 거였기에 가방만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리코쨩의 다리 굵기 정도 되는 팔에 잡혀 움직임이 멈춰진다. 맥주 2잔을 단숨에 비웠는데도 멀쩡한 얼굴로, 카난쨩 '답지 않게' 상냥한 얼굴을 했다.


"사람은 언제 뿔뿔히 흩어지게 될 지 모르니까, 가까이 있을 때 무언가 좀 해 둬"

"그렇게나 모두를 곤란하게 해 두고선, 어떻게 그런 대사를 할 수 있을까나"


알았어. 살짝 취한 기세로 대답했다. 손을 흔들며 카난쨩에게 등을 돌렸다. '큰 잔으로 한 잔 더'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부터 몇 잔을 마실 생각이야! 라고 한바탕 이야기하고 싶지만, 역시 술에 꼴아버린다 하더라도 섬에 갈걸 하고 후회한다. 설에는 실컷 마시고 이야기하기로 정하고, 그 때까지 리코쨩과의 관계를 깊게 해두면 좋겠다고 어렴풋이긴 해도 생각했다.


………


그날 밤.


도쿄에 돌아온 나는 쇼핑이나 집안일을 하고 나서 'Little Cate'로 발을 옮겼다. 딸랑딸랑 종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더니 7시인데도 손님은 소파에 한 팀과 카운터에 2명이 있을 뿐이었고, '오봉의 영업은 어떻게 해야하나~'라고, 코토리 씨가 망설이고 있을 정도로 무척이나 한가로운 것 같았다.


"아~, 요우쨩이다~, 어서와~"

"어라? 코토리 씨가 드링크를 담당하고 있는건가요?"


코토리 씨가 카운터 안에 있고, 에리 씨가 홀로 나가있고, 하나요 씨가 주방에 있었다. 그건 내가 'Little Cage'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로 처음 보는 포메이션이었다. 에리 씨가 있을 때 코토리 씨가 드링크를 만드는 일은 없었으니까.


카운터 끄트머리에 앉는다. 'Reserved'라 써진 플레이트가 카운터에 놓여 있는 것도 드문 일이다. 일부러 카운터석을 예약하는 손님은 거의 없다. 평소와 다르네라고 생각하면서 코토리 씨가 만든 칵테일을 받는다. 셰이커를 흔드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대낮부터 맥주를 좀 마시고 온 것 때문에 지금은 그다지 독한 술을 마시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아버지한테 응석부리고 왔어?"

"응석을 받아주고 왔어요"

"요우쨩의 아버지, 부럽네~"


퍼지 네이블을 마시면서, 카난쨩이 강제로 넘겨준 건어물을 선물로 건넸다. 코토리 씨는 기쁜 듯이 나중에 먹자며 주방의 하나요 씨에게 건넸다. 카페 바에서 건어물을 굽지 않아도 되는데도, 이 가게는 느슨하니까 단골 손님들이 주는 음식을 메뉴에 관계 없이 모두에게 대접하기도 한다.


그러고 1시간 정도. 코토리 씨나 에리 씨와 이야기하고 있자 문의 벨소리가 울렸다. 들어온 손님에게 자연스럽게 눈을 향했을 때, 일하고 있지 않은데도 무심코 '어서오세요'라고 말할 뻔 했을 때, 코토리 씨가 카운터에 서 있는 이유를 대략 짐작해버리고 말았다.


"어서와"


에리 씨가 언제나처럼 빈틈 없는 움직임으로 마중 나와 카운터에 놓여 있던 예약석의 플레이트를 가져 갔다. 두 사람은 내 의자에서 한 칸 떨어져 나란히 앉았다.


"둘이서 오는건 처음이네"


에리 씨는 살며시 카운터에서 떨어졌고, 코토리 씨가 물수건을 건네며 활짝 웃었다. '그렇네'라고 마키 씨가 손을 닦으며 대답하고, 노조미 씨는 말없이 드링크의 메뉴를 펼치고 있었다. 와타나베 요우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은 곧바로 돌아가는 것이 분명했음에도, 그렇게 해버리는 것은 그녀들 4명의 관계를 외면하는게 되는 것 같아서 가능한 침착하게 술을 맛보기로 했다.


마키 씨의 대학 이야기라든가, 노조미 씨의 일 이야기, 실버 위크에는 어디를 갈까 같이, 특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Little Cage'로 발을 옮겨야 할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근방의 레스토랑이나 노조미 씨 취향의 선술집에서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았다.


1시간 정도 지나, 그다지 술이 세지 않아보이는 마키 씨가 취하고, 요전에 리코쨩에게 했던 것처럼 노조미 씨의 허리에 손을 두르기 시작했다. 그 뿐만 아니라, 미니 스커트의 허벅지를 만지거나 하며 불필요할 정도로 끈적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이미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손버릇이라고 확신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외로움을 잘 타는 응석받이 여자아이에게 있을 법한 손버릇이라고 느꼈다.


흘끗 돌아보자, 에리 씨는 가게의 구석에서 조각상처럼 인기척을 지우고 있다. 코토리 씨는 가끔씩 커플의 대화에 끼면서, 에리 씨가 없을 때처럼 조용히 드링크를 만들고 있다. 9시 즈음부터 하나둘씩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에리 씨는 홀에서의 접객에 집중한다.


옆으로 눈길을 향한다. 가볍게 취한 마키 씨는 나른한 얼굴을 하고 치즈 크래커를 집어 노조미 씨에게 먹여주기도 하고 가끔 보이는 짜증나는 커플처럼 행동하고 있다. 쫓아내거나 주의를 줄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놈들은 눈에 거슬린다. 상냥한 상식인인 노조미 씨가, 마키 씨가 좋을 대로 하게 두고 있는 것을 보아서, 근처에 앉아있는 나까지 짜증이 난다.


"노조미. 슬슬 돌아갈까?"

"그럴까§"

"노조미. 자고 가도 돼?"

"그런 건 묻지 않고 좋을 대로 해도 되잖아?§"


남은 1장의 크래커를 노조미 씨가 집어 마키 씨의 입술에 끼웠다. '코토리, 택시 불러줘'라고 마키 씨가 코토리 씨에게 부탁하여 코토리 씨는 가게용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했다. 노조미 씨가 지갑을 꺼내 돈을 냈다. '택시는 내줘§"라고 말해 마키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상에 사회인인 노조미 씨가 그런 대사를 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어서, 왜인지 어쨌든 화가 나서 어쩔수가 없었고.


손님이 모두 없어진 11시 반.


일찍 폐점한 'Little Cage'에, 일도 아니면서 나는 아직 남아 있었다. 청소와 영업의 마감이 끝나고, 4인용의 소파로 이동해 코토리 씨가 만든 진 라임을 마시고 있었다. 하나요 씨는 내일도 아침부터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11시에 돌아갔으니까 코토리 씨와 에리 씨와 3명이서 그릴에서 구운 전갱이포를 먹고 있었다. 진 라임은 꽤나 독했지만, 맥주의 영향도 완전히 없어졌고 기름진 건어물에는 진의 펀치와 라임의 신맛이 딱 좋았다.


"그 두 사람은 뭘 하러 온건가요? 괴롭힘인가요?"


분노랄까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는 내 질문에 대해 에리 씨는 어쩔수 없다는 듯 대답해 주었다. 냉정해지니, 에리 씨가 노조미 씨를 찼다는 것은 노조미 씨에게서 얻었을 뿐인 정보였고, 에리 씨가 아직 노조미 씨를 '좋아'한다는 것은 나의 억측에 지나지 않아서, 그러니까, 감정적으로 물어본 것을 곧바로 후회했다.


"일단 '괴롭힘'은 아니야. 어디서부터 얘기할까나"

"처음부터 듣고 싶어요. 외부인이긴 해도"


에리 씨의 말로 듣고 싶어서 부탁했다. 외부인. 자신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자, 코토리 씨와 에리 씨는 둘 다 한숨을 쉬어서 '겸허'의 의미를 모르는 자신이 다시 싫어졌다.


"그럼, 처음부터 이야기할게. 나랑 노조미는 고1부터 고3까지 사귀었어.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나는 노조미를 찼어. 일방적으로 말이지. 물론 노조미를 좋아했지만, '연인'이라는 옵션이 필요한걸까?라고, 그렇게 생각했어. 최고의 절친으로서 있어준다면, 서로에게 연인은 따로 있어도 괜찮은거 아닐까 하고. 애초에 우정도 애정도, 모두 한 사람에게만 떠넘기는게 너무 무거운거 아닐까 하고."


처음인 것처럼 듣고 있었다. 코토리 씨는 6년 전을 돌아보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래. 코토리 씨가 에리 씨를 '좋아'한다는 것도, 에리 씨가 모를 법한 '정보'라, 그래서, '취급 주의'의 정보들이 이 소파에는 잔뜩 뒹굴고 있고, 인간 관계에 미숙한 나는 섣불리 입을 열 수 없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남자랑도 여자랑도 사귀어 봤어. 미스 캠퍼스에 선택된 것을 계기로 독자 모델을 시작하고 나서는, 꽤 연상의 사람과도 사귀어 봤어. 잘생긴 모델도 있었고, 편집을 하는 업계인도 있었고, 스포츠 선수도 있었어. 그래도, 곧바로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했어"


코토리 씨에게 들은 적이 있다. 코토리 씨가 디자인 학교의 졸업 제작을 발표했을 때, 그 옷의 모델을 에리 씨에게 부탁했다는 것을. 에리 씨가 실험적인 사랑을 반복하고 있을 때도 계속, 코토리 씨는 에리 씨를 잊지 않았고, 그리고, 그것을 넌지시 표하는 일은 없었고.


"대학 3학년 때, 였나. 내가 내린 결론은, 역시 '노조미가 좋다' 였어. 연인도 절친도, 전부 '노조미가 좋다'는 것이었어. 노조미 혼자서 내 마음을 전부 짊어지게 하는 건 나쁜걸까?라고 생각했지만, 노조미의 마음을 전부 짊어지는건 힘든 일일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노조미가 좋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래. 3년 가까이 걸려서."


코토리 씨를 흘끗 보았다. 코토리 씨는 눈을 내리깔고 진 라임의 잔에 입술을 대고 있었다. 에리 씨가 털어놓은 이야기가 코토리 씨를 상처 입히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것을 시킨 것은 다름 아닌 와타나베 요우였고, 그래서, 나는 정말로 그 녀석을 마음껏 후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노조미 옆에 마키가 있었어. 술버릇이 나쁘고, 꼬마이고, 건방지고 남 신경을 긁어대고, 요우쨩에게는 변변치 못한 녀석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노조미를 구한 것은 틀림없이 마키였어. 노조미는, 그래, 구원받을 필요가 있었어. 그걸 알게 된 것도 같은 때였어. 마키는 대놓고 나에게 화를 냈지."


'엄청나게 화를 냈어'. 반복하고, 에리 씨가 얼굴을 들었다.


언제나 시원시원했던 에리 씨의 표정은, 그 때를 떠올린 것인지 울 듯이 일그러져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2년여만에 노조미는 10명 이상의 남자에게 안겼다고. 조금만 상냥하게 대해주면 금세 몸을 허락해줬다고. 내 제멋대로인 행동이 얼마나 노조미를 고통스럽게 했는지 아느냐고. 노조미가 얼마나 '사랑'을 찾아 헤맸었는지, 스쳐가는 남자들에게 얼마나 상처받아 왔는지 상상할 수 있겠냐고."


에리 씨가 하얀 얼굴을 새빨갛게 하곤 코를 훌쩍거렸다.


나는 자신이 억지로 끌어낸 정보의 무게에 짓눌려 으깨질 것 같았다. 바보 요우는 오전 0시를 넘어 뭘 하고 있는걸까. 이 사람들이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있던 것을 보고 싶어하고, 그걸 알아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당장 사과하고, 일체 듣지 못한 것으로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마키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지 않고 있어. 토죠 노조미의 인생에 아야세 에리라는 쓰레기가 '필요 없다'는 것을, 계속 호소해 나갈 생각이야. 오늘만 해도, 집에서 가깝지 않은 우리 가게에 올 필요는 없었는데도, 일부러 카운터석 같은 걸 예약해서, 드링크를 만드는 내 눈 앞에 나타나려고 했어. 분명, 앞으로도 같은 일을 반복해 갈거라 생각해. 아야세 에리가, 스스로의 과오를 영원히 잊지 않도록"


에리 씨는 '담배 피고 올게'라 말하며 자리를 비웠다. 이 가게는 바니까 흡연이 가능하지만, 코토리 씨가 담배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녀가 옆에 있을 때는 밖에서 피우는 것으로 하고 있다.


에리 씨가 문을 열고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코토리 씨와 둘이 되었다. 누가 잘못했냐고 묻는다면 에리 씨가 잘못한 것 같았지만, 그럼 6년 전의 에리 씨를 나무랄 것이냐 묻는다면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았고, 만사 태평한 시골에서 막 나온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올라탄 배는 꽤나 먼 바다까지 와 버려서 더는 내릴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아니다. 함께 타고 있을 코토리 씨를 생각하면 내리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어째서 오늘, 드링크를 하고 있던 건가요?"


솔직히, 솔직히 말이지, 솔직한 심정으로, 코토리 씨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에리 씨가 노조미 씨를 포기하는 것이 대전제고, 그걸 위해서는 에리 씨를 그 두 사람과 제대로 마주보도록 할 필요가 있는게 아닌가 하고. 드링크 담당을 교체한다는 일시적인 도망을 반복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하고. 그렇게 생각해 물었더니, 코토리 씨는 다정한 눈에 강한 각오를 세우고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에리쨩의 편을 들고 싶어"


그 흔들림 없는 목소리를 들어버렸을 때, 코토리 씨가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것에 닿게 되어 버렸을 때, 곧바로 끌어안고 싶어질 정도로 가슴이 쥐어 뜯겨져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서 손을 쥐고 있었다. 'Little Cage'. 이렇게 작은 새장 안에서 둘이 있는데, 계속 마음을 억눌러 나가며 사랑할 건가요 라고, 시선만으로 필사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코토리 씨가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내 마음을 꿰뚫어 본 듯이 끄덕였다. 그래서 더 이상 나 같은 꼬마는 말을 이을 수 없게 되어 코토리 씨와 에리 씨의 빛이 바래지 않는 마음을 진 라임과 함께 마셔버렸다.



다음 글 / CROSS ROAD 제8장: https://gall.dcinside.com/mini/llss/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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