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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번역] HANABI 제 3장 (2)

물붕이 2021.01.11 20:40:35
조회 841 추천 1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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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즈쿠쨩, 손님이야"


슬슬 점심이라도 먹을까 생각한 시간이었다. 방에서 소설을 읽고 있자 노크 소리가 들리고 시마는 시즈쿠가 뭔가를 대답하기도 전에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렸다. 자신에게 손님 같은 게 올 리가 없다. 도쿄를, 고향을 떠난 자신을 찾아낼 인간은 한 사람밖에 없다. 어째서 찾은 것일까. 친구 같은 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텐데. 어째서,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만나러 온 것일까. 반대 입장이었다면 깨끗이 관계를 끊을텐데.


"시즈코"


부지를 빠져나가려 했을 때 말을 걸어 왔다. 고개를 돌리자 파란색 준중형 승용차가 세워져 있고, 나카스 카스미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와 같은 레몬 색의 울 코트에 특이하게 청바지와 컨버스를 매치하고 있었다. 서서 하는 이야기로 끝날 거라 생각해 시즈쿠는 저지 차림으로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그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카스미와 쇼핑하러 나가 카스미가 골라 준 색이지만 5년이나 지나서 잊고 있었다. 빨강과 노랑과 하양, 3개 색 중에 오늘 아침 우연히 고른 것이 노란색이었다. 카스미의 얼굴을 보고 이브에 받은 포토프레임을 떠올렸다.


"렌터카? 면허 딴거야?"

"고등학교를 졸업한 봄방학에 땄으니까"


흥미가 없어서 알지 못했다. 그 시절의 시즈쿠는 부모님과 싸워 본가를 나가 자취를 시작하고——각본・연출・주역 모두 자신인 드라마로 바빴다. 싸움을 했으면서도 보증인을 부탁하거나 보증금의 선입금을 부탁하거나 했기에 자존심은 만신창이로 깎여 있었다. 타카사키 유우가 같이 아파트를 찾아봐주고, 극단을 찾아봐주고, 체험 입단에 따라와 줘서 무척이나 고마웠다. 카스미는 '괜찮은거야?'라고 불안해 할 뿐이라, 언제부터인가 시즈쿠쪽에서 연락을 걸지 않게 되었다.


"오늘은 어쩐 일이야? 카스미양"

"날씨도 좋고, 드라이브라도 할까나 싶어서"

"용케도 여길 알아냈네"

"인터넷에서 알아봤더니 이 근처라 해서. 그 다음엔 손 닿는대로 여관 같은데에 전화했어"


무던히 많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카스미에게서는 자신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에 오길 잘한 것인지를 새삼 생각하는 듯한 눈치였다. 다만, 그건 시즈쿠 쪽도 마찬가지였다. 카스미의 얼굴을 보았을 때 '기쁘다'고 생각해버린 자신을 용서해도 좋은 것인지, 카스미의 출처불명의 참견에 응석을 부려도 괜찮은 것인지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 포토프레임은 캐리어 가방의 주머니에 넣어둔 채였다. 연극을 하면서까지 보내온 선물을 태연하게 장식해둘 만큼 낯이 두꺼웠다면, 지금쯤 그럭저럭인 무대 여배우가 되어 있거나 지루한 여대생으로 만족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 틀림없었다.


"드라이브 갈거라면 옷 좀 갈아입고 올게"


끄덕인 카스밍을 등 뒤로 하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급한 걸음으로 '타카미야'에 돌아왔다. 한 번 돌아보자 카스미는 불안한 듯 내내 서 있었다. 시즈쿠가 더 이상 여기에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듯 했다. 방으로 올라가 준비하기 전에, 점심밥을 만들고 있는 시마에게 말을 걸었다. 시마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우동을 만드는 듯 했지만, 싱크대 옆에 그릇이 하나밖에 없었다.


"카스미양한테, 제가 여기에 있다고 가르쳐줬나요?"

"그 애, 시즈쿠쨩이랑 어떤 관계냐고 물었더니 있지, '정말로 소중한 사람'이라고 대답했어. 절친이라든가 동료 같은 게 아니라, '소중'하다고, 그렇게 말했어. 있지, 시즈쿠쨩은 누군가를, 설령 연기로라도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어?"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떨궜다. 카스미가 어째서 그렇게나 자신에게 구애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까닭에 무조건 감사할 수도 없었다. '소중'이라는 건 무엇일까. '소중'한데도, 졸업하고 나서 시즈쿠의 무대에 카스미는 한 번도 와주지 않았다. '소중'한데도, 얼마나 쓸쓸해하든 한 번도 방에 묵고 가지 않았다. '소중'한데도, 단 한 번도 어째서 '소중'한지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


"시즈쿠쨩. 제대로 된 미각이 제대로 된 식사로 길러지듯이, 즐겁다든가 행복하다든가, 그런 감정은 제대로 된 인간 관계가 있어야 비로소 자라나는 거야. 자신을 '소중'하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말을 믿고 제대로 대하는게 어때?"


시마의 말은 고막보다 먼저 가슴으로 와닿아서 대답할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와 캐리어 가방 속에서 잊혀진 체크 스커트를 꺼냈다. 그 다음, 방충제 냄새가 남아 있는 하얀 스웨터를 발굴했다. 스웨트나 저지보다는 나아 보이지만 여기저기 구겨져 있어 스무살 여자 아이의 외출복으로는 형편없었다. 그러곤 포토 프레임을 꺼내 찬장에 장식했다. 혹시 카스미가 방에 왔을 때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일단 배려를 했다.


"기다렸지. 갈까"


시즈쿠는 조수석에 탔다. 카스미는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안전벨트를 맸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이 여관이 목적지로 설정되어 있는 듯 했다. 진정하지 못하는 카스미가 운전에 익숙하지 않다는 정도는, 면허를 갖고 있지 않은 시즈쿠라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건 과도한 추궁을 당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 값싼 고깃집과 마찬가지로 마침 다행이었다.


"저기, 시즈코? 이 근처, 뭔가 없어?"

"수족관이라면 저기에 있지만"

"그건 보이고 있으니까! 걸어서 갈 수 있으니까!"

"카스미양이 운전하는 거 보고 싶어"


파란 자동차는 신중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해안 도로를 정처 없이, 시가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금세 시즈쿠가 모르는 풍경이 되었다. 시마에게서 말로만 듣던 쓸쓸한 해안 마을이 되었다. 여관도 편의점도 보이지 않고 가끔씩 버스 정류장을 통과했다. 면허가 없는 시즈쿠에게는 개와 산책할 수 있는 범위만이 세계였다. 그러니까, 그곳을 빠져 나왔을 때, 새로운 세계에서 카스미와 단 둘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쪽으로 가면 뭐가 있어?"

"고개가 있고, 고개를 넘으면 작은 항구가 있대"

"그 다음은?"

"고개가 있고, 고개를 넘으면 작은 항구가 있는 것 같아"


"시즈코는 그런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어?"

"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을법한 당연한 것 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


카스미의 운전은 렌터가 가게에서 본다면 후회할 정도로 불안했다. 면허가 없는 시즈쿠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나 극단 동료의 운전과는 분명히 어딘가가 달랐다. 미시마 역에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운일 거라고 생각했다. 좁은 고갯길에서 반대편의 차를 맞닥뜨릴 때마다 카스미는 낯선 게임이라도 하듯 필사적으로 핸들을 틀고, 좌우로 흠칫흠칫 고개를 돌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뒤에서 오토바이나 빠른 차가 오면 '정말'이라고 입을 삐죽이며 대피 공간으로 도망쳤다.


카스미는 분명, 만난 사람과 이런 식으로 애써가며 사귀어 본 적 없을 것이 틀림없다.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순조롭게 가려내며 살아 왔을 것이 틀림없다. 자신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누군가에게 화가 났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부딪히는 것 같은 짓은 하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대사를 내뱉은 자신을 쫓아오면서까지 마주보려 하는 것은, 카스미에게 있어서 매우 '쓸데없는' 들름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시즈쿠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물론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자주 운전하는거야?"

"한 달에 한 번 아버지나 오빠를 태우고 장 보러 가는 정도"


남쪽으로 가면 슈젠지(修善寺) 건너편까지 자동차 도로가 있다고 시마가 전에 그런 것을 말했던 기억이 있지만, 시즈쿠는 운전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흘려 들었었다. 그러니까, 카스미가 해안의 굽이친 도로를, 너무나 진지한 손놀림으로 핸들을 돌려가며 달려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달리자 후지산이 보이는 휴식 장소가 있어서 차를 세우고 카스미는 가방에서 도시락통을 꺼내 들어있던 두 개의 콧페빵 중 하나를 집어 시즈쿠에게 건네 주었다. 햄카츠와 감자 샐러드가 끼워져 있었다.


"일찍 일어나서 만들었으니까, 먹어"


좀 더 자연스러운 생색으로 호의를 보일 수 있는 캐릭터였는데 카스미의 작위는 분명히 답답하고 부자연스러웠다. 그녀를 서투르게 만들고 있는 것이 자신 탓인 것은 명백했기에 시즈쿠는 거기에 파고들지 않고 콧페빵만을 받아 볼이 미어터지게 밀어넣었다. 햄카츠도 감자 샐러드도 기성품이 아닌, 아침 일찍 어두울 때부터 손수 만든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콧페빵도 집의 오븐에서 구워낸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카스미의 집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카스미가 요리하고 있는 모습이라면 뚜렷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무척이나 그리운 맛이 났다.


"맛있어"

"시즈코에 대해 물어봐도 돼?"

"좋아"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거야?"


소개 받았으니까. 도쿄를 떠나는 편이 좋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시즈쿠가 간략하게 대답하자 카스미는 거리감을 한탄하듯 앞유리 너머의 바다와 하늘을 바라봤다. 내 조언에는 따라주지 않았으면서!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동시에, 자신의 말에 힘이 없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 이브의 그녀를 가장 상처입혔던 것은 시즈쿠의 방황의 편력도, 시즈쿠가 상담하지 않았다는 것도 아닌, 시즈쿠가 결정타로 날린 대사임이 틀림없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너 따위에게 듣고 싶지 않아'라고 통보받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어딘가 관광지 같은 곳은 없으려나?"


콧페빵을 다 먹자 카스미는 스마트폰과 내비게이션을 번갈아 만졌다. '연인곶'이라는 장소가 있으니까 가보자고 제안했고, 처음부터 목적이 없던 시즈쿠는 "좋아"라고 대답했다. 다시 고갯길로 접어들어 카스미는 말이 없어졌다. 카스미를 '공주님'처럼 떠받들고 있던 서클의 남자들이 본다면, 시즈쿠를 나쁜 놈이라 단정할 것이 틀림 없었고, 무엇보다 시즈쿠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 나 같은 것에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고, 순수한 카스미를 막다른 곳까지 휘두르고 싶다는 역방향의 욕구도 있었다.


출발하고서 2시간 정도만에 과하게 정비된 곶에 도착했다. 계속해서 날씨는 좋았다. '연인들의 성지' 같은 식으로 이름이 붙어 있으면 연인도 아니고 친구인지도 의심스러운 상대와 와도 괜찮은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없는 어중간한 시기인데다 평일인 것도 있어서 아무도 없었다. 긴 산책로를 걸어 곶의 끝까지 가니 인위적인 종이 있고 남녀의 상이 있어 흥이 깨졌지만, 과연 우치우라의 해변에서는 갑갑해 보였던 후지산이 푸르게 뻗어 있었다.


"굉장하네. 바다 건너에 후지산이 있다니"

"응. 뭔가 항상 보고 있는데도 항상 신선해"

"좋은 곳이네. 빌딩에 둘러싸여서 도쿄에 있는게 바보같아질거 같아"


카스미는 스마트폰을 꺼내는 일도 없이 중얼거렸다. 차가운 바람이 애쉬 그레이 색의 짧은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있어서 카스미는 시야를 넘나드는 앞머리를 자꾸 털어내고 있었다. 시즈쿠는 슬슬 카스미가 서투른 연극을 하는 것에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견딜 수 없어? 뭐라도 되는 사람이야? 답지 않은 연기를 계속하면서까지 다가서려 하는 카스미를 차가운 시선으로 방관하고 있는 자신의, 그 추악함과 한심함을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휩쓸리기 쉽고 자신의 진정한 의지 같은 건 없고, 걱정만 가득한 주제에 타인의 마음을 알려고조차 하지 않고, 궁지에 몰릴 때까지 진지해지지 않으면서 궁지에 너무 몰리면 내던지고 싶어지고, 혼자 있는게 좋은 주제에 응석부리고 쓸쓸해하는 사람이고. 무엇보다 그런 자신을 깊게 알아버리는 것이 두려워서, 연기자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써 왔어"


카스미가 이쪽을 향했다. 그것은 겉에서 보이는 광경으로, 시즈쿠는 아마도 처음으로 카스미 쪽을 향했다. 고등학교 시절 조금쯤은 마주했던 적이 있지만, 당시의 시즈쿠는 현재만큼 자신을 분석하고 있지는 않았고, 현재만큼 자신을 깔보고 있지는 않았었다. 고민을 털어 놓았다는 정도였지만, 그 때는 그걸로 충분했다.


지금은 꽤나 달랐다. 시즈쿠는 자신의 깊숙한 곳까지 들여보아 버려서,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없게 되었다. 그걸 조금이라도 보여주려고 생각했던 것은, 틀림없이 자신에게 부여한 벌이었다. 카스미를 상처입혀 이렇게 당황하게 만든 벌.


"나는 스스로에 대한 것 따윈 깊게 알고 싶지 않았어. 타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을 싫어하고 싶지 않았어. 자신을 싫어하고 있는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사랑 받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자꾸 스스로를 알게 되어버렸어. 스스로가 점점 싫어졌어. 나에게는 '소중'하게 여겨질 자격 같은 건 없어. 카스미양은 어째서, 이런 곳까지 나를 찾으러 온 거야?"


몇 번이고 확인하듯이 스스로에 대해 말했다. 더 이상, 드러낼 수 있는 것조차 남지 않았다. 카스미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자신도 카스미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었다. 대등하다고 하면 어폐가 있지만, 상대가 신의 가족이라도 된다면 모를까, 사랑도 모든것도 받기만 하는 걸 용서받을 리가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카스 카스미'를 좀 더 알아야만 했다.


"시즈코가, 시즈쿠가 '소중'하니까"

"그렇구나"


마음에 간직했다. 분명치 않은 감정을 이유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소중'하다는 것 만으로도 누군가의 거처를 알아내 일부러 드라이브에 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있다. 더 이상 카스미를 알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시즈쿠는 포기하기로 했다. 이제 되지 않았는가.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연극과 관계 없는 세계에서 '여기로 와'라고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시즈쿠의 안에 있는 하얀 시즈쿠와 검은 시즈쿠는 휴전 협정을 맺은 것처럼 잠자코 있었고, 시즈쿠는 곶의 끝자락을 둘러싼 난간에 기대었다. 발 디딜 곳이 없어진 느낌이 들고 바다와 하늘과 후지산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 여배우의 연기는 여기까지. 열심히 해왔지 않은가.


"행복이란 건, 어제 100이었던 사람이 오늘도 100이면 행복을 느낄 수 없는거라 생각해. 하지만, 어제 3이었던 사람이 오늘 5가 된다면 행복할거라 생각해. 나는 마이너스 100 정도였지만, 카스미양이 나를 '소중'하다고 말해 줘서 마이너스 50 정도가 되어 엄청 행복하니까, 지금, 여기서 뛰어 내려 죽어도 좋아"


"——해"


연극 대사처럼 눈이 덮인 후지산을 향해 선언하자, 등 뒤에서 카스미가 그 즉시 무언가로 되받았다. 너무나 강한 목소리였지만, 갑작스럽기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시즈쿠는 돌아 보았다. 스스로도 활짝 갠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자살'한 후의 유키 세츠나보다도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단념'했으니까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있지만, 지금은 다행일 정도로 맑았다. 이제 충분하다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자,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성취감이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 주었다. 그러나, 미소 짓고 있던 시즈쿠는 분노로 끓어오르고 있는 카스미의 표정에 일변해 숨을 삼켰다.


"사과해"

"뭐? 무슨 일이야? 저기, 화내고 있는거야?"

"시즈코. 사과하라니까"

"미안해"


카스미가 뜻밖에 격분하고 있어서 얌전히 머리를 숙였다. '죽어도 좋다'라고 하는 것은 진심이었지만, 지금 당장 스루가만에 뛰어들어 버리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여배우를 목표로 발버둥치고 있는 자신이 '죽어도 좋다'고 하는 것은 진심이었지만, 일부러 만나러 와 준 카스미에게 말하는 것은 조심성이 없었다. 시즈쿠는 그것을 반성하고 머리를 숙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 지나서 고개를 들었을 때, 카스미의 자그마한 전신을 부들부들 떨리게 하는 분노는 오히려 거칠어져 억누를 수조차 없게 되어 있었다.


'죽어도 좋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도를 담았든, 어쩌면 나카스 카스미가 오사카 시즈쿠에게 절대 입에 담지 않았으면 하는 대사였을지도 모른다.


"카스밍한테가 아니야! 카스밍 이외의 세상 모든 사람들한테 사과해! 지금까지 시즈코와 관계되었던 사람들한테도! 앞으로 시즈코와 관계될지도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영원히 새빨간 타인일지도 모르는 사람한테도! 아무튼 카스밍 이외의 모든 사람한테 사과해! 내친김에 개한테도! 본가의 개한테도, 아까 있던 개한테도 사과해! 됐으니까 사과하란 말이야!!"


카스미는 눈동자에 살기를 띠고 얼굴을 새빨갛게 하며 아이처럼 외치고 있었다. 시즈쿠를 당황하게 하는 동시에 그 동요를 없앨 만큼 커다란 의문을 갖게 했다.


"카스미양한테는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카스밍은, 시즈코로 하여금 전세계 사람들에게 사과하게 한 것을, 마이너스 50 정도밖에 해줄 수 없는 것을, 시즈코에게 사과하고 싶어, 요"


죄송합니다——카스미의 표정은 한 순간에 부풀어올라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카스미는 땅에 엎드려 버리는게 아닐까 초조할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전망대에는 계속해서 아무도 없었지만, 시즈쿠는 황급히 다가가 카스미의 우는 얼굴을 태양으로부터 가렸다. 끌어안고 "미안해"라고 사과를 반복했다. 카스미가 외친 것처럼 전세계에 사과할 수는 없었다. 성실하고 정직한 카스미를,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은 카스미를, 이기심으로 가득찬 자신 같은 것에게 사과하게 만들어 버린 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사과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오늘 밤, 시즈코의 방에 묵어도 돼?"


한참동안 얼굴을 무너뜨리며 운 뒤, 팔 안의 카스미는 얼굴을 들고 물어 왔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떨쳐버린 얼굴을 하고 있어서, 시즈쿠는 카스미의 얼굴을 어울리지 않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같은 학년이지만 생일이 떨어져 있는 카스미가 최근에야 겨우 스무살이 되었단 것도 같이 생각났다. 생일 같은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서로 아무것도 축하하지 않았다.


"좋아. 1박 2000엔이니까 1000엔은 내야해?"


응. 카스미는 시즈쿠의 가슴을 파고들듯이 끄덕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물어볼 것이 있다고는 하지 않았다. 다만, 시즈쿠는 그 미묘한 말의 차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매달리는 카스미의 흔들리는 눈에 마음이 묶여 있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가는 길보다는 무척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산책길을 걷던 도중, 길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울타리에 '손을 맞잡는 길'이라는 판이 붙어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이걸 발견하는 건 어떤 일인걸까 하고 둘이서 겨우 웃었다. "손, 잡을래?"라고 말을 꺼내자, 카스미는 얌전히 손바닥을 내밀어 왔다. 시즈쿠는 그 손을 잡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여러 사람들의 손을 잡아 왔지만, 카스미의 손이 가장 작아서 믿을 수 없었다.



곧장 돌아왔지만 '토치만'의 주차장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석양이 강해지면서 카스미는 눈부심 때문에 속도를 늦췄고, 고갯길이 어둑어둑해지자 '밤에 달린 건 교습 한 번 뿐이야'라고 실처럼 가는 목소리를 내며 불안해했다. 같은 길을 달려 왔는데 갈 때보다도 시간이 더 걸렸다. 시즈쿠는 카스미가 운전에 고전하는 동안 문자를 보내, 양이 줄어도 좋으니까 두 사람분의 저녁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어디까지 갔다 온거야?"

"연인곶이라고 하는 곳이요"


그렇게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시마는 조금 의아한 듯 했다. 그리고는 아마 여러가지 의문을 모두 포함해 "좋았어?" 라고 물어 왔기에 시즈쿠는 "그럭저럭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카스미가 사용하고 있는 '소중'하다는 말에 또다른 의미가 전혀 없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보은을 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닫고 말았다. '오사카 시즈쿠'라 하는 연기만 하는 인간에게는, 진심으로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그럭저럭?"

"네"


시즈쿠는 눈을 내리깔고 미소지었다. 언제까지고 시마의 영업에 응석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가까운 시일 내에 가마쿠라로 돌아가자고 결심하고 있었다. 가마쿠라에 돌아가, 그 나름대로의 재산가의 정숙한 차녀라는 이름 없는 단역을 연기해 나가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결혼이라도 한다면 그 누군가가 적어도 '아내니까'라는 이유로 아껴줄 것이다. '남편이니까'라는 이유로 형식적으로라도 누군가를 아껴줄 수 있을 것이다. 카스미는 분명 결혼식 때 사회를 맡아줄 것이다. 밝고 긍정적으로 자신을 소개해 줄 것이다.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았다.


곧 저녁 식사가 완성되고, 여기 와서 처음으로 셋이 식탁에 둘러 앉았다. 카스미는 맛있게 시마가 직접 만든 요리를 즐기면서, 평소처럼 자신에 대한 것을 쉴새없이 시마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일도 많이 이야기했기에 시즈쿠도 역시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스쿨 아이돌을 했던 1학년 때. 연극부에 몰두했던 2~3학년 때. 되돌아보면, 타카사키 유우와는 무대 때마다 관계를——지금 생각해보면 '의존'을 깊게 해왔었지만, 카스미와의 관계의 농도는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청소하다보니 폭죽을 찾았어. 해변에서 갖고 노는게 어때?"


돌연 시마가 제안했다. 그녀가 한 말이니 '어두운 곳에서 좀 더 이야기하는게 어때?'라는 의미일 것이다. 시즈쿠는 이런 겨울에 불꽃놀이를 하냐며 질색했지만, 카스미는 붙임성 있게 '재밌겠다'라고 대답하고, 식사가 끝나자 바로 양동이를 준비해 물을 부었다. 시마는 그런 카스미를 바라보며 시즈쿠에게 '밝은 아이구나'라고 평가해왔다. 그건 틀림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밝은 아이가 아닌' 자신에게 어째서 구애되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 근방, 밤은 엄청 조용하네. 도쿄의 밤이랑은 완전 달라"

"응. 가끔 차가 지나가는 정도일까나"


손전등을 한 손에 들고 거리를 건너 해변으로 내려갔다. 하나씩 쥐고 불을 붙여보니 의외로 습기가 없어서 형형색색의 불꽃이 차가운 밤 해변을 수놓았다. 코트를 입고 불꽃놀이를 하는 일 따윈 두 번 다시 없겠지 하고, 시즈쿠는 불을 붙여서 빙글빙글 하늘에 흩날렸다. 꿈을 공양하는 향 같아서 딱 좋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공양해버릴 찬스라는 것을 깨닫고, 카스미의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옆얼굴에 말을 걸었다.


"꿈이란 건, 이 불꽃놀이 같은 걸지도 몰라. 멀리서 보면 이렇게나 예쁜데, 잡으려고 하면 뜨거워서 손에 잡히질 않아"


신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연극조의 대사는 속보이는 서론이었다. 연극이라면 이제 이 다음에 상대가 할 대사는 '꿈, 포기하는거야?'로 정해져 있다. '포기하는거야?'라고 물어오면, '응'이라고 대답만 하면 된다. 시즈쿠는 자신에게 형편 좋은 스토리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시즈쿠는 자신과 전혀 다른 타입의 배우가 쏟아내는 애드리브에 대해서 한심할 정도로 무방비였다.


"카스밍 있지, 봄부터 간호 전문학교에 다녀"

"엣?"

"전에 이야기했던 회사의 내정, 거절했으니까"


폭죽을 양동이에 대충 넣은 카스미의 얼굴은 옆에 있는데도 잘 보이지 않았다. 빛이 없는 해변의 불꽃은 너무나 밝아서, 그걸 계속 바라보고 있었어서 적응이 늦었다. 지금 꿈을 포기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째서 옆에서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하는거냐고 원망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시즈쿠는 "어째서?"라고 묻기로 했다. 곶에 있을 때 카스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라고 말한 것을 떠올렸으니까, 들어주는 책무 정도는 완수하자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즈코에게 들었으니까. 카스밍 같은 인간에게 훈계받고 싶지 않다고. 떠받들어지고 잘난체하는 얼굴로 기뻐할 수 있는 녀석에게, 요령 좋게 처세하는 듯한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긍정적인 녀석에게, 훈계받고 싶지 않다고 들었으니까"

"거기까지는......"

"말했어! 무서운 얼굴을 하고! 시즈코는 말했습니다!"

"카스미양에게 무리 해달라는 말 같은 건 한 적 없어!"


언성이 높아졌다. 자신과 누군가의 인생을 링크시키고 싶지 않았다. 배우로서 사람을 감동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도,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의 인생까지 바꾸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타카사키 유우에게 '두근거림'을 주는 정도가 딱 좋았다. 만약, 아주 만약에 타카사키 유우가 시즈쿠의 영향으로 모험을 나서서 커다란 실패를 한다면, 틀림없이 나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카스미가 내정을 거절하다니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카스밍은 시즈코한테 타이르고 싶어! 소중한 사람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해! 카스밍은 시즈코에게 타이를 수 있도록, 제대로 노력해서 존경받는 인간이 되고 싶어!"


그러나, 돌아오는 외침에 압도돼 시즈쿠는 말문이 막혔다. 바로 조금 전, 드디어 2년 가까이 지탱해 온 여배우의 간판을 내릴 결심——그렇게 부르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판단'에 이르렀는데, 어째서 카스미는 그것을 뒤엎는 것 같은 말을 하는 것일까. 어째서 카스미는 그렇게나 자신을 '소중'하다고 반복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어째서 진작에 자신을 응원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입술을 깨물고 새로운 폭죽에 불을 붙였다. 카스미도 다음 폭죽에 불을 붙였고, 노란색과 파란색의 빛은 물처럼 섞여 물가로 쏟아졌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나 소중한거야?"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에게 '어째서 소중한가'를 묻는 것은 실례일 것이 당연하다.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것에 이유 같은 건 필요 없다고, 고등학교 시절의 시즈쿠였다면 딱 잘라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즈쿠는 자신조차도 '오사카 시즈쿠'를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 몇 번밖에 만나지 않은 카스미가 아직도 '소중'하다고 말했는데, 무조건적으로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카스미는 시즈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화려한 빛과 소리가 나는 분수불꽃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던 것인지 풀죽은 듯한 목소리로 "선향불꽃 하자"고 중얼거렸다.


가느다란 폭죽에 불을 붙이고, 둘이서 웅크린 채 작은 불꽃을 바라봤다. 겨울의 선향불꽃은 운치가 있구나 하고 시즈쿠는 계속 남의 일을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카스미는 가랑비가 내리듯이 조금씩 말을 내뱉어 시즈쿠의 메마른 마음을 조금씩 적셔갔다.



"카스밍은 있지, 10살이 되기 전에 알아버렸어. 자신이 너무 귀엽다는 것을. 그치만, 아버지도 두 오빠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이웃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세탁소 주인도 편의점 점원도, 모두, 카스밍에게 귀엽고 귀엽다고, 태어날 때부터 말해줬으니까, 이미 어쩔수 없는거야"


"그러니까 있지, 초등학교에서도 '카스밍 귀엽지'라고, '카스밍 귀여우니까 친구가 되어줄게'라고, '카스밍 귀여우니까 놀아줄게'라고, 매일 같이 말했어. 그랬더니 있지, 정신 차려보니 아무도 카스밍과는 놀아주지 않게 되었어. 고학년이 되니까 이제 더는 소풍에서도 그룹 학습에서도 수학 여행에서도, 아무도 같은 조가 되어 주지 않았어. 그래도 있지, 카스밍은 가족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가장 귀여워 보이는 미소를 만들면서 많은 친구들이 있는 척을 하며 웃고 있었어."


"연기라고 해도 좋아. 카스밍은 연기를 했었어"


"카스밍은 중학교에 진학해서 생각했어. 귀여운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상냥하고 가정적인 여자 아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어머니에게 요리나 집안일을 배웠어. 그러고 나서, 항상 편의점에서 빵을 사오는 아이가 몇명 있었으니까, 콧페빵에 이것저것 끼워서 도시락을 만들어줬어. '귀엽고 상냥한 카스밍에게서 온 도시락입니다—' 라고"


"하지만, 이미 모든게 늦어버린 뒤였어. 초등학교 때 잃었던 나쁜 평가 같은 건 뒤엎을 수 없었어. '귀여워 귀여워'라고 자신만 칭찬하고, 자신보다 뛰어난 아이나 리치한 아이를 만나면 토라지는, 그런 제멋대로인 아이는 누구도 좋아할 리가 없었어. 누구도 카스밍의 콧페빵 같은 건 먹어주지 않아서, 카스밍은 배가 터질 정도로 콧페빵을 먹고, 5교시 체육 도중에 화장실로 달려가 전부 토해내거나 했어"


"등교하면 실내화 대신에 콧페빵이 두 개 놓여있는 날도 있었어. 혼자 돌아가는 길에 슬퍼져서 해질녘의 공원에서 울기도 했어. 저기, 고등학교 시절에 시즈코와 돌아갔을 때, 카스밍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던 적 있었지? 기억나진, 않으려나?"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카스미양은 해질녘이 되면 쌓인 감정을 터트리듯이 우는 일이 있었다. 손수건을 얼굴에 대고 5분 정도 돌처럼 굳고, 그러고선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석양은 감동해 버리네요'라고 웃는 것이었다. 나는 배우이면서도 카스미양의 서투른 연기를 눈치채지 못했다. 날카로운 후회가 마음을 파고들었다. 더 이상 말하게 해선 안돼. 그 마음조차 처세라는 자각은 아직 없었다.


"카스미양, 미안해요.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괴로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면, 이제, 괜찮으니까, 이제 나는..."

"들어주세요! 세상에서 시즈코에게만 이야기할거니까 들어주세요!"


젖은 목소리로 카스미양은 울고 있었다. 이 마을에 오기 전의 나였다면 냉담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제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살 곳도 없는 자신의 비참함과 비교하면 낫다고 흘려들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들을 필요가 없다면서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카스미양의 고백을 멈추지도 다른 이야기로 돌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톡 하고 불꽃의 구가 떨어져서 새롭게 불을 붙였다. 탁탁하고 정말로 희미한 소리만을 BGM으로 하고, 카스미양의 과거는 '체념'이라는 이름의 공백에 계속해 쏟아 부어졌다.


"카스밍은 어떻게든 참고서 중학교를 졸업했어. 고등학생이 되면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 있도록 힘내자며 학생이 많은 니지가쿠에 진학했어. 하지만, 사실은 무서웠어. 정말로 무서웠어. 니지가쿠에는 중등부부터 진학하는 아이도 많으니까, 3년 동안 완성되어버린 원 안에 들어가는게 무서웠어. 다시 따돌림 받는게 아닐까 하고 무서웠어. 그러니까, 고등학교에서 편입한 아이를 찾아 말을 걸어보자고 정했어"


"입학식 후에 벚꽃 가로수를 혼자서 찍고 있는 여자 아이를 발견했어. 아무리 봐도 아가씨 같아서, 세상 물정을 모를 정도로 무척이나 순수해 보여서,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나쁜 말을 하거나, 그런 건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을 걸었어. 하지만, 카스밍은 바보처럼 하나밖에 모르는 듯이 '귀여운 카스밍과 친구가 되어요'라든지 말해버렸고, 그런데도 그 아이는 '좋아요'라고 벚꽃보다도 예쁜 얼굴로 웃어 주었어"


"굉장히 착한 아이니까, 굉장히 성실하니까, 굉장히 미인이니까, 어차피 곧 인기있는 애들과 사이좋게 지내버리겠지 하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반도 다르면서 같이 돌아가 주고, 아가씨인데도 군것질에 어울려주고, 집도 엄청 먼데 저녁까지 놀아주고, 카스밍이 '스쿨 아이돌 하자'고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해도, 부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같이——"


"카스미양! 카스미양!!"


이야기를 들을수록 치밀어 오르던 감정이 마침내 목구멍을 넘었다. 폐와 심장이 아슬아슬할 정도로 오그라들어 있었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그대로 숨이 막혀 모래사장에 쓰러졌을 것이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선향불꽃을 모래에 내던지며 이름을 불렀다. 외쳤다. 아직 불꽃을 손에 들고 있는 카스미양을 뒤에서 꼭 껴안았다. 카스미양의 손을 꼭 쥐고 둘이서 하나의 불꽃을 떠받쳤다. 나는, 카스미양보다 두 배 정도 흐느껴 울면서, 이미 시간에 녹아 있는 인연을 기억의 바다에서 필사적으로 건져내려고 했다.


오사카 시즈쿠는 유키 세츠나는 될 수 없었다. 자신이 입고 있던 껍데기만을 마음대로 벗어버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지만, 꼴사납게 더러워진 껍데기도 전부 통틀어서 소중히 여기고 싶어하는 사람이 여기 있으니까.


"거기는, 거기서부터는 일인극이 아닌거지? 혼자가 아니었던거지!"

"응. 혼자가 아니었어. 시즈쿠가 처음으로 있어 줬으니까, 고등학교 시절, 엄청 즐거웠어. 5년 정도의 흑역사 같은 건 모두 무지개색으로 하고, 그러고도 잔뜩 더 많은 걸 받았어. 니지가쿠에서 처음으로 만난게 시즈쿠라서 다행이었어. 오사카 시즈쿠라서, 정말로 다행이었으니까...... 시즈쿠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소중해......"

"그런, 그런건 빨리...... 미안해, 말할 수 없겠지......"



불꽃이 하나 떨어졌을 때, 잔물결의 소리가 들렸다. 어둠으로 돌아온 해변에서 베이지색의 코트로 레몬색의 코트를 감싸듯 우리는 몸을 맞대고 약간의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다. 그건 키스가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기억의 보전이었다. 내 곁을, 옆을, 때로는 피부 표면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경험했던 일을,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너무나 단순한 바람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오사카 시즈쿠로 있는 '내'가 처음 한 키스일지도 모르지만, 조금 억지스러운 해석이었다.


"돌아갈까"


붙잡은 카스미양의 손은 역시 작았다. 손전등으로 발밑을 비추며 도로쪽으로 올라가려 하자, 카스미양이 내 손을 강하게 당겨 모래사장에 구를 뻔 했다. "무슨일이야?"라고 묻자, 카스미양은 내 몸에 팔을 두르고 껴안아왔다. 이미 충분히 껴안았기에 과한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정면으로 끌어안는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카스미양은 숨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 가까워지지 않으면 진지한 눈빛조차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시즈쿠"

"왜?"

"본가에 돌아가란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을게. 그치만, 도쿄에 돌아가자? 시즈쿠는, 시즈쿠는 바보니까 어차피, 역시 배우가 되고 싶다든지 하는 말을 하고, 방심해버리면 어딘가로 가버리고, 모르는 사람이라든가 이상한 사람을 따라가버리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비쩍 마를 정도로 살이 빠지거나 하니까, 내가 곁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하고 싶다는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방을 빌려서 같이 살자?"


삼고초려라는게 자신에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한 사람에게서 이렇게나 진지하게 세번이나 같은 것을 듣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꺾이기로 했다. 나는 바보니까 '어쩔 수 없이' 카스미양이 곁에 있어줘야 하는 것이다.


"정말로 정말로 부족한 몸입니다만, 잘 부탁드려요"


이제 두 번 다시 찾을리 없는 이 미토(三津) 해변이라는 장소에서, 별의 반짝임과 파도의 속삭임이 들리는 가운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살기로 정했다. 양동이와 손전등을 들고 돌아오자, 시마씨는 눈물로 퉁퉁부은 우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즐거웠나보네'라고 웃으며 모르는 척을 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오늘은 밑에서 잘까나'라고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뛰는 듯이 2층에 올라 방에 틀어박혀 버리자, 더 이상 알지 못한 채로도 알리지 않은 채로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와 관계 되었던 다양한 사람이 안 것을 카스미양이 모르는 것은 이상하다. 코트를 벗어 개지 않고 집어 던졌다. 이불과 담요를 다다미에 내동댕이치듯이 폈다. 에어컨을 켜고 돌아보니 정좌하고 이불에 올라가 있는 카스미양은 '시즈코,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무서워'라고, 겁내는 강아지처럼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내 쪽에서 깨끗이 옷을 벗어주자, 카스미양은 흥미진진함을 숨길 수 없는 얼굴이 되어, 벌린 다리 사이에 오도카니 앉아 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즈코, 있잖아, 여기, 어떻게 되어 있는거야?"

"미안, 카스미양. 어디가, 어떻게 되어 있는데?"


속옷을 벗어 던지기 전부터, 이 숙소에 돌아오기 전부터, 불꽃놀이를 끝낸 무렵부터, 아니 훨씬 전부터, 카스미양과 키스를 한 시점부터 깨닫고 있었다. 자신이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바라고 있던 것을, 유우씨와 껴안는 것보다도 몇배나, 혹은 몇십배나 원하고 있던 것을. 그리고 알몸이 되어 새롭게 알아 버렸다. 자신을 소중하다고 진심으로 말해 주는 사람 앞에서 알몸이 되는 것이, 이렇게나 부끄러운 일이란 것을. 지금까지의 자신이, 설령 유우씨의 앞에 있어도, 연기로 인한 얇은 옷을 감고 있었다는 것을.


"그, 그 자세에서 수치 플레이 하나요?"


카스미양은 본 적이 없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본 적 없는 표정을 보여주었다. 카스미양은 전부 한꺼번에 나온 풀코스 요리를 본 듯한 얼굴로 어디서부터 만져야 할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도 호기심을 감추거나 하지 않고 처음으로 키스를 하면서 내 가슴을 만져왔다. 그게 '카스미양이 상상하고 있는 섹 스의 순서'라고 생각하자, 유우씨는 아니지만 '두근거림'에 휩싸여 머리카락과 손톱 끝까지 황홀해질 것 같았다.


카스미양의 손끝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나는 울면서 웃어버릴 정도로 느껴버려 부끄러워졌다. 닿는다고 하기보다 찌른다거나 맞힌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미개척의 정글에 조심조심 발을 내딛는 것 같은, 서투르고 정리되지 않은 애무인데도 녹아버릴 정도의 환희에 휩싸여 경망스러운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자신의 피부 위에 '오사카 시즈쿠'라 하는 두꺼운 인형옷을 입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민감해져 모든 자극을 너무나 솔직한 반응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카스밍도"


카스밍은 스스로 알몸이 되었다. 불도 끄지 않고 옷을 벗었다. '카스밍것도 봐도 좋아'라고 씩씩하게,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웃어 주었다. 하지만, 부끄러워하며 금세 같이 이불을 덮었다. 재빨리 눈꺼풀에 새긴 몸은 내가 만났던 누구보다도 천진난만했다. 그래도 카스미양은 숨을 거칠게하며 살갗을 겹쳐왔고, 넓은 면적을 하나로 한 순간에 내 육체를 만들고 있는 모든 세포는 일제히 폭발해 버렸다.


기억되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몸부림쳐 버렸고, 놀래킨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소리질러 버렸고, 물론 몇번이고 그렇게 되어버리고 싶다는 것이 본심이고 자신의 이 부끄러운 모습은 기뻐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순진한 카스미양의 팔 안에서 정신없이 호소해댔다. 카스미양의 나를 부르는 말은 언젠가부터 '시즈코'에서 '시즈쿠'가 되어, 내 쪽에서는 이제 도중부터 소중한 사람을 뭐라고 부르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게 되었다.



눈을 뜨자 아침이었다. 커튼과 벽시계를 번갈아 보며 해가 길다는 것을 느꼈다.


운전으로 지친 것인지, 겨우 나를 붙잡아 안심했던 것인지, 카스미양은 작은 숨소리를 내며 깊게 잠들어 있었다. 알몸으로 깨어난 경험이라니 말도 안된다. 알몸으로 깨어났을 때 내가 곁에 있다면 분명 패닉에 빠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온기만을 남긴 채 속옷을 입었다. 에어컨을 켜고 자서 얼굴과 목이 건조하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간단하게 빗질을 하고 노란색 리본으로 머리를 묶었다. 카스미양이 눈을 뜨고, 어제의 여러 일을 천천히 음미하고, 그러고 내려올때까지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좋은 듯이 시마씨를 돕기로 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안으로 들어가니 시마씨는 평소처럼 아침밥을 만들고 있었다. 생선 굽는 냄새와 된장국의 향기가 적당히 섞인 일본의 아침이었다. 테이블에는 젓가락과 밥공기가 3세트 놓아져 있어서 마치 가족같다고 생각했다. "좋은 아침". 시마씨는 드물게도 등으로 대답을 했다. 냄비의 상태를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일부러 "으음"이라고 신음하는 듯한 소리를 낸 후 뒤돌아 눈을 피하며 미소를 띄웠다.


"시즈쿠쨩"

"네"

"소중한 사람과 재회해서 마침내 마음이 통해 무척이나 기쁜 건 알겠어. 온몸으로 행복을 받아들이고 싶고, 온몸으로 기쁨을 전하고 싶은 기분도 알겠어. 그래도 있지, 일단은 아래 층에, 독신으로 파트너도 없는 30대 중반의 여자가 있으니까, 조금은 목소리를 낮춰서 엔조이 해줬다면, 나도 솔직히 축하해줄 수 있었을까나"

"엣, 저기, 죄송해요"


시마씨가 너무 친절하게 '시끄러워'라고 말해줘서, 도대체 얼마나 큰 소리를 낸지도 상상할 수 없었고, 나는 그저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놀림받는 것에 익숙치 않아 척척 식기 준비를 하고 싶었는데, 시마씨는 질문을 이어서 내 움직임을 멈춰 버렸다. 그래도, 아까와는 다르게 평소의 온화한 얼굴이었다. 우리들의 대화를 전부 엿듣고 있던 것처럼 정답이었다.


"도쿄에 돌아가 둘이서 사는거니?"

"네. 전처럼 '돌아가지마'라고 말할건가요?"

"그러진 않아. 다만......"

"다만?"

"시즈쿠쨩, 겉보기와는 다르니까. 벽이 두꺼운 방을 구하는게 좋을거야"


호되게 놀림 당하고, 취하지도 않았는데 기억이 지워져 있는 어젯밤의 자신이 두려웠다. 카스미양이 많이 기억하고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단 한가지 다행인 것은 카스미양의 경험치가 '1'이었던 것이었다. 이윽고 비슷하지만 싫증나는 일 없는 아침 식사가 완성되었고, 카스미양을 깨우러 계단으로 향했을 때, 비치된 유카타에 솜이 들어간 한텐을 걸친 그녀가 매우 어색한 얼굴로 나타났다. 나도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와 카스미양은 그 이유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나와 시마씨에게 한번에 인사하고, 그 순간만은 꽤나 웃는 얼굴이었지만 카스미양은 매우 곤란한 얼굴이 되어 자리에 앉았다. 시마씨가 여기에 없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명랑한 카스미양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한 공기 속에서, 그래도 맛있는 아침밥을 먹고, 우리 둘만 2층으로 올라갔다. 큰 소리만큼은 내지 않도록 강하게 의식하면서 방으로 돌아왔다.


카스미양은 부끄러운 듯이 등을 돌렸다.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고르고 있었다. 이불은 아직 깔아둔 채였다. 덮는 이불은 금방이라도 잘 것처럼 깨끗하게 펼쳐져 있었다.


"시즈코, 어제의......"

"혹시 기억 안나?"

"반대. 야. 뭔가. 굉장해서"


나는 반사적으로 둔기나 빠루 같은 것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여관이라면 커다란 재떨이 정도는 있을법 한데, 여기에는 카스미양의 기억을 말소해버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카스미양은 전부 기억해 버렸다.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새겨져 버렸다. 여자아이는 모두 이렇다고 거짓말을 하면 됐을텐데, 그 타이밍마저 깨끗이 놓치고 말았다. 나는 그래도 기죽지 않고 생각에 잠겨있다가 카스미양의 등에 손을 대고 속삭였다.


"조금 연기를 과하게 했을 뿐, 이라구?"

"그렇구나. 카스밍의 앞에선 있지, 연기하지 않아도 돼"


카스미양이 뒤돌아보며 웃었고, 나는 이 이유를 다시는 사용할 수 없단 것에 당황했다. 다음엔 좀 더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거라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카스미양의 상냥한 미소라든가, 애처로운 눈동자라든가, 꽃잎같은 입술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 당장이라도 끌어 안고 안겨지고 싶은 생각이 가슴을 쑤시고, 설레게 하고, 춤추게 하는 것이었다.


"돌아가면 곧바로 방을 찾을테니까. 바라는게 있으면 알려줘"

"방에서 대본을 읽거나 하고 싶으니까 벽은 두꺼운게 좋을거 같아"

"벽인거네. 알겠어. 부동산에 얘기해 둘게"


순수한 카스미양은 그런 말을 남기고 차 안의 사람이 되었다. 나는 카스미양이 돌아가는 길에 절대로 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도를 드리는 무녀가 되었다. 당분간 여기에 있어도 될 정도로 돈은 여유로웠지만,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3일 뒤에는 '타카미야'를 떠나겠다고 시마씨에게 전했다. 가마쿠라의 본가에 얼굴을 내밀고, 카스미양과 산다는 것과 '연극을 계속하고 싶다는 것'을 자신의 말로 전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고 싶은 일이 생겼구나"

"네"


자신있게 대답했다. 나는 처음으로 연극을 하고 싶어져 있었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연기하고 싶다든가, 누군가가 되어보고 싶다든가,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싶다든가, 누군가를 두근거리게 하고 싶다든가, 그런 이유는 필요 없었다. '오사카 시즈쿠'가 '나'와 하나가 되었을 때, '나'로 인해 억지로 연기하고 있던 '오사카 시즈쿠'가 마침내 스스로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연극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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