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음을 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구체적인 환경 속에서 산다. 자연 환경이나 생태 환경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 제도의 틀과 관행 역사, 문화적인 여건 등이 모두 환경이다. 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나의 환경이다.

  사람은 환경을 닮는다. 환경을 만든 것은 사람이지만 사람은 그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아름다운 도시에 가면 옷매무새가 달라지고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더러운 도시에 가면 아무 거리낌 없이 쓰레기를 거리에 버리게 된다. 맹자를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맹모 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일화도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환경을 잘 가꾸는 수밖에 없다. 삼천리 금수강산해(錦繡江山海)를 잘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권리이자 후대를 위한 의무이다. 나 또한 그 권리와 의무를 다하며 남은 여생을 살 생각이다.

  환경의 중요성을 들 때 가장 우선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는 주거 환경과 교육 환경이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속한 삶터와 배움터를 닮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그 획일성에서 탈피하여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대 다수가 살고 있는 거대 도시 서울과 수도권을 되살리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점차 전통이 사라지는 도시, 건물은 있으되 건축은 없는 도시, 러시아워가 따로 없는 교통 대란의 도시, 자동차 매연과 소음에 찌들리는 도시, 이런 오명을 벗기 위해 우리 모두가 관심을 보여야 할 때다.

  서울은 단지 서울만의 도시가 아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도시요, 세계 속의 도시다. 그 같은 위상에 걸맞은 도시 환경을 만드는 일에 나는 내 보잘것없는 능력을 보태고 싶다. 그리고 나는 항상 한반도 지도와 세계 지도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다. 남북한이 하나가 되게 하는 일, 하나가 된 통일 한국이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하도록 만드는 일, 그리고 모든 인류가 더불어 사는 지구촌 문명 시대를 제대로 융성시키는 일을 내 평생의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내 나이 환갑이 넘었다. 나는 지난 육십 평생 중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건축과 도시와 환경을 생각하거나 배웠으며, 그와 관계된 일을 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것은 분명 업보(業報)였다.

  우리 땅과 세계 곳곳을 내 일의 터전으로 삼게 해준 그 업보가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배우고 또 배워도, 그리고 일을 하고 또 해도 쉽게 끝이 보이지 않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죽을 시간조차 없을 만큼 부지런히 도시의 지도를, 나라의 지도를, 그리고 세계의 지도를 우주의 섭리에 맞게 바꾸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