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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훈 에세이] 무일푼으로 미국 유학 가다

운영자 2005.12.22 14:14:27
조회 2891 추천 0 댓글 8

 1. 삶터에 대한 관심과 배움의 길

  무일푼으로 미국 유학 가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나의 유학을 가능하게 해 준 simson 집안

  미국을 다녀온 그해 1962년 가을, 내게 뜻밖의 시련이 닥쳤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이 예우 차원에서 자신의 대구 사범 은사를 우리 경기고 교장으로 발탁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학생들은 교정 이곳저곳에 모여 이 문제에 대해 수근대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은 빈 도시락을 두드리며 이렇게 외쳤다. “양재기는 물러가라!”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그 교장은 건재했으며 대신 학생 간부들이 줄줄이 처벌을 받게 된 것이었다. 나는 당시 총학생회 대의원 의장을 맡고 있었는데, 직접 퇴진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어도 처벌을 면할 수 없었다. 그 처벌은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나와 함께 두 명이 퇴학 결정이 되었다는 둥, 100명 가까운 인원이 무더기로 정학 처분을 받을 것이라는 등등의 좋지 않은 소문들이 돌았다. 나는 예상했던 대로 무기정학을 받았고, 결국 졸업 때까지 교정을 밟을 수가 없었다.

  졸업 후, 대학에 다니던 형과 내 진로 문제에 대해 상담을 했는데, 결론은 도시 건축을 가장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평가되는 MIT 공대를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집안 형편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설사 유학 비용을 마련할 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세계적인 명문 대학에 합격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렇지만 결심을 굳히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여권과 미국 비자 신청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지난번 학생 대표로 미국에 갔을 때 묵었던 솔트레이크시티의 민박집 주인에게 ‘내가 꼭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으니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글과 함께 3개월 정도 체류할 수 있는 초청장을 보내 달라는 편지를 썼다.

  얼마 후 그토록 기다리던 답장이 왔다. 편지를 받은 민박집 주인이 쾌히 도와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들고 뛸 듯이 기뻤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떠나던 날, 어머니와 아버지는 공항까지 나오셔서 몇 번이고 손을 잡아 주시며, 어렵게 마련한 티켓을 손에 쥐어 주셨다. 먼길 떠나는 어린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는 무력감과 안타까움에 부모님은 내 손을 꼭 잡고 한참을 바라보셨다. 무일푼의 나는 편도 비행기 티켓만 손에 쥔 채 그렇게 미국으로 떠났다.

  솔트레이크시티의 그 옛날 민박집에 도착한 것은 1963년 5월, 고등학교 3학년 때 다녀간 후 1년 만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염치 없는 놈이었다. 그렇게 잘살지도 못하고 딸린 아이들도 넷이나 되는 집인데, 채 며칠 안 되는 인연을 내세워 무턱대고 살림 보따리를 풀어 놓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들 여섯 식구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진정으로 나를 반겨 주었고, 기꺼이 방 한 칸을 내어 주었으며, 또 여러 가지로 배려해 주었다. 마침 내 또래인 주인 집 아들 브렌트가 있어 더욱 좋았다.


simson

  고등학교 3학년이던 브렌트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함께 다니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내게는 돈이 없었다. 내가 학비 때문에 망설인다는 사실을 눈치 챈 브렌트는 “우리 학교는 학비가 무료.”라고 말해 주었다. 그제서야 나는 브렌트와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학교는 무료가 아니었다. 브렌트의 부모님이 학비를 대 주고는 무료라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들의 한없는 배려와 마음 씀씀이에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브렌트의 가정은 만리 타국에서 외롭게 걸어가는 내 인생의 시작을 값지게 만들어 준 힘이 되었다. 그러나 브렌트의 집에서 언제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어려운 살림 형편 중에도 나에게 베푸는 그들의 배려를 더 이상은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서둘러 고려대 의대를 나와 워싱턴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하고 있는 누나를 찾아갔다. 내가 서둘러 워싱턴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염치도 없이 남의 집에서 밥을 축내며 내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며칠 전, TV에서 충격적인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케네디 대통령이 저격당해서 사망하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자동차에서 손을 흔들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그 사람은 분명 케네디 대통령이었고, 신문지상에 ‘케네디가 그립다’라는 기사들이 보였다.

  나는 멍하니 충격에 빠졌다. 케네디 대통령과는 불과 10여 분간의 만남이 인연의 전부였지만, 마치 오래도록 가까이 지냈던 친척이나 친구를 잃은 듯한 느낌이었다. 내 가슴에도 저격수의 총탄이 박힌 듯 가슴 한 켠이 뻥 뚫린 느낌이었고, 내 눈에는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브렌트의 가족들과 헤어지던 날, 한국의 가족들과 이별할 때보다 섭섭한 마음이 더 컸다. 그 가족과의 만남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의미 있고 소중한 전환점이 되었고, 나는 그들에게서 받은 도움 이상으로 누군가 다른 이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먼 길을 달려 워싱턴에 도착한 후, 나는 누나가 사는 집 근처에 조그만 방 하나를 얻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어차피 나 혼자 버텨 보겠다고 건너온 미국 땅이니까 사사건건 누나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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