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양호실에 있는 짐은 다 가져왔을텐데...'
그럼 대체 어디에... 아!
하천에서 쓰러졌을때... 그때 없어진게 분명합니다!
'하천...? 거기서 잃어버렸다면 찾는건 힘들겠는걸.'
안돼요! 찾으러... 가봐야겠습... 읏!
'고모리!'
고모리는 갑자기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몸이 아직 아픈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땅에 쓰러지기전에 겨우 안아들수 있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않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아직... 아직 거기에 있을지도...
'안돼! 아픈 몸으로 어딜 가려는거야? 그런 낡은 브로치때문에...'
...제겐, 무엇보다도 소중한 물건이에요... 왜냐면 그 물건은...
오빠가 제게 처음 준... 물건이니까요...
'...'
고모리의 눈가에 눈물이 조금씩 맺히기 시작했다. 고작, 고작 어릴때 준 그 낡은 브로치가 그녀에게 그렇게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니...
나는 잠시간 생각한후 고모리의 손을 꼭 잡았다.
오...오빠? 갑자기 무슨..
'내가 찾아다 줄게. 아니면 고모리가 무리할지도 모르니까.'
그, 그렇지만 제 실수로 없어진걸 오빠가 찾게 할수는...
'소중한 물건이잖아? 그리고 그런걸 준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약속해줘. 무리하지 않기로.'
네... 감사합니다 오빠. 오빠는 역시... 대단해요.
'그, 그런건 아냐... 그럼 찾으러 가볼테니 누워있어.'
아뇨... 최소한 옆에서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절대 무리는 안할테니까...
'... 알겠어.'
나는 고모리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어쩐지 가늘고 길다란 그녀의 손가락에 가슴이 두근거리는걸 느꼈다.
.
.
.
그리고 그로부터 매일같이 방과후에 브로치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풀도 무성한데다 물까지 흐르는 강속에서 브로치를 찾는것은 너무나도 어려웠고 하염없이 시간만이 흘렀다.
'오늘도 허탕인가.'
수고하셨습니다. 오빠... 이젠 포기하셔도 됩니다. 오빠의 말이 맞아요. 그저 낡은 브로치일뿐... 그런거에 얽매여서 지금의 오빠가 힘든건..
'아니야. 나도 오기가 생겼는데다... 고모리와 약속했잖아.'
조금 지쳤지만 미소를 지으며 걱정하는 고모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고모리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아. 아직도 하고있네.
'아. 은하.'
다시 한번 강에 들어가보려는 찰나 가방을 매고 하교중인걸로 보이는 은하가 터벅터벅 이쪽으로 다가왔다.
하여간 바보라니까. 그런 낡은 악세사리, 그냥 새로 사면 되잖아.
그럴순 없습니다! 그 브로치는... 그 브로치는... 제게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물건인걸요...
하지만 그것때문에 지금 클붕이가 힘들면 본말전도 거든? 어리광 부릴 나이는 지났어. 고모리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만해. 고모리는 잘못 없어. 나도 원해서 하는거야.'
너.... 잠깐 와봐.
'엇? 어, 어디로 끌고가는거야!'
은하는 나를 한번 노려보더니 팔짱을 끼고 고모리한텐 들리지 않는 풀속으로 끌고갔다. 내가 당황하며 팔을 놓으려는 순간 은하가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 너, 요즘 이상해.
'뭐..뭐가?'
요즘들어 이상하게 고모리 말을 다 들어주고, 고모리랑만 대화하고... 주위에서 수군대는 소리 못들었어?
'무슨 소리?'
네가... 고모리랑 그렇고 그런 관계란 소리.
'뭣....'
예상치 못한 소리에 머릿속이 하얘지는걸 느꼈다.
내가... 고모리랑?
'우.. 우린 남매야... 그럴리 없잖아...'
너 자신은... 고모리를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 나는....'
내 자신의 기분같은건 생각해본적 없었다. 고모리는 가족이고... 지켜야할 대상이며 여동생이었다.
하지만 요근래 고모리를 눈으로 쫓게되고... 작은 몸짓에 두근거리기도 하는 자신이 있었다.
내 자신은... 어떻게 하고싶은걸까...
'난... 고모리의 오빠야.'
....
'고모리가 기다리니까.. 다시 가볼게....'
가지마... 클붕아.
'은...하야?'
다시 강가로 돌아가려는 순간, 은하가 내 옷깃을 꼭 잡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바람으로 흔들리는 갈대 사이로 은하의 깊은 눈동자도 노을빛과 함께 흔들렸다.
나도... 나도 줄곧 클붕이를 좋아했어. 이 마음만은 누구한테도 지지않아...
'....'
고모리가 있는곳으로 가지마... 내 곁에 있어줘.
내 옷깃을 꼭 잡으며 눈물이 맺힌채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채 생각했다.
은하에 대한 마음, 고모리에 대한 마음. 그리고 자신의 마음... 그 모든것을 깊게 생각했다.
아아... 그렇구나. 나는 그저 고모리가... 그녀가 여동생이라서 이렇게 하는게 아니라...
'미안. 나는.... 고모리한테 가야해. 미안... 미안해 은하야.'
마음의 정리가 끝난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내 눈을 바라보는 은하를 뒤로한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강가로 달려갔다.
미처 뒤를 돌아보지도 못한채...
... 나. 차였구나.
...좀 더 일찍 말했더라면... 달라졌을까.
바보같아...
.
.
.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온 나는 걱정하는 고모리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준뒤 다시 브로치를 찾으러 강가로 내려갔다.
그렇게 여느때처럼 찾기 시작한지 수시간이 지나 어느새 강가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역시 오늘도 허탕인가라고 생각한 그 순간. 조명대신 켜두었던 핸드폰의 불빛 가운데 반짝. 하고 무언가가 빛났다.
토끼모양의 낡은 브로치... 분명 내가 찾던 그 악세사리였다.
'찾았다!... 앗!'
브로치는 다행히 바위틈에 껴서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은 듯 했다. 나는 그것을 겨우 빼냈지만, 발밑의 돌을 잘못 디뎌서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오빠!
다행히 넘어지기 직전, 고모리가 뛰어와서 나를 껴안고 지탱해주었다. 고모리의 부드러운 피부가 닿자 오랜기간 밤공기에 노출되었던 피부가 풀어지는듯 했다.
'고마워, 고모리.'
피부가 차갑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될때까지 무리해서... 언제나...언제나... 오빠는 이렇게 절 지켜주고.. 나는... 지켜지기만 하고...
그래서겠죠. 저를 단순한 여동생으로 생각하는건... 오빠에겐 지켜줘야할 가족일 뿐이니까.
이렇게나 가까이 있으면 가슴이 뛰는데도, 오빠를... 당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애절해지는데도...
저는... 당신이 좋아요. 오빠로서가 아닌... 한사람의 여자로서... 그러면, 안되는걸까요?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강속, 고모리는 나를 껴안은 상태로 그렇게 말했다. 어렸을때부터 단순히 여동생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진심어린 말은 내 가슴을 꿰뚫는것 같았다.
그때 은하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단순한 여동생...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
아니,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어느새인가 그녀를 눈으로 쫓고있었다. 틈이 있으면 고모리 생각 뿐이었다.
내 안의 그녀는 이미 단순한 여동생이 아니었다.
내가 그녀에게 전해야 할 말은 한가지뿐이였다.
'... 힘들지도 몰라. 누군가 이상한 눈으로 볼지도, 괴로워질지도 몰라. 그래도... 그래도, 괜찮아?'
...
당연합니다. 오빠와 함께라면... 그 어떤 것도 기쁘게 버틸수 있어요.
오빠가... 당신이 곁에있으면 무엇도 무섭지 않습니다.
당신은...나의 영원한 히어로이니까요...
나는 고모리의 말에 어느새 그녀를 껴안고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오래 밖에 있었던 서로의 몸은 차가웠지만 이어진 마음과 맞닿은 손은 무엇보다도 따뜻했다.
앞으로 어떤 벽이 막더라도... 무엇보다도 소중한 이 소녀를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 같았다.
그녀의 영원한 히어로로써.
.
.
.
'울지마 고모리.'
10년전, 동네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해 울고있던 나를 오빠는 해질녘의 강가에서 등 뒤에 업은채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울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얼마나 귀찮은 아이였을까요. 하지만 오빠는... 그런 제게 작은 악세사리를 건네주었습니다.
'이거... 용돈 모아서 산건데, 선물이야. 고모리 토끼 좋아하지? 앞으로 울거같으면 이 브로치를 꼭 쥐고 날 마음속으로 부르면 어디든지 달려갈게. 언제든지 고모리를 지켜줄게. 그러니까... 울지 마.'
...저는, 그렇게 말하는 오빠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오빠의 등에 얼굴을 파묻을 뿐이었습니다.
그날 보여준 오빠의 미소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색바래지 않은채 남아있습니다.
'고모리~ 아직이야?'
... 네! 지금 나갑니다! ... 나의 오빠!
그리고 앞으로도... 오빠와 함께 걸어나갈 이 시간들에도 아마 잊지않을거에요.
나의 영원한 히어로의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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