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변호사란 직업의 숨은 고뇌

운영자 2024.04.29 09:47:05
조회 71 추천 1 댓글 0

나는 변호사를 하면서 사십년 가까이 감옥을 드나들었다. 삼사십년 전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오후 늦게 접견을 끝내고 돌아올 때쯤 교도소 안 식당에서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지면 식욕이 동했다. 교도관 식당에서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죄수들이 만든 밥과 반찬이었다. 교도관들의 넉넉한 인심이었다. 어느 사회나 밀과 가라지같은 인간이 섞여있기 마련이다. 교도관이란 직업은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범죄인중에는 솔직히 짐승 수준으로 내려가 있는 존재도 많았다. 짐승의 귀에는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자기 이익 이외에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교도소 내의 어둠침침한 복도를 지나갈 때 마주친 한 젊은 교도관의 이런 말이 기억의 갈피에 남아있다.

“사과를 분배하는 데 저한테 왜 자기는 작은 사과를 주느냐고 시비를 거는 재소자들이 있어요. 사과가 크기가 다 다른 데 제가 어떻게 똑같은 크기와 무게의 사과를 줄 수 있습니까? 정말 자기 이외에는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 모여있는 곳이 이 교도소입니다. 자기 용돈을 위해 강도를 한 자들이 온 곳이 여기 아닙니까?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바로잡지 못한 인간을 교도소가 어떻게 바로잡겠어요?”


관념이나 이론과 현장은 달랐다.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는 악랄한 교도관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나는 교도관이 된 천사들도 많이 봤다.

하얀 눈이 두껍게 덮인 새해 첫날이었다. 청송교도소의 수은주가 영하십오도 밑으로 내려가 있었다. 한 장기수가 작은 독방에 갇힌 채 떨고 있었다. 나무 바닥 틈새로 올라오는 바람이 폭력적이었다. 그 방으로 다가오는 교도관의 구두 소리가 들리더니 철창 사이로 신문지에 싼 뭔가가 툭 떨어졌다. 그 속에는 고기 몇 점이 들어 있었다. 교도관이 아침 차례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몰래 가져다 준 것이다. 냉기를 이겨내게 하는 교도관의 온기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재소자의 아들한테서 편지가 왔다. 예쁜 가방과 운동화를 가지고 싶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감옥 안에 있는 아버지는 가슴이 쓰리는 얼굴로 그 편지를 보고만 있었다. 그 얼마 후 아들에게 가방과 운동화가 우편으로 배달됐다. 한 교도관이 그 사연을 알고 자기 돈으로 문방구를 사서 아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몰래 보낸 것이다. 그 교도관은 박봉을 털어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

성자같은 교도관도 본 적이 있다. 한 장기수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밤이었어요. 무궁화 두 개를 단 교도소 간부가 아무도 없을 때 내 감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식구통 안으로 손을 넣어 내 손을 잡는 거예요. 그 분이 나를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 교도소 안에서는 도대체 말이 안되는 거죠. 왕보다 무서운 교정 간부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거니까요. 저는 가슴이 뭉클해졌어요. 그때부터 성경을 보고 신앙을 가지려고 노력했죠.”

그런 천사교도관들을 보면 나는 머리가 숙여졌다. 문제는 교도관들 사이에 싸이코패스도 섞여 있다는 것이다. 소수지만 그들이 먼지를 날리고 진흙탕물을 일으켰다. 그런 존재들은 교도소의 두껍고 높은 담 뒤에서 조직적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교도소의 두껍고 높은 담은 기자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언론의 조명이 가려진 그늘이었다. 나는 그 그늘 속에서 한 죄수의 입을 통해 처참하게 맞아 죽은 한 인간의 죽음을 알게 됐다. 그 죄수는 병적일 정도로 인권문제에 집착하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제가 변호사님을 보자고 한 건 석방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감옥에 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무서운 것도 없어요. 전 어떻게든 그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교도소 안에서 인질극 난동까지 부리면서 기자를 불러달라고 했지만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그의 강한 집착을 보면서 나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건 국가와의 싸움일 수 있었다. 고정관념과 편견의 사회 속에서 역풍이 불 수도 있고 배경도 조직도 없는 개인 변호사는 공중분해 될 위험이 있었다. 눈 한 번만 꾹 감으면 적당히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다. 잘못 입을 열면 성경속 세례요한 같이 목이 잘려 하루밤 술잔치의 노리개 감이 될 수도 있었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3358 종교 장사꾼 운영자 24.05.20 14 0
3357 주병진 방송을 망친 나는 나쁜 놈 운영자 24.05.20 13 0
3356 대도를 오염시키는 언론 운영자 24.05.20 10 0
3355 세상이 감옥보다 날 게 없네 운영자 24.05.20 10 0
3354 악인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운영자 24.05.20 11 0
3353 서민의 분노와 권력의 분노 운영자 24.05.20 11 0
3352 쥐 같은 인생 운영자 24.05.20 14 0
3351 좋은 사람의 기준을 깨달았다 [1] 운영자 24.05.13 77 2
3350 너도 도둑이지만 윗놈들이 더 도둑이야 운영자 24.05.13 47 0
3349 국무총리와 도둑 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운영자 24.05.13 43 0
3348 도둑계의 전설 운영자 24.05.13 35 1
3347 바꿔 먹읍시다 운영자 24.05.13 33 0
3346 반갑지 않은 소명 운영자 24.05.13 37 0
3345 대도 사건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운영자 24.05.13 31 0
3344 재판을 흥미성 보도자료로 만듭니다. 운영자 24.05.06 64 1
3343 부자들의 비밀금고 운영자 24.05.06 70 2
3342 죄 값 이상을 강요할 권리가 있나? 운영자 24.05.06 51 0
3341 입을 틀어막히는 분노 운영자 24.05.06 52 0
3340 변호사로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운영자 24.05.06 59 1
3339 도둑 일기 운영자 24.05.06 59 1
3338 숯불 나르는 청년의 외침 운영자 24.05.06 55 1
3337 당신은 꽂히면 바로 내 지르는 사람이야 운영자 24.04.29 86 1
3336 아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세요 운영자 24.04.29 66 1
3335 도대체 저의가 뭡니까? 운영자 24.04.29 73 1
3334 기억 사진첩 속 어떤 재판광경 운영자 24.04.29 63 1
3333 내가 체험한 언론의 색깔 운영자 24.04.29 67 1
변호사란 직업의 숨은 고뇌 운영자 24.04.29 71 1
3331 저세상으로 가는 법 운영자 24.04.29 76 1
3330 인권변호사의 첫걸음 운영자 24.04.22 96 1
3329 깨어있는 시민의 의무 운영자 24.04.22 84 1
3328 죄수가 전하는 사회정의 운영자 24.04.22 95 1
3327 이민자의 슬픔 운영자 24.04.22 96 1
3326 강도에게 성질을 냈었다. 운영자 24.04.22 89 1
3325 외국의 감옥 운영자 24.04.22 89 1
3324 벗꽃 잎 같이 진 친구 운영자 24.04.15 120 1
3323 조용한 기적 운영자 24.04.15 126 2
3322 감옥은 좋은 독서실 운영자 24.04.15 103 1
3321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 운영자 24.04.15 101 1
3320 미녀 탈랜트의 숨겨진 사랑 운영자 24.04.15 119 1
3319 두 건달의 독백 운영자 24.04.15 105 1
3318 명품이 갑옷인가 운영자 24.04.15 95 1
3317 나는 될 것이라는 믿음 운영자 24.04.15 102 1
3316 오랜 꿈 운영자 24.04.08 115 2
3315 그들은 각자 소설이 됐다. 운영자 24.04.08 133 1
3314 나이 값 [1] 운영자 24.04.08 190 1
3313 검은 은혜 [1] 운영자 24.04.08 185 3
3312 실버타운은 반은 천국 반은 지옥 [1] 운영자 24.04.08 193 2
3311 늙어서 만난 친구 운영자 24.04.08 107 1
3310 그들을 이어주는 끈 [1] 운영자 24.04.01 320 2
3309 그가 노숙자가 됐다 [1] 운영자 24.04.01 204 3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