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쓸지 말지 엄청 고민했지만

하루동안 속앓이도 많이 하고 생각도 많이 한 끝에

지난번 글은 경황 없이 쓰느라 부족했던 것 같아서

고심 끝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번 일과 관련되었다고 주장되는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혹은 항의한 당사자가 여성인지 남성인지에 대해선 전혀 알려진 바가 없으며

이번 일에서 전혀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된 자막으로 인해

"여자"가 아닌 "누군가"가 불쾌감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해당 자막에는 문제가 된 부분 외에도 다른 욕설도 많았기에

누군가를 불쾌하게 할 소지는 다분히 있었고

때문에 이번 일로 인해 불필요하게 게시판이 여혐 대 남혐 구도로

서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주고 받게 된 것 같아서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문제가 된 번역에 대한 해명 아닌 해명을 해보자면...

'실리콘 밸리' 시즌2 4화 중

남자만 있던 회사에 여직원이 들어오게 되면서

인사팀 직원이 사내 성희롱 규정에 대해 설명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직원은 자신이 특별 대우를 받는게 불편했던건지

순진한 인사팀 직원을 골려주고자

자신의 절친 별명이 비속어인데 그대로 불러도 되냐고 물어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cunty라는 단어가 원문에 사용됐는데

어원인 cunt는 외국 생활 중에도, 적어도 주변에선 한 번도 못 들어볼 정도로 저속한 욕설입니다

뜻 자체로는 여성의 음부를 저속하게 일컫는 말인데

극중에선 어미에 -y를 붙여서 애칭이라고 나오기에

제 딴에는 한글로 받침에 ㅇ(이응)을 붙여서 해석했는데

본의 아니게 이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는 비속어와 유사하여 불쾌감을 조성한 것 같습니다

단언컨대 번역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 비속어를 염두해두지 않았으며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단어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의도가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는 누군가에게 불쾌하게 들리게 되었으며

이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정식으로 TV 방송을 타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상의 취미 활동이란 생각에

자막의 수위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왔었는데

요즘처럼 인터넷의 파급력이 다른 미디어 무엇보다도

센 적이 없었단 걸 고려하지 못했나봅니다

또한 그동안 자막을 만들면서 항상 내래이터는 원래 쇼의 작가진이고

전 단순히 메신저일뿐이라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원문을 그대로 전달해볼까 하는 생각 뿐이었는데

이번 일을 통해 적어도 제가 만든 자막을 보는 분들에겐

저도 그저 메신저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내래이터의 일부가 될 수 밖에 없단 걸 깨달았습니다

자막을 만든지 햇수로 6년째입니다

처음엔 미국 TV 쇼 보는 걸 좋아하는 걸로 시작했지만

재밌는 쇼를 같이 보고 공유하면 더 재밌을 거란 생각으로 하게 됐습니다

정말 좋아서, 재밌어서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었지

단순히 관심 받거나 혹은 다른 이유에서였더라면 진작에 관뒀을 것 같고요

앞서 밝혔듯이 전 반사회적 사상을 갖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그랬다고 할지라도

말도 안 되는 문맥에 불순한 언어를 한 번 써먹어보고자 하는 이유에서

제가 애호하는 취미 활동을 빌미로 사용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더불어 문제가 된 쇼는 '실리콘 밸리'지만

이렇게 오래 자막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쇼는 '커뮤니티'인데

이번 일로 인해 6년동안 같이 쇼를 봐온 분들한텐

정말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최소한 시즌6라도

마음 같아서는 쭉 계속 같이 하고 싶은데

지금 당장은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땅한 대안이 생각나질 않네요

하지만 기다려주시면 꼭 돌아오고 싶단 말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렇게 미국 TV쇼에 대해 같이 공유하고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특히 자막에 관련해서는 부분적으로 합법의 영역을 벗어난단 것도 알고 있으며

이 부분은 참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로선 국내 케이블 방송 외엔 합법적으로 즐길 방법이 크게 없는데

앞으로는 시장이 활성화되어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괜히 두서 없이 장황해지긴 했는데

앞으로 이곳에 편한 마음으로 오지 못할까봐

그동안 마음 속에 뒀던 생각들을 전부 털어놓아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사회를 보면

남/녀 뿐만 아니라 노/소, 지역별, 이념별 등등

편 가를 수 있는 모든 경계로 편을 나누고 다투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었는데

이번 일이 그런 풍토에 가담하게 된 꼴이 되어서

진심으로 안타깝고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실적으로 힘들단 건 알지만 이 글 이후로는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은 그만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보면서

마지막으로 사과 말씀 한 번 더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