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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회고

선작2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1.08 16: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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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던 건, 무턱대고 떠났던 여행이었다. 멀리 가 보고 싶었던 나는, 무턱대고 해가 솟아오르는 곳으로 떠났다. 바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자전거를 탔다. 안장에 짐을 매고 그렇게 여행을 떠났다. 방학이라 준비는 필요 없었다. 같이 가자고 말해 볼 친구도 없는, 그저 갑작스러운 여행이었다. 일정도 무엇도 없는 자전거 여행. 마음에 드는 마을이 나타나면 일주일쯤 묵어 가고는 했다.

그러던 중에 비가 왔다.
여름에 비가 오는 건 흔한 일이지만, 그 날 처럼 거세게 쏟아지던 날은 별로 없었다. 하천은 넘친지 오래였고, 나는 민가에서 하릴 없이 빈둥거렸다. 그 마을의 손님은 나를 포함해 둘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여행을 왔다던 여대생이었다. 서울 어딘가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었나. 짧게 자른 머리가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한담을 길게 나누었고, 서로와 꽤 친해졌지만 - 결국 번호를 나누겠다는 생각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저 나중에 봐요- 하고 헤어졌을 뿐이었다. 나는 동해로. 그녀는 영월로. 언젠가 다시 만날 일이 있으면 인사라도 하자, 그런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동해의 일출을 보았고, 만족했고, 사진을 올렸고 -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두 번째 만남은 또 한번의 여행이었다. 또 한번의 동해안이었다. 학과 선배의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점에, 그 형과 나는 의기투합해서 강릉에 가기로 했다. 자전거가 아닌 로드 트립이었다. 선배는 몇 명을 더 물어왔고, 그 중에는 서울에서 친구 따라 놀러온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였다.

동해안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네요, 라며 속삭이던 그녀는 이내 내 얼굴을 알아보고 굳어버렸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배는 우리 둘이 구면이라는 사실에 꽤 신기해 했었다.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그녀가 조금 예뻐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카톡을 교환했다. 물론, 여행이 끝나자 많이는 대화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핸드폰을 바꿨다. 연락은 끊겼다.

세 번째 만남은 그 여행이 만들어주었다. 내가 블로그에 곧잘 쓰곤 하던 여행 수기가 출판사의 눈길을 끌었고, 나는 내 글이 출판된다는 사실에 기뻐서 서울로 올라갔다. 출판사 입구에서 그녀가 날 맞았다. 인턴을 하는 중이라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미팅이 끝난 뒤에 같이 밥을 먹었고, 다시 카톡을 교환했다. 

이번에는 대화가 오래 갔다.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먼 거리였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주말이면 돈을 모아 서로가 서로에게 갔다. 같이 밥을 먹었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즐거웠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웃었으며, 내리는 첫 눈을 보고 손을 잡았다. 그녀의 체온은 따뜻했고, 나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나 역시 그녀를 녹이기에 적당했다. 진심으로, 행복했다.

몇 년 뒤에 그녀는 유학을 떠났다. 대학원을 미국에서 마칠 생각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 군대를 갔고, 멀리서나마 편지로 대화했다. 행복한 시간은 이 년이 지나자 끝났다. 그녀는 대학원을 졸업하자 그대로 죽어버렸다. 그것이 네 번째 만남이었다. 나는 통역병으로 미국에 갈 일이 있었고, 그 곳에서 총기 사건에 휘말렸고, 희생자 사진 가운데 하나에서 그녀의 얼굴을 발견했다. 

나는 그 일로 또 수기를 썼다. 책은 많이 팔렸다. 결국 나는 작가가 되었고, 그녀의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은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썼던 글에 그녀의 이름을 붙이고 나니, 인연이라는 게 참 질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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