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전 새벽에 깨서 물이나 마실까 하고 복도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다.

쪼그려앉아 물을 마시는데 바닥의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 뭉치라고 표현하는게 더 나을듯 하다.

계절학기가 시작되고, 나는 몇 번이나 혼자 청소를 했다.

청소기를 밀고 무릎을 꿇은채 물티슈로 바닥을 닦고

떨어져있는 쓰레기를 줍고 머리카락을 치우고 정말 많이 했다.

방청소는 거의 매일 하고, 공동구역은 일주일에 두세번씩 했다.

분명 모두들 집이 더럽다는 사실을 알겠지만, 더러워져있던 집이 깨끗해진걸 보고

'나는 청소를 안했는데 누군가가 했구나... 죄송하네.. 다음에는 내가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한번쯤은 청소를 할 거라고 믿었다.

그냥 홈메(학교 기숙사가 아파트 식이라서 같은 호실은 홈메, 같은방은 룸메라고 한다)들한테 

말 한번 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거다.

시키면 하겠지. 설마 안하겠어.

근데 그 이후에는 어쩔건가. 집이 더러울때마다 청소하라고 말해야 하는건가?

나는 그저 홈메들에게 "인간으로써 최소한의 위생관념과 양심"이 있을거라고 기대했을 뿐이다

.

그래서 한동안 공동구역을 가만히 냅둬봤다.

머리카락도 안 치우고 청소기도 안 밀고 쓰레기도 안줍고 바닥도 안닦아봤다.

2주일 정도 기다려봤다. 긱사는 점점 돼지우리가 되어갔다.

근데 아무도 안치우더라. 샤워는 꼬박꼬박 하고 머리는 꼬박꼬박 감으면서 청소는 안하더라.

새벽에 물마시려고 깼다가 더러운게 눈에 보이니까 잠이 확 깨버렸다.

2주 참았으면 많이 참은거다. 더이상은 이렇게 더러운 장소에서 살수가 없었다. 내 발에도 머리카락이 붙어있었다.

물티슈를 뽑아들고 거실부터 복도, 세면대앞 바닦을 다 닦았다. 

새벽이니까 청소기를 쓸 수가 없어서 먼지와 머리카락을 손으로 다 쓸어내고 닦아냈다.

20분 정도 걸렸다. 물티슈를 30장은 쓴 것 같다.

물티슈가 온통 머리카락과 먼지 투성이다.

토할것 같다.

비닐봉지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머리카락들이 물티슈와 먼지에 엉켜있다.

아침일찍 부지런히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지고

옷을 갈아입고 향수를 뿌리고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걸어나가며 나 오늘 예쁘네? 라고 생각하는 애들

걔네 남친들은 여자들의 실체를 알아야한다.

나는 학교내에선 화장도 귀찮아서 안하고 향수도 안 뿌리고 구두도 불편해서 잘 신지 않는다

분명 외적인 모습만 보면 그 여자들은 나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여성스럽다.

비록 기숙사에서는 청소를 해야한다는 생각조차 없고, 

더러운 바닥을 밟아서 시커멓게 된 발로 침대에 올라가서 남자친구와 전화를 하고,

세면대에 가래침을 뱉은 후 물로 한번 헹궈내면 될 것을 그대로 냅둬서 말라붙어버리게 만들고,

술먹고 토하는바람에 자신의 토사물이 변기와 바닥에 널부러져있는데 몇날며칠이고 닦질 않아서 결국 까만 얼룩으로 변해있고,

머리카락이 집안 구석구석에 떨어져있는걸 알면서도 얼굴 단장하기 바쁜,

그런 여자들일지라도 밖에 나가면 나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여성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다음생에는 남자로 태어나 그냥 이런거 신경 안쓰고 편하게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