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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훈 에세이] 대학로를 살려라!

운영자 2006.01.02 18:02:16
조회 2291 추천 0 댓글 3

 2. 서울을 향한 좌절과 희망

  대학로를 살려라!  

    서울대학교가 현재의 관악 캠퍼스 시대를 연 것은 1975년이었다. 이때 종로구 동숭동과 도봉구 공릉동 등지에 분산되어 있던 단과 대학들을 관악구 신림동으로 이전시키면서 지금의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이 본격화된 것이다.

  동숭동에 있던 문과 대학 등이 이전을 하면서 이 종로 요지에 대한 새로운 개발 계획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계획이 논의되고 대한주택공사가 마로니에 공원 부지까지 모두 사들인 것이 1974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때는 마침 내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몇 년 후 서울대학교 본부 건물이 리모델링되어 문화예술진흥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었고, 나는 당시 윤주영 국회의원으로부터 육영수 여사 기념관 건축과 조경 설계에 관한 자문 요청을 받고 홍익대 학생들과 함께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그때 문화예술진흥원 최창봉 사무총장과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고, 결국 그 자리가 오늘날 대학로가 탄생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최창봉 총장에게 대학로 보전 및 개발 계획에 대한 구상을 제안하였다. 그런데 주택공사가 지금의 마로니에 광장을 포함하여 서울대학교 부지를 매입하여 벌써 여러 필지로 나누어 분양까지 해 놓았단다. 더구나 대단지 주택과 아파트를 지을 용도로 마로니에 광장 자리의 세 필지는 이미 매매까지 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관계자들을 만나 펄쩍 뛰며 주장했다. “마로니에 공원 일대는 500년 전통의 성균관대학이 인근에 있고, 우리나라 대표적 지성의 산실인 서울대학교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다 주택과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은 역사와 지성을 동시에 매장하는 일입니다."

  내가 그렇게 적극 반대를 하고 나서자 관계자들은 일단 수긍을 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나에게 적절한 대안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구상하고 있던 개발 계획을 밝혔다. “문화 예술과 지성이 없는 도시는 죽은 도시입니다. 서울이 진정한 사람을 위한 도시 환경이 되기 위해서 동숭동 일대는 문화 예술과 지성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거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비록 옛 전통을 그대로 잇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대신 학술원과 예술원을 지어서 예지와 학식을 이룬 분들이 젊은이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창조적인 문화 예술 활동을 위해, 우선적으로 문화예술진흥원이 마로니에 광장을 보호하면서 그 둘레에 ‘보고 듣고 자기 표현 행위가 가능한’ 미술관과 공연장 등을 지어야 합니다.”

  당시 보행자 전용 도로가 있는 유일한 곳은 명동이었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그 상업 지역에 그같이 시민을 위한 배려가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물며 한때 서울대학교가 있던 지역에 문화와 예술과 지성을 담아 내는 보행자 전용 환경을 연출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의 제안과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최창봉 사무총장은 곧바로 구자춘 서울시장을 만나 이미 팔았던 세 필지를 되찾게 하였다. 이러한 최 사무총장의 결단력이 오늘의 대학로를 있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

  “살렸다! 이제 이곳이 살아나게 됐다!” 그는 그렇게 기뻐하며 나에게 기본 구상도를 요청해 왔다. 이어 나도 구자춘 서울시장을 만났는데, 더 이상의 설득을 할 필요도 없었으며 그의 특유의 행정력으로 동숭동 일대는 새로운 문화 예술의 거리로 재창조되기 시작했다. 나는 공연장과 미술관을 짓도록 프로그램과 입지를 정했고, 지금은 고인이 된 김수근 씨가 건축을 맡도록 제안했다.

  그리고 과거 서울대학교 본부를 살린 문화예술진흥원 외벽 타일은 그대로 두더라도 새 공연장과 미술관은 벽돌로 시공하는 게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특히 미술관은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서 동숭동 뒤를 떠받치고 있는 좌청룡(左靑龍)격인 낙산 쪽의 시각적인 연장이 마로니에 공원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또 극장의 경우는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니 만큼 전체적인 건물 방향을 45도 정도로 틀도록 하였으며, ‘환경 조각’이라는 술어를 제시하면서 대학로를 비롯하여 거리 곳곳에 설치할 조각들, 조명 문제, 바닥 처리 문제 등을 고려하여 전체 도면을 작성하였다. 이 개략적인 도면은 최창봉 사무총장에게 전해졌고, 구자춘 시장은 놀라울 정도의 결단력과 신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실행에 협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숭동은 새로운 거리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나라 문화 예술 진흥의 책임을 맡고 있는 문예진흥원을 비롯해 미술관과 공연장, 공원, 광장, 그리고 각종 조각물을 갖춘 종합 문화 예술 공간이었다. 나는 설계를 하는 동안 이미 이 새로운 거리의 이름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서울대학교가 있던 자리이자 수많은 대학생들이 함께 어울리는 자리, 그리고 문화와 예술과 지성의 산실이 될 공간! 여기에 어울리는 이름은 바로 ‘대학로(University Road)’였다.

  내 제안에 따라 새로 태어난 동숭동 거리는 대학로로, 중심 광장은 마로니에 공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이 시설과 환경과 역사적 맥락이 스스로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연이어 극단의 사무실, 각종 공연장, 젊은 감각의 카페 등이 민간 주도로 아기자기하게 들어섬으로써 도시 경제의 지속성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대학로는 명실공히 젊음과 지성과 문화의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 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대학로에 가면 창신동 입구 쪽에서 혜화동 로터리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걷는다. 그리고는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젊은이들이 벌이는 즉석 공연을 구경한다. 비록 문화 공간보다 술집들이 더 기승을 부리며 자리를 잡아 가는 듯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학로는 여전히 지성과 문화의 공간으로 그 유기체적인 기능을 수행할 것이며 앞으로도 변화와 성장을 거듭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웃음을 지으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마음에 가슴을 쓸어 내린다. 미술관과 공연장과 공원 대신 주택과 아파트가 들어선 콘크리트 장벽이 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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