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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훈 에세이] 케네디 대통령과의 만남

운영자 2005.12.21 11:15:33
조회 2269 추천 0 댓글 6

1. 삶터에 대한 관심과 배움의 길


종로 국민학교 때 모습

  삶터에 대한 관심

  나는 1943년에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에서 태어났다. 차령산맥의 끝자락이 서해 바다와 맞닿아 있는 그곳, 오수산이라고 불리던 산 위로 올라가면 멀리 대천 해수욕장의 한가로운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곳이었다. 마당에는 내 키의 몇 배나 되는 살구나무가 우리 집 지붕과 마당을 끌어안고 있었고, 나는 그 살구나무가 지켜보는 가운데 집 안팎을 드나들며 조금씩 자라났다. 내가 곁을 지날 때마다 살구나무가 살갑게 말을 거는 듯했다.

  ‘영훈이 놀러 나가는구나! 영훈아, 이제 들어오니?’노란 살구는 참으로 맛이 있었다. 물론 나는 무럭무럭 자라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이미 다 큰 살구나무가 나만큼 쑥쑥 자라나지는 않았지만, 나는 분명 그 나무와 함께 세상을 향해 나란히 자라나고 있었다.

  1958년 봄이다. 내가 살던 종로구 견지동에도 봄이 왔다. 어느 날 늦은 오후,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어느덧 장래 무엇을 할 것인지로 흘러갔다. 한창 꿈 많은 소년 시절이었다.

  형은 “나는 법대에 가서 법학자가 될거야.”라고 말했다. “법학자?”그러자 형은 더욱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나는 법대에 갈 거다!” 그런 후 형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제 내 차례인 것이다. 나도 별 망설임 없이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내 말에 형은 다소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집 짓는 일? 건축 말이야?”“응, 그런데 꼭 집을 짓는다는 것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서 사는 도시를 만들고 싶어. 아름다운 도시, 살기 좋은 도시.” 나는 자라오는 동안 내 주위에 지붕처럼 드리워 있던 나무들을 잊지 못한다. 사실 그 한두 그루의 나무들이 내게는 울타리였고, 지붕이었고, 소중한 자연환경이었다. 고향집 살구나무, 이태원 집 앞 복숭아나무와 남산 숲 뒷동산, 견지동의 은행나무, 명륜동의 대추나무…… 그 모두가 때가 되면 하나 하나 열매를 맺는 우주의 신비였다.

  삶의 터전을 이리저리 옮기는 동안 나는 어렴풋이 사람이, 가족이, 마을 사람들이, 그리고 한 나라 사람들이 사는 터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6·25를 통해 그 터전이 부서지고 무너져서 폐허가 되는 일, 그 폐허가 결국 사람들마저 부서지고 무너지게 만드는 것을 경험하였다. 나는 다시 사람들이 사는 터전을 아름답게 돌려놓고 싶었다. 삶의 터전을 통해 사람들의 삶까지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다.

   케네디 대통령과의 만남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4·19혁명과 5·16쿠데타 등으로 사회 전반이 몹시 어수선한 시기였다. 4·19혁명이 일어났을 때 나는 갓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는데, 그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실을 뛰쳐나갔다. 하지만 교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우리는 담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이런 시절을 보내던 내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둔 1962년 초였다. 당시 미국 백악관과 협력하여 미국 적십자사가 ‘Operation VISTA(Visit of International Students to America)’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각국의 젊은 학생 지도자들을 자국으로 초청하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젊은이들 간의 교류를 통해 국가 간의 이해와 화합을 촉진한다는 취지였는데, 1962년 8월에 개최될 그 행사의 한국 대표를 선발하는 심사가 있었다. 전국적으로 선발 시험을 치러서 2명을 뽑는 것인데 나도 대표로 뽑혔다.


VISTA 대표단. 오른쪽 두번째.

  기쁘다기보다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당시만 해도 외국 여행이란 건 꿈도 꿀 수 없는 시절이었고, 더욱이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말로만 듣던 꿈의 나라처럼 먼 곳이었다. 물론 언젠가는 외국에 나가 보겠다고, 특히 모든 분야에 걸쳐 세계를 이끄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 보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내게 있어서 그 꿈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먼먼 훗날의 얘기였다. 그런데 이처럼 예고도 없이 빨리 기회가 오다니,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었다.

  그날부터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한국과 미국, 그 사이의 멀고 먼 태평양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갔다. 그리고 서부에서 동부 끝까지 미국의 그 광대한 땅을 오고 가며, 영화에서나 보던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보스턴, 워싱턴, 뉴욕 같은 도시를 그려 보기 시작했다.

  1962년 7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포 공항으로 나갔다. 미국 여행은 고사하고 비행기라는 걸 처음 타 보는 처지라 마냥 신나기만 했다. 호놀룰루에 도착하자 영사관에서 우리를 따뜻이 맞아 주었다. 그곳에서 영사의 여동생인 것으로 기억되는 여인이 ‘The End of The World’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Why does the sun go on shining?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로 시작되는 그 노래가 지금도 생생하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라는 노래 가사를 속으로 흥얼거리며 상상 속에 그리던 미국의 도시를 둘러보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본 질서 정연한 도시, 그것은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놀라운 모습이었다. 도심과 건물, 차량과 사람이 마치 물을 타고 흐르듯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자리를 잡은 듯한 숲과 나무들이 활력소를 더했으며, 이 땅과 저 땅이 아니라 이쪽과 저쪽을 온전히 이어 주고 있는 듯한 교량 ……, 전쟁이 남긴 폐허만 보아 오던 어린 내 눈에 그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리 대표 학생들은 미국 전역을 다양하게 체험하기 위해 각자 다른 도시들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워싱턴에서 합류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오레곤대학이 있는 오레곤주의 유진(Eugene)에서 일주일, 그리고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각국의 대표들이 다 모이는 워싱턴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일주일 머무는 동안 산 마테오(San Mateo) 적십자사 지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특히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 곳은 후일 2002년에 동계 올림픽이 열린 솔트레이크시티였다. 사이먼스라는 분의 집에서 민박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식구들 모두가 생전 처음 보는 나를 마치 오랜 친척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 집에는 모두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첫째 브렌트 서덜랜드와 둘째 수잔 사이먼스는 각각 엄마 아빠가 전 남편과 전 부인에게서 낳은 자식이었고, 아래로 미쉘 사이먼스와 랜디 사이먼스는 새로 낳은 자식이었는데 무척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데리고 가 소금물 호수에 누워 보게도 했고, 자연 협곡(Canyon)과 호수들을 관광시켜 주었다. 배를 타고 낚시하러 갔다가 소변이 급한데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를 몰라 그냥 호수에 실례했던 기억은 지금도 웃음이 난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몰몬교의 성지로 여겨지는 태버내클(Tabernacle)이 멋진 건축 양식으로 웅대하게 지어져 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연주하는 90세나 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연주도 감상했는데 무척 좋았다.


VISTA 대표단과의 함께.

  유타에서는 유타대학교 화학과 교수 한 분이 내게 저녁을 사 주었다. 그분은 조국인 한국에서 대표로 온 고등학생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자부심과 긍지를 잃지 말도록 당부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분은 이회창 씨의 큰아버지인 이태규 박사였다. 합류를 위해 워싱턴 D.C.에 도착했을 때는 한 달간의 일정이 이미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국에서 함께 출발한 일행과 전세계에서 온 80여 명의 각국 대표들을 만났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나라, 다양한 언어를 가진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고 더불어 웃으며 지내는 동안, 나는 지난 열아홉 해보다도 더 많은 나이를 한꺼번에 먹고 있는 기분이었다.

  워싱턴 방문 첫날 저녁에는 미국 적십자사 본부의 넓은 정원에서 환영 파티가 열렸다. 이때 학생 대표가 참가한 각국의 대사들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일권 대사가 와서 축하를 해주었다. 악사들은 음악을 들려주면서 내게 신청곡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비엔나 왈츠를 신청했다. 그때 들었던 비엔나 왈츠의 감미로움은 다시 느껴 보지 못할 정도로 좋았다.

  건축에 관심이 많은 나는 워싱턴 D.C.를 돌아보며 워싱턴 마뉴먼트, 링컨 메모리얼, 제퍼슨 메모리얼 등 미국의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특별히 눈여겨 보았다. 워싱턴에서의 일정 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역시 백악관 방문,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과의 만남이었다. 대통령이 사는 백악관은 일반인들이 오가는 거리와 도시의 중심에 있고, 북측으로는 공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이 들여다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백악관 남측 로즈 가든에서 우리들을 맞이한 케네디 대통령은 짤막한 연설을 통해 “여러분의 우정을 지키고 동시에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늘 존경해 오던 케네디 대통령과 같은 공간에서 호흡한다는 사실도 감격스러웠거니와 그가 말한 세계 평화에 대한 메시지가 더욱 뭉클한 감동으로 가슴에 새겨졌다. ‘그래, 우정을 지키고 평화를 지키자!’케네디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간결하면서도 강렬했다. 그러면서도 각 대표들과 대화하듯 말하는 그의 표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백악관 장미정원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VISTA 대표단과의 만남.
애석하게도 필자의 모습은 왼쪽 어깨 뒤로 이미만 보인다.

  이어 각국 대표들의 국가명을 일일이 부르면서 소개하는 순서가 주어졌다. “코리아” 하고 부를 때 우리 대표들은 손을 들고 한국에서 왔음을 알렸다. 그런데 케네디 대통령은 나를 향해 되물었다. “Oh, you’re from Korea?”그의 되물음에 약간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수많은 나라들 중에 우리 한국을 유독 기억하고 있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관심이 고마웠다.

  아마도 한국이라는 이름이 한국 전쟁과 미국 참전, 원조를 통한 재건 등을 떠올리게 하므로 그의 남다른 관심을 끌었을지도 모른다. 워싱턴에서의 남은 일정 동안 80여 명의 각국 대표들은 한데 어우러져 여러 곳을 방문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세계 평화와 적십자 활동에 대한 주제로 세미나를 하고 간간이 흥겨운 파티를 갖기도 했다. 80여 명의 젊은이들은 가난한 나라나 부자 나라, 동양인이나 서양인, 기독교인이나 이슬람교인, 모두 국적과 종교와 인종을 초월하여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웃었다. 마침내 마지막 날 밤, 적십자 본사에서 공식적인 행사를 마무리하는 작별 가든 파티가 열렸다. 이에 앞서 주최 측에서는 각국 대표들에게 마지막 날 파티 때 함께 부를 노래의 가사를 만들어 제출하도록 했다. 나는 기존의(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노래에 ‘인류가 잘되고 못 되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렸다.(It's up to you. It's up to you.)’는 의미의 가사를 붙여 제출했는데, 내 노랫말을 본 주최 측 대표는 매우 멋지다며 마지막 합창의 지휘를 내게 부탁했다. 마지막 아쉬운 파티의 피날레로 모두가 일어나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 나는 그 피날레의 지휘자로 나섰다. 그리고 국적과 인종과 언어가 다른 나의 친구들이 한 목소리, 한마음이 되길 바라며 가슴 벅찬 지휘를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이 든 각국 대표들의 눈에는 아쉬움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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