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36. 소설가의 질투

썰홍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10.23 16:19:15
조회 1517 추천 16 댓글 12
														


viewimage.php?id=21b4c423f7d32cb37cba&no=29bcc427bd8677a16fb3dab004c86b6fad513288d8b0235230582abc29ef576fc645ad6a9aefc8b70fd7a92ffd4469e0299a9df1e90494f0f53ab500



36. 소설가의 질투


/


이건 아는 사람들끼리만 하는 얘기지만, 일반적으로 문인들의 술자리는 쓸데없이 길다. 표면적으로는 술이 좋고 사람이 좋아서라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선뜻 술값 치를 사람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요즘 추세와는 사뭇 어긋난다. 요즘엔 신문사나 출판사의 법인카드가 없으면 아예 술자리 자체를 갖지 않으려고 하니까. 원자력과 우주정거장개발이 어쩌구저쩌꾸 하는 문명의 한복판에, 밥값도 힘에 부친다.


특별히 문화산업의 은혜를 입은주류스타일에 속하는 주제의식과 스타일로 중무장한, 그러니까 독자입장에서 어딘가 있어 보이는 안개를 둘렀으면서 동시에 평론가의 해석범위 내에서만 유효한 교양소설을 통해 화려하게 공모전을 통과한 다음, 대형출판사의 홍보유통망을 통해 광역시 모든 대형서점의 노른자위 선반에 체크인 한 뒤, 이듬해 계간지 한복판에 자신의 이름 뒤에 ()’자를 붙인 비평을 적어줄 콜걸들을 부를 수 있는극소수의 작가들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으로 소설가의 지위는 도시하층민 수준이다. 아무래도 문학의 신은 포르투나에게 호감을 사는데 실패한 모양이다. 어쩌면 예술가들이 죄다 뮤즈에게만 기도를 드리는 바람에 모종의 저주를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호메로스에 따르자면 뮤즈(Muse)는 제우스가 홀로 낳은 딸들이라는데, 흔히들 떠올려볼 수 있는 혼외자의 고난처럼, 질투의 여신인 헤라의 눈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또한 헤라가 가정의 여신이라니까, 소설가들의 결혼이 매우 어렵다는 것도 그녀의 저주가 아닐까……. 만일 분서(焚書)가 허용된다면, 그리스신화를 역사에서 지워버리길 희망한다.


이젠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전업작가는 형이상학적 개념이 된지 오래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있어 형이상학은 피해망상의 산물이었다. 어디선가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왜 지혜를 중요시했느냐를 고찰함에 있어, 그건 단지 그가 지독한 추남(醜男)이었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놓았었다. 물론 니체가 미친 소리를 내뱉은 게 어제오늘은 아니다. 하지만 저 가십잡지에서나 볼법한 논리에 묘하게 이끌리는 이유는 뭘까? 모든 논리는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좀처럼 귓가를 가시질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맥락에서 작가들이 물질적인 부분에 대해 극렬히 비판적 입장을 보이는 부분에서 노예도덕(Sklavenmoral)의 징후라도 읽어내야 하는 걸까? 물론 이런 짓거리는 휴머니즘의 이름으로 용서받을 수 없으니, 적정선에서 지양하도록 하자(이미 언급한 것만으로도 저주받았다).


작가가 만성적으로 굶다보면, 크게 두 가지가 기형적이리만큼 미워진다. 하나는 잘 나가는 작가이고, 또 하나는 그런 책들이 뭐가 좋다고 열심히 사보는 독자들이다. 물론 둘 중에 더 미운 것은 단연 전자이다. 독자를 미워하면 완전히 버림받겠지만, 다른 작가를 미워하는 것은, 만일 꽤나 운이 좋다면, 그로인해 안티마케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게다가 헤라가 걸어둔 질투의 저주 역시도 만족시킬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인간이란 미워할 수 있는 걸 미워하는 동물이잖아? 소설가란 족속들은 인간들 중의 인간이었을지언정, 인간 그 이상은 결코 아닌 존재들이다. 다른 작가들에 대한 응원보다는 환멸도 무의식적인 저주가 더 앞서고, 혹여나 아직 윤리적 감수성이 남아있는 이들이라면, 괜스레 벤치에 앉아 옹졸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줄기들로부터 버림받은 주제에, 낙엽은 왜 이리도 쓸데없이 울긋불긋 예쁜 건지……. 이 세상에서 존경스러운 존재는 단 한 부류인데, 그건 동화를 쓰는 작가들이다. 컵라면으로부터 저런 문장들이 나오다니, 아무래도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던 마르크스주의에 오류가 있는 모양이다.


각설하고(처음부터 중구난방으로 쓰고 있는 주제에 도대체 뭘 각설하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 나가는 작가가 미운 것은 문인들 사이에서 굉장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들은 비평이란 우회로를 통해서 비꼬고, 보다 솔직한 사람들은 그냥 대놓고 툴툴거린다. 가령 20세기 작가인 로베르트 발저(Robert Walser, 1878-1956)산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하는 것은 어딘가 친숙한 일이다.


이제 매우 당당하고 화려한 책장이 멋지게 눈에 들어와 잠시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과 생각에, 나는 아주 점잖은 태도로 상점 안으로 들어가 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일단 나는 내 자신이 다정하며 호감 가는 부유한 구매자나 훌륭한 고객보다는 지배인이나 계리사로, 정보 수집가나 예리한 감식가로 보였으면 한다. 예의 바르고 극히 조심스러운 목소리, 정확하게 선택한 표현으로 나는 문학 분야의 최신, 최고의 서적에 관해 문의한다. 주저하며 내가 묻는다. “가장 뛰어나고 진지하고, 그러니 당연히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빨리 인정받아서 많이 팔리는 책을 좀 알려 주시겠습니까? 선생님만큼 많이 아는 사람이 없고, 당신은 독자들 중에서 덕망 높을 뿐 아니라 제일 두려워하는 대상, 날카로운 비평가, 앞으로 모두들 좋아할 분이니 저를 도와 책을 소개해 주신다면 무척이나 감사하겠습니다. 여기 쌓여 있거나 진열해 놓은 모든 책이나 작품 중에서, 겉모양으로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정말 멋있게만 보이는 이 알 수 없는 멋진 책들이 과연 저를 당장에 즐겁고 열광적인 구매자로 만들어 줄 것인지, 제가 얼마나 궁금해 하는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문화계에서 사랑받는 작가와 쏟아지는 박수갈채를 받는 놀랄 만한 그의 걸작을 알아보고, 앞서 말했듯이 어서 구매하고 싶은 열망에 저는 온몸이 떨리고 흥분됩니다. 정중하게 부탁드리니 그런 성공작을 제게 보여 주셔서, 이 몸 전체를 강타한 갈망을 충족시키고, 제지시키고, 진정시켜주십시오.” 책방 점원은 그럼요.”라고 말했다. 그가 화살처럼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다음 순간 갈망으로 가득 찬 구매자, 관심을 보이는 고객에게 다시 돌아왔는데, 손에는 실제 유용 가치로 보아 가장 많이 팔리고 많이 읽히는 책을 들고 있었다. 그는 그 소중한 정신의 자산을 마치 신성한 힘을 지닌 성()유물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엄숙하게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환희에 차 있었다. 표정은 엄청난 경외감으로 빛을 발하고, 입술에는 종교인이나 깊은 내적 체험을 한 사람에게서 보이는 한 줄기 미소가 흘렀다. 그는 들고 온 것을 나에게 아주 당당하게 내놓았다.

그 책을 보고 내가 물었다.

이것이 금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자신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이것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주장할 수 있나요?”

무조건 읽어야 할 책입니다.”

이 책이 정말 좋나요?”

그 질문은 완전히 불필요하고,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난 냉정히 말하고, 무조건 읽어야만 하고, 엄청나게 널린 유통된 그 책을 있던 자리에 그냥 놓고,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그곳을 나왔다. “무식하고 못난 인간 같으니!” 판매원이 정당한, 깊은 혐오감을 가지고 나에게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여유롭게 내 갈 길을 갔고, 당장 좀 더 상의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바로 옆에 위치한 당당해 뵈는 은행 건물로 들어갔다.


이 글을 읽은 독자는 한 가지에 짜증을 느끼기 마련인데, 보다 간략하게 적을 수도 있는 부분을(게다가 흔하디흔한 대중의 낮은 수준 운운하는 것 외의 다른 노림수도 없는 부분을) 왜 이리도 지난하게 기술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처음부터 딱히 독자들을 위해 적은 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와 달리 작가들은 이 대목을 읽으면서 쿡쿡거리게 된다. 발저가 평생 이렇다 할 독자도 가져보지 못했고, 당대 평단으로부터도 큰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스위스 어느 소도시의 가난한 외톨이로만 살다간 건 그리 놀랍지 않은 이력이다. 오늘날엔 카프카가 보여 준 문학에 먼저 가닿았던인물이라고 평가받지만, 그래서 그게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끝마친 작가에게 무슨 위안이 된단 말인가? 시체가 분해되면 단백질이 된다던데, 단백질이 글자를 읽을 수 있던가? 사후재평가는 고약한 유머 같은 것이다. 물론 작가보다는 작품을 더 사랑하는 사이코패스 같은 독자들의 악취미를 고려해본다면, 이런 재평가 놀이가 그리 기이한 현상만은 아니리라.


참고로 이 글은 자조(自嘲)가 유일하게 허락된 작가의 윤리란 신념에 기초해있다반박은 받지 않는다. .




추천 비추천

16

고정닉 3

3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경제관념 부족해서 돈 막 쓸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13 - -
공지 ☆★☆★알아두면 좋은 맞춤법 공략 103선☆★☆★ [66] 성아(222.107) 09.02.21 48787 56
공지 문학 갤러리 이용 안내 [99] 운영자 08.01.17 24144 21
289808 아파트 [3] ㅇㅇ(211.234) 04.28 309 10
289786 [4] ㅇㅇ(223.38) 04.28 207 6
289771 좆밥 시 평가좀 [3] 런던공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7 125 3
289587 고1 자작시 평가좀. [2] 문갤러(118.221) 04.22 558 15
289530 굴절 [9] 쿵치팍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0 376 7
289482 큰 파도 [1] ㅇㅇ(211.234) 04.20 216 8
289358 만갤의 윤동주...jpg [1] ㅇㅇ(14.138) 04.18 557 8
289355 고삐리 취미로 써보는 첫 시인데 어떤가요 [7] 쿵치팍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17 423 9
289348 빗물 [2] ㅇㅇ(39.115) 04.17 175 5
288596 벌판 [3] ㅇㅇ(223.38) 04.02 318 9
288036 황인찬 짧게 쓴 시 보니까 실력 바로 뽀록나네ㅋㅋ [2] 런던공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24 1025 13
287967 사는 게 고달프더라도 [2] 블루만틸라(112.160) 03.22 380 7
287939 대한민국 문과새끼들은 한게 뭐임??? [19] 문갤러(211.57) 03.22 825 14
287815 자작시 평가좀 [4] 문갤러(175.223) 03.18 605 4
287191 a 이새끼는 아직도 이럼? [1] vesuvi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5 436 6
286999 내 소설 마더쉽을 보고 코파일럿이 그림 [2] 니그라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9 243 5
286988 문예갤-가짜문학갤러리 [3] 블루만틸라(59.25) 02.29 779 11
286691 비묻은 책 [1] ㅇㅇ(211.234) 02.21 370 6
286647 a언니 간만에 기강 씨게 잡으시네 [1] ㅇㅇ(121.160) 02.20 402 7
285987 문학수용소 친구들 새해복 [4] 문갤러(1.217) 02.09 454 6
285805 안녕하세요! [4] TMIartisan(14.40) 02.05 380 5
285713 <저녁 오후 즈음> [5] 런던공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2 405 6
285636 제가 쓴 시 어떤가요 [6] Yy(175.112) 01.31 932 14
284978 문창과 다니면서 느낀점 [8] 문갤러(180.70) 01.17 1865 18
284081 구름 [2] ㅇㅇ(211.234) 23.12.26 104 5
284030 실수 [2] 문갤러(39.115) 23.12.25 598 10
283981 시 어떰? [5/1] ㅇㅇ(211.234) 23.12.24 967 11
283267 신춘문예 심사진행중... [4] 인생(118.235) 23.12.13 2338 9
283244 병원 가는 길 [6] 딥딥-검은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2.12 616 8
282778 신춘 낸 사람 [12] 문갤러(210.95) 23.12.04 1503 6
282505 원테이크 - 이혜미 [4] ㅇㅇ(220.118) 23.11.29 587 6
282126 혹시 국문학 중에 이거 뭔지 아는사람 [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18 1312 12
281649 신춘 분산 vs 한 군데에 여러 개 [6] 문갤러(110.35) 23.11.10 1176 7
281557 재밌는 시집 없나 [20] 김사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08 303 3
281413 문갤러 모두를 관통하는 단 한가지 진리 [6] 문갤러(1.220) 23.11.06 1805 20
281393 문학갤러리는 그냥 a라는 사람에게 잠식당한 듯 [16] oo(59.7) 23.11.06 1344 18
280776 무한한 샘물 [2] ㅇㅇ(211.234) 23.10.25 555 8
280706 김은지는 시만 별로인게 아니라서 더 안타까움 ... [6] ㅇㅇd(61.102) 23.10.23 1778 14
280701 순문학 담론은 전혀 무의미하지 않다 [3] ㅇㅇ(106.101) 23.10.23 796 12
280476 글 쓴다는 겄들은 다 똑같드라 ㅋㅋ [3] ㅇㅇ(175.223) 23.10.18 1378 19
280438 시인 윤동주 거품 [9] 문갤러(218.147) 23.10.18 1590 8
280410 초여름 /김은지 [9] 5픽서폿빼고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7 1540 7
280054 무지개 [2] ㅇㅇ(211.234) 23.10.12 498 8
279759 여기는 왤케 조현병 환자새끼들 같은 글이 많이 올라옴? [6] 문갤러(2.58) 23.10.08 189 3
279435 정말 오랜만에 들르네요 [4] 뫼르달(118.235) 23.10.04 624 7
279427 등단, 신춘문예, 시집 추천, 문예창작, 문창과, 번역 얘기 하려면 [1] ㅇㅇ (220.82) 23.10.03 1337 7
279247 등단 하려는데 드디어 마음을 고쳐먹음 [2] 문갤러(211.246) 23.10.01 852 7
279159 재회 [3] ㅇㅇ(211.234) 23.09.29 542 1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