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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 마더쉽을 보고 코파일럿이 그림

니그라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2.29 12: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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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쉽(Mother ship)




내가 사는 마더쉽은 길이 430km로 모든 생활과 산업이 해결되는 곳이다. 30억 명이 살고 있는 마더쉽은 긴 막대 형이고 어떤 방향으로든 로켓 분사 및 이온 추진을 통해 움직일 수 있다. 나 보다 오래된 마더쉽은 여러 측면에서 인간 보다 우월하다. 인간이 갑자기 사라지더라도 마더쉽의 많은 부분들은 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다. 마더쉽은 인간을 기르고 터전이 되어 준다. 마더쉽이라는 단단하고 거대한 기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난 모르고 한때는 의심조차 없었다. 은하계 한복판 무수히 밝은 별빛 한가운데에 마더쉽은 영롱하게 떠있었다. 인간은 참으로 하찮고 하찮은 존재다. 나를 규정하는 것은 내가 딛고 선 좁은 시공간과 한줌의 물질 뿐이다. 그에 비하면 어린 내게 마더쉽은 얼마나 거대하게 느껴졌던가.


난 마더쉽에서 태어나 자라왔다. 마더쉽을 지키는 전사가 되기 위해 살아 왔다. 전사는 내가 추구해야할 사명이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숙명이었다. 마더쉽을 둘러싼 관계의 그물망은 촘촘했고 그만치 전쟁도 미로처럼 복잡한 양상으로 벌어졌다. 전쟁에서 마더쉽을 지키기 위해 내 모든 생활은 오롯이 바쳐졌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랬다. 기형아나 장애인은 낙태되어 소각장으로 갔다. 난 소각장행이 아니었다.


우주는 인간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 인간은 먹고 싸고 호흡하는 고기로 된 기계다. 인간의 마음은 입출력과 체계에 의해 결정되는 인과율의 소산이다. 인간의 정체성이란 고정된 물질이 아닌 습관으로 덧없다. 생존과 쾌락 말고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간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불평등하다. 인간성이라는 혼돈을 제어하고 우주에서 바로 서기 위해 법과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죽거나 은퇴해서 자연사하는 것이 명예로운 죽음이다. 이것이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윤리의 전부로 마더쉽을 지켜내기 위해 필수인 파시즘이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난 학우들을 잘 후리는 편에 속했다. 부모님 두 분 다 임관한 군인이어서 지도력을 물려받았다. 민간인이어서 권리가 제한되어 있는 가정부를 골탕 먹이는 걸 어릴 적에는 좋아했다. 럭비와 농구를 비롯한 온갖 운동에 만능이었다. 성장이 멈춘 17세가 되자 193cm에 110kg의 근육질 덩치를 지니게 되었고 완력도 제법 세졌다. 양아치들은 강습 사병으로, 소극적인 녀석들은 기계 사병이나 민간인으로 사라지지만 공부도 잘 하는 나는 공군 장교로 지원할 수 있었다. 5억의 현역 군인 가운데 승진도 못 하고 사라지는 인생이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고 임관했을 때 엄격하신 부모님은 내게 눈물을 보였다. 부모님의 눈물은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로 내가 투입된다는 걸 생각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그날 부모님은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열심히 싸워라. 이제 아들이자 전우로구나.”


싸움에 임해 물러나지 말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죽음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난 마음 놓고 지금까지 잠을 자왔다. 내가 21년 전에 태어나기 전 나는 없었고, 나를 이루어야 할 물질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은 뒤에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 보다는 승부사의 기질이 나를 일깨웠다. 조종사의 역량에 의해 좌우되는 전쟁터다. 이기겠다는 의지가 빛을 발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지막 거리낌은 부작용 없는 마약으로 날려 보냈다. 부작용은 없다지만 이것에 만약 의존한다면 그것이 중독이기에 마약을 전쟁터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쓰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군인이라면 누구나 쓰도록 되어 있는 마약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때 처음 마약을 내 자신에게 투입했던 것이 지금은 조금 후회스럽지만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일 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격납고에서 난 1인승 전투기 앞에 섰다. 1인승 전투기는 유겐트라 불린다. 지금 난 흩날리듯 뿌려지는 1인승 전투기의 조종사다. 부모님에겐 소중한 아들이고, 내 자신에게는 모든 것인 나지만, 생판 남에게 난 사관학교에서 찍어낸 공산품에 불과하다는 걸 생각해본다.


“자네가 갈란드인가?”


머리를 바짝 깍은 40대의 상사가 내게 다가왔다. 난 전투엔 나가 보지도 않은 소위이므로 경례를 빠릿빠릿하게 올려붙였다.


“예.”


내 목소리가 씩씩하게 들렸다. 상사가 반들반들한 전투기 표면을 두드렸다.


“이상하지 않나? 인간은 3G, 아주 강하게 버텨야 5G 정도의 중력 가속도만을 버틸 수 있을 뿐이네. 전투 중에 10G를 버텨야 하는 때도 있곤 하지만 그렇게까지 되면 죽지. 그런데 왜 10G 이상도 너끈하게 버틸만한 로봇을 쓰지 않고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을 전투기에 태우는 것일까? 인간의 반응속도는 엄연히 한계가 있고 신경 전달 속도는 전파에 비해서 턱없이 느린데 왜 광전자 컴퓨터를 투입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이 전자 장치 보다 더 싸긴 하지만 일단 사용하면 압도적인 차이가 드러날 텐데 왜 하지 않는 걸까. 적도 왜 같은 체제를 고수하는 것일까? 다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네. 나는 정비를 오래해 와서 전투 장비들의 실체를 알고 있지. 섣불리 죽음을 각오하지 말게.”


“까라면 깔 뿐이네, 상사. 군령을 의심하면 안 되지.”


난 권위적인 어투로 눈을 부라리면서 대꾸했다. 상사는 쭈뼛거리면서 뒤돌아서 서둘러 사라졌다. 비틀거리면서 걷는 양이 우스워 난 상사의 뒤에서 마음껏 박수치면서 웃었다. 승부 근성이나 실력이 모자라서 기계 사병을 지원하고 상사까지 올라간 인생일 터였다. 난 녹음한 음성을 증거로 삼아 군령을 의심했다는 죄목으로 상사를 고발했다. 얼마못가 알고 보니 상사는 불명예 제대되었다. 불명예 제대되어 예비역이 아니므로 연금 수령과 안정된 직장과 사회적 존경은커녕 민간인으로 여생을 살아야 한다.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을 터였다. 군령을 의심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될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약간의 관용이 베풀어졌던 것이다. 직업을 못 구하고 소득도 없어서 노년에 재산이 없다는 죄로 소각장에서 불태워지는 처지에 처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상사의 말은 내 뇌리에 깊이 틀어박혀 가끔씩 생각나곤 했다.


나는 1인승 전투기 위에 올라탔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첫 출전이었다. 난 마약을 머리 뒤쪽에 이식된 장치를 통해 뇌에 한 번 더 불어넣었다. 마약을 통해 집중력을 높이고 긴장을 없앤다. 전투란 지극히 두려운 일이다. 삶은 본디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싸움터지만, 진짜 전투는 모든 걸 한 순간에 날려 보낼 수 있어 더욱 강렬한 승부처다. 1인승 전투기 체로 난 순양함으로 옮겨졌다. 전단이 마더쉽에서 방출되었다. 내가 입은 전투복은 호흡과 배변을 위생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좌석에 있는 장치들을 한 번 더 점검했다. 그 중에서도 눈이 가는 것은 자살용 권총과 단검이 달린 레일건이었다. 적에게 포로가 될 바엔 자살해야 하고, 적의 전투함이나 마더쉽에 도킹하면 강습 사병 노릇을 해야 한다. 전자는 긍지를 지킬 수 있고, 후자는 파괴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거라고 배웠다. 점검이 끝나고 난 시뮬레이터를 띄워 조종간을 재연습해 보았다. 무슨 일이든지 간단한 허드렛일일지라도 철저하게 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기다림이 흘러갔다. 가끔 눈도 붙였다.


귀를 째는 기계음이 울렸다. 출전이다.


나는 장기판의 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사관학교에서는 장기판의 플레이어가 되는 방법도 배우지만 학업이 실무에선 얼마나 통용될 수 있는지 난 알지 못 한다. 지금껏 경험한 바에 따르면 실무의 기초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공적을 세우겠다는 욕망이 용솟음쳤다. 난 그동안 쌓은 인맥을 이용해서 총알받이도 아니고 후위도 아닌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일방적으로 희생당하지는 않겠지만 승리하려면 모험이 필요한 곳이다. 난 순양함에서 분출되어 날아가 적의 1인승 전투기들과 격돌했다.


마더쉽들은 동맹하고 있었고 대립하고 있었다. 세습되는 마더쉽의 군주가 군통수권자로서 명령을 내렸다. 마더쉽들은 보급로를 두고 서로 싸웠다. 군대는 때때로 서로의 함선으로 난입했다. 수송선에서 열 맞춰 내린 강습 사병들은 함선 안으로 뛰어 들어가 단검이 달린 레일건을 적의 승무원에게 발사했다. 함선에 뛰어들어 전투 후에 벌어지는 것은 윤간, 방화, 학살, 약탈. 전쟁의 잔치다. 남자건 여자건 포로로 사로잡히면 윤간당한 뒤 학살당한다. 이 잔치는 공수가 끊임없이 역전되는 와중에 가끔 나타났지만 그 가능성은 언제나 잠재되어 있으며 장려된다. 난 적의 마더쉽에서 잔치를 벌이는 소망을 다른 수많은 군인들처럼 품고 있었고 이는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다. 여러 전투들을 통해 난 임신한 여군에게서 꺼낸 태아의 머리통으로 만든 해골을 여럿 갖게 되었다. 다른 전투원들이 그렇듯이, 용맹과 전공의 상징으로 태아의 해골들을 꿰어 목에 걸었다. 파괴와 약탈은 두렵기도 하지만 강렬한 쾌감과 중독성을 가진다. 돈벌이 수단으로 전쟁은 좋았다. 적도 우리 진영에 같은 짓을 하므로 복수심은 증폭되었고 정당화되었다.


보급로와 마더쉽에 각 진영의 함대는 집중하고 있었다. 격렬한 난타전이 진공 속에 작은 불꽃들을 일으켰다. 보급로엔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고분자 화합물을 잔뜩 담은 채 떠다녔고 마이크로파로 전기가 공급되었다. 마더쉽은 보급로의 끄트머리에 위치했고 보급로에서 오는 물자에 생활과 산업을 의존했다.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안정된 체제였다. 더 많은 보급로를 마더쉽으로 돌리고 지키는 것에 마더쉽의 물량이 결정되었다. 전쟁은 물량과 전법을 통해 승패가 갈렸다.


태아에서 적출한 해골을 만지작거리면서 난 승부 근성을 생각하곤 했다. 우주라는 척박한 영역에서 승부 근성이 있는 존재가 마더쉽을 창조했다는 설화는 진실로 느껴졌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승부 근성을 물려받았다. 부모님은 조부모님에게서 받았을 것이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여러 전투에서 난 전공을 올렸다. 내 부모님이 영관급이 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난 별 무리 없이 승진할 수 있었다. 어느덧 프리깃의 조종사가 되어 1인승 전투기 조종사들을 부하로 부렸다. 조직 생활에서 위아래로 치이기도 했지만 그야 항상 있는 일이고 나 또한 나름대로 어릴 적부터 단련된 권모술수를 부렸다. 그 와중에 그녀를 만났다.


결혼을 하고 더 나아가 자녀를 낳아야만 영관급 이상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더욱 승진하려면 반드시 해야 했고 난 승진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믿었다. 제시카는 아름답고 늘씬한 23세의 간호 장교로 동갑이었다. 난 본디 같은 공군 장교와 결혼하려고 했지만 파티 장에서 제시카를 본 순간 꽂혔다. 제시카는 가슴과 엉덩이가 몹시 크고 모양새가 좋았으며 이브닝드레스를 속옷 없이 입고 있었다. 다른 남자와 주먹다짐을 벌인 뒤 약간의 말과 예절로 난 제시카를 침대로 끌고 갔다. 제시카는 결단력과 애교가 있고 포용력이 좋은 여자였다. 몇 차례 더 만나는 동안 난 사적 관계에서는 친절함과 선량함, 일에 있어서는 추진력과 엄격함을 보였다. 제시카는 내가 구축함의 부함장을 맡고 있을 때 스스로 그 구축함에 지원해 왔다. 일과가 끝나고 거의 매일같이 나와 제시카는 성교를 했다. 물론 내게 몸 좀 열었다고 내 것이라고는 나도 제시카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 말고도 제시카의 성교 대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있었더라도 이젠 상관없다.


어느 날 제시카는 내게 경계심을 풀었다. 마음을 놓아 버린 건 제시카의 실수였다. 제시카는 그날 침대 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 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는 교사가 관찰해서 3년 동안 진전이 없으면 소각장에서 태워지지. 난 그렇게 해서 2년 위인 언니를 잃었어. 괴롭히던 양아치 패거리에게 섣불리 대항하다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하루 뒤였을 거야. 비록 언니가 죽을 때까지 언니를 놀리긴 했지만, 난 그게 너무 가슴 아팠어. 그래서 공군 장교 할 성적이 되는데도 일부러 문제를 틀려서 간호 장교를 지원했던 거야. 전쟁을 겪은 뒤 과도한 공포와 불안과 경계심을 느끼는 수많은 환자들이 있어. 그런 그들이 재활용 불가 처분을 받고 소각장에서 태워지기 전에 많이 구하는 데 성공했었지. 더 이상 그 인간에게 투입될 물자가 아깝다는 이유로 소각장에서 태워지는 게 너무 슬퍼.”


“입력 끝. 제시카, 너의 그 말은 녹음해 두었어. 법과 원칙에 대항하는데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말이군 그래. 너의 행동은 옳았지만 그 동기는 쓸데없는 동정이 아닌 승부욕과 책임감이 되어야 마땅해. 난 언제나 동료의 약점에 관심이 많은데 너 같이 대책 없는 약점은 처음이야. 군령은 언제나 옳은 것인데 그 결과물을 슬퍼해? 군령은 시행하면 그 뿐 어떤 감정도 느끼면 안 되고. 정 자제가 안 되더라도 감정을 표현하면 안 돼. 너는 내게 나약하다는 걸 들켰어.”


“날 어쩔 셈이지?”


“나랑 결혼해. 단 넌 내 포로라는 거 잊지 말고. 내가 녹음한 거 뿌리면 처형당하는 건 알고 있겠지?”


“비열해.”


“비열함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덕목 가운데 하나지. 나랑 결혼한다면 앞으로 네가 비겁해질 일이 줄어들도록 해주마.”


“결혼하자고? 그럼 절대 죽지 마. 과부가 되기는 싫어. 애가 딸리게 만든 다음 죽는다면 널 평생 저주하겠어.”


난 그렇게 해서 제시카와 결혼했다. 영관급으로 승진해서 간호 사관학교 교감이 된 제시카와의 사이에 남매 셋이 있다. 이들 모두를 장교로 만든 데다, 많은 전공을 세워 자격을 갖추게 된 난 장군으로 승진했다.


준장 갈란드.


계급장을 단 뒤 난 집무실에서 홀로 기쁨의 눈물을 마음껏 흘렸다.


길이 3km의 20년 된 전함에서 난 함장으로서의 첫 임무를 받았다. ‘마더쉽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마음속에 새기면서 난 임무를 보았다.


내가 태어나 자란 마더쉽을 공격하라는 임무였다.


부모님, 제시카, 세 자녀 모두가 살고 있는 마더쉽이었다. 명령을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확인했다. 명령을 받은 함대 전체의 고향인 마더쉽이었다. 함대의 소속이 다른 마더쉽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내 전함이 속한 함대는 이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만약 단독 행동을 한다면 함대 전부에게 공격당해 전함과 부하들을 잃게 된다. 부하들에게 알릴 수는 없었지만 다른 장군들에게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연락해 보았다. 함대 총사령관이 반역했다. 전쟁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총사령관은, 가족을 모두 잃었기 때문에 은퇴를 종용받던 상태였다. 총사령관은 어떤 꿍꿍이인지 한 보급창을 두고 내가 태어난 마더쉽 및 새롭게 속하게 된 마더쉽과 흥정을 했다. 장군들에 의해 은밀히 알게 된 속사정은 그러했고, 함대 내에 공식적으론 마더쉽이 우리를 미끼로 적 함대 한복판에 버렸다고 되어 있었다. 실제로 어제의 적이 우리를 어느새 포위하고 있었다. 난 납득할 수 없었다. 뜻이 맞는 장군들과 함께 총사령관에게 거역할 것이다. 마더쉽을 지키는 일은 직속상관의 명령 보다 중요한 유일한 가치라고 배웠다.


뜻밖의 대답이 왔다.


“갈란드 준장은 아직 모르는군. 하긴 막 장군이 되었으니 알 리가 없지. 장군에게만 알려지는 비밀을 팩스로 보내주지. 하긴 이 비밀도 모든 비밀 가운데 별 것 아닌 것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하네.”


파일 하나가 왔다.


“지난 세월동안 어째서 과학 기술이 전혀 발전하지 않았는지, 왜 체제가 언제나 똑 같이 변화가 없는지 의심가지 않았나? 인간은 세월에 따라 변화하는데 왜 전쟁은 그대로인지 의심가지 않았나? 과학 기술은 한계에 이르렀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고 우리의 교육은 가르쳤지만 세상을 점점 알아갈수록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


파일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가 있기는 했지만, 언제나 똑 같은 전쟁의 양상에 익숙해져 의심하지 않았었다. 나에게 고발당한 상사가 떠올랐다.


파일 내용은 요약하면 이러했다.


보급로를 통해 물자를 공급하는 주체는 은하 중심 블랙홀을 발전소 삼아 존재하는 거대한 지성이었다. 지구라는 별의 인간으로부터 출발했지만, 무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공 지능과 결합되고 기계화되어 본래의 모습을 거의 잃어버린 이 지성은 마더쉽이라는 게임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다. 마더쉽의 인류는 그 지성에게 있어 게임 캐릭터였다. 나도 한때 모든 인간을 내 발 아래 두고 수단화하는 상상을 즐기곤 했었다. 블랙홀의 지성은 이 상상을 우주적 규모로 수행하고 있었다. 블랙홀의 지성과 마더쉽의 인류 사이의 힘 차이는 플레이어와 장기판만큼이나 크다고 했다. 블랙홀의 지성은 자기 자신이 실존하고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고 했다. 컴퓨터는 인간 보다 훨씬 더 큰 정보 처리 능력을 갖고 있기에, 컴퓨터와 결합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이었다. 블랙홀의 지성은 자신이 통제하는 정보의 용량이 늘면 늘수록, 설령 자신을 지배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더라도 그 존재의 정보 용량에 끼치는 부담이 늘어나는 셈이기 때문에 자주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블랙홀의 지성은 그 상위 지성(만약 있다면)과의 차이가 클수록 자주성 또한 무의미해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일을 하는 걸 보면 나를 증명하기 위해 권력을 탐하던 나와 닮아 있었다. 어찌 되었든 블랙홀의 지성은 내 조상이었다.


나는 이 장군끼리의 비밀을 영관급인 항해사에게도 알리려고 했다. 통신을 했다. 잘 작동하던 컴퓨터가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 직접 불렀다. 내 입에서 내 손 끝에서 언어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침묵하자 항해사가 말했다.


“각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아니다. 계속 하던 걸 진행해.”


뇌에 그동안 주사해왔던 마약이 실은 작은 기계로 그것이 구석구석 침투하여 정보 전달을 가로막고 있다는 파일 내용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나머지 말들도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블랙홀의 지성은 극적인 반란을 함대 총사령관을 통해 구현해 볼 작정인 것으로 보였다. 난 다른 장군들의 마음을 떠보았다. 파일을 보내 온 장군을 포함해서 여러 장군들이 함대 총사령관에게 항거할 뜻을 밝혀왔다. 이 부분은 자유의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상황을 만들고 그 속에서 말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게임인 것으로 보였다. 빛 보다 빠른 물질이 없는 이상 실시간 게임일 리는 없었다. 이 의지도 사실은 시간차 명령의 방식으로 블랙홀의 지성이 집어넣은 것일 수 있었다. 마약은 전쟁터에 투입된 순간부터 나와 뗄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나는 영관급 부하들과 통신해서 함대의 상황을 알렸다. 내가 함대 총사령관의 뜻을 거스를 작정임을 밝혔다. 그들을 모두 놀랐다. 사실 마더쉽들은 모두 똑 같이 생겼기 때문에 고급 정보를 다루는 장군들이 알리지 않는 한 피아를 식별할 수 없다.


부하들이 모두 찬성해 난 만족했다.


내가 태어난 마더쉽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난생 처음 함대로 출진했을 때 보았던 거대한 모습이 아니라, 별빛을 반사하는 한없이 작은 방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태어난 마더쉽의 함대와 격돌하는 순간 난 다른 장군들과 약속했듯이 기수를 돌려 내가 속한 함대를 공격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보다 전쟁터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는 군법이 더 강하게 내 뇌리에서 작용했다. 내 전함은 함대의 한복판에 있었고 공격에 격렬하게 노출되었다. 레이저가 무수히 덮쳐왔다.


부서져나가는 함교 속에서 난 웃었다.



[Fin]

****

200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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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문장 상시 공모 장르 주간

***

아래가 코파일럿이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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