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강조하거니와 불교 교리의 핵심은 인간은 누구나 다 부처님이라는 데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 만민은 평등하다는 얘기이고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수탈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특히 불교에서는 기독교보다 한술 더 떠 인간뿐만 아니라 일체의 동물과 식물, 나아가 진딧물이나 아메바 등에 이르기까지도 다불성(彿性)을 지닌 평등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물론 절대로 살생(殺生)을 하지 말라는 교리와 연계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인간은 누구나 다 평등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종의 방편으로 제시한 교리라고도 볼 수 있다. 살생을 않고 살아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물을 잡아먹지 않고 채식만 한다고 해도 식물 역시 같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죽이는 건 마찬가지다.
석가 역시 예수가 유태교에 회의를 품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도의 전통 종교인 힌두교에 회의를 품는 것으로 그의 종교활동을 시작했다. 따라서 인도 고유의 계급차별 제도인 카스트 제도가 불교에서 용납될 수 없었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이 불교 교리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대 전제하에서 불교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의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내세중심적인 종교나 형이상학 위주의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은 석가가 말한 ‘독(毒) 화살의 비유’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독이 묻은 화살을 맞아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가, 화살의 정체가 무엇인가 따위를 따지고 앉아 있다 보면 그 사람은 죽어버리고 만다. 그러니 우선 그 독화살을 뽑아 사람을 살릴 방도부터 찾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 석가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겉으로 보면 다분히 사변적인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천의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석가는 인간의 불행은 일단 ‘욕망’으로부터 온다고 보았다. 그가 해탈 후 첫 설법에서 말했다고 전해지는 ‘네 가지의 고귀한 진리(四聖諦,)’는 “인생은 고통이다”(苦諦), “고통의 원인은 집착과 욕심이다”(集諦), “고통은 집착의 소멸과 더불어 멎는다”(滅諦), “집착을 없애려면 바르게 사는 법을 닦아야 한다”(道諦)인데, 그는 욕심을 없애는 방법으로 8정도(八正道)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8정도의 세세한 항목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꿰뚫는 대자비(大慈悲)의 정신이요, 대자비의 정신은 ‘인간은 모두다 존귀하다는 진리’를 깨달은 연후라야 가능한 것이다. 모든 사특한 욕망은 타인의 존재가치를 폄하했을 때만 그 몰염치한 추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가는 시종일관 중생이 다 부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말한 고제(苦諦)는 우리의 실존 그 자체가 실제로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다는 비관주의적이고 염세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낙관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과도 통하는 것인데, 그는 인간이 처한 절망적 한계상황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이루어진 뒤에라야 비로소 그것을 헤쳐나갈 용기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책을 썼던 것이고, 절대적 고통(즉 한계상황)에 대한 자각 끝에 진짜 ‘희망’이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진리를 깨닫는 데 있어 필수적 선결요건인 ‘고통의 자각’이란 것은, 인간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지상낙원(즉 彿國士)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확신과 구체적 실천을 고무하기 위한 변증론적 설득의 첫 번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이 고통스럽지 않다고 보는 막연한 낙관론은, 혁명적 사고방식과 그에 따른 구체적 실천에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부처이므로 완전한 자유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인간은 고통을 느끼며 비극적인 일생을 살아야만 하는가? 석가의 주장대로라면,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불성(彿性)에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불성(彿性)은 흔히 불광(彿光)으로 비유되어지는데, 빛에 대하여 눈을 감으면 암흑이 저절로 생가나듯이, 원융무애하고 자유자재로운 나의 실상(實相)에 대하여 눈을 감으면 자연히 고통이 생겨나는 것이다. 즉, 고통은 외부에서 인간에게 숙명적으로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자기의 실상에 대해 마음의 눈을 감았을 때 그 마음의 눈 속에서 생겨난다. 말하자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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