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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 상수의 영화를 보고 회전문을 떠올리다

ㄳㄲ 2007.02.09 0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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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에피소드 <생활의 발견>엔 비밀이 있다. 홍상수 감독은 훨씬 부드럽고 평이한 듯 보이는 <생활의 발견>에 그 비밀을 전작들에서보다 더욱 깊이 묻어놓았다. 정성일씨는 홍상수 감독이 면밀한 계산으로 혹은 직관과 무의식으로 묻어놓은 비밀을 찾아나섰다. 이 비밀 찾기 여행은 간단하지 않다. 꽤 길고 난코스도 있지만, 무사히 완수한다면 보답이 있다. 영화를 읽는다는 것의 진정한 기쁨. <생활의 발견>은 정말 비밀투성이었다! 편집자 나는 그 작품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읽고 나서 나의 생각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허구적 작품 속에서 독자는 매번 여러 가지 가능성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는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나머지들은 버리게 됩니다. (중략) 이렇게 해서 그는 다양한 미래들, 다양한 시간들을 선택하게 되고, 그것들은 무한히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증식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 ‘이야기’가 가진 모순들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호르헤 보르헤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數列)3.11 …당신처럼 되는 것: 지금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것. 그러나 일인칭 목적어 나에게 일인칭 주어 나를 말하게 허락하는 것을 보류하는 것, 이것이 갑자기 시작되고…. 필립 솔레르, <숫자들> 1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또는 경수가 성우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다, 라고 홍상수의 네번째 영화는 시작한다. 1-1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 1시간54분이며(영화사 타이틀과 엔딩 타이틀 제외), 모두 일곱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신 수는 89개이며, 숏 수는 117개이다(제목 포함). 일곱개의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져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경수가 성우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다, 라는 자막이 붙어 있으며, 2개의 신과 2개의 숏으로 되어 있다(여기서 자막은 컷 수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하 마찬가지이다). 이 에피소드는 2분19초이다(역시 자막은 시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일곱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짧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경수가 영화사에 가서 감독과 말다툼을 하다, 이다. 11개의 신, 13숏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소는 서울과 춘천에 걸쳐 있다. 13분49초로 이루어져 있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명숙이 경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다, 이다. 14개의 신, 20개의 숏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춘천에서 이루어지며, 17분47초이다. 네번째 에피소드는 경수가 성우를 하루종일 기다리다, 이다. 12개의 신, 12개의 숏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춘천에서 진행되며, 11분31초이다. 다섯번째 에피소드는 경수가 기차 안에서 선영을 만나다, 이다. 경수가 선영을 만나는 장면은 3분57초로 이 영화에서 가장 길다. 16개의 신이며, 18개 숏으로 되어 있다. 춘천과 기차, 그리고 경주로 장소가 나누어져 있다. 20분31초이다. 여섯번째 에피소드는 경수가 선영을 뒤늦게 알아보다, 이다. 12개의 신이 16개의 숏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경주에서 벌어지며, 21분 48초이다. 일곱번째 에피소드는 경수가 회전문의 뱀을 떠올리다, 이다. 22개의 신이며, 27개의 숏이다. 모두 경주에서 벌어지며, 26분30초이다. 일곱개 중에서 가장 긴 에피소드이다. 영화는 경주에서 끝나며, 경수가 부산으로 갔는지, 아니면 다시 서울로 돌아갔는지, 또는 다시 여행에서 다른 지방으로 갔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없다. 1-2  그런데 이 영화는 등장인물과 장소에 의해서 세개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우선 장소를 중심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영화는 서울과 춘천, 그리고 경주로 나눌 수 있다. 춘천은 춘천과 소양호로 다시 나눌 수 있으며, 춘천과 경주 사이에 열차가 있다. 춘천은 89개 신, 117개 숏 중에서 5번째 신, 9번째 숏에 도착한다. 이것은 영화가 시작하고 난 다음 6분25초가 지난 다음이다. 춘천에서 벌어지는 일은 (소양호를 포함해서) 39개 신, 45개 숏이다. 그리고 여기서 45분58초를 보낸다. 춘천과 경주 사이를 연결하는 기차장면은(여기서는 기차 안과 기차역을 포함시켰다. 즉 경주는 기차역이 아니라 기차역 광장부터 셈했다. 이것은 선영과 경수가 만나는 장소가 춘천이나 경주가 아니라 원주와 경주 사이의 기차 안이어서 장소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선배 성우가 경수에게 한 말에 의하면 경수는 춘천에서 원주까지 버스를 타고 갔으며, 원주에서 기차를 갈아탔다) 5개의 신, 7개의 숏로 되어 있다(이 대목은 숏을 별도로 나눈 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명숙의 사진 인서트가 한 숏을 차지한다). 기차장면은 7분57초이다. 경주장면은 41개 신, 49개 숏이다. 1-3 이것을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경수와 명숙, 그리고 경수와 선영으로 나눌 수 있다. 명숙은 영화가 시작하고 22분39초, 그러니까 세번째 에피소드, 20번째 신, 28번째 숏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장면은 춘천 버스터미널인 다섯번째 에피소드, 43번째 신, 57번째 숏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녀의 사진이 기차에서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2분 뒤에 경수는 명숙의 사진을 남에게 준다. 명숙이 나오는 장면을 다시 나눌 수 있지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화면에 그녀가 없지만, 심리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또는 전화 목소리로 등장하는 숏이 있다. 그런데 구태여 나누어야 하는 경우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이미 명숙이 선배 성우가 건네준 전화를 통해서 경수와 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별도로 구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선영은 다섯번째 에피소드, 54분37초가 되는 45번째 신, 61번째 숏에서 등장한다. 다섯번째 에피소드에서 명숙과 헤어지고 선영과 만난다. 그러나 그 둘은 겹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기 직전인 일곱번째 에피소드, 1시간50분15초에 골목길 저편으로 사라진다. 이것은 86번째 신이며, 112번째 숏이다. 명숙과 마찬가지로 선영이 나오는 장면과 나오지 않는 장면은 별도로 나누지 않았다. 1-3-1  등장과 퇴장에 대해서. 명숙은 처음 등장할 때 등을 보여준다. 그녀는 숏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서 있다. 그리고 마지막 퇴장장면에서 마찬가지로 등을 보여준다. 그녀는 숏이 끝난 다음에도 서 있을 것이다. 영화적으로 말하면 이미 명숙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선영은 기차 안에서 경수에게서 오른쪽으로 카메라가 팬 하면 앉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경수에게서 오른쪽으로 카메라가 팬 하면 그녀는 골목 저편으로 사라진다. 영화적으로 말하면 선영은 생성되고, 그리고 소멸된다. 그녀들은 같은 방법으로 나타나고, 같은 방법으로 떠나간다. 한 가지 더.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화면은 텅 비어 있다. 그리고 경수가 비를 맞으면 등을 돌리고 그 안으로 들어온다(프레임 인). 마지막 장면에서 경수는 비를 맞으며 카메라를 향하여 걸어 나간다. 또는 빠져나간다(프레임 아웃). 나간 다음에도 카메라는 그냥 서 있고, 텅 빈 화면이 보여진다. 이 영화에는 대사와 인물, 소도구, 행위의 반복과 모방이 있지만, 동시에 카메라와 프레임의 반복과 모방이 있다. 그런데 그들 사이의 관계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홍상수는 이야기의 담론과 카메라의 화법 사이에 인과관계를 세우지 않는다. 제2장 자막 2 일어나는 것, 즉 사실은 사태들의 존립이다. 그러니까 이 산술법과 달리 영화 안에서 벌어진 사실들로 다시 말할 수도 있다. 우선 이 영화를 나누는 방법은 날짜로 계산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이 영화의 홍보 카피는 ‘그의 본色과 그녀들의 본心이 함께하는 6박7일 트루(?) 로맨스’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5박6일의 여행이다. 더더구나 ‘그녀들과 함께하는’ 로맨스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여기서 다시 하루를 빼야 한다. 만일 6박7일이 맞으려면 선배 성우의 전화를 받고 집에 가는 길에 ‘트루 로맨스’가 한번 있어야 한다. 여기서 ‘그녀들’도 모호하긴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춘천에 가서 옷 벗는 술집에서 파트너와 ‘트루 로맨스’가 하나 더 있어야 이 셈이 맞기 때문이다(만일 술집 파트너들과 옷벗기 내기 한 것도 ‘트루 로맨스’라고 해도 5박6일이 맞다). 그러나 경수는 (추정하건대) 서울에서 선배 상우의 전화를 받고 그냥 집에 가서 잤으며, 춘천의 첫날밤에도 (‘트루 로맨스’ 없이) 그냥 잠을 잔 것 같다. 경수는 술집에 간 다음날 명숙을 만난다. 만일 경수가 명숙과 선영과 ‘함께하는 트루(?) 로맨스’라면 4박5일이 맞다. 2-1 여기서 에피소드를 나눈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원칙은 하루를 기준으로 해서 나눈 것 같다. 첫번째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모두 에피소드는 아침에 시작해서 하루가 끝나면 역시 마찬가지로 끝난다. 이것은 예외가 없다. 그 기준은 장소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꼭 밤이 되어야 에피소드가 끝나지는 않는다. 이것이 에피소드와 시간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키는 첫번째 이유이다. 네번째 에피소드는 호수에서 비 맞고 돌아오는 경수를 보여주면서 끝난다. 시간은 화면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점심을 먹고 난 다음이며, 아직 저녁을 먹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오후인 것 같다. 일곱번째 에피소드는 해장국 집에서 점심밥을 먹고 나온 다음 선영의 집에 가서 그녀를 데리고 나와 경주장에서 섹스를 하고 점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그녀를 기다리면서 오후에 비를 맞으며 끝난다. 아마도 네번째 에피소드와 일곱번째 에피소드는 비슷한 시간에 끝나는 것 같다. 2-2 그런데 중간에 홍상수가 자막을 소개하는 방식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자막을 사용하는 것은 (영화사적으로는) 무성영화의 방법이지만 그것은 목소리를 대신 한 것이었으며, 그 이후 일반적으로 시간의 경과를 표시할 때 사용하였다. 그러나 고다르가 <비브르 사 비>에서 의도적으로 장을 12개로 나누어서 각 장에서 일어날 사건을 미리 가르쳐주는 브레히트적인 이화작용의 화법으로 다시 활용하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자막은 그런 화법이 아니다. 우선 첫번째 자막은 빗속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서 선배 성우로부터 전화 걸려온 것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두번째 자막은 다르다. 경수가 영화사에 가서 말다툼을 하다, 는 자막의 내용은 11개의 신 중에서 시작하자 2번째 신에서 끝나며, 3번째 신에서는 춘천에서 선배 상우를 만난다(춘천까지 가는 장면은 생략되어 있다). 그러니까 자막으로 말하자면 세번째 신 이후는 잉여이거나, 아니면 자막과 상관없는, 또는 자막 ‘이후’의 사건이다. 크게 이 에피소드는 두개의 시퀀스로 나누어져 있지만, 자막은 첫번째 시퀀스만 설명한다. 그러나 이렇게 분명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홍상수의 영화는 신의 구별은 분명한데, 시퀀스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또는 홍상수는 항상 정직하지는 않다. 그런데 그런 순간 홍상수는 메시지를 보낸다. 2-3  세번째 자막은 맥거핀이다(또는 의도적인 착각이다). 자막은 명숙이 경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다, 이지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네번째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첫번째 자막의 방식을 믿은 사람들은 여기서 혼란에 빠지거나 착시효과에 빠지게 될 것이다. 네번째 자막은 첫번째 자막처럼 고스란히 그 내용을 따른다. 그러나 세번째 자막의 내용이 실제로 대사에서 말하여지는 것은 네번째 에피소드가 시작하자마자이다. 그러니까 이 세번째 에피소드와 네번째 에피소드의 자막의 내용은 서로 디졸브되어 있다. 한 가지 더. 오직 이 자막만이 경수가 목적어이고, 상대방이 주어이다. 다른 모든 여섯개의 자막은 경수가, 라는 주어로 시작한다. 우리가 착각한 이유, 한 가지 더. 좀더 정확하게 명숙은 경수에게 사랑한다, 고 말한 적이 없다. 모텔에서 명숙은 “사랑하지 않죠?”라고 물어보았고, 호수에서 경수에게 휴대폰으로 “사랑한다고 말해봐요, 싫죠?”라고 묻는다. 경수는 “네”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경수는 선영에게 사랑한다고 코모도호텔과 모텔에서 두번이나 고백한다. 선영은 첫번째는 “나도요”라고 대답하지만, 두번째는 “진짜로요?”라고 반문한다. 2-4 다섯번째 자막 경수가 기차 안에서 선영을 만나다, 라는 말은 좀 이상하다. 그 내용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들어가 있는 위치가 이상하다. 이 에피소드는 크게 두개로 이루어져 있다. 앞의 4개의 신은 경수가 명숙과 헤어지는 장면이며, 5번째 신은 기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다. 그리고 6번째 신에서 선영을 만난다. 그러니까 이 자막은 5번째, 혹은 6번째 신 앞에 넣으면 된다. 두번째 에피소드와는 반대의 방법으로 넣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잉여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또는 우리에게 해석을 더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자막을 본 다음 시작하는 신에서 명숙을 만나는 것은 이미 경수가 명숙을 잊어버렸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자막만으로 읽자면 이미 영화는 명숙에서 선영으로 넘어간 다음이다. 하지만 명숙이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녀가 남긴 문장은 일곱번째 에피소드의 선영의 문장 속에서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2-5 그런데 다른 자막들이 모두 영화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또는 사실들을 기술하고 있는 반면 왜 일곱번째 자막 경수가 회전문의 뱀을 떠올리다, 만이 경수의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를 표현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또는 홍상수에게 이 자막이 가장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영어제목 때문이다(홍상수는 <오! 수정> 이후 한글 제목과 영어제목을 전혀 다르게 짓고 있다). <생활의 발견>의 영어제목은 ‘On the Occasion of Remembering the Turning Gate’이다. 직역하자면 ‘회전문을 기억할 즈음해서’이다. 그러니까 세번째 에피소드 14번째 신에서 선배 성우가 경수에게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가면서 설명한 청평사 회전문의 뱀 이야기를 우리는 일곱번째 에피소드 89번째 신인 선영의 집 앞에서 ‘기억해야만’ 한다. 제3장 회전문 3 그러니까 사실들의 논리적 그림이 사고이다. (중략) 그런데 우리는 회전문을 보지 못했다. 3-1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은 이유가 있다. 선배 성우가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 발길을 막은 것은 가방 공장 사장이다 (그러나 가방 공장 사장과 그의 일행이 청평사에 우연히 산책하는 길에 왜 성우가 동행하기 싫어하는 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 여기에 사실들의 논리적 그림을 방해하는 두번째 이유. 성우의 회전문에 관한 설명은 두 가지가 틀렸다. 하나는 역사적 모순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과 다르다(그러나 설화이기 때문에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성우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저기 회전문이 왜 회전문이냐면, 중국 당 태종 알지? 당 태종한테 평양공주라는 딸이 있었거든, 근데 한 총각이 그 평양공주를 너무 사모해서 상사병에 걸린 거야, 왕이 기분 나쁘니까 죽여버렸어, 근데 저기 뭐 죽은 뒤에 그 총각이 뱀으로 환생을 했는데, 뱀으로 환생한 뒤에, 저, 그 공주의 몸을 칭칭칭칭 감아버린 거야. 그러니까 공주가 답답하지, 힘들고. 근데 한 도사가 내려와서 조선의 청평사로 가보라고 그런 거야. 청평사로 갔는데, 저 청평사 앞에서 공주가 이런 거지. 제가 밥을 얻어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랬어. 그리고 들어가더니만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오는 거야. 그래서 이 뱀이 안 되겠다 싶어서 들어가는데 갑자기 천둥이 치면서 소나기도 내리면서 막 이래서, 너무 무서워서 도망을 갔거든. 근데 이제 도망갈 때 돌아갔었던 그 문이 회전문이래”라고 설명한다. 3-2 가장 쉬운 해결방법. 비 내리고 번쩍거리면서 번개 치는 선영의 집 앞에서 그 문을 보고 자기가 (선영이라는) 공주를 칭칭 감은 뱀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영화감독의 말 “경수야, 우리 사람 되는 거 힘들어, 하지만 우리 괴물이 되지는 말자”는 말도 함께 기억하면서) 참담하게 그 집 문 앞을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의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거기서 멈추어도 좋다. 3-3 하지만 왜 회전문의 이야기를 선배 성우에게서 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선배 성우와의 사이에는 선영이 아니라 명숙이 끼어드는 것일까? (선배 성우는 선영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경주에서 선영을 만날 때 경수는 선배 성우의 면티를 입고 만나며, 게다가 성우가 술 마시면서 좌우로 흔드는 모습을 반복한다. 분신효과, 혹은 모방의 전이?) 또는 소양호에 가서 들은 이야기를 왜 경주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일까, 또는 경주에서 깨우치게 되는 것일까? 왜 비는 한번이 아니라 세번 내리는 것일까? 그런데 회전문 설화의 교훈은 불교의 윤회라고 한다. 3-3-1 선배 성우의 설명의 두 가지 오류에 관해서. 첫번째, 이 설화의 판본과 관계없이 역사적으로 당 태종 시대의 평양공주라면 ‘조선의 청평사’에 올 수는 없다. 두번째. (이것은 판본의 문제인데) 춘천 소개 사이트에 따르면(http://chunchon.miraecity.com) 그 상사뱀은 뇌성벽력을 맞고 떠내려가 폭포에서 죽었다고 한다. 3-3-2  왜 선배 성우는 시대를 잘못 기억한 것일까? 만일 원래의 시대에 맞추어 복원한다면 의도하지 않은 오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일까? 그러니까 당 태종 시대에 평양공주가 상사뱀을 풀기 위해 한반도에 왔다면 신라시대일 것이며, 그 신라시대의 수도는 경주이며, 그래서 결국 경수가 경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는 것이 운명적으로(또는 의도적으로) 보이는 것이 (홍상수로서는) 싫어서였을까? 세번 내리는 비는 한번은 서울, 다음은 춘천,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주에서 내린다. 다른 설명. 회전문 이야기를 들은 것은 세번째 에피소드 18번째 신 다음이니까 상사뱀이 비 맞는 설화를 경수의 이야기와 연결지어 생각해보는 것은 호수와 선제 보살의 집 앞에서 선영네 집의 문 앞까지 두번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두번 모두 소낙비와 함께 경수는 인연이 다했음을 알게 된다. 또는 인연이 다하는 순간 깨달음처럼 비가 내린다. 이 대목은 미묘하게 다르다. 명숙과는 인연이 다했음을 안 다음 비가 내리고, 선영과는 비를 맞으면서 비로소 인연이 다했음을 알게 된다. 명숙의 대목에서는 비 내리는 장면이 한 숏이고, 선영의 대목은 두 신, 두 숏이다. 세번, 또는 두번 모두 남겨진 사람은 경수이며 그 역은 아니다. 그런데 이 대목이 이상하다. 뱀은 떠나가고 공주가 남는다. 만일 경수가 상사뱀이 아니라 (여행하는) 공주라면 이 도식은 새로 세워져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근거. 이 영화의 이야기를 파블라(fabula)의 시간배열로 다시 놓을 수 있다. 중학교 때 선영은 태릉에서 경수를 만난다-선영, 경수의 연극을 보러 다닌다. 그런데 경수는 알지 못한다-선영은 경주에 내려온다. 경수는 연극을 계속한다-경수는 영화에 출연했다가, 흥행에 실패한다-춘천에 내려와서 선배 성우를 만나고, 명숙과 만나 섹스를 한다-헤어지고 부산에 가는 기차에서 선영이 경수를 알아본다(그 역이 아니다!)-경주에서 경수, 선영을 따라 내리다-경수, 선영 집까지 따라간다-경수, 선영과 섹스를 한다-점괘를 보고, 선영 떠난다-경수, 선영 집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떠난다. 그러니까 경수의 주변을 떠돈 사람은 선영이며, 선영은 언제 어디서 마주쳐도 경수를 알아본다. 3-3-3 그러나 반론. 상사뱀은 잠시 밥을 얻어올 테니 기다리세요, 라고 한 공주를 기다리다가 참다못해 청평사로 가던 중 회전문에서 소나기와 천둥을 만난 것이다. 경수는 춘천과 경주에서 기다리다가 소나기를 맞는다. 하지만 이상한 점. 상사뱀은 “너무 무서워서 도망”간 것이지만, 경수는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두번 모두 그냥 떠나는 것이다(그러나 춘천에서 천둥은 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느 경우에도 정확하게 청평사 회전문 설화는 영화 속에서 반복되지 않는다. 다만 매우 비슷하다. 또는 비슷한 척 흉내를 낸다. 흉내를 내기는 하는데 홍상수는 모든 수단을 써서 같지 않게 만든다. 3-4 그러니까 <생활의 발견>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경수와 성우, 명숙, 선영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청평사 회전문의 이야기이다. 그 둘 사이에 서로 관계가 있다고 말하기는 쉽다. 또는 그것을 영화에서 의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마지막 자막. 하지만 그 둘 사이의 관계가 은유인지, 아니면 환유인지 분명치 않다. 또는 그 관계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밝혀지지 않는다. 더 곤란한 것은 청평사 회전문의 설화와 홍상수의 이야기 사이에서 등장인물의 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는 잉여가 발생한다. 그래서 잉여를 해결하기 위해서 같은 이야기가 두번 반복된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오류에 기꺼이 빠져들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반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도식이다. 홍상수는 여기서 일정 부분 오류의 공범자이다. 왜냐하면 경수와 명숙, 그리고 경수와 선영의 이야기를 겹쳐놓지 않고 서로 분리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분리는 선명한 것은 아니다. 명숙이 남겨놓은 메모를 선영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영과 명숙은 만난 적이 없다. 회전문의 이쪽 문으로 들어가면 명숙이 있고, 저쪽 문으로 나오면 선영이 있다. 경수는 끝내 그 둘을 동시에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둘은 번갈아 술래가 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붙들러 간다. 주의할 점. 명숙이 선영을 붙들러 갈 수 있지만, 선영이 명숙을 붙들러 가는 것은 영화의 순서와는 모순이다. 이 영화에는 플래시백이 없다. 그런데 심리적인 플래시백 효과가 있다. 또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플래시백을 만들어 채워 넣는다. 그러나 그 플래시백은 영화가 약속한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미루어 가정한 것이다. 누가? 영화를 보는 우리가. 3-5 틀린 역사 연대적 서술과 서로 다른 결말을 가진 설화인 청평사 회전문의 이야기는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회전문은 맥거핀일 수도 있다. 또는 그것을 홍상수는 (의도적인?) 오류를 통해 알려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맥거핀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듭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때,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가장 쉬운 해결방법은 매듭을 만드는 것이다. 매듭은 분리된 것을 강제로 연결하는 수단이거나, 또는 큰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매듭을 수학공식에 의해서 풀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 없다. 그러니까 매듭을 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듭을 통하여 분리를 화해시키려는 대상을 찾는 일이 홍상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제4장 구조 제4장 구조 2002.04.12   성일, 상수의 영화를 보고 회전문을 떠올리다 4 사고는 뜻을 가진 명제이다. 메시지, 또는 메모. “사람들 보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해놓고, 놔두고 보면, 서로들 서로를 흉내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에릭 호퍼) 또는 “우리들 행동의 부조리함은 거의가 우리가 흉내내서는 안 될 것(그게 사람이든 뭐든)을 흉내내려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새뮤얼 존슨)라는 말을 2000년 8월 <생활의 발견> 트리트먼트 서문에 홍상수가 (홍보자료에 따르면) 붙여놓았다고 한다. 두 문장의 공통된 단어는 흉내이다. 4-1 흉내를 내는 것은 여기서 세 가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진다. 그 하나는 등장인물이 다른 등장인물을 따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사건이 다른 사건 안에서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같거나 유사한 사물이 아무 상관없는 서로 다른 숏에 등장해서 그 사이의 무관함 속에서 연관성을 유추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흉내는 단지 이미 본 것을 따라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서로 알지 못하는 상대에 대한 텔레파시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명숙이 쓴 문장을 선영이 반복한다. 그런데 선영은 명숙을 만난 적이 없다. 한 가지 더. 선영이 쓴 문장을 경수는 고발장을 쓰면서 다시 베낀다. 그 문장은 “자연현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심한 듯 보입니다”이다. 이 문장을 선영은 맨 앞에 쓰고, 경수는 맨 뒤에 쓴다. 그러니까 세개의 글은 서로 이어 쓴 것처럼 한 문장씩 겹쳐져 있다. 그러나 일직선으로 놓이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매듭이 묶이지는 않는다. 그건 이 영화의 전체 구조에 대한 알레고리처럼 보인다. <생활의 발견>을 뫼비우스의 띠에 비유하는 것은 내게는 이상하게 보인다. 여기에는 원형 구조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 두개의 매듭은 같은 방식으로 묶이지 않았다. 또는 이야기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미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텔레파시와 데자뷔는 <생활의 발견>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이 발견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또는 발견이라고 믿은 것은 이 영화를 다시 보면 대부분 착시-효과이다. 그러므로 대상과 왜상 사이에 있는 구조가 중요해진다. 4-2  그러므로 이 흉내에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반복이 아니라 차이이다. 또는 차이 안의 반복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그 어떤 흉내도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선배 성우가 술을 마시면서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것을 경주에서 경수가 반복하지만, 그 반복은 서로 다르다. 왜냐하면 경주의 삼겹살집은 4숏으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서 경수와 선영은 술을 마시는데 61신에서는 몸을 흔들지 않는다. 테이블에는 소주 1병과 사이다 1병이 올려져 있다. 그러나 63신에서는 몸을 흔들면서 술을 마신다(그 사이에 있는 62신은 잠시 삼겹살집 바깥으로 나왔다가 하늘을 보는 경수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시간의 생략이 있다. 테이블에는 소주 4병과 사이다 1병이 올려져 있다. 경수의 말에 의하면 몸을 좌우로 흔들면 취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춘천에서 성우는 대리 운전이 없기 때문에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몸을 좌우로 흔든다. 성우는 옷 벗는 술집에서도 몸을 좌우로 흔든 것 같다. 거기서 성우의 파트너는 “몸을 왜 이렇게 흔들어요, 재수 없게”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경수가 갑자기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것은 단지 취하지 않기 위해서일까? 성우는 취하지 않아도 여자 옆에 앉은 술좌석에 오면 몸을 좌우로 흔든다. 경주에서 경수는 성우의 면티를 입고 있다. 4-2-1 이상하게 그 흉내의 반복과 차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또는 놓치는) 대목은 명숙과 선영이 쓴 메모의 마지막 문장의 차이이다. 서로 다른 앞 문장 뒤에 명숙은 “내 안의 당신, 당신 안의 나”라고 쓰지만, 선영은 “당신 속의 나! 내 속의 당신!”이라고 순서를 바꿔 쓴다. 반복은 결코 고스란히 겹쳐지지 않는다. 4-2-2  그런데 이 문장은 명숙이 경수를 향해서 쓴 “명숙 안의 경수, 경수 안의 명숙”, 또는 선영이 경수를 향해서 “경수 속의 선영! 선영 속의 경수”이지만 동시에 내게는 “명숙 안의 경수, 경수 안의 명숙”으로부터 “명숙 속의 선영! 선영 속의 명숙”으로 읽혔다. 그러나 “명숙 안의 선영, 선영 안의 명숙”으로는 읽히지 않았다. 이 말에 주의해야 한다. 왜 상호 전이가 일어나지 않은 것일까? 또는 나는 그렇기 때문에 홍상수는 나와 당신의 순서를 서로 다르게 썼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그 순서가 중요해진 것이다. 우리(와 경수)는 선영을 만나기 전에 명숙을 만났지만, 명숙을 만나기 전에 이 문장을 알지 못한다. 선영은 2인칭 주어를 먼저 불러들인다. 알랭 레네의 참고할 만한 말. “영화의 숏에 과거와 미래는 없다. 기억과 예감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는 항상 앞에서 뒤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홍상수는 결코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되돌아오는 경우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심리적으로 자꾸 뒤를 돌아본다. 또는 그렇게 하도록 유혹 당한다. 한번 더 강조할 만한 점. 홍상수 영화의 미학은 플래시백 효과이다. 물론 방점은 효과에 놓인다. 4-2-3 두개의 사례. 나에게 가장 이상한 부분은 두 가지였는데, 그 중 하나는 명숙과 선영이 남긴 문장이다. 같은 문장을 쓸 수도 있었는데 (아마도 의도적으로) 반대로 적혀 있다. 마치 거울에 비춰본 것처럼. 다른 하나는 춘천에서 오리 배를 타고 가면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가 경주에서 선영의 남편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이야기로서는 우연이지만, 또는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걸 보는 우리는 거기에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연과 의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홍상수의 의도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의도에 대한 대답이 영화 안에 없다. 그 의도가 이야기 안의 등장인물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잘못된 해답의 구조가 있다. 22신의 춘천 공지천에서 오리 배를 타고 경수와 선배 성우와 명숙이 이야기할 때 우연히 마주쳐서 라이터를 빌리는 사람을 주목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1시간5분이 지난 뒤에, 그러니까 62신이 더 지난 다음에 갑자기) 83신 경주장에서 경수가 그때 그 남자가 선영의 남편 같다고 선영에게 말할 때 우리는 틀림없이 이미 보았으나 놓칠 수밖에 없는 인물 때문에 이제까지의 이야기의 중심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그러나 여기서 홍상수가 속임수를 썼다고 말할 수는 없다. 꼼꼼하게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그걸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명숙과 만난 이후 헤어질 때까지 경수와 명숙과 성우 사이에 끼어드는 인물은 성우의 사촌누나를 제외하면 오리 배를 타고 라이터를 빌리던 그 장면의 선영 남편뿐이다. 이 세심함이란!). 그러니까 홍상수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괄호 치고 보는 의미의 영역을 자꾸만 의심하게 만든다. 의미가 없었다고 넘어간 것이 우리를 붙들고, 그 반대로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도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다(이를테면 나는 명숙이 비에 젖은 휴대폰에 남겨놓았다는 메시지가 정말 궁금했다. 그러나 경수는 경주에 간 이후로 그 말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다. 또는 그 ‘알려지지 않은’ 메시지가 경주에서 ‘무의식의 형태’로 집행되는 것일까? 그래서 결국 편지는 도착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외재성의 이름으로 이야기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와의 어떤 거래가 있다. 주목할 만한 점. 경수는 선영의 남편을 알아보는데, 선영의 남편은 경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경주장에서 우리는 선영의 남편의 자리에 불려간다. 그러나 그 자리에 선영의 남편은 없다. 4-2-4 그러나 없는 그 자리가 채워진다. 그 자리는 그걸 알고 있다고 가정되어진 당신에 의해서 매듭지어진다. 그러니까 이미 충만해 있는 화면에서 불안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핍이라고 생각되는 잉여이다. 왜냐하면 반복되어지는 대사와 소도구와 상황과 카메라의 차이가 나타날 때 그 신의 내부에는 그 자체로 문제가 없지만, 그 설명은 외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외부는 여전히 이야기 안이다. 같은 말이지만 사실은 거기에 없는데 분명히 거기에 있다는 스스로의 가정 아래 발견하려는 노력은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노력은 영화의 고정점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자꾸만 중심을 벗어나는 것이다.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알고 있다고 가정되어진 자리가 항상 기만당하는 것은 영화의 속성 때문이다. 왜냐하면 영화는 시간을 통해서 연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되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지나간 것은 기억에 의지해야 한다. 그 기억의 오류가, 순서와 배열을 통해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영화 안에서의 지식은, 그러니까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가정되어진 그 자리는, 사실은 대상에 이끌린 것이 아니라 원인에 떠밀린 것이다. 그러나 그 원인의 자리가 비어 있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그러므로 홍상수의 영화에서 의미는 지어낸 환상이다. 여기서 의도는 홍상수의 몽타주이며, 위장은 홍상수의 미장-센이다. 또는 어쩌면 그 역이다. 같은 말이지만 홍상수의 영화에서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그 장면은 플래시백 효과를 생산한다. 그런데 그 환상을 만들어내는 매듭을 만드는 사람은 경수나, 명숙이나, 선영이나, 성우가 아니라, 당신이다. 또는 당신은 그 효과-증후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당신은 경수나, 명숙이나, 선영에 비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말은 모순이다. 왜냐하면 지식의 잉여는 결국 그것을 포함하여 이루는 하나의 지식으로서 오류이기 때문이다. 4-3  한 가지 더. 신4 영화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감독은 경수에게 “우리 사람되는 거 힘들어, 힘들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을 경수는 춘천에서 두번 반복한다. 그러나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는다. 술집에서 나와서 경수는 성우에게 “우리 사람되는 거 어렵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고 말한다. 또 호수에서 휴대폰으로 명숙에게 “저, 우리 사람되는 거 어렵지만 괴물은 되지 맙시다”라고 말한다. 감독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을 경수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요구에 대한 대답을 경수가 춘천을 떠나기 전에 버스터미널에서 선배 성우가 한다. “경수야! 너 사람한테 사람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말래!” 이 대답 이후 (하여튼) 경수는 이 말을 경주에서 더이상 반복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이 괴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더이상 버티기를 포기한 것일까? 또는 사실은 괴물이 되고 싶은데 될 수 없는 자신이 괴롭다는 억압의 표현일까? 제5장 착각 5-1-3 우리는 한 명제의 참이 다른 명제들의 참으로부터 따라 나온다는 것을 그 명제들의 구조로부터 알아본다. 5-2 이 영화에는 두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영화 바깥에 놓여진) 이 영화의 제목인 임어당(林語堂)의 <생활의 발견>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안에서 사용되는) 춘천에서 선배 성우의 집에서 들고 나온 <스콧 니어링 자서전>이다(영화에서 사용한 판본은 표지로 미루어 짐작건대 김라함씨가 번역한 실천문학사 출판본이다). 아마도 성우는 지난해 또는 지지난해에 샀을 것이다(이 책은 2000년 5월에 출판되었다). 또는 홍상수가 <생활의 발견> 트리트먼트를 쓰기 석달 전에 나왔다. 임어당은 ‘자유주의’를 내세운 반공주의자였으며, 스콧 니어링은 ‘급진적’ 사회주의자였다. 경수는 스콧 니어링에 대해서 알고 있으며(선영에게 설명한다), 선영은 “그 책이 아마 제가 알고 있는 어떤 분 인생을 바꾼 책일 거예요”라고 대답한다(분명치는 않지만 아마 그 ‘어떤 분’은 그녀의 남편일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정말로, 정말로, 남을 위해서 일만 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그 남편은 춘천 소양호에서 (여자와 바람을 피우며) 성우에게(경수가 아니다. 그런데 경수가 그녀의 남편을 기억하기 때문에 처음 보았을 때는 경수에게 빌렸다고 착각을 했었다) 라이터를 빌려 달라고 부탁한다. 경수가 선영의 남편에게 한 말은 “Can you speak english?”가 전부이다. 제6장 아버지 6-1 논리학의 명제들은 동어 반복들이다. 앞에서도 한 말이지만 홍상수는 이렇게도 말한다. 경수는 세존보살의 점괘에 의하면 “저 사주는 스님 사주가 돼가지고, 산천을 벗삼아 가지고, 산으로 산으로 다녀야 되는 사주기 때문에, 속세에 인연이 없습니다. 인간의 인덕도 없고(중략)”라고 한다. 세존보살의 점괘가 맞다면 결국 경수는 부산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더 떠돌아다녀야 하며, 심지어 “구월 시월에는 몸에 칼댈 일도 있”다. 만일 그가 홍상수 영화의 페르소나라면 그의 주인공은 끝내, 또는 적어도 앞으로 “올래 또 삼재가 들어오기 때문에” 삼년은 그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떠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경수의 생각은 다르다. (61신 경주 삼겹살집에서 선영에게 한) 경수의 말에 따르면 “언젠가 운전사 아저씨가 그러더라고요. 야! 인덕이 있다” 홍상수가 누구의 말을 믿을지는 알 수 없다. 6-2 그런데 궁금한 것은 경수가 부산에 내려간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부산에는 (선영에게 한 말에 의하면) 부모님이 계시다. 그런데 그는 처음부터 부산에 내려갈 생각을 하고 여행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옷 벗는 술집에서 나온 다음 경수는 서울에 가는 택시를 타려고 한다. 12신에서 경수는 선배 성우에게 “서울 가는 길이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42신 춘천 버스터미널에서 경수는 부산에 가기 위해 시외버스를 기다린다(경수가 왜 마음을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때 명숙이 나타나 경수에게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자 15분이 남았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59신 경주역 앞에서 선영이 나타나 떠나려면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자 15분이 남았다고 대답한다. 부산에 내려가는 시간에서 항상 15분 전에 여자가 나타난다. 그러나 경수는 명숙을 버리고 춘천을 떠나가지만, 선영을 만난 다음 경주에 남아서 술을 마시고 섹스를 한다. 그건 매듭일 수도 있고, 또는 명숙에서 선영으로의 전이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 순간 이야기는 디졸브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여전히 부모님과의 대면은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6-3 이 의문은 다소 산종(散種)되어 있다. 나는 여기서 오리를 갑자기 떠올렸다. 이 영화에서 오리가 가장 먼저 나오는 대목은 세번째 에피소드 14신 성우의 사촌누나 농장에서 성우의 조카 희라에게 경수가 “이게 오리니?” 하고 물어보자 “오리 아니에요, 거위예요” 하고 대답할 때이다. 그 다음 같은 에피소드 22신 춘천 공지천에서 경수는 명숙과 성우와 오리 배를 탄다(그런데 전경은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은 마스터 숏이 없다). 그리고 일곱번째 에피소드 70신 경주 콩코드 호텔 발코니에서 경수는 엄마 오리 배를 본다(“저건 아무 데서나 보네”). 그런데 경수는 한번도 진짜 오리를 보지는 못한다. 또 하나. 오리 배에는 ‘아빠’ 오리 배가 없다. 궁금한 점. 오리 배에서 명숙은 5년 전에 헤어진 애인에 대해서 말하면서 “처음 만날 땐 굉장히 순수하고 그래서 사귀었는데요, 만나다 보니까 아버지가 보이더라고요”라고 헤어진 이유를 설명한다. 명숙은 아버지가 보이는 남자와 헤어진다. 또는 그렇게 한다. 6-4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대면하는 것을 핑계를 대서 계속 회피하거나, 아니면 연기한다. 그의 주인공은 아직 오이디푸스가 되기 직전의 인물들이다. 경수는 (춘천에서) 오리 형제 자매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경주에서) 엄마 오리를 바라볼 뿐이다. 그는 아직 아버지가 죽여야 할 ‘괴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것이다. 제7장 …그리고 침묵 경수가 회전문의 뱀을 떠올리다, 또는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 n-1, ou Che Vuoi?_ 이 글은 먼저 홀수를 쓴 다음 짝수를 채워나간 글이다. 그러나 배열은 앞의 숫자에 뒤의 숫자를 더한 것이 하나의 숫자이다. 그러므로 합산을 한 다음 짝수를 빼면 원래의 글이 된다. 동일한 수는 앞의 수가 앞선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짝수의 글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짝수는 설명과 반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짝수의 글을 다시 배열한 다음 순서대로 놓고 거기서 그 순서에 따라 5의 배수는 의도적으로 더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읽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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