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 비담은! 황명에 따라, 오라를 받으라!!"

병사들이 비담을 에워쌌다.
비담이 차가운 미소로 칼을 뽑으며 말하였다.

"나를 베는 자가...역사에.. 남을 것이다... 와랏!!!"

빠른 비담의 칼에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이때 유신이 병사들을 제지하며 비담 앞에 와 섰다.

"비담... 모든 게 끝났네... 더 이상 살생하지 말고, 함께 가세."

비담이 피가 튀긴 얼굴로 차가운 미소를 짓다가, 먼 곳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여왕인 듯한 사람을 보고는 멍해져버렸다.

"유신... 폐하인가. 저기.. 폐하가 계신가...? 전해야 할 말이 있는데..."

"비담... 그만 하시게..."

비담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너무나 푸르렀다. 비담의 입가에 자조섞인 미소가 어렸다.

"내가..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너무나 푸른 꿈을 꾸었던 것이었나..."

유신이 말없이 칼을 뽑아 비담에게 겨누었다.
이때 비담이 공중제비를 돌아 여왕이 있는 쪽으로 날아서 포위망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유신이 경악하여 소리쳤다.

"잡아라! 잡아야 한다!!"

비담의 주위로, 병사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비담은 다시 화려한 무술로 전력을 다해 싸우며, 여왕을 향해 나아가려 하였다.

"덕만까지.. 70보!"

여왕이 멀리서 그런 비담의 모습을 슬프게 보고 있었다.
비담은 필사적으로 병사들을 꺾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덕만까지.. 65보!"

그러나 수많은 병사들의 저지로 인해 여왕에게 오는 속도가 너무도 더뎠다.
성격이 급한 여왕은 그 굼벵이 같은 속도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덕만까지.. 55보!"

궐장노 부대가 쏜 화살에 비담이 부상을 입는 바람에 비담과 여왕의 거리는 아직도 멀기만 하였다.

이윽고 여왕은 체면을 차리지 못하고 비담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알천이 경악하여 말리는 소리는 여왕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덕만까지.. 45보!"

비담은 부상을 입은 와중에도 화려한 무술을 선보이며 여왕과의 거리를 계산하고 있었다.

병사 네명을 한꺼번에 처리한 비담은 숨을 몰아쉬다가 고개를 들어 처연한 눈으로 여왕이 있는 곳을 보았다.

"덕만까지.. 40ㅂ......... 아니.. 35? 34.. 33보..?!!"

여왕이 무서울 정도의 속력으로 비담을 향해 걸어오는 바람에, 비담은 자신이 계산해두었던 여왕과의 거리 보다 가까워지자 적잖이 당황하였다.

"덕만까지 24보...?"

이때 뒤에서 달려온 유신이 비담의 앞을 막아서며 일격필살을 날리었다.
거리계산이 안돼 당황하고 있던 비담은 제대로 방어를 할 수 없었다.
마침내 유신이 비담에게 칼을 꽂았다.
비담은 흐린 시선으로 여왕을 보며, 유신의 귀에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이내 절명하였다.

여왕은 그자리에서 충격으로 쓰러져 사흘뒤에야 일어났다.



"유신공... 말해주세요... 분명... 유신공의 귓가에 대고.. 비담이 뭐라 하였습니다... 뭐라 하였습니까...?"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었사옵니다. 용서하시옵소서. 소신은 감히 그런 불경한 말을 전할순 없사옵니다."

"무엇인데 그럽니까... 말해보세요, 유신공.."

"아니되옵니다. 할 수 없는 말이옵니다..."

"황명입니다... 당장 말해주세요."

유신이 망설이며 눈치를 보다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 비담이... 말하기를............."

"어서 말씀하세요 유신공..."

유신은 차마 여왕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였다.

"...덕만이 이년.... 빠르구나... 라고 하였사옵니다..."


비담의 목은 그날 성벽에 효수되었다.


끄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