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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읽다가 삘받음 (썰ㅈㅇ모바일에서 작성

99(223.62) 2016.03.13 15:37:17
조회 439 추천 10 댓글 6


이른 봄날의 냄새는 가을의 첫 느낌과 흡사했다. 뭉쳐지지 않는 신선한 공기와 여백 사이로 간간히 맡아지는 차가운 흙냄새. 단지 차이라 하면 이른 봄날에는 조금 더 새파란 새순향이 났다. 한승희가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하고도 한 면의 벽을 차지한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는 이유다.

커피포트에서 슬며시 끓어오른 커피가 보글거렸다. 덕택에 화실엔 소름끼치게 신선한 공기와 따뜻하고 고소한 커피향이 지나칠 정도로 어울렸다. 한승희는 보기드문 미소로 그런 풍경에 화답하며 저 혼자만의 일을 시작했다. 민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연화도. 부잣집 마나님의 요청으로 맡게된 일이다. 근래에 승희는 딱히 그림 요청을 받아들이거나 하는 일 없이, 자유롭게 원하는 작업을 하고는 했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원하는 그림을 그리며 먹고 살 만큼 안정된. 업계에서는 그야말로 멸종 위기종이라 불릴 만큼이나 희귀한 위치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소위 저명한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보기 드물게 수여되는 칭호인 \'성공한\' 따위의 수식어가 붙는 화가중에 한 명이란 말이다. 그리고 그 \'성공한\' 뒤에는 지금 그리고 있는 연화도의 마나님이 계셨다. 티나게 연줄을 대주거나 스폰서를 자처한 여자는 아니다. 다만 민화의 관심이 맞아 떨어지고 드물정도로 별다른 친절을 베풀지 않는 승희에게 호의를 품고있는 사람이었다.

한승희가 연화도의 꽃잎을 수채색으로 너르고 세세하게 덧바르다가 앞으로 떨어진 옆머리를 귀뒤로 살짝 넘겼다. 그리곤 어느날인가 마나님이 웃으며 했던 말이 생각나서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잠시 붓을 놓았다.

"젊었을땐. 화가선생님 한 분을 흠모해서 쫓아다녔거든. 덕분에 그림에 대한것도 나름대로 이해할수있는 시선이 생겼고... 무엇보다 화실에 눌러 앉아서 그림에 열중하는 선생님 모습을 보는게 참 즐거웠어요."

그 날. 온몸으로 하얗게 볕을 담아내는 카페에 앉아서 한승희는 잔에 담긴 녹찻물을 간간히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고있었다. 마나님의 이야기가 딱히 재미있지도, 없지도 않은. 풋풋하고 진솔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승희가 생각할때 그녀는 아직도 어린시절의 그 소녀 만큼이나 순수하고 그림에 대한 열정이 엿보였다. 본인 말대로 집안끼리의 결혼과 유별난 시집살이에 붓을 놓기는 했어도, 본질적으로 그림자체에 애심을 품고있는걸 알수있었다. 오십 중반의 나이에도 감을 놓치지 않고 결벽적인 센스를 발휘하는 옷의 색감이나 구성에서도, 귓불에 가볍게 빛나던 진주 귀걸이에서도, 단순히 호사스러움을 보이기위한 차림새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다. 나름의 미의식이 높은 사람이었고 그만큼 한승희에게는 예의를 아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타인에게 예민한 승희라도 그처럼 예의바른 그녀를 거부하거나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였다. 마나님이 자신의 과거와 같은 특별한 경험을 딸에게도 물려주고 싶어하는 듯한 은밀한 욕망을 내비칠때에도 얼버무리지 못하고 수락한것은.

한승희가 붓으로 다시 연화도의 선을 따라그리다가 이번엔 심란한 표정으로 붓을 놓았다. 그리고 팔짱을 낀채로 연화도를 내려다 보다가 시간을 슬쩍 확인했다. 오후 정각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 그리 출출하지도 그렇다고 뱃속이 만족스럽지도 않은. 승희는 왠만하면 이 연화도의 주인인, 마나님의 딸내미가 오면 함께 간단한 요기라도 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화실에 견학삼아 오는 어린 여자애와 무어이 그리 할일이 있겠는가. 요리는 자신없지만 간단한 샐러드 정도는 만들어 뒀고, 식빵이나 버터등은 충분하다. 나머지는 여자애가 샐러드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해서 샐러드볼안에 푸릇푸릇한 풀대신 축축한 풀이 그득하게 찰랑거리는 불상사를 만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갓 스무살이된 여자애라 했던가. 단지 너무 천방지축 작업실을 휘저어놔서 본인의 성질머리가 나오지 않기를. 한승희는 간절히 바랐다.

화실에 초인종이 울린것은 그 뒤로 사십분쯤 지났을 때였다. 한승희가 잠깐 붓을 쥐던 오른손을 가볍게 풀고있을때. 처음엔 초인종 소리가, 반응이 없자 소극적인 노크소리가 들렸다. 한승희는 절로 현관을 쳐다보며 몸이 굳었다. 일단은 초인종 소리를 자신도 처음 들어봐서 그 범상치 않게 꽤액거리는 소리에 놀랐으며, 곧이어 노크소리 너머로 들리는 희미한 "저기요오.." 라는 작달만한 목소리에 알게모르게 충격도 받았다. 자연에 둘러쌓인 화실에서 자신의 혼잣말조차 아껴왔지만, 오늘은 달랐다. 타인이 침범한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아마 그럴 필요도 없었겠지만, 한승희는 서둘러 물감투성이 앞치마를 풀어 작업대 위에 포개놓고 현관문 앞으로 저도 모르게 빠른걸음을 걸었다. 손잡이에 손을 올려두었을때 희한할정도의 긴장감을 떨치려 벌컥 문을 여는 그 순간까지 승희는 제 표정을 생각할수가 없었다. 당황했나? 아니면 그저 짜증나는 표정을 짓고 있나? 팽팽한 실이 피부를 당기고 있는것처럼 무표정조차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 저기. 저는... 안녕하세요. 서지은 이라고 합니다..."

부잣집 딸내미들이나 아들내미를 상대하는건 여간 피곤한일이 아니다. 한승희는 직업상 상류층의 사모님들과 관계를 맺고는 하지만 가끔은 자기 자녀의 교양을 뽐내려 억지로 갤러리에 끌고오는 부인들도 있었으니 대부분의 그런 상황을 겪고난다음에는 조금 진절머리를 치게되는것이다. 불만스럽지만 불만스러운 기색을 숨기려 괜스레 인상을 굳히거나 따분함을 감추려 입꼬리만 가식적으로 올리며 건네는 젊은이들의 인사를 한승희는 싫어했다. 그럴때에 승희는 오해를 사던 말던 그들이 내민손을 모른척하며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딱히 괴짜라거나 사회성이없다는 소리는 승희에게 늘 따라다녔으니 오히려 이제는 면피용이 되기까지 했다. 요컨대 \'원래 그런 사람.\' 이라던가, \'예술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괴짜거나 사람 대하는법을 몰라.\' 라던가.

"어서와요."

그런 한승희에게 서지은의 모습은 사뭇 산뜻했다. 돈많은 어린애들이 마음 한켠에 가지고 있는 오만할정도의 심적여유도 보이지 않았다. 되려 불쌍한 강아지 정도를 연상케하는 눈썹이나 애써 예의껏 올린 입꼬리를 보고있으면 차라리 어리숙한 방문판매원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한승희가 그런 애처로움을 좋아하는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기분좋게 빗나간 예상이기는 했다. 화실을 제멋대로 만들만한 천방지축은 아닐테니까. 한승희는 웃으며 서지은의 인사를 받고 화실로 들어갔다.



뻘솔 셀털주의

병원생활하고있는 할미가 병상에서 캐롤읽다가 삘받아서 폰으로 올린거라 엄지손가락이 아프네. 보는 사람도 거의 없겠지만 낼 오른손에 링거 옮겨타면 이어쓰는것도 한참걸리겠네
혹시 썰글 거슬리면 말해줘 빛삭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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