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스포다.
좋든 싫든, 시즌6가 닥터후의 새로운 장을 연 건 사실인 듯.
가장 큰 특징은 닥터후의 오랜 전통인 옴니버스 형식을 반쯤 버린 거.
중간에 짐짓 옴니버스인 척 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모든 에피가 메인작가의 메인스토리의 통제 하에서 움직이는 거지.
만일 내가 올닥 때의 후비안이었다면 이걸 절대로 좋아할 수 없었을 거야, 아무튼 나는 뭔가 크게 변하는 걸 반기는 타입이 아니니까.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그저 뉴닥 종자일 뿐이고, 이 새로운 시도에 별다른 악감정 없이 주목하고 있을 뿐이야.
제대로 된 평가는 유예된 절반의 에피와 함께 가을 이후에나 내릴 수 있겠지.
시즌5 중 우리나라에선 반고흐에피가 호응이 좋았는데, 개인적으로 난 시즌5 에피 1+13 콤비가 닥터후에서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고,
1+12+13, 1+2+12+13 조합까지도 너무 좋았지만, 그 중간은 아무리 좋은 에피도 전체 속에서 약간 길을 잃은 듯 보였거든.
모팻은 \'배드울프\'처럼 \'시간의 금\'으로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연작 아이템을 깔아놓았지만
오히려 다른 작가가 쓴 에피에 맥락없이 얹어져서 궁금하기보단 좀 산만한게, 메인작가가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는 느낌도 있었어.
이런 시즌5 때의 시행착오에서 모팻이 느낀 바가 많은지 이번엔 아예 대놓고 자기가 전체를 컨트롤한 것 같아.
이 점이, 시즌6가 닥터후에서 가장 질적으로 우수한 시즌으로 (지금까지는)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할 거야.
단순한 기술력의 향상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비교적 균질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 말야.
만일 중간 중간 다른데로 튀는 것 같던 에피들까지도 정말 솜씨좋게 회수해서 메인 스토리라인 안에 엮어낸다면
완성도의 측면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시즌이 될 가능성이 높지.
하지만 같은 이유로, 오랜 닥터후 팬들에겐 시즌6야말로 가장 갑갑하게 느껴지는 시즌이기도 할 거야.
닥터후 특유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또 그래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무한한 자유로움이 추수왕의 손아귀에서 제한되고 통제되기 시작했으니까.
거대 떡밥이 시리즈 전체를 장악하자 시리즈의 자유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 거지.
그래서 심지어 닥터후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대책없는 낙관주의와 실없는 농담들조차 그 힘을 잃은 듯 보여.
여전히 중간 중간 닥터의 철없는 농담이나 소소한 일상들이 웃음을 주긴 하지만
시리즈 전체를 장악한 거대 떡밥의 어두운 그림자때문에, 웃으면서도 \'이래도 되나\'싶은 거리낌이 있는 거야.
또, 떡밥의 향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추측은 다 나와버리고, 정작 본방에서 스토리텔링이 아무리 좋았어도 나오는 얘기는 떡밥에 대한 것 밖에 없지.
이러면 생기는 가장 큰 반작용은, 어떤 카드를 꺼내도 성에 안 차게 돼버린다는 거.
우라사와 나오키를 생각해봐.
한 회 한 회 떡밥으로 낚으면서 쪼는 맛은 갑이지만, 그런식으로 해결을 뒤로 미루고 미루고 하면서 떡밥에 대한 환상을 불려놓는 바람에
그 어떤 결말이 준비되어 있어도, 그게 얼마나 충격과 공포의 그지 깽깽이여도, 어쨌든 결국엔 대부분 성에 안 차 하잖아.
하지만 다행히도, 후기가 온통 떡밥에 대한 것밖에 없는 게 아쉬울만큼 시즌6의 스토리텔링도 (아직까진) 힘을 잃지 않고 있는 듯 해.
난 사실 에피7에서 리버송의 정체 그 자체보다는, 딸을 잃고 모두가 실패라 여기고 실의에 잠겨있는 순간
그 딸을 찾을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 \'리버송\'이라는 손에 잡히는 물리적인 실체로 바로 곁에 있다는 걸 발견하게 만드는 게 좋았어.
단순히 그녀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녀의 정체가 모두에게 가장 큰 의미를 갖는 순간을 만들어냈다는 것,
앞으로 스토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도록 정확한 타이밍을 짚어냈다는 거.
떡밥은 스토리아크 안에 머물 때 아름다운 거야.
떡밥이 작품 밖으로 뛰쳐나와 오로지 시청자를 낚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할 때부터
작품은 안드로메다를 넘어 갈리프레이로 날아가버리지.
모팻의 떡밥들이 작품 안에서 제대로 엮여 제대로 아크를 이룰지,
아니면 정말 다음회 시청률을 낚기 위한 떡밥일 뿐일지는 하반기에 이르러서야 알 수 있겠지.
우리야 이러고 노는 게 재밌으니까 떡밥 떡밥 하지만 그건 그거고,
시리즈는 거대 떡밥의 어둠에 잠식되지 말고 빨리 회복돼서 \'닥터와 컴패니언이 씽나게 우주를 여행한다\'의 닥터후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사실 내가 메인작가로서 모팻에 반한 건 시즌5 오프닝-피날레 연작에서 자잘한 아이디어들로 앞뒤 엮어가며 재치부리는 거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 스토리텔링이나 놀라운 퍼즐이나 충실한 떡밥 회수나 그런 거 다 떠나서 단순히
난 딱 페즈+대걸레+맷닥 조합이 모팻이 창조한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았거든.
그 대책없이 낙관적이고 엉뚱하고 가볍고 유치한 수퍼히어로 말이야.
부디 닥터가 90년대 이후 넘쳐나기 시작한, \'고뇌하는 어둠의 기사\'중 하나가 되지 않기를 빌 뿐.
은, 기나긴 개인적 사족일 뿐.
본론은 지금부터. 공식적인 시즌6 중간 평가 겸 모팻 트위터 셔틀 마지막 하나 남기고 간다.
영국엔 audience appreciation index, 줄여서 AI 라고 불리는 시청자 선호도 조사같은 게 있는데 꽤 공신력있는 듯.
100점 만점에 비비씨 드라마 총평균은 80점 정도고, 85점이면 굉장한 수작에 들고, 90점이면 레전설로 꼽힌다고 할 수 있어.
평균이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더 떨어질 수도 더 오를 수도 있지만,
굿맨 고즈 투 워 에피가 방영 이틀만에 88점을 찍으며 올해의 드라마 공동 1위로 올랐어.
90점 찍는 작품은 아주 레어하다는 걸 보니 88은 어마어마한 수치인가봐, 아무튼 시즌6에 대한 현지 반응은 한 마디로 쩐다,인 듯.
더불어 비비씨 다시보기 사이트 iplayer의 이번 달 탑3는 닥터후 시즌6 에피 세 편이 휩쓸었고, 탑5까지 가면 총 네 편이 등극하는 등
축구랑 동시에 방송되고 하면서 본방 시청률은 손해를 봤지만 재방+다시보기까지 합하면 뒷심이 장난 아닌가봐.
그리고 이 모든 소식은 모팻이 자기 손으로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본인도 민망한지 \'자랑 맞으니까 닥쳐.\' 한 마디를 남긴 채...
시즌6, 어땠니, 갤러들아, 니들도 88점 줄 거임?
또, 다른 시즌들과 비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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