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최후의 황제인 혜종( 惠宗, 순제(順帝): 1333~1367 )의 시대에 전대로부터 이어받은 재정궁핍과 정권 내부의 권력투쟁, 자연재해와 가렴주구, 이민족지배 등 말기적 증상이 확대되어, 제국은 가속으로 멸망해갔다. 이러한 상황 아래 각지에서 농민반란이 빈발했으며 드디어 1351년 황하치수공사를 계기로 하여 백련교도( 白蓮敎徒 )였던 한산동( 韓山童 ), 유복통( 劉福通 ) 등이 대대적으로 난을 일으키고, 이후 그 뒤를 이어 서수휘( 徐壽輝 ) 등의 반란이 발발함으로써 중국은 원말명초 대란의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그들은 머리에 붉은 두건을 둘렀으므로 홍건군( 紅巾軍 ), 홍군( 紅軍 ), 혹은 홍건적( 紅巾賊 ), 홍두적( 紅頭賊 ), 홍적( 紅賊 )이라 칭하였으며 그들의 반란은 소위 홍건( 紅巾 )의 난, 홍건군의 난이라 일컬어졌다.( 학계에서는 저들을 단순한 도적집단이 아니라 사회변혁을 위한 농민봉기군이라고 재평가하여 그 명칭을 홍건군으로 호칭하고 있다. 따라서 올바른 명칭은 홍건적이 아니라 홍건군인 것이다. 하지만 홍건군이 고려로 침입할 당시에는 변질 타락하여 도적집단으로 화해버린 시점이었던고로 한국에서는 홍건적이라는 종래의 명칭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보인다. ) 이들 홍건군들은 일반적으로 크게 두 계통으로 나뉘는데 유복통, 한림아( 韓林兒 )가 건국했던 대송국( 大宋國 )을 동계홍건군( 東系紅巾軍 )으로, 서수휘가 건국했던 천완국( 天完國 )을 서계홍건군( 西系紅巾軍 )으로 구분하고 있다.
동계홍건군은 한산동이 원에 의해 처형된 후, 그의 어린 아들 한림아를 박주( 亳州: 현 안휘성 박현 )에서 황제로 옹립, 대송국을 건국하고 세력을 확대하여 1357년 3로군으로 나뉘어 대거 북벌을 개시해 각 방면으로 진군하여 1358년 5월 옛 북송의 수도 개봉으로 수도를 옮기는 전과를 세웠으나 내분 고립으로 도적집단화하여 각개격파되고 1359년 다시 개봉을 탈환당하였으며 피신한 한림아는 주원장( 朱元璋 )에게 의탁했다가 1366년 살해당하여 대송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서계홍건군 역시 내분이 계속된 끝에 1360년 서수휘가 진우량( 陳友諒 )에게 살해당함으로써 천완국은 멸망해버렸으며 이후 주원장, 진우량, 명옥진( 明玉珍 ), 장사성( 張思誠 ), 방국진( 方國珍 ) 등 군웅할거의 형세가 출현하게 되어 이 시점에서 홍건군의 난은 종결되기에 이른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주원장이 대두하여 원말명초의 대란을 수습해나가고 중국을 통일하였던 것이다. 다음은 홍건군의 조직들이다.
동계홍건군( 東系紅巾軍 ) - 대송국( 大宋國: 1351~1366 )
황제 - 소명왕( 小明王 ) 한림아( 韓林兒 ).
승상( 丞相 ) - 성문욱( 盛文郁 ), 두준도( 杜遵導 ). 평장( 平章 ) - 유복통( 劉福通 ), 나문소( 羅文素 ). 추밀원사( 樞密院使 ) - 유륙( 柳六 ).
중로군( 中路軍 ) - 산서 방면으로 진군. 수령은 관선생( 關先生 ), 사류( 沙劉 ), 파두반( 破頭潘 ), 풍장구( 馮長舅 ). 서로군( 西路軍 ) - 섬서, 감숙 방면으로 진군. 수령은 이희희( 李喜喜 ), 대도오( 大刀敖 ), 백불신( 白不信 ), 이무( 李武 ), 최덕( 崔德 ). 동로군( 東路軍 ) - 산동, 하북. 대도( 大都 ) 방면으로 진군. 수령은 모귀( 毛貴 ), 전풍( 田豊 ), 왕사성( 王士誠 ). 강회군( 江淮軍 ) - 강회 방면으로 진군. 수령은 곽자흥( 郭子興 ), 곽천서( 郭天敍 ), 장천우( 張天祐 ), 주원장( 朱元璋 ).
서계홍건군( 西系紅巾軍 ) - 천완국( 天完國: 1351~1360 )
황제 - 서수휘( 徐壽輝 ).
추보승( 鄒普勝 ). 예문준( 倪文俊 ). 진우량( 陳友諒 ). 조보승( 趙普勝 ). 명옥진( 明玉珍 ). 맹해마( 孟海馬 ). 포왕이( 布王二 ).
이러한 원말 반란의 주체가 된 것은 이들 두 계통의 홍건군이며, 그 후 대부분의 군웅은 여기에서 배출되고 있다. 예컨대 명 태조 주원장은 동계홍건군의 곽자흥 군단에서, 후에 한( 漢 )을 건국한 진우량과 하( 夏 )를 건국한 명옥진은 서계홍건군에서 분파 독립한 인물이었다.( 여담이지만 명옥진의 아들 명승(明昇)은 명나라에 의해 하나라가 멸망되자 고려로 이송되었고 그 후손은 명씨(明氏)와 승씨(昇氏)로써 한국에 현존하고 있다. ) 그 중에서 고려로 쳐들어온 홍건군의 군단은 산서 방면을 담당한 중로군으로 이들은 황하를 건너 산서 방면으로 북상하여 기주( 冀州 )로 진군, 대동( 大同 ), 그리고 원나라의 여름 수도인 상도 개평부( 上都 開平府: 현 내몽고 호화호특 )까지 함락시키고 요양( 遼陽 )으로 진격하였으나 원군의 반격으로 퇴로가 막히자 마침내 고려로 침입( 1차 침입은 4만~10만 군대로 1359년 12월~1360년 2월까지, 2차 침입은 10만~30만 군대 - 홍건군 호왈 110만 -로 1361년 10월~1362년 1월까지 )하였다가 도리어 거의 전멸 상태에 빠져 패주하였으며 그 잔당은 요동지방에서 원군의 공격으로 최종적으로 소멸되었다. 아래는 이들 고려를 침공하였던 홍건군 중로군의 수령들이다.
관선생( 關先生 ): 홍건적 중로군의 대수령이자 벼슬은 평장( 平章: 평장정사(平章政事))으로 제 2차 홍건적 침공군의 수령으로써 고려에 침입하였다. 1362년 1월 개경을 수복하려는 고려군과의 개경공방전에서 이단( 李旦: 이성계 )에게 참살되었다.
모거경( 毛巨敬 ): 제 1차 홍건적 침공군의 수령으로써 고려에 침입하였다. 벼슬은 평장.
모귀양( 毛貴陽 ): 제 1차 홍건적 침공군의 장수로써 1359년 12월 철주( 鐵州 ) 전투에서 안우( 安祐 ), 이방실( 李芳實 ) 휘하 고려군에게 대패하였다.
반성( 潘盛 ): 제 2차 홍건적 침공군의 수령으로써 고려에 침입하였다. 벼슬은 평장.
사류( 沙劉 ): 홍건적 중로군의 대수령이자 벼슬은 평장으로 제 2차 홍건적 침공군의 수령으로써 고려에 침입하였다. 1362년 1월 개경을 수복하려는 고려군과의 개경공방전에서 이단에게 참살되었다.
심자( 沈刺 ): 제 1차 홍건적 침공군의 장수로써 벼슬은 원수( 元帥 )이다. 1360년 2월 2차 함종( 咸從 ) 전투에서 고려군에게 패배하여 생포되었다.
왕동첨( 王同僉 ): 제 2차 홍건적 침공군의 장수로써 벼슬은 동첨( 同僉 ) 겸 비장( 裨將 )이고 이름은 미상이다. 1361년 12월 강화부 고려주민들의 거짓 항복에 속아 살해되었다.
왕원수( 王元帥 ): 제 2차 홍건적 침공군의 장수로써 벼슬은 원수이고 이름은 미상이다. 1361년 11월 이단 휘하 고려군에게 패사하였다.
주원수( 朱元帥 ): 제 2차 홍건적 침공군의 수령으로써 벼슬은 원수이고 이름은 역시 미상이다. 한단고기에서는 주원장( 朱元璋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비록 주원장이 홍건적 휘하에 있었지만 그의 소속이 중국 남단의 강회군이고 고려로 침입했던 홍건적이 최북단의 중로군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주원수가 명 태조 주원장일 가능성은 전무하다. )
파두반( 破頭潘 ): 홍건적 중로군의 대수령이자 벼슬은 평장으로 제 2차 홍건적 침공군의 수령으로써 고려를 침입하였다. 1362년 1월 개경을 수복하려는 고려군과의 개경공방전에서 패해 압록강을 건너 도주하였다가 4월 원나라의 요양행성동지( 遼陽行省同知 ) 고가노( 高家奴 )에게 포살되었다.
황지선( 黃志善 ): 제 1차 홍건적 침공군의 수령으로써 벼슬은 원수 겸 원판( 院判: 추밀원판(樞密院判))이다. 1360년 2월 2차 함종 전투에서 고려군에게 패배하여 생포되었다가 3월 참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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