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처럼 사령관에게 자살을 강요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그 장면의 장군으로 추정되는 알렉산드르 로바틴 제62군 사령관(추이코프의 전임자였지요)은 자살하거나 총살되지 않고 그냥 해임되는 선에서 그쳤지요. 그러나 흐루시초프가 1930년대 대숙청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스탈린 시절을 살아남은 소련 원로들의 상당수가 이 대숙청에 참여해야 했지요. "스탈린이 연설을 마쳤다.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1분, 2분....박수는 계속 되었다. 11분쯤 되서야 누군가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사람은 총살되었다" 이것이 1930년대의 소련 분위기입니다. 이 정도면 저 옛날 이반 뇌제 수준의 사이코죠. 그나마 1930년대는 스탈린의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사람들부터 숙청됐지만 1940년대 2차대전 종전 후에는 아예 무차별로 숙청됩니다. 블라디미르 데카노조프, 로조프스키, 안드레이 즈다노프는 모두 스탈린의 충신이었고 대숙청에도 참여했지만 죽었습니다. 소련 최고의 마르크스경제학자인 니콜라이 보즈네센스키는 논문이 반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총살당합니다. 이런 시대상황 하에서 흐루시초프가 살아남은 것도 기적입니다. 그리고 흐루시초프는 스탈린 사후, 공산당 제1서기라는 최고의 직책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완전히 마비시킬 정도로 공포를 뿜어낸 스탈린에 비해 그의 권위는 매우 약했고 부총리 베리야는 여전히 내무부를 조종하며 활개치고 있었습니다. 흐루시초프는 베리야의 협력자 말렌코프와 미코얀을 설득해 비밀리에 그들과 손을잡고 베리야를 총살시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지요. 베리야는 폴란드 한곳에서만 14000명의 장교를 포함해 26700명의 엘리트를 살해할 정도의 악마였으니까요(베리야가 장관으로 있던 NKVD는 폴란드 지식인들을 살해할때 성기에 종이를 말고 불을 붙여 죽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3년 후에는 저 유명한 스탈린비판으로 그의 시절에 있었던 대숙청 사실을 전세계에 공개합니다(이 회의 자체는 비공개였지만 입소문으로 전세계에 퍼져나가게끔 되있었지요). 이런 명언도 남겼지요. "우리는 스탈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긴 것이다" 그와 동시에 수백만명의 굴라그 수감자들이 일시에 석방되고 굴라그는 텅 빕니다. 뭐 흐루시초프의 스탈린비판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비판이 지나치거나 과장되서 문제가 된게 아니라 자신과 자기 동료들의 잘못은 쏙 빼버린 것이 문제였지요. '대조국전쟁'을 논함에 있어서도 스탈린을 비판하는 것은 자유로웠지만 공산당이 제1의 역할을 했다는 이론을 반대하는것은 금지되었습니다. 제국주의적 정책도 계속되어 동베를린, 헝가리의 민주화운동은 탄압되고 헝가리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임레 나지 총리(그도 공산당원임)는 체포되어 1958년 사형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루시초프의 공은 인정되어야 하겠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수를 써도 살아남기 힘든 지옥에서 살다가 조금은 나은 연옥으로 삶의 수준을 끌어올려줬으니까요. 스탈린 사후에도 정치적 목적에 의한 좌천, 강등, 당적박탈 같은 일은 자주 일어났지만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