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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베리아 포로생활-1

뚱띠이(121.141) 2007.03.13 21:04:52
조회 1783 추천 0 댓글 10


출처: 1985. 07. 리더스 다이제스트

새벽녘이 되자 병사 두명이 나를 임시로 지은 수술실에서 끌어냈다. 동강에서 서쪽으로 80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여러 차례의 전투가 벌어졌던 체르트코보라는 소읍에 베르살리에리(이탈링군의 저격병 부대) 군의관들이 세운 건물이었다. 1942년의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불과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체르트코보는 돈강으로부터 서쪽으로 후퇴하는 약 2만명 가량의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긴 대열에서 후미에 처진 소수의 우리 이탈리아군이 임시로 쉬어가던 곳이었다.

얼어붙은 러시아의 스탭지대를 가로질러 후퇴하는 동안 동상에 걸려 절단한 내 왼쪽다리의 남은 부분이 몹시 아팠다. \'무릎 아래\'에는 아직도 온갖 신경과 힘줄, 근육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발가락이 오므라들고 장딴지가 뒤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우들은 나를 조그만 방으로 데리고 가서 절단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4명의 다른 환자들 근처의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안녕하슈."
오른쪽 다리를 잃은 왜소한 체구의 사나이가 말을 걸어왔다.
"또니노 판띠라고 합니다. 사바우디아 출신이오. 당신 이름은 뭐요, 그리고 고향은 어디슈?"
"난 까를로라고 합니다. 밀라노가 고향이지요."
우리는 모두 고통으로 기지낵진했지만,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사바우디아 출신의 또니노 판띠는 코자크병 1개 연대 전체를 혼란에 빠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못생긴데다 더할 나위 없이 배짱이 센(아마 활력이 넘친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그는 호감이 가고 너그러워 보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다음은 왼쪽 발이 없고 오른쪽 다리가 25cm쯤 절단된 노바라 태생의 지오반니였다. 레체 출신의 안또니오 브리지오는 팔이 하나 없었다. 나폴리가 고향인 또똔노는 사지가 멀쩡했지만 오른쪽 다리는 포탄 파편이 아직 박혀 있어서 잘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점심 때 저격병 한 사람이 식사를 날라왔다. 비스킷, 고기 통조림과 초컬릿이었다. 나는 통 식욕이 없었다.
"먹어 둬야 해. 억지로라도 먹어 두라구."
또니노가 말했다.
"언제든 우리가 이탈리아로 돌아가게 되면, 우리집 저녁 식사에 자네를 초대하겠네. 우리 어머니는 독특한 솜씨로 파스타를 만드시는데 정말 전문가라구. 그걸 생각만해도 죽을 지경이야! 내가 한마디할까? 전쟁에서는 잘 먹을 줄 아는 국민이 항상 이기기 마련이거든. 그러니까 패자라 할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이기는 거라고 할 수 있는 거지, 안 그래?"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가 걸신들린 사람처럼 음식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안경은 검객 시라노처럼 우뚝 솟은 코에 걸려 있었고, 얼굴은 싸늘한 겨울 햇살 속에서 어쩐지 어릿광대처럼 보였다.

새해는 지난 해와 다름없이 암울한 표정으로 찾아왔고, 우리는 피할 길 없는 러시아군의 공격을 그저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1943년 1월 15일 저녁, 박격포탄이 지붕 위에서 터졌다. 바깥 거리에서는 폭발음과 고함소리, 그리고 저벅저벅하며 달리는 군화소리가 시끌시끌하게 들려왔다. 문이 열리면서 병사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비스킷 다섯 봉지와 정어리 통조림 다섯 통을 우리에게 던져주고는 돌아서 나갔다.
"우리를 데리고 가쇼!"
또니노가 외쳤다. 그러나 병사의 발소리는 복도 아래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서는 침묵이 감돌았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았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버렸어."
안또니오가 말했다.
"다음에는 누가 저 문을 열까?"
내가 말했다.
날이 새자 또니노 판띠는 늘 가지고 다니는 칼로 정어리 깡통을 따고 있었다. 갑자기 그가 동작을 멈추었다. 깡통이 손에서 떨어지면서 기름이 그의 담요 위로 엎질러졌다. 밖에서는 낮고 힘찬 행진곡 소리가 시시각각으로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러시아 군대였다.
"모두 담요 위에 올라 앉아요!"
내가 말했다.
"빨리! 몸을 밖으로 드러내요! 우리가 다리없는 사람들이란 걸 놈들이 즉각 알아볼 수 있게 해야 한단 말입니다!"
우리는 짚단 위에 아무 것도 가리지 않은 채 늘어져 있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다섯 인간의 잔해라고 해야 할 그런 몰골로 어깨를 벽에 기댄 채 우리는 눈을 문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두 발의 권총소리가 복도에서 울리는 것과 동시에 세찬 발길질에 문이 활짝 열렸다.

허리에 탄띠를 두르고 검은 모피 외투를 입은 거구의 사나이가 들어섰다. 반달처럼 길게 굽은 칼이 탄띠에 꽂혀 있었다. 무성한 팔자수염이 유별나게 큰 코 밑에서 꼬부라져 있고 손에는 이탈리아제 권총이 들려 있었다.
"독일인인가?"
그가 우리에게 고함을 쳤다.
"아니오. 이탈리아인이오."
또니노가 대답했다. 우리는 아무도 감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 사나이는 우리를 노려보더니 침을 뱉었다. 그는 우리의 상처를 보더니 커다란 머리를 흔들면서 무어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나서는 천정에 대고 두발을 쏘더니 큰소리를 치면서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빨치산이야."
또니노가 말했다.
"저런 놈이 우리를 끌어내서 사살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우리를 죽이지 않아."
또니노는 내게 몸을 돌렸다.
"자, 자네는 정어리를 먹을텐가, 안 먹을텐가?"

내가 마지막 정어리 조각을 먹고 있는데,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보통 키에 무뚝뚝하게 생긴, 검은 양복 차림의 사나이였다. 어금니를 꽉 다문 채 우리를 똑바로 쏘아보더니 이윽고 보일듯 말듯 미솔르 지으며 서투른 이탈리아어로 물었다.
"당신들 이탈리아인이지?"
"그렇소."
또니노가 대답했다.
"좋아. 이탈리아인은 독일인과 다르지. 이탈리아인은 마음씨가 더 착하고, 감정도 더 풍부하지."
우리는 모두 지당하신 말씀이라는 듯이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난 소련군 정치위원이오."
그는 말을 이었다.
"우리 러시아사람 포로 안 죽여. 당신들 부상했소. 다리 없고, 팔 없소. 러시아인들 존중해. 당신들 안 죽고, 언제든 고향으로 돌아가면, 이탈리아인에게 러시아인 하라쇼-좋아-하고 말하시오. 당신들 쉬시오. 겁내지 말고, 그럼, 안녕."
"잘 가시오."
또니노가 우리 모두를 대신해 대답했다. 그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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