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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베리아 포로생활 -4

뚱띠이(121.141) 2007.03.17 01:32:45
조회 2801 추천 0 댓글 8


시베리아의 병원

3월 중순의 어느 매섭게 추운 밤, 우리는 슈미하에 도착했다. 화차 속에서 보낸 696시간은 우리를 육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딴사람이 되게 만들었다. 뼈가 살갗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고 두려움에 빠져 신경이 날카로왔다. 수염이 자라서 얼굴 아래쪽에 시커먼 가면을 쓴 꼴이 되었고 몸에는 오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몇 개 대대쯤 되는 이들이 머리와 몸, 옷 속으로 들어와 득실거렸다. 이놈들을 죽이는 유일하고도 틀림없는 방법은 엄지손톰과 손톱 사이에 끼워 툭!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터드리는 것이었다. 슈미하는 우랄산맥 동쪽 사면의 초원지대에서 떨어져 자리잡은 남부 시베리아의 소읍이다. 도로가 하나도 없는 이곳에서는 철도 간이역에서 더 이상 뻗어나간 방향을 알 수 없는 초라한 철로가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마침내 화차문이 활작 열렸을 때, 바깥 온도는 섭씨 영하 40도였다. 아무도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이 든 우크라이나 경비병 하나가 화가 나서 끔찍한 욕설을 퍼붓자 비로소 우리들 가운데 가장 팔팔한 친구들이 눈 속으로 뛰어 내렸다. 둘 다 다리가 없는 판띠와 나는 마지막으로 나온 패거리에 끼어 있었다. 포로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맑은 눈과 젊은이 같이 매끄러운 피부를 지닌 주세페 프레띠가 우리 둘을 부축해 주었다. 우리가 역 플랫폼 쪽으로 절뚝거리며 걸어가는데 경비병이 철로가에 두마리 말이 끄는 짐마차들이 서 있는 곳을 가리켰다. 팔다리가 없는 포로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준비해 놓은 마차였다. 철로에서 마차까지는 25m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베리아 땅을 처음으로 밟는 발걸음은 힘겹고 더디기만 했다.
"서둘러야 해."
프레띠가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머지 다리까지 잃게 될테니까."
내가 한발로 껑충거리며 걸어가려니까 그가 내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둘러 부축하면서 내가 마차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마차 위에 오르자 나는 몸을 녹이기 위해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함께 북적대며 있는데도 도저히 추위를 물리칠 수는 없었다. 바람이 창자 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살갗이 뻣뻣해지면서 푸르죽죽해졌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와 군데군데 동상이 걸린 피부, 그리고 두눈에서 고통의 눈물이 솟아나왔다.
"하느님, 제발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또니노 판띠가 악을 썼다. 우리도 거기에 합세하여 애원의 비명을 올렸다. 아마도 그 많은 송장같은 얼굴을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던지 경비병들은 재빨리 인원점검을 하더니 출발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불이 꺼진 채 잠들어 있는 읍내의 거리를 지나 달려갔다. 그 작고 컴컴한 집 안에 \'진짜\' 사람들이 자고 있다고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마차는 곧 커다란 목조건물 앞에 멈추었다. 우리는 마차에서 기어내려와 절름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졸졸 나오는 미적지근한 물로 샤워를 했다. 경비병들은 우리에게 이약을 뿌리고 형식적인 신체검사를 마친 후, 부근에 있는 무척 커 보이는 2층 건물로 데려갔다. 슈미하의 포로병원이었다. 붉은 벽돌로 정면을 장식한 이 건물은 그 주변의 평원과 나지막한 집들을 배경으로 수의 위에 얼룩진 핏자국처럼 두드러져 보였다.

소련군은 우리가 친구들끼리 함께 지내는 것을 허락했다. 판띠와 프레띠, 나 그리고 다른 몇 사람은 아래층의 커다란 방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여느 병실들과 마찬가지로 침대라고는 없었다. 바닥에는 허름한 담요와 짚을 넣은 엉성한 누비이불이 덮인 밀짚 매트리스만 깔려 있었다. 조그만 창을 통해서 희미한 겨울 햇빛이 비쳐 들었다. 결코 호화로운 병실은 아니었지만, 포로가 된 이래 처음으로 우리는 진짜 베개를 머리에 베고, 진짜 벽에 등을 기댈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히 달랐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정규적인 급식을 받게 되었다. 비록 실속있는  식사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규정상 하루 네차례의 급식이 있었다. 오전 9시, 우리는 작은 잔으로 챠이(매우 진하고 맛이 괜찮은 러시아 차) 한잔과 검은 빵 1파운드(450g)를 받아 먹었다. 11시 30분에는 절인 양배추 수프에 이어서 한국자의 가스치아가 나온다.(러시아인의 주식인 까스치아는 주로 맷돌에 간 옥수수나 쌀에 양념을 넣어 조리한 음식인데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우랄산맥 동쪽 지방에서만은 낙타의 기름을 넣어서 요리한다. 러시아인들은 보통 까스치아에 삶은 육류를 곁들여 먹지만, 우리는 1주일에 한번만 고길르 배급 받았다.) 오후 4시에 다시 챠이 한 잔이 나오고 오후 7시에는 좀 더 많이 절인 양배추 수프가 나왔다. 우리들 중 아무도 몇 조각의 양배추 잎이 둥둥 떠 있는 시큼한 국물뿐인 그 수프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양배추 조각이라야 10개나 12개를 넘어서는 때가 한 번도 없었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세었다. 그 수프에서 나는 알콜같이 독한 냄새는 위장을 뒤틀리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얼큰해서 좋았다.

게다가 우리는 운이 좋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월 말경, 우리는 수용소에서 떠도는 풍문을 통해 체르트코보에서 가축열차로 떠난 다른 이탈리아군 포로들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이 병원은 규모가 너무 작아 그 포로들 중 몇 사람밖에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슈미하역의 얼어붙은 열차 속에 남은 나머지 포로들은 발진티푸스의 유행으로 모두 쓰러졌던 것이다.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이었으므로, 그 역에서 본의 아니게 정거를 하고 있는 동안에 정확히 몇 명이나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질병으로 최소한 그들의 3분의 1이 쓰러진 것은 확실했다. 이 소식은 즉각 우리 병실의 환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놓았다. 한족은 소련군이 발진티푸스의 창궐을 막기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믿었고 다른 한쪽은 소련군이 소련군이 그러한 사태를 야기시킨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어쨌든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을 당하기도 했지만 전쟁이 인간의 감정을 마비시킨 탓도 있고 해서, 소련군은 이 전염병에 적절한 대책을 세울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인들이 타고난 숙명론자들이라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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