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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베리아 포로생활 -6

뚱띠이(121.141) 2007.03.17 20:50:44
조회 1361 추천 0 댓글 4


병원을 나서다.

그리하여 한가한 이야기와 좀 나은 식사, 그리고 열심히 손으로 쓴 벽보를 읽는 재미와 또니노 판띠의 엉터리 러시아어 강좌 덕택으로 슈미하의 포로수용소에서도 시간은 흘러갔다.

9월 말, 우리에게 이동명령이 내려왔다. 시베리아의 여름은 오래가질 않는데 그나마 이미 태반은 지나가 버린 후였다. 하늘에는 눈발이 섰다. 자작나무가 첫 북풍을 받아 활처럼 휘곤 했다. 감시탑 위에서는 보초들이 장갑낀 손바닥을 율동적으로 탁탁 마주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처음에는 열차로, 그리고 이어서 트럭을 타고 마침내 키르기즈평원의 남쪽 외곽지대에 있는 카라간다읍 교외의 광대한 포로집결지역에서 잠깐 머문 후, 다시 이동하게 되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우즈베키스탄 남부의 파흐타-아랄이었다.

30일간을 질식할 듯한 가축운반 차량에 실려간 끝에, 근육과 뼈가 녹초가 되고 사기도 산산조각이 나 버린 포로들의 기나긴 행렬은 러시아 남부 깊숙한 오지의 먼지 속을 굽이치듯 헤치며 천천히 걸어 나아갔다. 우리들은 곡식과 목화를 재배하는 이 건조한 토지에 물을 대기 위해 건설된 3m높이의 시멘트 담 사이로 흐르는 수로의 왼쪽 둑을 따라 뿔뿔이 걸어 나갔다. 이따금씩 낙타의 대열이 천천히 지나갔는데 어떤 낙타에는 얼굴이 넓적하고 피부가 누런 우즈벡인들이 타고 있었고 사람이 타지 않은 낙타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목화 바리를 등에 실은 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1944년 2월이었다. 날씨는 아직 매서웠지만 대기와 훈훈하고 짙은 풀냄새 속에는 봄의 입김이 감돌았다. 우리가 가는 길은 수로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졌다. 경비병들의 말로는 이 길이 파흐타-아랄 지방에 세워진 집단 노동수용소지대로 통한다는 것이었다. 첫번째 교차로-수로를 가로지르는 최초의 다리라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에서 대열은 멈추었다. 소련군은 대열을 다섯으로 나누더니 네 무리를 다리 건너로 끌고 갔다. 내가 속한 다섯번째 무리는 수로 옆을 따라 지친 몸으로 행군을 계속했다.
"잘들 가게! 잘 가라구!"
우리는 서로 외쳐댔다. 그러나 너무나도 지쳐 있어서 우정조차 시들했다. 다행이도 판띠와 나는 여전히 함께였다.
"자네와 난 쌍동이 포로신세군."
그가 말했다. 3시간의 행군 끝에 마침내 누군가가 외쳤다.
"수용소다!"
그는 육지를 발견한 콜룸부스의 선원처럼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느릿느릿 발을 끌며 수용소 문 밖에 멈추어 섰다. 철조망 뒤로 독일인들의 얼굴들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10, 다음에는 20, 그 다음에는 50명으로 불어났다. 그들은 깨긋하고 산뜻한 제복을 입고 있었으며, 또 훈장과 계급장도 달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또니노가 의아해 하며 말했다. 그는 철조망 앞으로 슬그머니 다가가더니 그 너머에 있는 독일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돌아온 그가 이렇게 말을 전했다.
"저 치들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잡혀왔다는군. 소련군들이 계급장이나 훈장 등 모든 것을 그대로 지니게 했다는 거야."
"야전배낭까지 가지고 있던가?"
"응, 그것도야."
"야전배낭까지 가지고 있다니!"
이 소식은 재빨리 우리의 대열 속으로 퍼져 나갔다. 내 주변에서 들리는 목소리들 속에는 반드시 정직한 것만은 아닌 어떤 여운이 있었다.
"그 배낭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고 싶은 걸."
또니노가 중얼거렸다. 내게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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