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국제연합의 아버지인 선린 정책주의자 - 코델 헐

카이텔(59.187) 2007.05.06 16:47:09
조회 1912 추천 0 댓글 1

blogin_00444076_784341891.jpg

 

코델 헐 (1871년. 10월. 2일 - 1955년. 7월. 23일)

1871년 10월 2일, 헐은 테네시주 올림퍼스산에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원래 농부였지만, 벌목 사업을 시작하여 목재 무역업자가 되었다.
헐의 어릴 적 꿈은 법률가였으며, 그의 4형제 보다 더 공부에 열성을 보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작은 학교방을 지어주고, 가정교사를 불러 헐을 가르치게 했다.


테네시주 셀리나의 마운트발레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켄터키주 보울링에 그린 사범학교(현 웨스턴 켄터키 대학)에 입학하나 바로 중퇴한다.
그 대신 1890년에 오하이오주 레바논의 국립 사범대학교(현 윌밍턴 대학)를 졸업한다.
1891년에는 테네시주 레바논의 컴벌랜드대학 법학 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여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졸업 후 어릴 적 꿈을 실현하기 위해 테네시주 셀리나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나, 이미 헐의 꿈은 새롭게 바뀐 지 오래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기울였고, 1889년에 재학생 시절에는 테네시주 민주당 집회 대표를 할 정도였다.


1893년에는 22세로 최연소 테네시주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2년 후에도 연임한다,


1897년에 미국과 스페인 간에 전쟁이 터지자, 테네시 의용군에 지원하여 제4연대 대위로 참전하나  전방에서 싸우지는 못했다. 대신 남미의 실상과 문화를 체험했다.


1898년, 종전 후 제대하여 테네시주 게인스보로에서 다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다.


1903년에는 법률가로서의 자질을 인정을 받아 판사로 선출되어 제5사법지구(텍사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에 순회 판사가 되었다. 이 때 판사로서의 뛰어난 모습을 보여 “판사”라는 별명을 얻는다.


헐은 민주당원으로서의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아 1907년에 테네시주 대표 연방 하원의원에 선출된다.


그는 1921년까지 2번이나 연임하며 하원에서 영향력이 있는 세입위원회 의원으로 많은 일을 하였다.


우선 1913년에 연방 소득세를 입안하며, 관세에 대해 크나큰 개혁을 일으킨 언더우드-시몬즈 관세법에 초고를 작성했다. 이 두 법은 모두 통과되었고, 미국의 재정 증대와 더불어서 무역 확대를 추진시켰다.


1916년에는 상속에 대한 법안 초고를 작성하며 이 또한 통과된다.
그리고 세계 제 1차 대전 참전과 국제연맹을 창설한 윌슨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였다.


1920년에 재선에서 낙선한 헐은 대신 1921년에 민주당 전국 위원회 의장을 1924년까지 맡았다.


1923년이 되자 다시 테네시주 대표 연방 하원 의원에 재선되며, 1922년에 재정되어 다시 관세를 높인 포드니 매컴버 관세법과 관세 인상 정책과 보호 무역을 표방한 상무부 장관 허버트 후버와 맞섰다. 


하원의원직을 연임하던 헐은 1931년에 테네시주 대표 제2부류 상원의원에 당선된다.
그러나 1933년에 당선된 루스벨트 대통령이 새로운 국무장관을 모색할 때 그가 지명되어 상원의원 임기를 마치지 않고 사임한다.


1933년 3월 4일, 헐은 국무부 장관에 임명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주목 받지 못했으며, 대외 외교 경험이 부족하고, 연설 능력도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당과 행정부 사람들도 그를 그리 신통치 않게 여겼다.
그러나 헐은 연설가 대신에 뛰어난 문장가였고, 차분하면서도 헌신적이며 항상 앞장서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진지하고 솔직하며, 생각한 바는 망설임 없이 실천했다. 그리하여 훗날 그는 가장 인기 있고, 뛰어나며 역대 국무부 장관 중에서 자리를 오래 유지한 사람이 된다.

 

blogin_00444081_784342441.jpg
코델 헐과 국무부 차관 섬너 월너스

 

헐이 처음으로 한 규모 있는 외교적 활동은 1933년 7월에 런던경제회의 사절단 미국 대표로 참가한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의견과 대공황에 여파로 회의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신 소련에서 온 리트비노프를 만나 외교 협상 끝에 미국과 소련 간에 국교와 무역에 관한 협정을 이룬다.

 

blogin_00443051_772218361.jpg
리트비노프와 헐


그리고 그 해 12월에 제7회 미주회의에 미국 대표로 참가한다.
우루과이에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제7회 미주 회의에서 헐은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남미 국가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내정 불간섭주의를 표방했다.


이는 선린 정책으로 발전하며, 그 시작은 월슨의 평화 원칙을 바탕으로 한 코델 헐의 외교적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헐에게 호감을 가진 남미 국가들은 국민, 영토, 정부, 다른 국가와의 외교의 정도 권리와 의무를 정의하고 “어떠한 나라도 다른 나라의 대내, 대외 정책에 간섭할 권한이 없음”을 표방하는 의정서를 작성했다.


마침내 온두라스, 미국, 엘 살바도르,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우루과이, 파라과이, 멕시코, 파나마, 과테말라, 브라질, 에콰도르, 니카라과, 콜롬비아, 칠레, 페루, 쿠바가 여기에 서명했고, 남미와 미국간에 평화적이고 단결된 외교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헐은 선린정책을 지속하여 남미 국가들과 신뢰 구도를 만들어가며, 1938년에 제8회 미주회의에서는 이전까지의 협약을 총합하여 미주 제 원칙을 선언하였고, 1940년에는 쿠바 하바나에서 미주 대륙에 외무부 장관들과 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blogin_00444080_784342331.jpg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와 코델 헐
blogin_00444084_784342811.jpg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와 코델 헐


헐의 선린 정책은 대공황 타계를 위한 남미와 미국간에 무역을 촉진시켰고, 훗날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참전을 선포했을 때 남미 국가들도 동참한 것으로 이어진다.


한편 국내에서 헐은 1934년에 호혜통상협정을 체결한다.
대통령에게 50%까지의 관세 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호혜통상협정법(1930년 관세법수정법)에서 근거한 이 협정은 대공황을 타계하기 위해 관세를 인하하여 무역확대와 자유 무역을 촉진시키려는 의도로 체결되었다.


헐은 이 법을 가지고 다른 나라와의 무역 협정을 조정하여 1939년까지 대다수 남미 국가들이 이 협정에 승인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 법이 완벽하게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는 말 그대로 호혜에 대한 통상협정으로 미국에게 좋은 상품은 특혜를 주고, 안 좋은 상품은 특혜를 주지 않는 용도로 사용되게 되며, 훗날 GATT에서 WTO 체재의 그 시초가 되었다.


이 해에는 국외적으로 다른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의 먼로주의였다.
정계까지 군부가 장악하고 1933년에 국제연맹에서까지 탈퇴한 일본은 1934년에 일본식 먼로 주의인 “아마우 선언“을 미국에게 제안한다.
대외 국가의 불간섭 주의를 표방한 이 선언은 후에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의 시초가 된다.


헐은 이 제안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군말 없이 확실하게 거절했다.
이것이 승인하면 아시아에 평화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중국과의 우호를 확대하여 일본을 견제한다. 물론 중국과의 우호는 미국의 대공황 타계에 대한 좋은 시장이고 했기에 서로 간에 우호는 필요했다.


결국 일본은 1936년에 해군 군축협정 체재에서 탈퇴하며 이탈리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미 1년 전에는 독일이 재군비 선언을 한 후 영국과 해군 협정을 맺은 상황이었다. 베르사유 체재로 세워진 평화가 다시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헐은 즉각 미국에 대한 군비 정책을 발표하고, 집단 안정 보장을 주장한다. 그리고 1937년에 일본이 노구교사건을 빌미로 중국을 침공했을 때 일본에게 경고를 하며, 계속해서 중국과 일본 간에 평화 협상을 시도하나 계속 무산되었다.
 

1939년에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장악했을 때는 일부러 독일에 대한 관세를 높임으로서 항의를 표시했다.


그러나 1939년에 세계 제 2차 대전은 터지고 말았다. 물론 미국 사회는 먼로 주의를 고수하며 참전을 반대했지만, 대신 연합국에 대한 원조를 해주었다.
특히 1940년 9월 2일에 헐은 영국과 구축함 기지 조약을 영국과 맺어 50척의 구축함을 영국에게 파견해주었다. 이것은 얼마안가 무기대여법으로 발전한다.


1941년 3월 11일에 통과된 무기 대여법은 미국에 국방에 도움이 되는 곳에 대한 판매, 전달, 대여, 교환 등을 미국 대통령이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법안이며 헐은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추축국과 싸우는 나라들을 위해 군사적 원조 협정을 맺는다.

 

blogin_00444078_784342111.jpg
코델 헐, 루스벨트, 그리고 드골


한편 헐에게는 다른 문제꺼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이었다.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일본은 계속해서 중국을 장악해갔으며, 독일, 이탈리아와의 추축국 결성으로 큰 위험을 야기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중국과 일본간에 전쟁을 막으려고 시도하던 헐은 계속 그 시도가 좌절되자 일본에 대해 고철, 물자, 석유 같은 것들의 수출을 금지하고 일본의 자산을 동결했다.
그리고 마지막 협상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미국과 일본간에 조약을 위해 제시된 기초 요점”으로 일명 헐 노트로 불리는 것이었다.


1941년 11월 26일에 코델 헐과 외무부에 의해 만들어진 헐 노트는 평화로운 타협과 마지막 협상안을 제시하고 있다.
거기에 내포된 원리는 자주권과 내정 불간섭을 바탕으로 하며, 무역에서 평등과 국제 경제 협력의 원리에 따라 무역 제한에 내포된 극단적 민족주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서 양측간에 양보할 것들을 제시 했는데, 미국과 일본은 전쟁 종결을 위해 노력하며, 일본군은 중국과 인도차이나에서 철수한다는 것과 태평양 지역에 평화를 파괴하는 내용이 담긴 제3자의 조약을 거부하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과 일본은 중국 내에 어떠한 정부나 조직, 정권에도 관여하지 않고, 지원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웠는데 장제스의 충칭 정부도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뒤로는 일본이 중국에 만든 왕조명 정권, 몽강 정권 등과 같은 중국 내 괴뢰 정권도 포함되어 있다.
더불어서 미국과 일본 정부는 중국에 대한 치외법권을 철폐하며, 치외법권을 보유한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도 포기하도록 일본과 미국이 함께 노력한다는 것도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양측간에 무역장벽과 수출금지에 대한 협상, 자산 동결 해제, 달러화와 엔화의 비율을 조정한다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헐 노트 공식 문서 내용-
<U>http://www007.upp.so-net.ne.jp/togo/dic/data/hullnote.html</U>
<U>http://www.japan-101.com/history/hull_note_document.htm</U>


헐은 이 문서를 일본 대사에게 전했으며, 이는 일본에게 내용이 전달됐다. 그러나 일본의 수상 도조 히데키는 이것을 일본의 최후통첩으로 인식하였다. 특히 그들의 관점에서 중국에서의 철수와 중국 내 정권 불간섭에 만주국도 포함된 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1941년 12월 7일에 진주만 공습으로 답변했고, 미국도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blogin_00444083_784342691.jpg
코델 헐과 중국대사관 위도명, 위도명은 세계 제 2차 대전 시기에 중화민국 미국 대사다.


미국 참전하자 헐은 전시 외교 정책을 계속 진행하며, 다른 나라에 대한 무기 대여법을 확대하거나, 미국이 참전할 전선과 추축국에 대한 전쟁 방향, 전후 처리 등을 논의한다.


특히 1942년 2월에 전후 외교 정책 자문위원회가 설립되어 전시 외교와 전후 처리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루스벨트에게 조언을 하게 됐다.
이 위원회에서 의장은 헐, 루스벨트의 외교적 개인 자문관인 섬너 월리스 국무차관 등이 행정관에 명해졌으며, 소속 위원으로는 뉴딜 정책에 설계자 해리 홉킨스,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 부통령 헨리 월리스 등을 비롯하여 공무원, 정치인, 심지어 학자들도 포함되었다.


1943년 10월 18일에서 11월 11일까지 열린 제3회 모스크바회의에서 영국의 이든, 소련의 몰로토프와 함께 외무를 맡은 장관으로서의 전후 정책에 대한 논의를 했고, 그 결과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한다.


모스크바 선언에서 헐을 비롯한 3국 외무 책임자와 여기에 동참한 1명의 중국대사가 함께하여 처음으로 4국이 단결하여 전쟁을 수행한다고 명시한 후 전후 새로운 평화기구 설치와 유럽에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유럽 자문위원회 성립, 이탈리아에 파시즘 체재 처리, 전후 독일에게 병합당한 오스트리아의 해방, 그리고 독일이 저지른 잔학 행위에 대한 처벌 등이 명시되어 있다.

 

blogin_00444079_784342221.jpg
코델 헐, 모겐소Jr, 스팀슨


헐은 1944년 12월 1일에 국무부 장관에서 갑자기 사임한다. 이유는 전부터 건강이 그리고 좋지 못했는데, 전쟁을 거치면서 더 악화된 것이다.


공직에서 물러난 헐은 자신이 좋아하는 골프와 크로케를 즐기며 여생을 보낸다.


1945년에 루스벨트가 4선 출마를 했을 때 그에게 부통령 후보가 되기를 부탁하나 역시 건강상에 이유로 거절했다.

 

blogin_00444082_784342551.jpg
코델 헐과 트루먼


1945년 4월 25일에는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대표로 참석하여 6월 26일까지 국제기구 창설과 국제 연합 헌장에 대한 논의를 하여 국제연합 헌장을 발표했는데, 국제연합 헌장의 초고는 헐과 직속 참모진들이 1943년 중엽부터 작성한 것이었다.

마침내 헐은 1945년에 세계 평화와 공존을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로 노벨 평화상에 수상자가 된다.


헐은 1948년에 회고록을 펴낸 후 여생을 조용히 보내다가 1955년 7월 23일에 메릴랜드주 해군 의료센터에서 84세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워싱턴 D.C에 국립대성당에 안장되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국제연합의 아버지로 기리고 있다.

blogin_00444077_784341991.jpg

 

 

 

미국에 루스벨트 대통령도 스탈린, 히틀러 못지않게 오랫동안 집권했는데, 정작 루스벨트의 측근들이 알려지지 않아 올렸습니다.

오늘 올린 3명과 올리지 못한 노동부 장관까지 합하여 루스벨트 집권부터 루스벨트 사후가까이 까지 장관 자리를 지킨 사람들입니다. 루스벨트에게 핵심 측근인 인물들이며 각자 맡은 부서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자리를 오래 지킨 장관들입니다.

이 3명에 대한 자료를 끝으로 잠시 오랫동안 잠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달은 좀 일정이 바쁠 것 같아서요... 다음 달에도 가능한지 확인한 후 힘들다 싶으면 먼 훗날에 다시 오겠습니다.

다만 어쩌다가 간단한 자료를 남기러 왔다가 갈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올린 3명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 추천합니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모태 솔로도 구제해 줄 것 같은 연애 고수 스타는? 운영자 25/07/21 - -
109006 이번에는 하마마쓰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19 0
109005 일본잔재 청산하자 하고선 오노 료코(210.107) 13.06.14 36 0
109002 이번에는 센다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16 0
109000 지금이야말로 일제 문화식민때보다 더한 문화식민지된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노다이스케(210.107) 13.06.14 109 1
108997 이번에는 가고시마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0 0
108996 우리가아는 문화국 중국이라는것은 1700년 이미 가루가 되어 없어졌다 오가타켄이치(210.107) 13.06.14 41 0
108994 이번에는 다시 시즈오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44 0
108993 국뽕들아 미국이 일본을 버린다는건 태평양 방위를 포기한다는거다 ㅇㅋ ? 오가타메구미(210.107) 13.06.14 47 0
108991 이번에는 다시 오사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17 0
108989 조상 새끼들이 해준게 뭔데 조상새끼들을 빨아야 하냐? [1] 오가와 신지(210.107) 13.06.14 231 1
108988 이번에는 시즈오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32 0
108987 국뽕들이 일본 국제사회 고립시키자 어쩌구 하는거보면 진짜 개뿜 ㅋㅋㅋㅋ [1] 엔도다이스케(210.107) 13.06.14 143 0
108985 이번에는 오카자키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33 0
108984 한국전쟁 위안부. 한국은 일본을 욕할 자격이 있는가? 엔도 모리야(210.107) 13.06.14 218 1
108982 이번에는 다시 오사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4 0
108980 이번에는 다카마쓰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14 0
108979 센인들이 도덕적 우위로 일본 이지메 시키고 싶은가 본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에바라마사시(210.107) 13.06.14 83 0
108978 이번에는 다시 구레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3 0
108976 일본여자랑 결혼하고 싶다능(간절) 에구치타쿠야(210.107) 13.06.14 21 0
108974 이번에는 도야마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19 0
108972 이번에는 오사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3 0
108971 이번에는 시모노세키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13 0
108969 이번에는 구레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3 0
108968 [●]ㅇ 야 그래 일제가 이겼으면 천황폐하 만세 하며 살고 잇겠지~[●] 에가와히사오(210.107) 13.06.14 47 0
108966 이번에는 나고야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18 0
108965 도돌이표 mk(110.76) 13.06.14 17 0
108964 충격! 일본인이 1천만 조선여성을 강간했다 함. 야하기사유리(210.107) 13.06.14 156 0
108963 이번에는 다시 오사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3 0
108961 이번에는 다시 나고야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7 0
108960 이번에는 다시 오사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3 0
108959 [●]일본말고 영국 식민지 됬으면 좋았다는 놈들에게...[●] [4] 야츠 이사오(210.107) 13.06.14 2186 25
108958 이번에는 사세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42 0
108957 일본 방송에서 들은 조선의 반일감정에대한 얘기 야지마아키코(210.107) 13.06.14 48 0
108956 이번에는 다시 시즈오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0 0
108955 미개한 조센징 위대한 대일본제국 야오 카즈키(210.107) 13.06.14 43 0
108954 이번에는 요코하마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5 0
108953 이번에는 다시 오사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32 0
108952 일본에서 제일 심한욕이 조선인이라고 하던데 야시로 슌(210.107) 13.06.14 87 0
108951 오키노도리시마가 어디요? 대륙의 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06.14 26 0
108950 이번에는 교토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17 0
108949 이번에는 미즈시마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7 0
108948 벌레충들의 문제점은 지들을 "우파"라 자처하면서 "혐일"을 한다는것 아베마사히토(210.107) 13.06.14 81 0
108947 이번에는 마에바시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6 0
108945 일본은 한국이 반성하고, 반일을 멈출때까지 절대 한국을 도와주면 안된다 야마데라코치(210.107) 13.06.14 23 0
108944 이번에는 하마마쓰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5 0
108942 반일국뽕이 풀린다면(대사만 바꿈).swf 야마다신이치(210.107) 13.06.14 40 0
108941 이번에는 센다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19 0
108939 이번에는 다시 시즈오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0 0
108937 이번에는 가고시마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2 0
108936 이번에는 다시 오사카에 가봅시다 mk(110.76) 13.06.14 23 0
뉴스 '1박 2일' 문세윤·이준·딘딘, 예능 최초 '백록샘' 입성에 감격 "이건 사진 찍어야 돼"  디시트렌드 07.2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