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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교황(Hitler's Pope)"

위그노(121.106) 2007.05.09 23:11:29
조회 1360 추천 0 댓글 3

출간 후 전 세계에 큰 파문과 충격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된 존 콘웰의 저서.
"히틀러의 교황(Hitler\'s Pope)"

나치괴뢰정부의 학살에 동조한 고위 가톨릭 신부들,
그리고 전범들이 갈취한 금을 보관해온 바티칸의 ‘자비’


orsen.jpg

히틀러를 접견하는 교황

‘히틀러의 600만 유대인학살’로 연상되는 2차대전의 역사는 냉전시대 동서의 대립으로 많은 사실들이 은폐돼
왔다. 전시하에서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만행은 잘 알려졌으나 바티칸의 역할은 계속 의구심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1999년 11월 2차대전중 나치학살수용소의 생존자들과 가족친지들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법원에 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2차대전중 바티칸의 역할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전범재판서 유죄판결 받은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

이들 28명의 소송인들은 2차대전 당시 크로아티아에 거주하던 세르비아인, 유대인, 우크라이나인 등 소수의
생존자들과 피해자들의 가족·친지들로서 2차대전중 크로아티아 나치에 의해 탈취된 금이 바티칸은행 등 다른
곳으로 옮겨져 보관돼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바티칸은행, 프란시스카수도회, 스위스국립은행, 크로아티아
해방운동 등을 상대로 탈취된 금의 반환을 위한 법적인 투쟁을 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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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ler-with-Muller.jpg

나찌 집회에 참석한 가톨릭 성직자들

현재도 계속 진행중인 소송에서 변호사들은 재판에 필요한 2차대전중의 문서들, 특히 미국중앙정보국(CIA)
과 미군정보국에서 보관하고 있는 비밀문서들을 해제할 것을 요청하여 몇 가지의 비밀문서들을 넘겨받았으
며 바티칸에도 비밀문서를 해제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바티칸은 75년 뒤에 보관된 문서들을 해제한다는 관
례를 들어 거절했다. 현재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조나산 레비 변호사는 재판을 위해 정확한 바티칸은행의 소
유자를 밝히라는 요구를 바티칸당국에 한 바 있으나 이것마저도 거부했다고 말했다.

ustashe.jpg

대학살을 주도했던 나찌 괴뢰정권 우스타쉬의 파블리츠, 나찌식 경례를 하고 있다.
옆은 크로아티아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 오른쪽이 크로아티아 추기경인 스테피나츠 대주교


그러나 2차대전 뒤 나치전범들을 재판에 회부하면서 공개된 문서들, 미군정보국과 국무성에서 해제된 문서들
은 바티칸과 크로아티아 우스타쉬 정부와의 관계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면서 크로아티아에서는 나치괴뢰정부인 우스타쉬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무엇보다도 우스타쉬 정부와
크로아티아 가톨릭교회의 관계가 무척이나 긴밀했다는 것은 2차대전이 끝난 뒤 여섯명의 가톨릭교회 고위성
직자들이 유고슬라비아법정에서 나치전범으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전범으로 기소된 드라구틴 캄버 신부는 300명 가까이 되는 세르비아 사람들을 죽일 것을 명령했고 슬로베니
아의 그레고리 로즈만 주교는 나치협력자로 수배되었고 사라예보의 이반 사릭 주교는 ‘세르비아인들의 교수
형집행인’으로 유명했다. 또한 수십만의 세르비아인들을 고문하고 학살하여 독일 나치들조차 전율했던 야세
노바츠 수용소의 최고책임자가 프란시스카수도회의 수도승이었던 밀로슬라브 마지스토로비치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

특히 원고쪽 변호인단이 추적해오던 한 프란시스카회 신부에 관한 문서가 지난주 미군정보국에 의해 공개되
면서 그동안 베일에 쌓였던 사실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조나산 레비 변호사는 크루노슬브 드라가노비츠 신
부를 바티칸은행으로 넘어간 금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인물로 간주하여 그에 관한 문서를 CIA와 미군
정보국에 요구한 바 있다.

드라가노비츠 신부는 전시하의 크로아티아에서 수십만의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종전 뒤
에는 아돌프 아이히만과 클라우스 바비 등을 포함한 수천명의 나치전범들을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탈출시켰
던 소위 ‘ratline’으로 불리는 탈출로를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탈출로를 통해 우스타쉬 정부의 모든 지도
자들이 전범사냥에서 자유로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6월4일에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드라가노비츠 신부는 수많은 정보국을 위해 일해온 스파이로 밝혀졌는
데 특히 CIA와 미군정보국이 그가 나치활동의 과거가 있고 세르비아인들을 증오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단
지 과격한 반공주의자란 이유 때문에 그를 채용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전범 대주교 성인이 되다?

pius.bmp

독일 대표단들과 자리를 같이한 교황 비오 12세

우스타시 정부는 1941년 독일 나치가 크로아티아에 세운 나치괴뢰정부로서 극단적 민족주의와 가톨릭주의
를 이념으로 하면서 다른 민족과 종교에 대한 혹독한 박해로 악명을 떨쳤다. 2차대전 전부터 우스타쉬그룹은
유럽에서 가장 잘 조직된 테러집단으로 유명했는데, 1934년에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왕 알렉산더 2세의 암살
과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었던 루이 바투의 암살은 우스타쉬그룹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정권을 잡은 뒤인 1941년과 1945년 사이에 약 80만의 세르비아인들과 약 6만의 유대인들, 수천명의
집시들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나치들이 독가스로 집단학살하는 방법을 사용한 반면 이들은 주
로 칼과 망치 등의 원시적인 도구를 썼다. 우스타쉬 정부는 정권을 잡자마자 ‘가톨릭왕국 크로아티아’라는 기
치를 내세우면서‘삼분의 일 학살, 삼분의 일 추방, 나머지 삼분의 일 개종’이라는 잔인한 정책을 실행했다. 이
들은 인종차별을공개적으로 시행하는 법을 제정하여 다른 민족들의 학교와 교회를 강제로 폐쇄했으며 유대인
들은 다윗의 별표시를 한 완장을, 세르비아인들은 정교회 표시인 ‘P’가 적힌 완장을, 집시들은 노란 완장을 강
제로 두르게 했다.

greets.jpg

우스타쉬 정부 수반 파블리츠를 접견하는 히틀러

당시 우스타쉬 정부가 바티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스타쉬 정부의 우두머
리였던 안테 파블리츠와 자그레브(크로아티아의 수도)의 대주교였던 스테피나츠는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1년 5월에 우스타쉬 괴뢰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대주교 스테피나츠는 파블리츠에게 축하를 보
내고 축하연을 베풀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 스테피나츠는 파블리츠가 무솔리니와의 조약에 서명하기 위
해 로마로 가는 길에 교황이었던 비오 12세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대주교 스테피나츠는 전국의 크로아티아 신부들에게 목회서신을 돌려서 새로 탄생한 우스타쉬 국가를 지지
할 것을 명령하고 자신도 우스타쉬 정부의 종교개종위원회 우두머리로 활동했다. 당시 가톨릭 신부들에 의한
세르비아인(정교회 신자들)의 학살은 존 콘웰이 쓴 <히틀러의 교황>이란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존 콘웰은 학살
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다름 아닌 신부들, 특히 프란시스카수도회의 신부들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franpav.jpg

파블리츠와 함께한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사들
직접 강제 수용소를 운영하거나 학살을 주관했다.


“언제나 기관총을 지니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던 보지달 브랄로 신부는 알피파신 모스트에서 약 180명의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한 다음에 시체들을 돌면서 춤을 췄다”고 존 콘웰은 증언했다.

2차대전 뒤 독일전범들 대부분이 뉘른버그법정에 선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스타쉬 정권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법망을 빠져나갔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세르비아인들, 유대인들과 집시들을 학살한 뒤 갈취한 금과 귀중품
을 탈출하면서 함께 가져간 것으로 밝혀졌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바티칸이 독일과 크로아티아에서 온 나치전
범들을 바티칸의 성과 수도원 등지에 보호해줬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시 나치전범들이 바티칸은
행을 통해 아르헨티나 등 각 나라로 돈을 보냈다고 변호사 조나산 레비는 주장한다.

Pavelic1.jpg

발칸의 도살꾼으로 악명을 떨친 우스타쉬의 파블리츠

우스타쉬 정권의 우두머리였던 ‘발칸의 도살꾼’으로 알려진 파블리츠는 1945∼47년까지 바티칸으로부터 국가
지도자의 대우를 받으며 머물다가 이후 아르헨티나로 탈출하여 후안 페론(에비타의 에바 페론의 남편)의 정치
고문으로 일했다. 수십만을 학살했던 학살수용소들의 책임을 맡았던 크로아티아의 아르투코비츠는 30년간 미
국 캘리포니아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 죽었으며 루부릭은 스페인에서 호화별장들을 구입하고 아르헨티
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사업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다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나치정권을 지원하고 세르비아 정교도들을 학살하는 데 앞장섰던 대주교 스테피나츠는 전범으
로 체포되어 유고슬라비아감옥에서 몇년간 복역한 뒤 바티칸의 구명운동으로 석방되었다. 그가 죽은 뒤 1998
년 10월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크로아티아에서 성인으로 추대되는 마지막 절차인 시복식이 치러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입다문 바티칸, 사과가 무슨 소용

2차대전중 나치독일에 협력했던 스위스은행, 스웨덴은행, 포르투갈은행 등은 피해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문
서를 공개하고 보관된 금을 되돌려줄 것이라고 밝힌 바 있고 독일 정부도 희생자들에게 수십억불을 배상하기
로 약속했다. 그러나 바티칸당국은 오히려 독립국가에 대한 주권침해라는 이유를 내세워 미국 정부에 재판을
중단시킬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원고쪽 변호사인 조나산 레비는 필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탄식하고 있다. “교황의 변호사들이 모
두 이 문제를 건드리는 데 반대하는데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유대인들과 정교도들에게 어떻게 사과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
출처: 한겨레 21/2001년06월13일 제363호
IP Address : 59.12.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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